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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선(本船)
한 승 원
봄부터 가을까지 채취선을 빌려다 쓰기로 하고, 지난해 겨울 동안 양산댁네 김 채취 머슴을 산 석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양산댁이 하루아침에 마음이 싹 변하여 채취선을 못 내주겠다고 발뺌을 하는 것이었다. 스물다섯에 홀어미가 되어,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들과 단둘이 사는 여자로, 이 마을에선 흔하지 않은 채취선을 한 척 가졌기로서니 이럴 수가 있느냐 싶었다. 그 채취선은 육 년 전 그녀가 양산에 있는 친정 산에서 나무를 얻어다 지은 것인데, 그것을 부리면서는 해마다 김을 잘 해 먹었노라고 언젠가 그녀가 말했었다. 그래서 선뜻 내어주기가 아깝고 짠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번 빌려주겠다고 단단히 하였던 약속을 이렇게 내리 씻어버릴 수 있느냐 싶었다. 석주는 꾀죄죄하게 검은 때가 엉겨 붙은 마루 위에 걸터앉아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허우대가 큰 데다 누른빛 나는 머리칼이 더부룩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그는, 뾰로통해서 토라져 앉은 양산댁의 갸름한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양산댁은 작달막한 몸집에 거무스름한 얼굴빛이 조금 야윈 듯했다. 양미간과 볼에 잔주름이 한둘 잡혀 있었다. 이마가 넓고 코가 작았다. 사십 대에 들어선 여자치곤 매끈하고 앳된 얼굴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뾰족하게 오므리고, 부어오른 듯 부석부석한 눈두덩이 툭 까지도록 눈살을 찌푸린 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걸핏하면 커다란 떡니를 하얗게 내어놓고 환히 웃곤 하던 여자가 어쩌면 저렇게도 사납게 일그러진 얼굴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는 버팀목 같은 뻐드렁니 때문에 더 튀어나온 두꺼운 입술로 담뱃개비 끝을 꼭 누르며 성냥을 그어 댕겼다.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양산댁이 태수의 농간에 넘어가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간밤 태수가 하얀 두루마기에 중절모자를 비뚜름하게 쓰고 쿠릿한 술 냄새를 풍기며 왔다. 볼일이 있어 읍에까지 나간 김에, 양산댁의 심부름으로 그녀네 아들 태범의 입학금을 학교에 넣었는데, 그 영수증을 넘겨주려고 온 것이라 했다. 영수증을 건네는 데 그처럼 오랜 시간이 걸릴까 싶었다. 태수는 두어 시간 동안이나 양산댁과 무엇인가를 도란도란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모퉁이에 있는 방에 앉아서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는 안방 쪽으로 귀를 기울여보았지만, 너무 작은 소리로 말을 했기 때문에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태수가 돌아갈 때 마당에서 하는 소리만은 귀를 기울이지 않고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두워서 어쩌께라우?”
“별이 환하게 비춰준께 괜찮겄소.”
태수가 다녀가기 전까지만 하여도 양산댁은 그에게 채취선을 내어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전날, 노루목* 등성이 너머로 해가 떨어질 무렵이었다. 양식장에 흩어진 말목*들을 모두 빼어다가 그녀네 집 모퉁이 옆에 쌓고 나자, 양산댁은 하얗게 떡니를 내놓고 그를 향해 웃었다.
“욕보셨소마는 내일 배 타고 갈라면 오늘 아주 깨끗이 닦아놓으씨요.”
말목을 싣고 오느라고 채취선은 갯벌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양산댁을 향해 웃으며, 피로하니 내일 아침에 닦아 타고 가겠노라고 했다.
석주는 어제 그처럼 배를 시원스럽게 내어줄 듯이 말하던 양산댁의 웃는 얼굴을 생각하며 엉성한 돌담 너머로 모래밭을 바라보았다.
조개껍데기들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찰싹찰싹 모래톱을 핥으며 부서지는 물결들이 햇빛을 받아 고기비늘처럼 빛났다. 황소만큼 한 시절바위가 바닷물에 허리를 적시고 있었다. 그 앞에 갯벌투성이가 된 채취선 한, 척이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 이물 [船頭]*을 끄덕거렸다. 다리뼈가 부러지더라도 저걸 빼앗아 가든지, 자기가 죽고 말든지 하리라 했다. 문득 몸집은 땅딸막하고 조그맣지만 다부지고 오기 많은 태수의 툭 불거진 광대뼈를 생각하며 혓바닥으로 입 안을 쓸었다. 바특한* 침이 혀끝에 뭉쳐졌다. 뱉었다. 모래가 하얗게 깔린 마당으로 침방울이 떨어졌다. 스무 살 안팎 때엔 더러 씨름판에 나가 송아지를 끌어 오기도 했다는 태수의 떡 바라진 가슴팍과 굵은 팔뚝을 생각하고 이를 물었다. 코가 주먹처럼 뭉툭하고 양 볼에 얽은 자국이 있는 얼굴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렸다. 아무리 긴다 난다 하는 태수지만 무서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라지 끝에 내려오기만 하면 바닷물 속에 거꾸로 처박아주겠다 했다.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며 바다로 눈길을 던졌다. 푸른 바다에는 한가로운 잔물결의 이랑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 반짝거림 속에 떠 있는 오징어잡이 배들이 장난감 배들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올봄 들어 오징어는 예년에 볼 수 없는 풍어여서, 하루 잡아 보통 쌀 두 말 벌이는 된다고들 했다.
