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에 대한 서운함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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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으로 하루하루가 괴롭다고 말하는 여성의 모습은 까칠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살펴보니,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난 이후부터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에 대한 화가 치솟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인데, 공부를 잘했던 큰아버지가 서울로 가서 공부했던 것과는 달리 시골에서 부모를 모시며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중풍에 걸린 할아버지를 모시느라 특히 자기 어머니는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할아버지는 대기업에 다니는 큰아버지만 자랑스러워했고, 함께 살며 고생한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는 탐탁지 않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몇 개월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집안에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큰아버지가 임원으로 있기 때문인지 문상객들이 엄청 많이 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많은 손님을 뒤치다꺼리하느라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였단다. 그런데 장례가 끝나자, 큰아버지는 이것저것 트집을 잡으며, 자기 손님들이 가지고 온 부의금은 앞으로 본인이 갚아야 할 빚이라며 깡그리 긁어갔다고 한다.
농촌에 살면서 점점 빚에 쪼들렸던 부모는 초상을 치르면서 부의금이 많이 들어오니까, 다만 얼마라도 빚을 갚으려니 한껏 기대했었단다. 즉, 그동안 병든 할아버지를 모시느라 고생했다며 큰아버지가 돈을 나누어주겠거니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큰아버지가 문상객들이 가지고 온 부의금은 장차 자기가 갚아야 빚이라고 하니까, 그것이 틀린 말도 아니어서 자기네 부모는 그만 헛물을 켜고 말았단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허탈감에 앓아누웠고, 아버지는 술로 날을 지새운다고 하였다.
무슨 내용인지 훤하게 그려져 나는 ‘아이고!’ 하고 신하며 그런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배경이고, 그녀가 상담을 통해 구체적으로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했다. 그리하여 한참을 시름하며 밝혀낸 사실은 병들었던 할아버지에 대해 무심하게 지냈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자기 부모에게 트집 잡았던 거 대해 한바탕 따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으로 부글부글 끓어올라 불면증까지 앓고 있었다.
속상한 심정은 알겠지만, 무엇을 따지겠다는 것인지 갸우뚱해진 나는 좀 더 앞뒤 정황을 살폈다. 그랬더니 큰아버지가 시골에 있는 농토를 동생이 다 갖는 대신 부모를 책임지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그 농토가 얼마 되지도 않아 겨우 먹고 사는 정도에 불과했고, 그리하여 빚이 늘어갔던 거란다. 아무튼 큰아버지는 서울에서 풍족하게 살았고, 자기네는 시골에서 빈곤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집 자식들과는 사촌지간이어도 남보다 소원하게 지낸단다.
지방대학을 나와 서울로 진출해 직장을 잡고 사는 자기는 이질감을 느껴 큰집과는 왕래도 하지 않고 지낸다고 하였다. 어쨌든 할아버지 장례 때 자기 부모에게 야박하게 군 것은 참기 어려워 부모를 대신해 큰아버지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고 싶단다. 그렇게 해야 무시당한 자기 부모의 응어리를 풀어줄 수 있을 거 같다는 것이다.
대략적인 전모를 파악한 나는 묵직한 심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아꼈다. 무심한데다 인색한 큰아버지에 대해 속상한 그녀의 심정은 알겠으나, 조카인 그녀가 큰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자칫하다가는 당돌하다며 부모를 욕되게 하고, 나아가 더더욱 소원해질 거 같았다. 서운함을 내비치더라도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말해야지 항렬이 다른 그녀가 입 댈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다.
그녀의 화를 어떻게 누그러트릴지 한참 고심하던 나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업(業)에 관해 설명하였다. 모든 행위에는 그 과보(果報)가 있게 마련이라며 그녀의 부모가 조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고생한 것은 어디로 가는 게 아니라 언젠가 복(福)으로 받게 된다고 그녀를 구슬렸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 아버지가 워낙 주변머리 없어 친인척에게 대우를 받지 못하며 살았고, 그로 인해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자식인 자기가 나서주어야지 아버지는 제대로 말할 사람이 아니란다.
하지만 나는 손사래를 치며, 우리 사회에는 서열이라는 게 있다며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위아래를 식별하지 못하고 나대면 보기 흉하다고 하였다. 큰아버지가 조카의 말을 듣고 개선할 사람이라면, 진작에 동생 부부의 수고를 알아주며 돈이라도 나눠주지 그렇게 사태를 엉망으로 만들지 않는다고 그녀를 설득했다.
그래도 그런 앞뒤가 꽉꽉 막힌 사람은 쓴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그녀, 결국 나는 고집부리는 그녀를 향해 돈에 대한 욕심으로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치우친 것 같다고 일었다. 그러면서 큰아버지는 능력이 딸리는 동생 부부가 부모님에게 의지해 살았고, 또 부모의 농지를 다 차지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좀처럼 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꾸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자기네를 무시했다며 분해하는 그녀에게 나는 다시금 현 상황이 되기까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며, 상호영향을 미치고 받는 연기(緣起)적인 인과(因果)에 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혹시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던 어머니에게 세뇌당한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그제야 그녀는 깜짝 놀라며 자기네 부모가 툭하면 싸웠는데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어려서부터 늘 불안하게 컸고, 집안 살림이 넉넉지 않아 배우고 싶은 걸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까스로 그녀는 큰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곁가지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본인 내부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불만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다. 아울러 어머니를 늘 불쌍하다고만 봤는데, 조금 떨어져서 둘러보니까 어머니가 유달리 화가 많은 사람으로 자기에게 화를 전수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아버지를 지나치게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첫댓글 오늘도 좋은 상담사례
감사합니다..
이웃에 김여인,
이여인,
박여인
많은 분들이 가족 친지 불편한 관계
많아요..
다음 사례 기다립니다.
삶이 측근 사람들과 갈등하고 풀고 하는 것이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