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chestre National de France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는 젊은 80인의 단원으로 1934년 프랑스 국립 방송 산하로 창단되어 프랑스
국립 방송 교향악단 (Orchestre Nationl de la Radiodiffusion Francaise)으로 출발한다.
초대 상임지휘자로는 1880년 프랑스 출생 작곡가겸 지휘자 Désiré-Emile Inghelbrecht 가 임명되어 엄격한
단원 선발과 체계적인 연습을 통해 창단 오케스트라의 기초를 다져 놓는다. 거의 모든 연주는 상임지휘자인
Inghelbrecht의 지휘로 공연되었고 어시스턴트 지휘자로 있었던 Rosenthal과 데소르미에르등
프랑스 지휘자와 아르투르 토스카니니도 1935년 객원지휘를 한다. 2차 세계대전 발발로 파리가 독일
군에 의해 함락당하고 오케스트라는 1941년 마르세유로 옮겨갔다 1943년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1944년 파리 해방과 함께 독일군 포로 수용소에서 풀려난 Manuel Rosenthal 이 2대 지휘자로 선임되어
1947년까지 이후 Roger Désormière 가 1952년까지 4-6년의 단임 지휘자로 있었지만 로장탈과
데소르미에르는 연주력 회복에 많은 공을 들여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을 전쟁 전의 모습으로 회복시킨다.
Désiré-Émile Inghelbrecht Manuel Rosenthal
Roger Desormiere Maurice Le Roux
데소르미에르의 건강 악화로 이후 1960년까지 상임지휘자를 임명하지 않고 객원지휘로 체제로
유지 하다 올리비에 메시앙 제자이자 작곡가 출신 지휘자 Maurice Le Roux 가 1960년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여 1967년까지 프랑스 작곡가 중심, 현대음악 중심으로 레파투어를 늘려나간다.
1968년 장 마르티농의 상임지휘자 취임으로 이 악단은 커다란 발전에 전기를 맞는다.마르티농은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많은 연습을 통해 앙상블의 질을 높히고 도이취 그라모폰과 계약을 통해 음원작업을 병행
하여 단단하고 짜임새를 갖춘 앙상블을 만든다.
Jean Martinon
Conservatoire de Paris 출신 이자 3대 상임지휘자 데소르미에르 제자인 마르티농은 5년의 단임이었지만
짜임세 있는 연습과 계획적인 연주일정, 앙상블 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오케스트라를
단단하게 만들어 놓는다. 도이취 그라모폰과 계약하고 드뷔시의 오케스트라 작품 전곡과 생상의 심포니를
출반한다. 1973년에 첼리비다케가 상임지휘자로 1975년까지 단기간 재임하고 1977년 로린 마젤이
1991년까지 상임지휘자를 맡는다.
1991년 프랑스어권 스위스 출신 지휘자 샤를르 뒤투아가 2001년까지 10년간 상임지휘자로
재임하고 2003년 쿨트 마주어가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어 그의 마지막 상임지휘자 소임을 2008년
까지 마친다. 2008년 이태리 출신 지휘자 다니엘 가티가 후임으로 있다 2016년 시즌을 마치고
RCO 상임 지휘자로 부임하므로 프랑스 그레노블 출신 지휘자 Emmanuel Krivine이 차기 지휘자로
선임된다. Emmanuel Krivine은 파리 콘설바투아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지휘자로 칼 뵘 제자로
지휘를 입문한다.
프랑스 국립 교향악단은 1934년 창단되어 프랑스에서 양대 산맥의 오케스트라로 인정되고 있는
라디오 프랑스 필과 거의 같은 시기에 창단되고 또 같은 프랑스 국립 라디오 소속의 오케스트라이다.
초대 상임지휘자 Inghelbrecht 가 엄선하여 뽑은 젊고 헌신적인 프랑스 음악인 80명이 주축으로 창단
되어 야심차게 출발한다. 이듬해 당대 최상의 지휘자 아르트르 토스카니니를 초빙하여 두번의 연주회를
갖기도 한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단원의 반수가 군인으로 징집당하고 파리 공습으로 인해
마르세유로 이주를 하고 거의 연주 불능 상태에 처하기도 하지만 1943년 파리 탈환으로 다시 파리로
돌아와 1944년 2대 지휘자 로장탈을 임명하고 재건에 힘을 쏟는다. 로장탈은 프랑스 컨템퍼러리 작품
뿐만아니라 독일 작곡가 작품도 연주하고 당대에 앞서가는 세계적 지휘자들을 초빙하여 객원지휘를
시켜 악단을 발전 시킨다.1946년 베를린,런던, 북미 등지에 투어 연주를 한다. 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
문화를 중요시하는 유럽 국가들의 참 얼굴이 느껴진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적국의 베를린을 방문하여
연주를 하는 모습과 폭격으로 거의 모든 건물이 무너진 와중에서도 연주회를 개최하는 베를린 시의
문화를 우선하는 시민의식에서 우리들은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3대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데소르미에르는 자국의 지휘자 피엘 불레, 메시앙의 작품을 비롯하여 벨라
바르톡의 디벨티멘토를 프랑스 초연하고 알반 베르그의 보첵, 부르크너와 말러의 심포니를 연주곡목에
넣어 레파투어의 확장을 이루어낸다.
1968년 상임지휘자를 맡은 장 마르티농은 리옹 출생으로 파리 콘설바토아에서 작곡 전공을 하고
샤를르 뮌슈와 로저 데소르미에르에게 지휘를 배운 후 시카고 심포니 상임지휘자로 있다가 58세의
나이에 조국의 국립 오케스트라를 맡아 이 오케스트라의 도약기를 이루어낸다. 엄격하고 철저한
연습을 통해 흐트러진 앙상블을 바로잡고 도이취 그라모폰과 음원작업을 하여 프랑스 오케스트라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앙상블에 밀도를 끌어 올려 섬세함을 갖춘 오케스트라로 전환시킨다.