어렸을 적에 머슴살이하던 집을 찾아가 힌 그물을 조금 얻어다 꾸미고 고기알붙이로 쓸 쑥대를 천관산에까지 가서 베어다 채우고 하려면 며칠은 걸릴 터인데, 그사이에 이 풍어기를 놓칠까 싶었다. 손가락 끝이 따갑도록 타들어간 담배꽁초를 퉁겨 던졌다.
“첨에 뭣이락 했소, 당신?”
양산댁을 향해 무뚝뚝하게 말했다. 굵은 침방울이 양산댁의 거무스름한 얼굴로 튀어 갔다. 양산댁이 얼굴에 튀어 온 침방울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석주를 향해 돌아앉았다.
“그런께 내가 사정 이야길 안 하요?”
“무슨 사정 얘기가 그렇다우, 인제 와서?”
석주는 이마와 목줄의 정맥이 파랗게 튀어나오도록 소리를 질렀다. 양산댁이 다시 바다를 향해 돌아앉으며 볼멘소리를 했다.
“암만 그래도 못할 것은 못해라우, 나도 벌어묵고 살아야 쓰겄은께.”
“나는 뭐 미쳤다고 석 달 동안이나 공머슴 살았는지 아요?”
“수공* 준다 말이오, 근께?”
“수공 몇 푼 받을라고 머슴 살었드라우?”
“그건 당신 사정이제라우.”
양산댁이 아주 막말을 하였다. 석주는 뿌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물었다.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쥐어질러 죽이고 싶은 충동이 왈칵 일어났다. 문득, 아내 복님의 하얗게 웃는 얼굴과 오 년 전, 비록 소나무 널빤지로 지은 것이긴 했지만 노르스름한 빚을 띤 것이 제법 늠름하게 보이던 자기네 채취선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복님은,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돌아와보니 기어이 이웃에 살던 김장수 백철두하고 배가 맞아, 그가 신주 모시듯 아끼고 사랑하던 채취선을 팔아 도망가 버리고 없었다. 자기의 주제에는 너무 예쁜 아내요, 자기의 재산으로선 너무 벅찬 채취선이었는지 몰랐다. 어쩌면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둔갑한 여우가 아내로 들어와서 마련하여 준 채취선이었는지 몰랐다.
열 살 때부터 머슴살이를 하여 모은 밑천으로 그는 복님에게 장가를 들었다. 스물일곱 살 나던 해였다. 건너편 우산도 부둣가에다 오막집을 한 칸 짓고 살았다. 꼬박 두 해 동안 부지런히 김을 뜯어 모은 돈으로 채취선을 한 척 지었다. 철이 들면서부터, 아내를 맞아들인 다음 내 것이다 하고 채취선을 한 척 마련해서 살아보겠다 했던 소망이 바야흐로 이루어지는구나 싶었다. 이젠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겠다 싶었다. 한데 그해, 스물아홉 살 나던 해 가을, 뜻밖에 소집영장을 받았다. 호적상의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일곱 살이나 아래였던 것이다. 소집영장을 찢어버렸다. 예쁜 아내와, 비록 소나무 널빤지로 지은 것이긴 하지만 노르스름한 빛을 띤 것이 보면 볼수록 늠름해 보이는 채취선을, 한 해도 부려보지 않은 채 고스란히 두고 도저히 군대엘 갈 수가 없었다.
그 후로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늘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서른다섯 살 되던 해 가을까지는 무난히 넘겼다. 하나 그해 겨울, 살갗을 깎아내는 듯한 북풍이 몹시 불어서 바다가 허옇게 뒤집힌 채 으르렁대던 어느 날 탈이 나고 말았다. 김장수 백철두하고 대판거리*로 싸웠다. 예쁘장한 얼굴인 데다 하모니카를 여느 때 멋들어지게 불어대곤 하는 백철두와 아내와의 사이가 걷잡을 수 없이 가까워져 있었다. 겨울에서 이른 봄까지 김장사를 하고 사철을 빈둥빈둥 놀며 지내는 백철두한테 아내가 끌렸었는지 몰랐다. 조용히 백철두를
불러, 그의 아내한테서 당장 손을 떼라고 타일렀다. 백철두는 무슨 혓바닥 자를 소리를 하느냐고 따지고 들었다. 도둑이 매를 드는 것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백철두의 멱살을 틀어쥐고 부두로 나갔다. 바닷물 속에다 처박아버렸다. 이튿날 그는 경찰의 손에 붙잡혀 군대엘 가고 말았다. 제대를 하고 왔을 때, 아내와 살던 오막집은 텅 비어 있었다. 세간살이라곤 떨어진 양말짝 하나도 없었다. 부둣가에 둥실 떠 있어야 할 그의 채취선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내가 섬 에서 온 사람한테, 살림살이가 쪼들린다면서 팔아버렸다고들 했다.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오막집을 헐값으로 팔았다. 아내와 백철두를 잡아 죽이겠다 하며 서울로 갔다. 돈만 다 뿌려버렸다. 서울로 도망갔다는 것만 알았지, 서울의 어디에 박혀 있는지조차 모르는 그들을 찾겠다고 나선 자기가 얼마나 미련한 놈인가 하고, 혀를 깨물어 뜯으며 돌아왔다. 이때껏 여우한테 홀려 살아오다가 이제야 깨어났노라고만 생각하기로 했다.
