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에서 조미경 사범과 이성재 9단, 현지 초등학교 아이들 |
의문, 백인 바둑인구가 늘어나면 과연 우리는 행복할 것인가? 2010. 11. 8 서울 8시55분, 상하이 9시50분 시차1시간
올해 미국과 독일, 태국의 바둑을 보면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둑 보급이라는 명분으로 우리나라 기사들이 해외 보급을 하고 있습니다. 전부터 보급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도 계셨지만, 올해가 한국의 세계 바둑 보급 원년으로 볼 수 있는 해인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정부지원금을 받고 해외 보급기사로 나간 첫해이기 때문이죠.
크게 3개 대륙을 잠시 다녀 온 것이지만 과연 바둑보급의 대상을 누구로 해야 할까요? 모든 사람을 다 가르친다면 좋지만 우선 대상은 분명하게 구분 지을 필요가 있겠죠. 그 궁금증을 풀러 싱가포르-말레이시아-베트남을 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이 문제입니다.
100년 동안 바둑을 접했음에도 바둑인구 증가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유럽의 백인들을 가르쳐야 하는가, 아니면 바둑이 가장 보급되기 좋다는 GNP 3000달러에서 10000달러 이내의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볼 때, 나라가 잘 살고 시장성도 좋고, 뉴스가 될 만한 곳은 분명 유럽이나 미국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바둑인구를 100명 늘릴 정도의 노력이나 시간이면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몽골 같은 곳은 열 배 이상의 바둑인구를 증가 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보다는 질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질보다는 양이라는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신경 써야 한다면 그것도 답일 수 있겠네요. 가보지 않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난번 독일과 태국에서 배웠습니다.
이번에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여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싱가포르로의 여정은 과연 그들에겐 바둑이 무엇 일까 라는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지며 떠납니다.
11월 8일, 역시 비행기 표 값 관계로 가장 가격이 저렴한 동방항공으로 상하이를 경유해 싱가포르로 갑니다. 다행히 상하이는 LG배가 열리고 있어 한국기원의 협조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2시간 남짓의 비행을 마치고 푸동 공항에 내려야 할 시간입니다. (참조 : 11월 8일 상하이서 열린 제15회 LG배 8강전에서 한국선수 이창호,안조영,최철한이 모두 떨어지고 4강은 모두 중국 프로기사들의 차지가 됐다.)
과연 상하이 참사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8일 8강전이 끝나고 11월9일은 선수들에겐 휴식일입니다. 하지만 모두 탈락한 한국 선수들에겐 무의미한 날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려는데 이창호9단과, 최철한 9단이 체크아웃이 되어 있었습니다. 공항으로 이미 떠났다고 하네요. 한마디로 조기 귀국을 한 겁니다. 안조영 9단만이 끝까지 남아 중국 선수들의 4강전 연구를 했습니다.
11월 9일 4강전이 끝나고 한국선수단의 회식이 있었습니다. 워낙 선수단의 분위기 자체가 내려가 있어서인지 바둑 얘기는 안 하고 있을 때 바둑 관계자 한 분이 LG배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 상하이의 밤, 우리 선수들중엔 안조영 9단(사진 왼쪽)만이 남아 있다. 오른쪽은 LG배 해설위원 최규병 9단. “이래서는 곤란하다. 프로기사들이 각성해야 한다. 13억의 예산중에 상금으로 7억원이 책정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중 4억 이상을 중국기사가 가져가게 한다면 도요타 덴소배나 춘란배 같이 스폰서가 항상 이런 대회를 왜 하냐고 할 때 할 말이 없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변명 삼아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방송대국으로 시간이 줄어든 것도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이 그러시더군요. “중국기사가 세니까 우리가 진다고 생각을 해야지요. 일본기사가 긴 시간 바둑 둔다고 중국 이기겠습니까. 헝그리 정신이 없어진 면이 주요한 것 아니에요?”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운 이유야 여러 가지입니다.
다시 밤 11시55분 상하이 푸동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습니다. 싱가포르까지는 5시간 걸립니다. 그렇게 많이 가는데 시차는 똑같네요.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새벽 5시 반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게스트하우스를 가는 도중 게스트하우스 근처 지하철역에서 조미경 사범이 저희를 반겨줍니다. 고맙게도 싱가포르 바둑협회에서 숙박비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호텔을 잡을 걸 그랬나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싱가포르에서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1월 10일 싱가포르
정확히 10년 만에 싱가포르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전 허니문을 싱가포르, 빈탄 4박5일로 여행을 했었습니다. 당시 90년대 최고의 신혼여행지인 괌, 사이판을 제치고 손지창, 오연수씨가 신혼여행을 떠난 지 얼마 안된 미지의 싱가포르, 빈탄을 택했었습니다. 하도 오래 된 것도 있고 쇼핑 한 것 말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 지라 사실상 싱가포르를 처음 온 간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입니다.
10년 전 환율은 1싱가포르달러에 580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870원 가까이 하네요. 요즘 새삼 외국을 나가면 우리나라 돈 가치가 너무 내려가 어딜 가도 우리나라보다는 물가가 비싼 느낌이 듭니다.
새벽에 도착한 것도 있고 해서 오전엔 쉬다가 오후에 조미경 사범이 강의를 나가는 초등학교에 견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1주일에 1시간 30분 강의를 하는데 30분은 강의 수업이고, 1시간은 실전 연습입니다. 조미경 사범은 초등학교 2곳 중학교 1곳을 나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방과 후 바둑 수업은 학생이 선생님한테 직접 돈을 내는데, 싱가포르는 학교에서 싱가포르 바둑협회에 돈을 내고 싱가포르 바둑협회는 사범들을 파견하는 대신 일정 부분의 수당을 줍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입니다.
