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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미륵불 전설
충남 논산시 관촉동 반야산 기슭에 관촉사라는 조그만 절이 있어요. 이 절에 유명한 미륵불이 서 있는데 높이가 18미터, 둘레가 11미터나 된답니다. 이 불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상이에요.
이 미륵불은 어떤 전설을 가지고 있을까요?
고려 제4대 임금인 광종 19년.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반야산 앞에 사제촌 이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어느 따뜻한 봄날 이 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고사리를 캐러 반야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와~ 고사리가 산에 쫙 깔려 있네.”
할머니는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사리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의 바구니에는 어느새 고사리가 수북이 쌓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응애, 응애!”
할머니는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어? 깊은 산 속에서 웬 아기 울음소리지?”
할머니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어머나! 저게 뭐야?”
할머니는 너무 놀라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기는 보이지 않고, 갑자기 큰 바위가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에그,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땅에서 바위가 솟아오르다니!”
할머니는 바구니도 팽개친 채 산 밑으로 부리나케 달아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사위에게 이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사위는 관가에 알려야겠다며 달려나갔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고을 원님은 조정에 보고했습니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구나. 큰 바위가 땅에서 솟아오르다니……. 경들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광종은 조정 대신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전하, 땅 밑에서 솟아오른 바위는 부처님이 우리나라에 내려 주신 바위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 불상1) 을 만들어 세우라는 징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흠, 옳은 말이오. 나라 안의 유명한 석공2) 들을 불러들여 그 바위를 깎아 불상을 만들도록 하시오.”
광종의 부름에 응하여 이 일을 담당하게 된 사람이 혜명이라는 스님이었습니다.
혜명대사는 석공들을 데리고 반야산으로 갔습니다.
바위를 살펴본 석공들은 혜명대사에게 말했습니다.
“대사님, 땅 밑에서 솟아오른 바위가 크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불상을 만들기 어렵겠는데요.”
“어째서 그러하오?”
“바위가 높지 않아서요.”
“음…….”
고민하던 혜명대사는 그 바위로는 아랫부분만 만들고 윗부분은 다른 바위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혜명대사는 윗부분을 만들 바위를 찾기 위해 며칠 동안 끼니도 거른 채 반야산 주위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연산’이라는 곳에 좋은 바위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석공들과 함께 그 바위를 반야산으로 운반해 왔습니다.
혜명대사는 세상에서 가장 큰 불상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석공들은 아랫부분과 윗부분으로 나뉘어 열심히 바위를 깎고 다듬었습니다.
불상이 완성될 즈음 혜명대사에게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불상의 윗부분을 들어올려 아랫부분에 올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너무 크고 무겁기 때문에 석공 수백 명이 힘을 합해도 들어올릴 수가 없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혜명대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 어쩌면 좋지? 이 일을 끝내야 불상이 완성되는데, 좋은 수가 없을까?’
어느 날 혜명대사는 골똘히 생각하며 사제촌 강변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혜명대사는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아이들이 진흙으로 미륵을 만들어 세우는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불상은 아랫부분과 윗부분, 이렇게 두 조각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미륵 쌓자 미륵 쌓자’하면서 불상의 아랫부분을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모래를 모아다가 그 주위에 경사지게 쌓더니, 그 위로 불상의 윗부분을 밀어 올려 가볍게 올려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래를 파 버리자 높은 불상이 반듯하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혜명대사는 손뼉을 짝 쳤습니다.
‘맞아, 저런 좋은 방법이 있었구나.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혜명대사는 매우 기뻐하면서 즉시 반야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석공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상의 아랫부분 주위로 흙을 쌓아 비탈길을 만드시오. 그 다음엔 윗부분을 그 위로 끌어 올리는 거요.”
석공들은 혜명대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불상 주위에 쌓은 흙을 치웠더니 하나로 완성된 불상이 웅장하게 서 있었습니다.
석공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37년에 걸쳐 완성한 불상 앞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제촌 강변에서 놀던 아이들 덕분에 불상을 완성했구나.’
혜명대사는 아이들이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아이들이 놀던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사제촌 마을까지 찾아갔지만 그런 아이들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야 혜명대사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그 아이들이 문수보살3) 이었구나. 미륵 쌓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내 앞에 나타났던 거야. 나무관세음보살.’
혜명대사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두 손을 모아 합장했습니다.
논산의 미륵불은 이렇게 해서 세워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논산의 미륵불이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입니다. 또 다른 이름으로 ‘은진미륵’이라고도 불린답니다.