한데 이번에 채취선을 빌려 쓰기로 하고 머슴살이를 한 일도 꼭 여우한테 홀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복님이 양산댁으로 둔갑했는지도 모른다 싶었다.
집 판 돈을 다 뿌려버리고 와서부터 그는 매일 날품을 들었다. 태어난 고향이었지만 우산도에는 발도 붙이지 않고 덕도 일우*만 쓸고 다니며 뒷간도 퍼주고 거름도 옮겨주었다. 지난겨울, 호된 첫추위도 아직 오지 않고 연일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던 어느 날, 하라지 끝에 사는 양산댁네 뒷간 푸는 일을 해주었다. 그때 양산댁은 혼잣손*이라 바쁘게 김을 떠서 널고 벗기곤 하고 있었다. 뒷간을 다 푸고 마루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우는데 양산댁이 술상을 내다놓았다. 컬컬하던 김이라, 두어 잔을 단숨에 들이켜고 나자, 양산댁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산 양반한테 어려운 청이 있소.”
사근사근한 무김치를 씹으며 양산댁의 거무스름한 얼굴을 건너다 보았다. 양산댁이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마주 건너다보았다.
“날품 들러 다니느니, 우리 집에서 올 겨울 동안 해의(海衣)*나 해주씨요.”
“머슴 살자 그 말씀이시오?”
“날품 든 것보다 낫게 수공 드리께라우.”
김 채취 머슴으로 있던 친정 편 동생이 엊그제 군대엘 갔기 때문에 혼잣손이 되었다고 했다. 아들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국민학교 6학년이기 때문에 아침에 학교엘 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곤 하여 일을 부릴 수가 없다 했다. 바다에 있는 김은 갯마을 사는 태수가, 죽은 남편하고 살던 정 때문이라며 자기네 것을 뜯어 오는 김에 한 줌씩 뜯어다 주긴 하지만 그것으로 어디 분에 차기나 하느냐 했다.
“머슴 살면 뭣 할 것이오?”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열 살 때부터 머슴살이를 한 밑천으로 아내를 구하고 채취선까지 얻게 되었었지만, 지금 남은 것은 빈 손바닥 두 장뿐인 자기였다. 또 머슴살이를 하겠다고 나설 생각이 없었다.
“그럼 밤낮 날품만 들어 묵고살다 늙어 죽을라우?”
양산댁의 신경질적인 대꾸에 말이 막혔다. 그쪽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었다. 지금은 젊으니까 그렁저렁 지내도 되지만 늙어지면 몸을 의탁할 만한 곳이 있어야 할 것이었다. 막걸리를 한 사발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투우 하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손해나게는 안 해드리께, 우리 집에서 머슴 삽시다.”
얼른 대답을 않고 있자 양산댁이 바싹 졸라댔다.
“원하는 대로 수공으로 달라면 수공으로 드리고, 내년 봄부터는 배를 놀려두게 될 텐께 배를 빌려달라면 배를 내어드리께라우.”
채취선을 내어줄 수도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머슴살이를 해서 돈을 모아 채취선을 마련하기란 너무 까마득한 일이어서 포기하는 게 좋을 일이었다. 그러나 채취선을 당장 내어주겠다 하는 데는 마다할 수가 없었다. 채취선만 손에 들어온다면 혼잣손으로라도 한 밑천 마련할 자신이 서는 것이었다.
“정말이오?”
“뭣 할라고 거짓말해라우?”
“그럼 내년 봄부터 가을까지 배 내어주고, 수공은 수공대로 줄라우?”
양산댁이 대번에 그렇게 하자고 했다.
석 달 동안 부지런히 일했다. 바다에 나가서 모든 일을 자기의 마음 내키는 대로 서둘러 하다 보니, 머슴살이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집 안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양산댁이 건장*에서 해가 기울도록 바쁘게 허덕거리는 것을 도와, 다 못 벗긴 마른 김을 나란히 앉아 벗겼다. 그런 날 밤이면 양산댁이 김을 굽는다, 매생이국*을 끓인다 하여 저녁상을 무겁게 차려 들이곤 하였다. 그러다 보면 얼핏 양산댁과 자기가 아주 정다운 부부인 것만 같은 착각이 들곤 하였다. 착각인 줄 알면서도 그 착각 되씹는 것이 싫지 않았다. 거기다 이듬해에 채취선을 빌려 쓰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기쁘기 한이 없었다. 그것으로 봄엔 오징어잡이를 하고 여름엔 장어 줄낚시라도 하면, 가을에는 다 찌그러진 것일지라도 자기 것으로 채취선 한 척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었다. 이듬해. 봄, 여름에 더 부지런히 벌면 김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마음 고운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겠다고 하였다. 도망간 아내가 깜짝 놀라고, 양산댁이 부러워 못 견딜 만큼 재미나는 살림살이를 꾸미겠다 하였다.