장 마르티농은 자유분방한 프랑스 기질의 연주자들을 카리스마로 다스리고 계획적이고 시스템을 갖춘
악단운영으로 획기적인 전환기를 가져오게 한다. 그러나 지병인 골수염의 악화로 1973년 물러나고
3년 후인 1976년 영면한다. 필자는 만일 그가 5년 정도만이라도 더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면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발전이 더 빨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르티농 이후 첼리비다케가 2년간 짧은 기간 지휘를 맡았고 1977년 로린 마젤이 1990년까지 13년의
장기집권을 한다. 이후 샤를르 뒤투아가 1991년에서 2001년까지 10년간 이 악단을 이끌면서
프랑스음악의 정통성을 확립하는대 힘을 기울이고 많은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다시 재조명한다.
2002년 뉴욕 필에서 인텐던트와 불화로 인해 뛰쳐나온 쿨트 마주어를 영입하여 이 악단은 제 2 도약기를
맞이한다. 독일적 시스템을 불어넣은 마주어의 개혁은 그동안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약점들을 보완하여
고전과 낭만 독일 작곡가의 작품과 말러, 부르크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작품들을 폭 넓게 레파투어에
포함시켜 단단하고 꽉짜여진 독일식 앙상블을 만들어 내 커다란 변화를 이루어낸다.
마주어가 파킨슨 병으로 2008년 사임하자 이태리의 다니엘 가티에게 후임을 맡겨 더욱 건강하고 짱짱한
앙상블을 이어 나간다. 가티는 너무 무겁다 할 정도의 깊이 있는 음악을 요구하여 프랑스적 가벼움을 걷어
내고 독일 오케스트라 이상의 깊이있는 음악을 만든다. 가티의 이 오케스트라에서 성공은 세계 최상의
오케스트라로 칭송받고 있는 RCO의 상임지휘자로 발탁이 말해주고 있다. 2014년 RCO의 인텐단트는
2016/17시즌 부터 마리스 얀손스 후임으로 다니엘 가티를 상임지휘자로 임명한다.
가티의 2016년 6월 마지막 공연 이후 프랑스 출신 지휘자 Emmanuel Krivine 이 새로운 상임지휘자로
취임 하는대 다시 돌아온 프랑스 출신 지휘자가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필자는 걱정스럽게 지켜보고있다.
1980년 이전의 프랑스 오케스트라들은 파리 콘설바토아와 지방 콘설바토아에서 양질의 연주자들이 배출
되었지만 그들을 담아내는 지휘자의 역량 부족과 테크닉만을 앞세워 앙상블이 파괴되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단원들 개개인은 세계 최상급의 테크닉과 실력을 갖췄는대 오케스트라들은 세계적으로
내세울만한 오케스트라가 없는 기이한 모습을 보인다. 또 지휘자에 따라 편차가 큰 연주력을 보여주어
결국에 프랑스 오케스트라들은 지휘자의 중요성에 시각을 돌려 프랑스 국내 활동 지휘자를 배제하고 외국
출신 지휘자들의 영입에 힘을 쏟는다. 이 악단에서 장 마르티농 이후 첼리비다케와 로린 마젤, 샤를르
뒤투아, 쿨트 마주어, 다니엘 가티로 이어진 외국 출신 지휘자,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또다른 한축의 오케스트라인 라디오 프랑스 필에서 1984년 영입한 마렉 야놉스키 그리고 정명훈, 이들
지휘자들이 결국에는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고질적인 병인 앙상블의 문제점들을 해결 시켜 내어 이제는
세계 메이져 최상급 오케스트라로 이루어 냈고 오히려 그동안 취약점을 나타낸 독일 작곡가나 러시아
작곡가의 곡에서도 깊이있고 심도있고 폭넓게 그려냄으로 전통적으로 프랑스 작곡가 작품에 진가를
보이는 것과 합쳐져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고 폭넓은 레파투어를 갖춘 오케스트라로 변모 한다.
이는 역으로 전통만을 내세워 한계를 들어내는 빈 필이나 베를린 필의 모습에서 우리들은 비교하여 볼
수 있다. 빈 필의 경우 아직까지 클라리넷, 오보에, 혼, 팀파니의 전통악기를 고수하여 낭만 이전의 독일
작곡가 작품에서는 경쟁력을 보이고 있으나 프랑스 작품과 현대 컨템퍼러리 음악에서는 취약점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독일 전역 오케스트라들이 고집하고 있는 도이취 시스템 클라리넷의 한계 역시 현대에서
프랑스 음악과 현대음악을 그려내는대 한계와 문제점을 보여준다.
이 악단은 1944년 부터 테아트르 샹젤리제의 상주악단으로 있으면서 새로이 지어진 메종 드 라디오
프랑스의 메시앙 홀에서도 공연하고 연주회는 라디오 프랑스를 통해 중계되고 있다. 한국인 단원으로는
제2 바이올린에 구영은과 박송지환이 있다.
Chefs titulaires et directeurs musicaux
External links
Website : maisondelaradio.fr/concerts-classiques/orchestre-national-de-france
Ravel Daphnis et Chloé - Suite n2 - Celibidache - Orchestre National de France - 1974
Jean Martinon
Auditorium de la Maison de Radio France
Theatre Champs Elysees
Emmanuel Krivine
franciscopa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