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의 앤 Anne Of The Thousand Days : 1969년 영국작
• 감독 : 찰스 재럿 • 출연 : 주느비에브 부졸드, 리처드 버튼, 이렌느 파파스, 존 콜리코스
16세기의 영국 튜더 왕조의 국왕인 헨리 8세(King Henry VIII: 리차드 버튼 분)는 자신의
왕후인 앤 볼린(Anne Boleyn: 제네비에브 부졸드 분)을 처형하기 위해 재상 크롬웰(Thomas
Cromwell: 존 콜리코스 분)이 가지고 온 문서에 서명을 하려고 한다. 영화는 서명을 하려는
헨리 8세가 자신이 앤과 결혼하기 위해 해왔던 일들을 회상하는데서 시작된다. 왕의 무도회.
프랑스에서 이제 막 돌아온 볼린가의 막내딸인 앤도 약혼자인 퍼쉬(Harry Percy: 테렌스
윌톤 분)와 무도회에 참석했다. 울지 추기경(Cardinal Wolsey: 안소니 쿼일 분)은 이 젊은
남녀의 결혼을 허락해 줄 것을 왕에게 간청하지만 아름다운 앤에게 이미 마음을 빼앗겨 버린
왕은 허락은 커녕 앤과 퍼쉬를 떨어뜨려 놓고 자신이 앤을 차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앤은 이미
왕에게 농락당해 아이를 가지고 있던 언니(Mary Boleyn: 발레리 거론 분)의 모습을 보곤 절대
왕의 여자가 되지 않겠다고 가족들에게까지 말하고 왕에게도 냉랭한 태도를 갖는다. 앤의 이런
싸늘한 태도에 왕은 더욱 더 매력을 느끼고 앤의 집에 머물며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다.
결국 앤의 안위를 걱정한 퍼쉬는 다른 아가씨와 결혼을 하고 앤은 괴로워한다. 앤의 계속되는
냉담한 반응에 왕은 캐서린 왕비의 시종으로 앤을 궁궐로 불러들이고 궁으로 옮긴 앤은 점점
권력과 사치의 맛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왕의 애타는 사랑은 여전히 앤을 떠나지 않는다.
권력의 맛을 느끼게 된 앤은 왕에게 자신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주는 대신 자신이 영국의
왕비이여야 하며 자신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앤과 결혼하기
위해선 우선 교황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스페인의 세도하에 있던 교황청이 헨리
8세와 스페인 출신 왕비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아이렌 파파스 분)의 이혼을 허락할
리가 없다. 결국 앤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교황청을 무시하고 자신을 수장으로한 새로운 교회를
세울 수 밖에 없다. 헨리 8세는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숙청하고 앤과 결혼한다. 하지만
앤과 왕의 결혼 생활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앤이 원하지 않는 딸을 낳은 데다 앤의 딸 엘리자
베스(Baby Elizabeth: 아만다 제인 스미시 분)의 왕위계승권으로 인해 다른 많은 부하들이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앤과의 이혼을 바라는 헨리 8세는 크롬웰을 시켜 앤을 간통죄로 끌어
넣는다. 그들의 음모로 런던탑에 갇히게 된 앤은 크롬웰의 주재로 재판을 받고 무죄를 인정
받지만 여전히 헨리 8세와의 이혼을 거부하고 딸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다. 또 다른 여인에게
맘을 빼앗기고 있던 헨리 8세는 결국 앤을 참수형에 처하게 하고, 앤은 후에 여왕이 된 딸
엘리자베스를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Paul Mauriat는 1925년에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Marseilles)에 있는 클래식 음악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마츄어 음악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Paul Mauria를 4살부터Academy of Music in
Marseilles [the Conservatory of Marseilles]에서 음악공부를 시킨다. 1935년 그가 10살
되던 해에 가족들이 Paris로 이주하게 되면서 파리음악원[the Conservatoire in Paris] 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데, 14살에 그는 수석졸업장과 함께 탄탄한 클래식음악의 기초소양을 가지고
졸업한다. 졸업 후 클래식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폴모리아는 오히려 팝음악과 재즈에 의 관심
갖게 되고 이에 사로잡히게 된다. 파리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17세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오케
스트라를 조직해 몇 년 동안 유럽 지역을 공연하며 다녔다. 그후 폴모리아는 얼마 전 타계한
Frank Pourcel(프랑크 푸르셀) 오케스트라의 피아니스트 등을 거치며 계속 활동을 해오다가
한 음반 제작자의 제의로 샹송의 거장 Charles Aznavour의 앨범에 편곡과 지휘자로 참여하면
서부터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 한편 Paul Mauriat는 1960년대 들어와 자신만의 독특하고
현대적인 비트감을 지니면서도 멜로디를 선명하게 해 주는 편곡스타일로 자신의 앨범들을 발표
한다. 그의 작곡품인 "Rendez-vous au Lavandou" , "La longue marche" 등의 곡이 불란서
전국에서 히트를 하게 되어 작곡가로도 활약하게 되며 1960년경 프랑스는 자국인보다는 미국
이나 이탈리아 음악가들을 더 대접해 주는 분위기였다.
폴 모리아는 1963년경 Del Roma라는 가명으로 다른 유명한 프랑스 음악가들인 Franck Pourcel
(프랑크 푸르셀)과 Laymond LeFevre(레이몽 르페브르)와 함께 공동으로 "Chariot(샤리오)"
라는 샹송을 발표한다. 이 곡은 Petula Clark이라는 가수에 의해 유럽 전역에 히트를 기록했고,
다음해 Norman Gimbel과 Arthur Altman에 의해 영어로 개사되어 "I will follow him" 이라는
곡으로 재탄생되어 Little Peggy March에 의해 미국 챠트 1위를 기록하며 폴 모리아의 최초의
히트곡이 된다. 이 곡은 우피 골드버그 주연의 `Sister Act'의 삽입되어 히트했던 곡이다.
1965년 드디어 폴 모리아는 Philips 레이블에 전속 계약을 하며 "Le Grand Orchestre de Paul
Mauriat"라는 이름으로 40세가 되서야 완전한 솔로 아티스트로 독립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솔로 아티스트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다른 샹송 가수들의 작곡, 편곡자로 활약하는데
이 시기엔 Mireille Mathieu의 뮤직 디렉터가 되어 "Mon credo", "Seuls au monde"등 그녀의
히트곡을 작곡해 준다. 폴모리아는 1925년에 태어났으니 2003년 올해로써 만 78세가 되는데,
요즘 젊은층에선 폴모리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나 방송 시그널 뮤직이나, 화면
조정 시간, 백화점 매장, CF, 몇몇 영화 삽입곡 등에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대부분이 폴모리아의 음악이다. 프랑스의 샹송을 중심으로 유명한 음악은 클래식이나
팝송을 불문하고 자신의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게 편곡을 하기도 하고 작곡도 하면서 세계
무대를 사로잡은 팝 오케스트라의 거장이다.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가끔 한번씩 한국에서도
공연, 아름다운 선율을 소개하기도 하였던 그는 1998년 11월29일 일본공연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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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상세한 해설 감사함 맘으로 즐감하고 갑니다~~ 무더운 여름 날씨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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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가슴이 시린 곡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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