그 꿈이 산산이 부서진 것이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멍청히 바다를 내다보던 석주는 벌떡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그래, 죽어도 배는 못 내주겠다 그 말이지라우?”
“허리에 치마는 둘렀어도 빈말은 안 하는 사람이오.”
양산댁이 바다를 바라보며 싸늘하게 내뱉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석주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마당으로 내려섰다.
마루에 걸터앉아 있던 양산댁이 벌떡 일어섰다. 마당으로 내려서서 잠시 서성거렸다. 툇마루 밑에서 새끼줄 토막을 몇 개 주워 둘둘 말아 쥐었다가, 그것을 마당 가운데다 아무렇게나 팽개쳐버렸다. 바가지를 찾아 들었다. 팽개쳐버렸던 새끼줄 토막을 다시 주워들었다. 시절바위 앞으로 갔다. 채취선 위로 뛰어 올라갔다. 바닷물을 퍼서 뱃전에다 끼얹고, 말아 쥔 새끼줄 토막으로 문질렀다. 뱃전에서 시꺼먼 갯벌물이 흘러내렸다.
마당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그녀의 신경질적으로 서둘러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석주는 문득, 그녀와 함께 바다로 김을 뜯으러 갔던 날 저녁의 일이 생각났다. 겨울철에 어울리지 않게 궂은비*가 이틀 동안이나 계속 내리다 갠 날이었다. 양산댁이 집 안에서 건장의 일을 할 게 없다며 김을 함께 뜯으러 가자고 했었다. 마침 날이 저물어지면서 썰물이 지곤 할 때라, 어두워지기 전에 두 사람이 힘을 모아 욕심껏 김을 뜯어 오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날은 저녁놀이 유독 붉었다. 바다의 물결이 붉고 푸른 물감을 온통 칠해놓은 듯 찬란하게 빛나며 출렁거렸다. 멀지 않게 바라다보이는 하라지 끝의 시절바위는 한쪽이 새까맣게 물들었는데, 다른 한쪽은 피에 젖은 듯 빨갛게 불타고 있었다. 김발에 채취선을 붙이고 뱃전 앞에 쭈그리고 앉아 바쁘게 김을 뜯고 있던 그는 갑자기 채취선이 한쪽으로 기우뚱하기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옆에 앉아서 김을 뜯던 양산댁이 일어서서 이물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덕판* 앞까지 간 그녀는 물 묻은 손을 갯두루마기 자락에다 닦으며 돌아섰다. 고물〔船尾〕*로 갔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양식장 여기저기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김을 뜯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이물로 달려갔다. 덕판 앞에서 우뚝 섰다. 잠시 망설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맛살을 찌푸린 채 엉거주춤 옆으로 돌아앉으며 통 넓은 갯바지를 끌어 내렸다. 그녀의 얼굴이 저녁놀에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김을 뜯었다. 갑자기 이쪽도 오줌이 누고 싶어졌다. 참았다가 조금 어두워지면 누리라 했다. 파란 물결을 들여다보며 김을 뜯기는 뜯지만, 머릿속에는 자꾸 저녁놀에 발갛게 물든 그녀의 얼굴이 그려졌다. 뱃전을 찰락찰락 두드리는 물결 소리에 섞여, 뱃바닥에 괸 물로 내리 뻗치는 그녀의 오줌줄기 소리가 쉬이 하고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김을 한 줌 뜯었다. 다시 한 줌 뜯었다. 아직 그 소리는 줄곧 줄기차게 뱃바닥을 울리며 그의 가슴속으로 전류처럼 울리어왔다. 그 울림이 배꼽 아래로 번져갔다. 쉬이 소리가 점차 약해졌다. 군침이 입, 안에 괴었다. 꿀꺽 삼켰다. 쉬이 소리가 멎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흘끗 덕판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일어서면서, 오줌을 누기 위해 엉덩이 밑으로 끌어 내렸던 속옷을 올려 입고 있었다. 저녁놀 때문에 빨간 물이 든 것처럼 보이는 하얀 속옷이 상어의 등처럼 둥그런 살결을 덮고 있었다. 그녀가 그를 힐끔 바라보며 재빨리, 역시 빨간 물이 든 것처럼 보이는 하얀 속치마를 털어 내렸다. 그 위로 통 넓은 갯바지를 끌어 올려 입었다. 그녀의 얼굴이 타는 듯이 빨갰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김을 뜯었다. 그녀가 이쪽 옆으로 걸어와서 김 구럭*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직 시울*도 차지 않은 김을 다독거렸다. 어쩌다 한 가닥씩 섞여 있기 때문에 골라낼 필요도 없는 파래 가닥을 골라내고 있었다. 이쪽 옆으로 다가앉아 김 뜯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하나의 고용인으로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가 갑자기 자기의 육체 일부를 보아버린 하나의 어엿한 남성으로 그녀의 가슴속에 나타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러자 수절을 하고 있는 과부인 그녀로서는 이쪽과 단둘이 조그마한 채취선 위에서 나란히 앉아 김을 뜯기가 서먹서먹 해졌는지 몰랐다.