이 미륵은 쓰고 있는 갓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쪽 귀가 떨어진 것을 이어놓은 것을 볼 수 있어요. 여기에는 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답니다. 고려시대 북쪽 오랑캐의 침략이 빈번할 무렵, 오랑캐가 고려를 정복하고자 압록강을 건너려고 했어. 그러나 압록강의 깊이를 알지 못했던 적장은 강 앞에서 머뭇거렸지. 때마침 어떤 스님 하나가 승립을 쓰고 가사를 입고 얕은 시냇물을 건너듯 다리만 걷어 올리고는 압록강을 건너갔어. 이를 본 적장이, “얼마 깊지 않군! 돌격 앞으로.” 하고 외쳤어. 이에 오랑캐 병사들은 압록강으로 마구 뛰어들었지. 하지만 거센 물살과 깊은 물길로 수많은 오랑캐 병사들이 강물에 빠져 죽었어. 화가 난 오랑캐 장수는 그 스님을 쫓아가 칼로 내리쳤어. 그 순간 ‘쨍강’ 소리와 함께 갓 한 귀퉁이가 떨어지고 스님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어. 이때 은진미륵의 갓도 쪼개졌어. 그래서 그때 오랑캐를 물로 유인한 것이 지금의 은진미륵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단다. 지금도 은진미륵 불상을 올려다보면 불상의 모자 부분이 갈라진 것을 볼 수 있어. |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반야산 관촉사에 있는 고려 초기의 석조 보살 입상이에요. 보물 제218호로 옛날부터 은진미륵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화강암으로 만든 이 불상은 높이가 18.12미터, 둘레는 11미터, 귀 길이는 3.33미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상이에요. 이 불상의 특징은 크고 웅장하여 위압감을 주며, 넓적한 코, 옆으로 길게 째진 눈, 일자로 굳게 다문 입 등 토속적인 얼굴 모습을 가지고 있어요.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석조보살입상이 세워지자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21일간 불상 주위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렸다고 해요. 또한 불상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옥호에서 빛이 쏟아져 사방을 비추었는데, 중국의 지안 스님이 그 빛을 보고 중국에서 찾아와 경배했다고 해요. 이때 지안 스님이 “촛불을 보는 것처럼 미륵이 빛난다.”고 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영험하고 신비로운 불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나라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에서 빛이 나고, 상서로운 기운이 하늘에 서린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또한 난리가 나면 불상이 온몸에 땀을 흘리고, 손에 들고 있는 연꽃의 색이 변한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관촉동 사람들은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한일합방 때와 1950년 한국전쟁 때 불상이 땀을 흠뻑 흘리는 것을 보았다고 해요.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소원을 다 이루어 주는 불상으로도 알려져, 지금도 기도 행렬이 끊이지 않는답니다. |
1) 부처의 형상을 표현한 상.
2) 돌을 다루어 물건을 만드는 사람
3) 불교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
고려 제4대 임금인 광종 19년.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반야산 앞에 사제촌 이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어느 따뜻한 봄날 이 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고사리를 캐러 반야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와~ 고사리가 산에 쫙 깔려 있네.”
할머니는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사리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의 바구니에는 어느새 고사리가 수북이 쌓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응애, 응애!”
할머니는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어? 깊은 산 속에서 웬 아기 울음소리지?”
할머니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어머나! 저게 뭐야?”
할머니는 너무 놀라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기는 보이지 않고, 갑자기 큰 바위가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에그,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땅에서 바위가 솟아오르다니!”
할머니는 바구니도 팽개친 채 산 밑으로 부리나케 달아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사위에게 이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사위는 관가에 알려야겠다며 달려나갔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고을 원님은 조정에 보고했습니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구나. 큰 바위가 땅에서 솟아오르다니……. 경들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광종은 조정 대신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전하, 땅 밑에서 솟아오른 바위는 부처님이 우리나라에 내려 주신 바위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 불상1) 을 만들어 세우라는 징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흠, 옳은 말이오. 나라 안의 유명한 석공2) 들을 불러들여 그 바위를 깎아 불상을 만들도록 하시오.”
광종의 부름에 응하여 이 일을 담당하게 된 사람이 혜명이라는 스님이었습니다.
혜명대사는 석공들을 데리고 반야산으로 갔습니다.
바위를 살펴본 석공들은 혜명대사에게 말했습니다.
“대사님, 땅 밑에서 솟아오른 바위가 크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불상을 만들기 어렵겠는데요.”
“어째서 그러하오?”
“바위가 높지 않아서요.”
“음…….”
고민하던 혜명대사는 그 바위로는 아랫부분만 만들고 윗부분은 다른 바위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혜명대사는 윗부분을 만들 바위를 찾기 위해 며칠 동안 끼니도 거른 채 반야산 주위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연산’이라는 곳에 좋은 바위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석공들과 함께 그 바위를 반야산으로 운반해 왔습니다.
혜명대사는 세상에서 가장 큰 불상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석공들은 아랫부분과 윗부분으로 나뉘어 열심히 바위를 깎고 다듬었습니다.
