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영원한 행복도, 영원한 불행도 없다 운동 선수와 부상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에 비해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100% 활용해야 하는 운동 선수들의 숙명을 감안하면 부상의 위협은 전쟁터의 지뢰처럼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상이라는 치명적인 지뢰는 선수들의 경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때로는 한 선수의 운명을 뒤바꾸기도 한다.
어느 종목이냐에 따라서 자주 발생하는 부상 부위는 다르겠지만 축구의 경우는 주로 발목이나 무릎, 그리고 대퇴부와 같은 부위에서 발생하는 정형외과적 부상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이러한 부상들은 치료와 재활에 있어 오랜 기간 노하우가 쌓였고 덕분에 회복을 위해 필요한 시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러나 운동 선수가 아닌 일반인에게 있어서도 치명적인 신체적 이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가 흔히 콩팥으로 부르는 신장은 체내에 생긴 불순물들을 몸 밖으로 배출하고 체액의 조성과 양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장기다. 신체적으로 건강한 운동 선수들에게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증상은 아니지만 신장 계통의 질환이 선수 생명에 있어 거의 재앙과도 같았던 시대도 존재했다. 물론 지금은 이식 수술 등의 방법으로 회복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지만 질환을 앓기 전과 같이 격렬한 움직임을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이 불가능하다.
베르더 브레멘의 크로아티아 출신 공격수 이반 클라스니치(27, Ivan Klasnic)는 06/07 시즌 겨울 휴식 기간 중 신장에 이상이 있다는 충격적인 검진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 전까지만 해도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공격수 중 하나였던 클라스니치는 두 차례의 이식 수술을 거쳐 1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재활에만 매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또 하나의 '인간승리'의 사례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영원한 행복은 없었다
클라스니치는 크로아티아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독일 제 2의 도시 함부르크에 태어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그의 부모는 일자리를 찾아 독일로 이주해 클라스니치를 낳았고, 때문에 대다수의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자국 클럽에 대한 기억이 클라스니치에게는 전무하다. 클라스니치는 고향인 함부르크를 연고로 하고 있는 FC 장크트 파울리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98년 4월 5일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전을 통해 2부 무대에 데뷔하기에 이른다.
클라스니치는 98/99 시즌부터 장크트 파울리의 주전 공격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00/01 시즌에는 2부 리그 31경기 출장해 10골을 터트리며 1부 리그 승격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의 활약은 클라스니치의 축구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되는데 바로 그의 활약을 눈여겨 보던 베르더 브레멘이 클라스니치를 영입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교두보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꿈에도 그리던 1부 무대에 데뷔한 클라스니치는 두 시즌 가량을 적응기와 부상으로 날려 버렸지만 03/04 시즌부터 본격적인 브레멘의 주전 공격수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아일톤과 브레멘의 최전방을 책임진 클라스니치는 13골을 터트림과 동시에 11개의 어시스트를 곁들이며 브레멘의 마이스터샬레 탈환에 큰 공을 세운다. 당시 그의 활약에 고무된 루디 푈러 독일 대표팀 감독이 그에게 대표팀 승선을 제의 했으나 조국 크로아티아를 택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화 중 하나다.
이 후 클라스니치의 상승세에는 거침이 없었다. 아일톤은 더 많은 연봉을 찾아 샬케로 떠났지만 브레멘은 클라스니치의 짝으로 미로슬라프 클로제라는 걸출한 공격수를 영입하며 파괴력을 유지했다. 독일 언론들로부터 'K-K 라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클로제와 클라스니치는 상호 보완적인 플레이로 수 많은 골을 합작했고 그들의 강력한 공격 성향은 브레멘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3년간 클라스니치가 브레멘과 크로아티아 대표팀에서 보여준 상승세는 불의의 일격을 맞았고 한동안 계속될 것 같았던 그의 행복도 산산조각났다. 2007년 1월 클라스니치는 신장 기능에 이상과 질환이 있다는 충격적인 검진 결과를 전해 들어야 했고 이식수술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그는 어머니의 신장을 이식하며 더 이상의 고통이 없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첫 수술은 검진 결과를 받았을 때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과 함께 실패로 끝났다. 클라스니치의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미 한 차례 이식수술을 선택했던 클라스니치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2007년 3월 23일, 클라스니치는 아버지의 신장을 받아 두 번째 수술대에 올랐고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축구 선수로 복귀하고자 했던 그의 소박한 희망까지 성공적으로 이뤄진 건 아니었다. 그의 몸은 이미 두 번의 수술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이식된 신장이 새로운 신체에서 제대로 작용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클라스니치는 그렇게 병상에 누워 6개월을 보냈다.