이쪽도, 쉬이 하는 오줌줄기 소리와 하얀 속옷과 상어의 등처럼 둥그런 엉덩이를 바라보면서부터 새삼스럽게 양산댁이 하나의 여자요, 더구나 임자 없는 과부라는 사실에 가슴이 설레고 있었다.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졌다. 무슨 말을 꺼내야 될 것만 같았다.
“얼릉 뜯으시오, 저물겄소.”
파란 바닷물 속에 눈길을 묻은 채 말했다. 고용인으로서 주인에게 할 성질의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용기를 내어 이쪽 옆으로 다가앉으며 김을 뜯었다. 저녁놀이 꺼지면서 땅거미가 깔리고, 그 땅거미가 몰고 온 듯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양식장 여기저기에서 삐그덕삐그덕 노 젓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김을 구럭에 가득히 뜯어 담은 채취선들이 갯마을 앞 부두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줌을 누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석주, 고만 가세.”
옅은 어둠이 깔린 김발 아래쪽에서 태수가 낡은 채취선을 저어 가며 말했다. 그와는 마주 앉아 술 한잔 나누며 정담 한번 건네본 일 없는 사이였지만, 여느 때처럼 태수 쪽에서 다짜고짜로 ‘하시오’ 하지 않고 ‘하소’ 하니까 할 수 없이 그도 ‘하소’로 받으며 말만은 허물없는 사이처럼 하고 지내는 처지였다.
“먼저 가씨요. 두 말뚝 새만 더 뜯어갖고 갈라우.”
양산댁이 고개를 들고 받았다.
“좀 뜯어주리라우?”
태수가 노를 놓으며 돌아다보았다.
“말이라도 고맙네 .”
그가 김 한 줌을 구럭에 던져 넣으며 퉁명스럽게 받았다. 방광이 뻐근하게 아파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좀 더 어두워지면 오줌을 누리라 했다. 거멓게 우거진 김발 사이로 스며들듯 미끄러져 가는 낡은 채취선 위에서 태수가 그를 향해 말을 던졌다.
“달 밝은께 천천히 해갖고 오소.”
거먼 소록도 위에 턱이 조금 찌그러진 하얀 달이 둥실 떠 있었다. 좀 더 짙은 어둠이 밀려드는 듯하자 달이 더욱 하얗게 빛났다. 바다는 온통 은물을 칠해놓은 듯 하얗게 출렁거리며 빛났다. 뱃전에 와 부딪는 물결이 하얗게 부서졌다. 그 물결 속에서 저녁놀을 받아 붉게 물이 든 듯하던 하얀 속옷과 상어의 등처럼 둥그렇던 엉덩이의 살결이 보이는 듯했다.
찰락거리는 물결 소리에 섞여 쉬이 하는 오줌줄기 소리가 뱃바닥을 타고 가슴속으로 쩌릿하게 울려오는 듯했다. 그 쩌릿한 울림은 이상한 열기를 뿜게 하였다. 이내 복님의 하얗게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불처럼 뜨겁게 달아 가슴속을 파고들던 부드러운 살결이 생각났다. 그 살결이 파들파들 몸부림칠 때 그가 내뿜던 열기가 지금 코끝에서 뜨거운 김으로 솟고 있었다. 방광이 터질 것 같았다.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몸을 일으켰다.
“고만 가께라우?”
구럭의 시울 위로 두둑이 올라온 김을 다독거리며 양산댁이 말했다. 그는 고물로 성큼성큼 걸어가다 말고, 달빛을 하얗게 받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갑시다’ 했어야 할 여주인이 ‘가께라우?’ 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물 묻은 손을 갯바지에 쓱쓱 닦아 씻고 허리띠를 풀면서 고물 쪽으로 돌아섰다. 참았던 오줌이 요도를 통해 빠져나가자 온몸에 오싹 소름이 쳐졌다. 오줌이 물로 떨어지면서 하얀 물방울을 튀겼다. 그 주르르 하는 소리가 그녀의 가슴속에 전류 같은 울림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싶었다. 문득 주위가 바다인 데다 조그마한 채취선이라는 한정된 장소 안에서 단둘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가슴 뿌듯하게 했다. 침을 삼키며 허리춤을 여미고 돌이섰다. 또 저녁놀에 젖어 빨간 물이 든 것처럼 보이던 하얀 속옷과 속치마와 상어의 등처럼 둥그렇던 살결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홀로 사는 여자를 홀로 사는 남자가 한번쯤 만져주었다고 죄가 되면 얼마나 되랴 싶었다. 그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달빛에 젖은 그녀의 얼굴이 스무 살 안팎의 처녀 같았다.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하듯 뛰고 코와 입에서 뜨거운 김이 새어나왔다. 그녀가 그를 흘끗 보더니 일어서서 이물로 갔다. 덕판 밑에 앉으며 새우등처럼 몸을 웅크렸다. 성큼성큼 그녀 앞으로 걸어갔다. 팔짱을 낀 그녀의 한쪽 손을 훔켜* 잡았다.
