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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에서 발원해 광양과 보성으로 흘러드는 전라도의 젖줄 섬진강. 봄이 되면 벚굴, 다슬기, 재첩 등 별미를 내어주고 강변마다 하얗고 빨갛고 노란 꽃을 피우는 고마운 존재다. 곡성은 그런 섬진강의 너른 품에 안겨 있다. 구례, 하동, 광양 등 다른 유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한적하고 여유롭게 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뚜벅이족의 무계획 당일치기 여행에 최적이다. 관광택시를 예약하면 기차표를 저렴하게 구입함은 물론 전문 교육을 받은 기사님과 함께 곡성 핫플레이스를 두루 구경할 수 있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에 대한 고민이 줄어든다. 이번 주말, 관광택시 타고 곡성 한 바퀴 돌아보면 어떨까.
섬진강레일바이크 인근 도로에 핀 철쭉 <사진제공·곡성군청>
지갑 사정 알아주는 광택열차 패키지
곡성은 사방으로 강이 흘러 땅이 기름지고 유원지와 펜션이 발달해 행락객과 낚시꾼이 주로 찾는다. 알록달록 봄꽃이 만개하는 요즘이면 강변길을 따라 한적하게 드라이브를 즐기기 좋다.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라 웬만해서는 길이 막히지 않는다. 대황강변에는 매화꽃이, 압록 방면 섬진강로에는 철쭉이, 섬진강 너머 지척의 구례땅에는 벚꽃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반나절이면 곡성 주요 관광지 대부분을 돌아볼 수 있을 만큼 동선도 짧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나 자동차가 없는 뚜벅이족, 운전이 서툰 젊은 여성들은 곡성관광택시(이하 관광택시)를 이용하면 좋다. 주 2~3회씩, 3개월 이상 교육을 받은 9명의 기사들이 순번대로 운행을 책임진다. 이들은 곡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다. 문화해설사만큼 완벽하지는 않아도 구수한 사투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줄 실력이 된다.
오늘의 여행을 책임질 곡성관광택시 황진권 기사님 [왼쪽/가운데]남도해양열차 S-train의 특실 내부 / 향수를 불러오는 추억의 공간, 3호차 카페실
관광택시는 기본적으로 ‘섬진강변’, ‘대황강변’, ‘문화예술’, ‘네바퀴’의 4개 코스를 운행하고 있으며 이용자가 각자 취향에 따라 세부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다. 봄에는 ‘섬진강변 코스’(침실습지-섬진강변도로-섬진강도깨비마을-섬진강천문대)나 ‘대황강변 코스’(대황강변도로-대황강출렁다리-섬진강문화학교-태안사)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요금은 기본 3시간 60,000원이다. 어떤 코스를 선택하든 3시간 내로 둘러볼 수 있지만 체험 요소를 얼마나 결합하느냐에 따라 소요시간이 달라진다. 기본 시간이 지나면 1시간마다 20,000원의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 택시 한 대당 최대 4인 탑승 가능하며 관광지 입장료는 개인 별도 부담이다. 곡성관광택시콜센터(1522-9053)나 공식홈페이지(https://gokseongtaxi.modoo.at/)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수도권에서 출발할 계획이라면 코레일의 기획 상품, 광택열차를 이용하자. 훨씬 저렴한 가격에 열차와 택시를 패키지로 이용할 수 있다. 출발 인원이 성인 1명일 경우, S-train과 관광택시를 따로 예약하면 126,800원(S-train 왕복 66,800원+택시 기본요금 60,000원)을 내야 한다. 같은 조건에서 광택열차는 108,000원이 든다. 택시 최대 탑승인원인 4명이 예약하면 276,000원이다. 1인당 요금이 69,000원으로 낮아지는 것이다. 단, 패키지로 팔리는 S-train 좌석은 20석으로 제한되어 있고 매주 월, 화요일은 운행하지 않는다.
