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지 못할 이름 / 김수목
조문은 늘 밤 늦은 시각이었다 장례식장은 늘 도시의 초입이었으므로 인터체인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죽음이 있듯이
수은등이 천장에서 창백하게 빛나는 로비에서 곱은 손으로 부의봉투를 쓴다 낯선 한자어를 써서 조의를 표해야 한다
방명록에 낯선 글씨로 이름을 쓴 후 이름이 맞나 확인한다 내 이름마저 불확실한 곳
생애 중 가장 많은 꽃들에 싸인 무념한 표정의 영정 앞에 기독교식으로 해야 할까, 전통식으로 해야 할까 상주와는 맞절을 해야 하나, 목례로도 괜찮을까
망자는 말이 없다 상주도 말이 없다 조문객도
미리 세팅된 밥상이 쟁반에 담겨 나온다 일회용 스티로폼 국그릇과 플라스틱 숟가락 일회용 생애 일회용 슬픔 반도 안 찬 육개장의 붉은 국물이 숟가락을 붉게 물들인다
ㅡ 시집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걷는사람, 2024.02) --------------------------------
* 김수목 시인 1952년 전남 강진 출생, 광주교육대 및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2000년 《문학과창작》 등단. 시집 『나이테의 향기』 『브레히트의 객석』 『바그다드 카페』 『슬픔계량사전』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등 산문집 『내 삶의 이삭줍기』 『지중해를 전전하다』 등 2013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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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장례식장에 가면서 느끼는 경우가 있다. 동료나 선후배, 지인의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셔서 조문을 가면서 나 자신의 나이를 새삼스레 느끼는 것이다. 내 부모 세대는 이제 거의 다 돌아가시는구나. 이 다음 차례는? 비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 달에 결혼식장까지 합쳐 다섯 번쯤 가면서 조의금과 축의금 지출이 많다고 내심 혀를 차기도 한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이 시의 내용은 장례식장에 갔다 온 사람이라면 누구도 예외 없는 느껴본 것이리라. 집에서 봉투를 챙겨가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병원 로비인 장례식장 입구에서 현금을 인출해 봉투에 넣는다. 거기에 있는 봉투에 '賻儀'라는 글자가 적혀 있지 않으면 펜으로 쓰기도 한다. 평소에는 쓸 일이 없는 그 어려운 한자를. 고인이 기독교인이면 절 받는 것을 안 좋아할 거라는 생각에서 목례하고 간단히 기도만 하는 경우도 있다. 늘 망설이게 되는 것이 유족들과 맞절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다. 많은 조문객과 맞절을 하면 무릎 관절이 아파서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된다. 마지막 연은 정말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전국 어디를 가나 상갓집 음식은 똑같다. 반도 안 찬 육개장에 밥을 말아서 먹게 된다. 반찬도 신기할 정도로 똑같다. 조문이 규격화된 하나의 형식이 되고 말았지만 어떻게 하랴, 생자는 이렇게 망자를 보내야 하는 것을. 정말 수도 없이 장례식장에 갔다 왔지만 장례식 자체를 시로 쓸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김수목 시인이 아주 적절하게, 공감이 십분 갈 정로도 잘 형상화하였다. 세 번째 시집의 출간을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좋은 시를 쓰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를 축원한다.
-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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