“양산댁, 나하고 삽시다.”
“미쳤소?”
그를 향해 어처구니없어하는 투로 날카롭게 말했다.
“안 미쳤은께 이러요.”
“목 벨 소리 하지 말고, 얼릉 갑시다.”
“당신하고 한번 살아봤으면 원이 없겄소, 죽어도.”
“춥소, 집에 가서 이약합시다.”
“시방 대답해주씨요.”
그녀의 손을 끌어당겼다. 가슴을 끌어안았다.
“이 양반이, 여그 못 놓겄소?”
유리병을 깨뜨리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소, 만고에 홀애비가 홀엄씨를 한번 건드렸다고 죄 될랍디여?”
한 손으로 목을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통 넓은 갯바지 허리띠를 잡아챘다. 허리띠가 끊어졌다. 갯바지를 잡아 내렸다.
“미쳤소? 얼어 죽고 싶어서? 집에 가서 이약하잔께?”
그녀가 안간힘을 쓰고 아랫몸을 비비 꼬며 바지를 붙잡았다. 그녀의 발끝에 걸린 바지가 찢어졌다. 그녀가 사람 살리라고 비명을 지르며 그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순간, 팔뚝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끌어안았던 그녀를 놓고 모로 벌렁 나가둥그러졌다.
그녀가 팔뚝을 물어뜯은 것이었다. 그녀는 갯바지를 벗어 던지고 덕판 위로 뛰어오르며, 뱃전을 잡고 바닷물로 뛰어들 자세를 취하였다.
“가까이 오기만 해봐라, 콱 빠져 죽어쁠 것인께.”
앙칼스럽게 소리쳐 말했다. 그는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된 바에야 기어이 그녀의 몸을 범하고 말든지 목을 비틀어 죽이든지 하리라 했다.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설마 물로 몸을 던지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어디 죽어봐라 이년, 이 우악스런 년아.”
그녀가 물로 몸을 던졌다. 풍덩. 그녀의 몸이 잠긴 물 위로 물결이 하얗게 부서지며 솟아올랐다. 그는 몸서리가 쳐졌다.
“양산댁, 내가 죽일 놈이오.”
그녀는 미리 닻줄을 한 가닥 붙잡고 물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쉽사리 배 위로 기어 올라왔다. 그는 그녀의 그악스러움에 질려버렸다. 그날 밤 양산댁이 잠든 뒤에 그는 부엌으로 가서 몰래 안방 아궁이에다 불을 지펴주었다. 수절하는 과부를 짓밟아주려고 한 자기는 죽어야 마땅한 놈이라 하며 혀끝을 물어뜯었다.
날이 밝으면 어떻게 양산댁과 그녀의 아들 태범이를 대할 수 있을 것인가 두렵기만 했다. 채취선을 빌려다가 한밑천 장만하겠다 했던 꿈이고 뭐고 다 팽개치자 했다. 멀리 낯선 곳으로 가서 날품이나 들어 먹고살자 했다. 불을 다 지펴주고 모퉁이방으로 가서 옷보따리를 챙겼다. 마당으로 나왔다. 차가운 달빛이, 하얗게 서릿발 깔리는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고개를 떨구고 꺼먼 달그림자를 밟으며 사립문 앞으로 갔다. 살며시 문고리를 벗기고 밀었다. 대로 엮어 만든 사립문이 삐거덕 하고 소리를 냈다. 그때 안방 문이 열리고 하얀 속치마 바람의 양산댁이 마루로 나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뭔 짓이오?”
깜짝 소스라치며 혀를 물고 그녀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모래톱을 핥는 잔물결 소리가 찰브락찰브락 마당 안으로 가득히 굴러들고 있었다.
“가드라도 팔뚝이나 다 나아갖고 가씨요.”
“나 같은 놈의 팔뚝 같은 것 떨어져 나가도 싸지라우.”
다시 사립문을 밀었다.
그녀가 하얗게 서릿발이 깔리는 마당에 비치는 달빛처럼 싸늘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가 왜 그런다우? 올 겨울 해의 다 해주기로 약속해놓고. 그라고 왜 그렇게 무서워서 벌벌 떠요? 서로 말만 안 내면 될 것인디, 왜 그렇게 대가 무르다우?”
목이 메어 말끝을 흐리며 돌아서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쾅 닫았다.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껴 우는 듯한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은물을 칠해놓은 듯 하얗게 번쩍 번쩍 빛나며 출렁거리는 바다를 멍청히 바라보았다.
