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권 구원론-1
구원론에 들어가기 전에 구원론은 교파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과 구원론 공부의 자료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가. 교파별 구원론의 차이
조직신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교회론은 교파별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론과 종말론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예를 들면, 종말론에서 예수님의 재림과 천년왕국의 시기에 대해서는 교파마다 다르게 말합니다. 교파에 따라서 예수님이 먼저 재림하신 후에 천년왕국이 온다는 전천년설을 주장하기도 하고, 천년왕국이 먼저 임하고 그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후천년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장로교회 칼빈주의의 개혁신학은 천년왕국이라는 것은 없다는 무천년설을 주장합니다.
장로교회와 다른 교파, 특히 감리교회와 오순절교회의 신학과 교리에서 아마도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누가 구원받느냐, 어떻게 구원받느냐, 구원받은 후에 다시 타락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구원론의 문제들일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구원받는 방법에 대한 차이를 간단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장로교회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 인간의 뜻은 조금도 반영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 100%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부르시면 누구도 그 부르심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 장로교회의 구원론입니다.
그러나 감리교회와 일부 오순절교회의 기본이 되는 웨슬레 신학은 구원받을 때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함께 작용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부르실 때 그 부르심에 응할 것인지에 아닌지에 인간의 뜻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데 인간이 응하지 않으면 구원하실 수 없고, 인간은 구원받고 싶어 하는데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뜻이 없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사실 웨슬레 신학의 구원론은 알미니안주의 신학을 보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알미니안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은 구원의 계획만 가지고 계실 뿐이고, 실제로 구원받을 것인지 안 받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인간의 의사에 달려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주장대로라면 하나님은 당신이 구원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그가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으면 구원하실 수가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구원에 있어서만은 전능하지 못하시다는 말입니다.
알미니안주의자라고 해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믿으면서 구원론에서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내어놓은 이론이 하나님의 예지 예정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구원받지 않으려고 하는 죄인을 미리 아실 수 있고, 그런 죄인은 선택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예지 예정론입니다.
이 주장 역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부정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싶은 죄인이 있는데, 그 죄인이 구원받기를 거절할 것을 미리 아시고 그 죄인은 구원하지 못하신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이 구원하고 싶은 죄인을 선택할 능력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나온 것이 앞에서 말한 웨슬레 신학의 신인 협력설입니다. 구원에는 하나님의 뜻과 죄인의 뜻이 함께 작용하여야 구원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원론의 차이 때문에 교파들이 서로 자기네 신학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죄인은 구원론 때문에 구원받습니까? 자기네 교파의 구원론을 가지고 있어야만 구원받느냐는 말입니다.
아니지요?
구원론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느냐를 알아보는 것이지 구원론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행을 결정짓는 마지막 심판에서 너는 어떤 구원론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봅니까?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를 네 구주로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라는 것이지 ‘네 구원론이 무엇이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어느 교파에 속해서 어떤 구원론을 가지고 있든지 그것이 천국문을 통과하는 필수조건도 아니고 걸림돌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장로교회니까 100%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원받았다고 하든지, 웨슬레안이라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스스로 구원받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하든지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말입니다. 구원론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말입니다.
나. 구원론 공부의 자료
이번에 공부하는 구원론은 개혁신학자인 루이스 벌코프의 조직신학 중의 구원론을 기본으로 해서 안토니 후크마의 개혁주의 구원론과 웨스트민스터의 각종 신앙문서, 기독교강요 등을 자료로 사용합니다.
안토니 후크마는 1913년 네덜란드에서 출생하였고, 미국 칼빈신학교에서 석사,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루이스 벌코프와 안토니 후크마는 모두 조직신학의 거두인 헤르만 바빙크의 조직신학을 기본으로 해서 자기들의 조직신학을 정립했는데, 특히 안토니 후크마는 게할더스 보스의 성경신학을 참조하면서 자신의 조직신학을 정립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조직신학은 성경을 교리적인 주제에 따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신학 분야입니다.
성경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구속 역사로 보고 구속 계시의 점진성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성경신학은, 처음에는 인간들이 보기에 희미했던 구속에 대해서 시대가 지남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점진적으로 뚜렷하게 계시하신다는 관점에서 성경을 연구합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이것을 점진적 계시라고 하지 않고 계시의 발전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점진적이라는 것은 희미하던 것이 점점 뚜렷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발전이라는 것은 이전보다 나은 쪽으로 나아갔다는 의미입니다. 계시가 발전했다고 하면, 처음에는 불완전하던 하나님의 계시가 점점 나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는 부족한 것으로부터 발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속에 대해서 처음부터 가지고 계시던 완전한 계획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조금씩 조금씩 드러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점진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후에 아담에게 주신 [창세기 3:15] 말씀은 구속을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지금 우리는 이 말씀에 나타난 여자가 하와이며, 여자의 후손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네 머리’는 사탄의 머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이 말씀을 하셨을 때 그들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구속에 대한 계시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조금씩 분명하게 구속에 대해서 알려주셨고 그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시는 아담의 창조와 타락,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과 출애굽, 선지자들을 통해서 보여주신 여러 계시, 예수님의 성육신, 십자가 속죄, 부활, 승천까지의 과정을 통해서 점점 확실하게 구속에 대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구속 계시 중에서 이제 남은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입니다.
이 점진적인 구속 계시의 역사를 구속사라고 합니다. 이 구속사의 점진적 계시를 연구하는 신학의 분야가 성경신학입니다.
첫댓글 오래 전 부터 느꼈습니다만, 오목사께서는 올바른 신론과 기독교 구원론을 갖고 계십니다그려(물론 기독교에 관해서는 문외한인 제 개인 생각입니다마는...)
제가 얼마 전에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의 출판사인 시조사에서 발간한 책 두 권을 얻었는데
오목사께서 한 번 읽어 보실 의향이 계시다면
돌아오는 목욜에 갖고 나가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모태 가톨릭 신자입니다.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책을 받고서는 읽지 않고 책꽂이에 꽂아 두고만 있을까 저어되니
가지고 나오는 수고는 안 하심이 좋을듯합니다.
@별장지기 알겠습니다.
제7일 안식일교를 이단으로 여기는 목사분들도 있는 것같기에, 참고 삼아 읽어 보시면 어떨까?
해서 말씀 드렸었습니다.
목욜에 봬요^^
@성재 신학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단 시비 때문에 안 읽는 것은 없죠.
몰몬경이 궁금한데 살 데는 없어서 몰몬교 전도사들에게 다가가서 달라고 했더니
찜찜해하며 안 주려는 것을 어거지로 받기도 했습니다요.
목욜에 비가 온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