클라스니치는 병상에 누워 있었던 시간에 대해 "예전처럼 축구를 계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라고 말하며 극심했던 심적 고통을 회상했다. 그러나 클라스니치는 다시 그라운드에 서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비정상적인 신체와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이겨내며 미래를 꿈꿔왔다. 클라스니치는 지난 4월 수술 이후 처음으로 홈 경기장 베저슈타디온에 모습을 드러내 그동안 자신을 성원해 준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반드시 그라운드에 다시 서겠다는 각오를 밝혀 박수갈채를 받았다.
오랜 시간과의 투쟁 끝에 클라스니치는 지난 9월 다시 운동을 해도 좋다는 의사의 확답을 들었다. 이후 클라스니치는 브레멘의 유소년 팀에서 재기를 위한 구슬땀을 흘렸고 지난 11월 24일 에네르기 코트부스전에서 선발 출장하며 11개월 만에 분데스리가 복귀전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위한 더 멋진 성탄 선물은 전반기 최종전이었던 바이어 레버쿠젠과의 홈 경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영원한 불행도 없었다
당시 브레멘은 하노버 원정길에서의 3-4 패배,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탈락 등으로 뒤숭숭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전반적인 조직력 측면에서 균열의 조짐이 보였고 특히 팀의 연이은 패배에 직접적인 원인이 된 수비진의 집중력 저하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전 라운드까지 5연승의 휘파람을 불고 있었던 '젊은 붉은 사자' 바이어 레버쿠젠이었다.
브레멘은 주전 공격수들인 휴고 알메이다와 부바카 사노고가 각각 징계와 부상으로 레버쿠젠전에 출장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팬들의 우려는 증폭되어 갔지만 토마스 샤프 감독은 클라스니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며 그를 주전으로 내세우겠다는 말 외에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 그렇게 클라스니치는 중대했던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 주전으로 출장했고 경기전 그의 표정에서는 다소간의 긴장감이 엿보였다.
팬들의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브레멘은 경기 초반부터 레버쿠젠의 파상공세를 허용하며 연신 뒷걸음질을 쳤고 결국 전반 6분 만에 상대 미드필더 트란퀼로 바르네타에게 골을 허용하기에 이른다. 사실 전반 30분까지 브레멘이 보여준 경기력은 그야말로 형편 없었고 레버쿠젠의 연승 행진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은 경기장 곳곳에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영웅적 인물'의 탄생을 위한 전제조건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영웅은 바로 전반 30분 동점골을 터트린 클라스니치였다.