석주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성냥을 그어 댕겼다. 양산댁이 새끼줄 토막으로 뱃전을 닦고 나서 물을 끼얹자 갯벌이 묻어 꺼멓던 채취선이 노란 몸을 드러냈다.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 이물을 주억 거릴 때마다 맑은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양산댁이 한 쪽 뱃전을 다 닦고 다른 쪽 뱃전에 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대가 무르다우?” 하던 양산댁의 말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모래밭으로 걸어갔다. 발목이 모래밭에 흠씬 묻힐 만큼 빠졌다. 노루목 응달을 향해 걸었다. 기다란 부두가 파란 바다 가운데로 죽 뻗어 있는 노루목 응달의 모래밭에는, 갯마을 사람들이 오징어 그물을 꾸미고 거기에 쑥대를 다느라고 개미떼처럼 우글거렸다. 태수는 거기에서 오징어 그물을 꾸미고 있을 것이었다. 태수의 멱살을 끌고 내려오리라 했다. 양산댁이 보는 앞에서 태수를 죽이든지 자기가 죽든지 하리라 했다.
어엿하게 아내까지 거느린 데다 아들 둘 딸 둘을 낳아 기르면서, 양산댁네 아들 태범이의 진학 문제 때문입네, 홀로 하는 살림살이를 보아줍네 하고, 자꾸 찾아와서 밤늦게까지 도란거리다가 돌아가는 것 같은 것이야 그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빌려놓은 채취선을 가로채는 것까지를 용납할 수는 없었다.
석주는 흰 바지저고리를 입은 태수를 데리고 하라지 끝으로 갔다. 노루목 응달에서 하라지 끝을 향해 뻗어간 모래밭길을 걸었다. 고개를 떨구고 기다란 두 팔을 흐느적흐느적 흔들면서, 석주는 태수를 흘끗 곁눈질해 보았다. 태수는 땅딸막한 몸을 꼿꼿이 세운 채, 시절바위 앞에 정박한 채취선 위의 양산댁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자기가 오징어잡이를 함께하자고 양산댁을 꾀지는 않았으니 오해하지 말라고, 태수는 조금 전에 자신 있게 말했었다. 그가 채취선을 빌려 가기로 하고 머슴살이한 줄은 정말 몰랐었노라고 시치미를 뗐다. 석주는 이를 물었다. 물 묻은 뱃전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채취선의 덕판에 물을 쫙쫙 끼얹고 있는 양산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모래를 걷어차며 성급하게 걸었다. ˙
그들이 거칠게 모래를 밟으며 시절바위 앞으로 다가가도 양산댁은 모르는 체, 물이 줄줄 흐르는 덕판을 새끼줄 토막으로 문질러대기만 했다. 태수가 걸음을 멈추기가 바쁘게 석주에게 말했다.
“물어보소, 내가 먼저 양산댁한테 오징어잡이를 함께하자고 했는가, 양산댁 이 먼저 그랬는가, 원대로 물어봐.”
석주의 턱을 쥐어지를 듯이 삿대질을 했다. 석주는 태수의 거무죽죽한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를 악물었다. 태수의 시꺼먼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간밤, 태수가 양산댁에게 붙였을 수작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오고 가던 말끝에 태수가 문득 생각난 듯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었다.
“참말로 배 내줄라우?”
“놀려두기 그런께 내줘뿔라우.”
“오징어잽이 하제 잘못한 것 같소.”
“누구하고 할 것이오?”
“아무하고라도 맘에만 맞으면.”
“마음에 맞는 사람이 어디가 있소?”
양산댁이 가볍게 한숨을 쉬자 태수가 대뜸, “글쎄라우, 나도 작년에 같이했던 사람이 마음에 안 맞어서 다른 사람을 골라보고 있는디, 그것이 영 곤란하요”라고 말했을 것이었다.
그러자 양산댁이 반색을 하며, “아니, 순덕이 아부지도 아직 어울려 오징어잽이 할 사람 못 구했소?” 하며 응수를 했을 것이었다.
석주는 태수의 멱살을 재빨리 움켜잡았다.
“요 새끼, 그런 걸 따지자고 널 데리고 내려왔는 줄 아냐? 양산댁 보는 앞에서 물속에다 콱 처박아 죽일라고 그런다.”
주먹을 부르쥐어 태수의 눈앞에다 들이댔다. 태수는 가소롭다는 듯이 석주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겨주며 말했다.
“어디,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안 죽고 싶으면 바른대로 대라.”
“뭐어?”
태수는 석주의 손을 비틀어서 뿌리쳐버렸다. 석주는 날쌔게 빠져나간 태수를 붙잡으려고 쫓았다.
양산댁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새끼줄 토막과 바가지를 뱃바닥에 내던졌다. 덕판 앞에 우뚝 서서, 두 사람의 으르렁대는 꼴을 바라보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태수가 두어 걸음 뒷걸음질을 치며 피하는 체하더니 석주의 가랑이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씨름을 하듯 석주의 가랑이를 걷어서 배에 붙였다가는 냅다 내리쳐버렸다. 석주는 태수의 허리띠를 틀어쥔 채 모래 위로 나가떨어졌다. 태수는 나가떨어진 석주의 가랑이 속에 끼여 함께 나동그라졌다. 석주는 태수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두 다리로 태수의 아랫도리를 감았다. 눈을 감고 데굴데굴 굴렀다. 등줄기와 뒤통수가 질퍽 바닷물 속에 잠겼다. 잔물결이 여리게 찰싹거리는 모래톱에까지 뒹굴어 온 것이었다. 순간 석주는 가슴팍의 살점이 한 점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으윽.”
