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즈음 가장 빈번하게 언론에 등장하는 한 정치인이 들어간 사진을 보면서 한국에서 회자되는 무수한 말 중에 문제를 담고 있는, 그러나 ‘미화’되는 구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불우이웃돕기.”
2. 이 구절은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특별한 명절에 ‘선행’을 독려하는 의미로 소환되곤 한다. 의도와 상관없이 ‘자선(charity)’의 문제점이 바로 이 구절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첫째, 누구의 시선으로 볼 때 “불우이웃”인가. 둘째, 그 불우이웃 “돕기”를 하는 ‘나·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이러한 “불우이웃돕기”라는 이름아래 진행되고 있는 행위는, 그 행위를 하는 ‘나·우리’는 ‘다행스럽게’ “불우이웃”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으며, 불쌍한 사람을 돕는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을 재생산한다. 종종 “불우이웃돕기”라는 제목의 구제행위는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듯, ‘자선 연기 (charity performance)’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정의없는 구제 (charity without justice)’의 전형이다.
3. 보통 사람들은 거주할 생각조차 못 하는 최고로 비싸다는 강남의 고급 주택에서 살고 있다는 한 정치인이, 얼굴에 연탄재가 묻은 ‘구제 분장’을 하고, 리어카로 힘겹게 가파른 언덕길을 거슬러서 연탄을 날라주는 ‘구제 연기(performance)’를 하고 있다. 이러한 구제 연기의 심각한 문제는 우선 두 가지다. 첫째, 이러한 “불우이웃돕기”는 ‘불우 이웃’이라는 고정된 표지와 범주속에 들어가버린 이들이, ‘왜(why)’ 여전히 연탄을 때야 하는 힘겹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가 라는 문제는 묻지 않는다. 그리고 둘째, '어떻게 (how)’ 국가가 이들 국민에게 보다 인간적인 주거환경에 대한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가 라는 국가적 책임은 전혀 묻지 않는다.
4. 이런 맥락을 좀 더 깊이에서 짚어 보자면, “불우이웃돕기”로 진행되는 한 정치인의 정치적 연기는 세 가지 심각한 문제를 담아낸다.
첫째, ‘불우이웃’과 ‘비 (非)불우이웃’ 사이의 사회적 위계주의,
그리고 둘째, 그 불우이웃을 ‘도와주는’ ‘비불우이웃’인 나·우리는 어쨌든 시혜와 도움을 받는 그들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윤리적 위계주의,’
그리고 셋째, 정치인으로서의 ‘직무유기’다. 이 사진을 가지고 나의 학생들에게 ‘정의없는 구제(charity without justice)’의 한계와 문제점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하라고 하고 싶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국가적 망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5. 동일한 행위를 해도 정의에 입각한 구제 행위는 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연탄을 때야 하는 이들의 삶이 ‘왜(why)’ 그렇게 되었으며, 또한 ‘어떻게 (how)’ 이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점을 모색해야 하는가 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묻게 한다.
그래서 ‘정의에 근거한 구제행위’는 그 돕는 행위를 하는 이들 스스로 여타의 윤리적 우월감을 작동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고통’하는 ‘연민(com-passion, suffer-with)’을 작동하게 된다. 그들이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자 하는 시선을 지닌 정치가와 정책에 관심 하게 되며, 정치적 연대의 장의 외연을 확보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
언론을 선택하고 읽고 해석하는 방식, 또한 정치가를 선출하는 방식에서 그 개인들의 선택과 판단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rights)’라는 분명한 이해를 가지게 된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더욱 분명해지는 지점인 것이다.
6.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한 정치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 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 그리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승리하는 당당한 역사를 만들어” 가는 세상이 바로 그가 꿈꾸고 만들고자 하던 “사람사는 세상”이다.
7.연탄재를 분장에 사용하여 얼굴에 묻혀가면서 “불우이웃돕기”를 한다고 연기하는 한 정치인의 사진을 보니,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비전이 철저하게 부재한 현재의 정치 현실을 통감하게 된다. 정작 그 “불우이웃”이라는 범주에 들어간 동네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한 부모를 둔 아이들은 자신과 부모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아마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라고 한탄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는데 자신의 권력을 행사해야 할 정치인이, 은밀한 그러나 강력한 ‘인권유린’의 현장을 재생산하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확장하기 위한 정의와 연대 의식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첫댓글 사람 사는 세상...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