클라스니치는 동료 팀 보로프스키의 슛팅이 레네 아들러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자 순간적으로 볼에 달려 들어 왼발로 밀어 넣었다. 아들러 골키퍼와의 충돌까지도 감수한 클라스니치의 허슬 플레이는 잠시후 13개월 만의 골로 연결됐다. 골 세레모니를 위해 관중석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표정에는 '내가 드디어 해냈다'라는 환호가 가득했고 급기야는 그동안의 고통스러웠던 나날이 떠올랐는지 침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간 이 모습은 많은 팬들로 하여금 클라스니치의 성공적인 복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클라스니치의 동점골과 팀 보로프스키와 유리카 브라네스를 전반 30분 만에 과감히 교체시킨 토마스 샤프의 용병술이 맞물리며 브레멘은 제 페이스를 찾기 시작했다. 후반 들어 브레멘은 19분 만에 네 골을 몰아치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뽐내며 레버쿠젠의 수비진을 초토화 시켰고 클라스니치는 후반 18분 바르네타의 클리어링 실수를 놓치지 않고 오른발로 자신의 두 번째 골이자 팀의 네 번째 골을 터트리며 대미를 장식했다. 그가 종료 5분 전 마르틴 하닉과 교체되어 나올 때는 4만 관중의 기립 박수가 쏟아졌고, 클라스니치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인간승리의 드라마
사실 아직 클라스니치가 전성기의 기량을 찾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성기의 그는 문전 앞에서의 결정력은 물론 파워와 제공권, 그리고 묵직한 슛팅력과 상대 수비수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순간적인 재기까지 갖춘 공격 자원이었다. 적어도 현재의 클라스니치에게 예전처럼 상대 수비수들을 거친 몸싸움으로 압도하며 강력한 왼발 슛팅을 터트리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클라스니치는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시점까지도 전성기의 기량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6개월 간 병상에 누워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했던 클라스니치에게 있어 그라운드에서의 싸움은 오히려 더 손쉽고 유쾌한 투쟁이 될 것임이 확실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목표는 '이제 끝났다'라는 비평가들에 맞서 축구 선수로 다시 그라운드에 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첫 번째 목표를 이루며 그의 복귀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말끔히 해소한 클라스니치는 좀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매진할 것이 자명하다.
우리는 병마나 외부의 어려운 여건과 싸워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 사례를 두고 흔히 '인간승리'라는 표현으로 그동안의 노고를 존중해 왔다. 그렇다면 운동 선수에게 흔치 않은 신장 질환이라는 병마와 싸우며 성공적인 그라운드 복귀전을 가진 클라스니치에게도 이러한 표현은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가 전성기의 기량을 찾든 그렇지 않든 간에 축구 선수로 복귀한 그는 이미 그 자체로 축하와 존중의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특히 부상으로 인해 병상에서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모든 선수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는 점은 4만 브레멘 관중들의 기립 박수도 모자랄 만큼의 의미를 지닐 것이다.
클라스니치의 인간승리 드라마가 앞으로 긍정적인 소식으로 편집될 지 혹은 부정적인 소식으로 편집될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힘겨웠던 나날의 경험을 통해 영원한 행복도, 영원한 불행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행복의 시간을 좀 더 연장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27살의 아직 '젊은' 클라스니치가 써내려갈 드라마는 이제 막 시작됐다.
첫댓글 클라스니치 누가 가져갔지??? ㅜㅜ... 근대 결국 클라스니치는 낭트로 결국 이적한...
하지만 맨유의 넘버1이될 벤 포스터가있다.
메시가 김정우한테 패스하죠
김정우는 강민수한테 패스하죠
강민수는 김진규한테 패스하죠
김진규는 김정우한테 패스하죠
김정우는 강민수한테 패스하죠
강민수는 김진규한테 패스하죠
김진규 뻥!
조재진이 헤딩하죠
박지성이 공을받아서
메시에게 패스하죠
메시가 김정우한테 패스하죠
김정우는 강민수한테 패스하죠
강민수는 김진규한테 패스하죠
김진규는 김정우한테 패스하죠
김정우는 강민수한테 패스하죠
김진규 뻥!
조재진이 헤딩하죠
박지성이 공을받아서
메시에게 패스하죠
무한반복
수고하십니다.
갑사합니다 제라드님 덕분에 뻘쭘하지않아요 ..
감사합니다. 제글에 이렇게많은댓글이..
메시가 조재진에게 패스하죠
조재진이 오버헤드킥을 시도하죠
조재진이 말하죠 아이식빵
고생이 많다..
말이많다
이댓글 패스하자
댓글이 베론에게 패스하죠.
그리고 펩시를 마시죠
그런데 코카콜라네?
아 코카콜라가 아니가 콤비콜라였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머지?
↑바지??
하지만 분데스리가는 중계도 안해준다는거.., 차두리를 1부로
그리고 클라스니치 프랑스리그로 갔죠
맨첨 리플보시죠 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