우레가 지나가는 풍경 / 강인한 새소리 바람에 실린다. 가늘고 뾰족한 깃털을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펼쳐든다. 초록 빗살들 사바나에 바람 불면 수사자 금빛 털도 바람에 날린다. 건너편 풀숲에 숨어 마사이 전사는 숨을 참는다. 먼 데서, 아늑하게 우레가 잦아든다. 풀숲에서 비죽 솟은 창과 창들. 조금 웃고 많이 우는 게 사랑이라고 풍경을 흐리며 낮은 목소리 들린다. 여기 또 저기 켄차야자 기다란 창이 배를 가르면 침묵을 뚫고 환호처럼 새의 부리가 줄줄이 터져 나온다.
― 시집 『장미열차』 (포지션, 2024.03) ------------------------------
* 강인한 시인 1944년 전북 정읍 출생. 전북대 국문과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1967년 5월 공보부 신인예술상 시조 당선 시집 『칼레의 시민들』『황홀한 물살』『푸른 심연』『입술』『강변북로』『튤립이 보내온 것들』 『장미열차』 등. 2010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2002년 인터넷 카페 〈푸른 시의 방〉 운영 *************************************************************
맨 앞에 수록된 「우레가 지나가는 풍경」만 보아도 시인의 고유한 특성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시는 아프리카 사바나 지대 마사이 족의 사냥 장면을 소재로 했다. 시인이 사바나, 마사이 등의 말을 썼으니 그 말을 믿고 그대로 따를 뿐이다. 어디서 이런 장면을 보았는지 따지지 말고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 새소리가 바람에 날리고 사냥을 앞둔 전사들이 조심스럽게 발을 옮긴다. 그 모습을 “초록 빗살들”이라고 표현했다. ‘빛살’이 아니라 ‘빗살’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는 빗살처럼 정글의 초록 무늬가 가늘게 흔들리고 일렁이는 모습을 묘사했다. 수사자 금빛 털이 바람에 날린다고 했는데 이것은 상황의 긴장감을 고조하는 장면으로 마사이 전사의 깃털까지 수사자의 모습으로 비유하는 효과를 거둔다. 창을 들고 숨을 참고 있다가 목표물을 공격하는 순간 우레가 잦아드는 침묵의 정적을 느낀다고 했다.
결국 목표물은 쓰러지고 그 배를 가르자 “침묵을 뚫고 한호처럼/ 새의 부리가 줄줄이 터져 나온다”라고 했다. 사냥에 성공하여 전사들이 환호하고 사냥물을 포획하는 장면을 표현한 장면일 텐데 거기 ‘새의 부리’를 배치한 점이 이채롭다. 시인의 독특한 상상의 결과다. 그보다 더 특별한 구절은 그 앞에 나오는 “조금 웃고 많이 우는 게 사랑이라고”라는 시행이다. 긴박감 있고 다소 비정한 사냥의 장면에 왜 사랑 이야기가 삽입된 것일까?
“조금 웃고 많이 우는 게 사랑”이라는 말은 사랑의 진실을 상징한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웃는 일은 적고 우는 일이 많을 것이다. 이 고달픈 세상에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얼마나 힘들고 서러운 일이 많겠는가? ‘사랑의 환희’라는 말은 그 서러움의 시간이 지난 후 숨을 돌릴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사랑을 키우고 사랑을 지탱하는 매 순간은 고달픈 울음의 연속이다. 이 말의 뜻은 잘 이해할 수 있는데 왜 이 말이 사냥의 긴장 어린 극한의 지점에 등장한 것일까? 여기에 이 시의 비밀이 있고 묘미가 있다. 그 낮은 목소리에 담긴 뜻을 알아야 “침묵을 뚫고 환호처럼/ 새의 부리가 줄줄이 터져 나온다”라는 문맥의 뜻도 제대로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시행을 설명할 자신이 없다. 다만 마음으로 그 안에 담긴 뜻을 느낄 뿐이다. 그 느낌을 깊게 간직하고, 조금 웃고 많이 우는 사랑을 충실히 실천해야, 이 의미를 해설할 수 있는 마음의 언덕이 마련될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사냥이 동족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이고 그 행위가 거기 참여한 사람 누구에게나 조금 웃고 많이 우는 고달픈 작업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수밖에 없음을 새롭게 자각할 뿐이다. 이것이 이 시가 내게 베푼 이해의 선물이다.
- 이숭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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