태수가 그의 가슴팍을 물어뜯은 것이었다. 석주는 이를 갈며 다시 한 번 뒹굴었다. 태수가 물속에 잠겼다. 석주는 태수의 머리를 가슴으로 덮쳐눌렀다. 태수는 물속에서 석주의 팔을 뿌리치려고 기를 쓰고 허우적거렸다. 바닷물을 삼켜댔다. 마치 빈 병을 물속에 처넣었을 때처럼 둥그런 공기방울만 한두 개씩 올라왔다.
“실컷 퍼묵어라, 내 가슴 뜯어 묵은 새끼야, 배가 터지도록 퍼묵어라.”
석주는 몸을 떨면서 허우적거리는 태수의 몸을 전신으로 누르고 소리쳐 말했다. 태수가 두 손을 석주의 겨드랑이 사이로 뻗어 내젓자, 양산댁이 치맛자락을 걷어 여밀 사이도 없이 “사람 죽네, 사람 죽어”라고 앙칼스럽게 외치며 물로 뛰어내렸다. 주먹으로 석주의 등을 때렸다.
석주는 태수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서 시절바위 앞으로 밀어 던졌다. 태수는 허리춤이 잠기는 물속으로 거꾸러졌다. 허우적거리며 일어섰다. 간신히 시절바위의 모서리를 붙잡고 섰다. 숨을 가쁘게 쉬며 석주를 돌아다보았다. 몸을 떨면서도 석주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양산댁은 잠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채취선 위로 뛰어 올라가며 말했다.
“배 못 내주겄소. 아무한테도 못 내줘라우.”
시절바위에 맨 밧줄을 풀고 덕판으로 달려가서 닻을 캤다. 채취선이 바다를 향해 둥실 떠나갔다. 석주는 픽 하고 웃었다.
“이번엔 니 차례다, 이년아.”
바닷물로 뛰어들어 갔다. 배를 향해 헤엄쳐 갔다.
닻을 캐어 실은 채취선은 시절바위 쪽으로 이물을 빙그르르 돌리더니 바다 가운데로 밀려갔다.
석주는 네댓 걸음 헤어 가서 채취선의 뱃전 위로 한쪽 손을 걸쳤다. 몸을 솟구쳐 배 위로 올라갔다.
닻을 덕판에 얹고 노를 걸어 저으려던 양산댁은 우두커니 서서, 머리칼과 옷에서 물이 줄줄 흐르는 석주의 험상궂게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핏기가 가셨다. 그녀는 눈을 밑으로 내리깔며 고개를 돌렸다. 뱃바닥에 주저앉았다. 석주는 몸에 착 달라붙은 옷자락을 털며 그녀의 앞으로 걸어갔다.
“쌍년아, 사람을 어떻게 보냐.”
왁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이를 악물었다. 양산댁의 파랗게 질린 얼굴을 노려보았다. 양산댁은 노루목 응달로 눈길을 뻗었다. 노루목 응달의 모래밭에는 마을 사람들이 오징어 그물을 꾸미느라고 우글거리고 있었다. 모두들 바쁘게 서두르고들 있었다. 석주는 양산댁의 저고리 앞섶을 움켜잡았다.
“대 무른 놈한테 한번 죽어볼래? 이 여우 같은 년아.”
목이 메었다. 아내 복님의 하얗게 웃는 얼굴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닥치는 대로 쥐어지르고 걷어차서 바닷물 속에 내리꽂아 죽이고 싶은 충동이 온몸을 떨게 했다.
“배 가져 가시오.”
양산댁이 체념을 한 듯 풀 죽은 소리로 말했다.
배는 둥실 바다로 떠밀려 갔다. 서풍이 불고 있었다. 양산댁이 먼 바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디 나는 배 없이 어떻게 살 것이오? 한시도 못 살어라우, 배 없이는 죽어도…….”
양산댁의 눈에 물이 괴고 있었다. 석주는 양산댁의 저고리 앞섶을 움켜쥔 채 바닷물이 흘러들어 쓰린 눈알을 껌벅거렸다. 여우 같은 양산댁이 또 자기를 꾀고 있다 싶었다. 양산댁을 물속에 처넣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멍청히 양산댁이 바라보는 먼 바다의 한 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먼 ˙바다에는 한가로운 잔물결의 이랑들이 햇빛을 받아 금빛 고기비늘처럼 반짝거리고, 그 반짝거림 속에 오징어잡이 배들이 장난감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대한일보』 (1968. 1. 1); 『한승원 중단편전집』 1권(문이당 1999)
한 승 원
한승원(韓勝源)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목선(本船)」이 당선되어 등단한 뒤 10여 년간 교편생활을 하기도 했다. 배의 임대를 둘러싸고 갯벌에서 벌이는 두 남자의 갈등을 그린 등단작(「목선」)은 그의 문학의 원형을 이루며, 이후 바닷가 서민들의 애환과 생명력, 한(恨)의 문제 등을 줄기차게 다루어왔다. 주요 작품으로 「앞산도 첩첩하고」 「포구의 달」 「아리랑 별곡」 「해변의 길손」 「겨울 폐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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