싱가포르는 3명의 프로기사가 바둑을 가르치는데 2명은 중국계, 1명은 조미경 사범입니다. 이곳은 중국계가 인구75%를 차지하는 만큼 공용어는 영어지만 중국어도 거의 통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인지 바둑을 두는 사람은 전부 중국의 바둑용어를 쓰고 있고 영어로 된 바둑용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금은 젊은 층의 바둑인구가 늘고 있어 영어가 더 편한 어린이들에게 영어로 바둑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영어가 능숙한 조미경 사범이 이곳을 오게 된 겁니다.
▲ 계단에 그려져 있는 싱가포르 역대 대통령 초상화, 실권은 없다. 저희가 간 화민 초등학교는 1946년 개교한 학교로 ‘이슌(Yi Shun)’ 이라는 지역에 있습니다. 조용한 주택가 안에 있는 학교입니다.이 학교에서 싱가포르에 대해 두 가지를 배우게 됐습니다. 우리의 대통령이라는 계단에 쓰인 인물과 글을 보고 싱가포르가 대통령제 국가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전 리콴유라는 유명한 총통은 알고 있었거든요. ‘총통제가 있는 곳에 무슨 대통령이지?’ 했는데 싱가포르도 대통령이 있네요. 그리고 초대 대통령이 싱가포르 모든 지폐의 얼굴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현지 분에게요 그러자 이런 말이 나오네요. 실권은 없고 “얼굴마담”이죠 뭐 현재도 대통령이 계신데 실권은 리콴유 총통의 아드님이 다 가지고 계시다네요.
또 한 가지 몰랐던 사실은 싱가포르 국가와 말레이시아 국가가 같다는 겁니다. 옛날엔 같은 나라여도 분리 되었으면 다른 국가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요? 더 재미있는 건 국가를 말레이어로 부르는데 학생들은 전혀 뜻을 모른다는 거죠. 참고로 싱가포르엔 말레이 사람이 인구의 15%정도 산다고 합니다.
▲ 조미경 사범의 바둑수업은 빔프로젝트로 자료화면을 비추며 영어로 진행했다. 바둑을 배우는 학생은 보통 40명 정도인데 시험기간이라서 그런지 17명의 학생이 수업을 들으러 왔습니다. 처음 보자마자 놀란 것은 노특북과 연결해 빔 프로젝트로 수업을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조미경 사범이 만든 강의 자료였습니다. 굉장히 잘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자석 바둑판이 아닌 컴퓨터로 강의를 하다 보니 학생들의 관심도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세 번째는 영어 강의 능력입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 보다 당연히 어린이를 가르치는 것이 힘든데 그것도 영어로 아이들을 능수능란하게 주무르고 있었습니다. 조미경 사범은 한국에서 영어 바둑교실을 열어도 성공할 것 같은 커리큘럼과 가르치는 능력이 있더군요.
바둑 둘 줄 아는 사람 가르치는 건 프로기사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둑 시작하는 사람 그것도 한명도 아닌 수십 명의 외국 학생을 가르칠 수 있다는 건 아마 지금 현재 외국에 나가 있는 프로, 아마 어떤 사람도 못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조미경 사범이 실전연습을 가르치는 동안 이성재 9단은 이 학교 최고 고수와 지도기를 시작했습니다. 자칭 1단이고 현재도 중국 프로 기사에게 배우고 있다는 이 소년은 6점이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하다가 그만 연패를 거듭해 9점에도 지더니 울기 일보 직전이 되었습니다.
◀ 김성룡 9단 같으면 6~7점에는 일부러 졌을지도 모른다. 학교 최고수를 울먹거리게 만든 이성재 9단, 바둑에 '용서'란 없다!
좀 살살해도 되는데.... 이성재 9단은 아이가 하는 걸 보고, 자신의 진정한 실력을 알아 앞으로 교훈이 되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식사는 싱가포르 바둑협회 임원진과 함께 했는데 식사 후 자연스럽게 근처의 싱가포르 바둑협회 사무실에서 지도 다면기가 시작 되었습니다. 저는 회장, 부회장과 6점에 1승 1패를 하며 복기까지 다했는데 이성재 9단이 상대하는 젊은 총무들은 완전 죽기 살기로 두고 있네요. 결국 이성재 9단이 2승은 했지만 2시간30분이라는 혈투를 벌여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나중에 지하철 끊길까봐 초읽기 시계를 놔서 그 정도였습니다.
게스트 하우스 돌아오니 11시가 좀 넘었네요. 이 글을 정리했더니 12시55분 한국시간 새벽1시55분입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시작된 동남아 바둑 알기는 계속 이어지니까 기대해 주세요.
[글:김성룡] 사진 업데이트 중입니다.
▲ 바둑이 느는데는 라이벌이 최고다. 사진속 5학년의 단짝 라이벌이다.
▲ 싱가포르 바둑협회 임원들과 함께. 사진 뒤 맨 좌측이 김성룡 9단, 바로 옆이 조미경 8단이다. 앞줄 맨 우측이 싱가포르 바둑협회 회장, 뒷줄 맨 우측이 김성룡과 함께 기행하고 있는 이성재 9단.
▲ 싱가포르의 초등 6학년생이 그린 포스터, 약물남용금지, 예상하셨다시피 여기서 약물이란 마약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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