불상이 완성될 즈음 혜명대사에게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불상의 윗부분을 들어올려 아랫부분에 올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너무 크고 무겁기 때문에 석공 수백 명이 힘을 합해도 들어올릴 수가 없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혜명대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 어쩌면 좋지? 이 일을 끝내야 불상이 완성되는데, 좋은 수가 없을까?’
어느 날 혜명대사는 골똘히 생각하며 사제촌 강변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혜명대사는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아이들이 진흙으로 미륵을 만들어 세우는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불상은 아랫부분과 윗부분, 이렇게 두 조각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미륵 쌓자 미륵 쌓자’하면서 불상의 아랫부분을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모래를 모아다가 그 주위에 경사지게 쌓더니, 그 위로 불상의 윗부분을 밀어 올려 가볍게 올려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래를 파 버리자 높은 불상이 반듯하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혜명대사는 손뼉을 짝 쳤습니다.
‘맞아, 저런 좋은 방법이 있었구나.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혜명대사는 매우 기뻐하면서 즉시 반야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석공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상의 아랫부분 주위로 흙을 쌓아 비탈길을 만드시오. 그 다음엔 윗부분을 그 위로 끌어 올리는 거요.”
석공들은 혜명대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불상 주위에 쌓은 흙을 치웠더니 하나로 완성된 불상이 웅장하게 서 있었습니다.
석공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37년에 걸쳐 완성한 불상 앞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제촌 강변에서 놀던 아이들 덕분에 불상을 완성했구나.’
혜명대사는 아이들이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아이들이 놀던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사제촌 마을까지 찾아갔지만 그런 아이들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야 혜명대사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그 아이들이 문수보살3) 이었구나. 미륵 쌓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내 앞에 나타났던 거야. 나무관세음보살.’
혜명대사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두 손을 모아 합장했습니다.
논산의 미륵불은 이렇게 해서 세워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논산의 미륵불이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입니다. 또 다른 이름으로 ‘은진미륵’이라고도 불린답니다.
이 미륵은 쓰고 있는 갓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쪽 귀가 떨어진 것을 이어놓은 것을 볼 수 있어요. 여기에는 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답니다. 고려시대 북쪽 오랑캐의 침략이 빈번할 무렵, 오랑캐가 고려를 정복하고자 압록강을 건너려고 했어. 그러나 압록강의 깊이를 알지 못했던 적장은 강 앞에서 머뭇거렸지. 때마침 어떤 스님 하나가 승립을 쓰고 가사를 입고 얕은 시냇물을 건너듯 다리만 걷어 올리고는 압록강을 건너갔어. 이를 본 적장이, “얼마 깊지 않군! 돌격 앞으로.” 하고 외쳤어. 이에 오랑캐 병사들은 압록강으로 마구 뛰어들었지. 하지만 거센 물살과 깊은 물길로 수많은 오랑캐 병사들이 강물에 빠져 죽었어. 화가 난 오랑캐 장수는 그 스님을 쫓아가 칼로 내리쳤어. 그 순간 ‘쨍강’ 소리와 함께 갓 한 귀퉁이가 떨어지고 스님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어. 이때 은진미륵의 갓도 쪼개졌어. 그래서 그때 오랑캐를 물로 유인한 것이 지금의 은진미륵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단다. 지금도 은진미륵 불상을 올려다보면 불상의 모자 부분이 갈라진 것을 볼 수 있어. |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반야산 관촉사에 있는 고려 초기의 석조 보살 입상이에요. 보물 제218호로 옛날부터 은진미륵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화강암으로 만든 이 불상은 높이가 18.12미터, 둘레는 11미터, 귀 길이는 3.33미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상이에요. 이 불상의 특징은 크고 웅장하여 위압감을 주며, 넓적한 코, 옆으로 길게 째진 눈, 일자로 굳게 다문 입 등 토속적인 얼굴 모습을 가지고 있어요.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석조보살입상이 세워지자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21일간 불상 주위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렸다고 해요. 또한 불상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옥호에서 빛이 쏟아져 사방을 비추었는데, 중국의 지안 스님이 그 빛을 보고 중국에서 찾아와 경배했다고 해요. 이때 지안 스님이 “촛불을 보는 것처럼 미륵이 빛난다.”고 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영험하고 신비로운 불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나라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에서 빛이 나고, 상서로운 기운이 하늘에 서린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또한 난리가 나면 불상이 온몸에 땀을 흘리고, 손에 들고 있는 연꽃의 색이 변한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관촉동 사람들은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한일합방 때와 1950년 한국전쟁 때 불상이 땀을 흠뻑 흘리는 것을 보았다고 해요.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소원을 다 이루어 주는 불상으로도 알려져, 지금도 기도 행렬이 끊이지 않는답니다. |
1) 부처의 형상을 표현한 상.
2) 돌을 다루어 물건을 만드는 사람
3) 불교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