압록유원지에 피어나기 시작한 매화 <사진제공·곡성군청>
아름다운 매화와 맛깔스러운 향토음식
곡성역에 도착한 시간은 정오 무렵. 플랫폼까지 마중 나온 황진권 기사님은 매화꽃 보러 왔다는 말에 압록유원지로 차를 몰았다. 압록유원지는 섬진강과 대황강(보성강)이 합류하는 기점이다.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데다 수심이 얕고 물이 맑아 한여름 캠핑 장소로 인기가 좋다. 이곳에서 두 갈래로 나뉜 물줄기 중 섬진강은 구례, 하동을 거쳐 광양으로 흐르고 대황강은 순천을 지나 보성으로 흐른다. 꽃놀이라 하면 대부분 섬진강이 흐르는 구례, 광양, 하동을 떠올리지만 곡성의 대황강 인근에도 매실 농원이 많아 인파를 피해 한적하게 거닐기 좋다. 작년에는 이곳에서 ‘제1회 섬진강 매화꽃놀이’가 열렸다. 매화밭의 정취를 느끼고 주민들이 직접 준비한 음식을 함께 즐기는 화합의 장이었으나 올해는 안타깝게 불발됐다.
순백의 다섯 꽃잎. 매화는 볼수록 아름답다 수선화는 곧 지겠지만 홍매화는 이제 시작이다.
압록유원지가 아니더라도 봄을 만끽할 장소는 많다. 섬진강 건너 구례땅에는 수백 그루의 벚꽃나무가 만든 하얀 터널이 있고, 침곡역 인근 도로에는 공들여 심은 철쭉이 빨간 얼굴을 내민다. 이 구간은 폐역이라 섬진강레일바이크와 증기기관차가 느릿느릿 달리는데, 그 모든 것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울린다.
곧 만발할 벚꽃터널. 구례에 있지만 곡성과 매우 가깝다. <사진제공·곡성군청>
‘섬진강변 코스’나 ‘대황강변 코스’는 강변 주위의 명소인 출렁다리나 습지를 중점적으로 둘러보는 생태여행 코스다. 꽃밭이 대부분 강변에 몰려있어서인지 향춘객이 주로 찾는다. ‘문화예술 기행코스’는 지방 유림들이 시를 짓고 술을 마시던 조선시대 정자 함허정, 전남 미술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옥과미술관, 곡성의 대표 사찰인 성륜사와 관음사로 구성돼 있어 곡성의 숨은 매력을 찾기에 충분하다. ‘네바퀴 코스’는 곡성의 관광 키워드인 바퀴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메타세콰이어길에서 드라이브를 하고 섬진강 기차마을, 레일바이크 등을 체험한다. 놀거리가 풍성해 아이 동반 가족이나 커플이 더욱 좋아한다. 코스마다 특성이 다르지만 언제든지 원하는 장소로 변경할 수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4개의 코스는 곡성 초보 여행자를 위한 테마 가이드일 뿐,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건 온전히 여행자 본인의 몫이다.
[왼쪽/오른쪽]푸짐한 참게탕 한상차림 / 참게에 살이 꽉 찼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메뉴는 당연히 섬진강 참게나 은어다. 이 지역은 통통한 참게를 넣고 얼큰하게 탕을 끓이거나 싱싱한 은어를 요리하는 집들이 많다. 아예 하한리 대황강변 일대를 ‘압록참게․은어거리’라고 부를 정도다. 그중에서도 별장같이 아늑한 통나무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참게탕은 2~3명이 먹을 수 있는 것이 30,000원이다. 반으로 갈라진 알배기 참게와 우거지, 호박, 버섯이 푸짐하게 들었다. 부드러운 게살과 함께 구수하고 칼칼한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면 오전까지 기승을 부리던 꽃샘추위가 단번에 잊힌다. 강을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야외 평상도 있으니 날이 더 풀리면 한 번 더 찾아 올 결심을 한다.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
곡성의 명물은 꽃놀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섬진강 기차마을, 침실습지, 도깨비마을, 태안사 등 눈에 담을 풍경들이 많다. 몇몇은 ‘섬진강 코스’에 속해 있는 장소들이라 관광택시를 이용하면 자연스럽게 다녀올 수 있다. 특히 환경부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한 침실습지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일출로 유명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일명 ‘퐁퐁다리’를 건너다보면 투명한 강물 아래 바위에 붙은 다슬기를 관찰할 수 있다. 그뿐이랴. 수달, 흰꼬리수리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이 서식하니 운 좋으면 눈 마주칠 기회가 있을지도.
연두색으로 물들어가는 침실습지 곡성의 MT 성지 강빛마을. 카페와 편의점 건물이 특히 아름답다
자연과의 신선놀음보다 인생샷 촬영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은 곡성의 숨은 핫플레이스에 주목한다. 대표적인 곳이 곡성의 독일마을이라 불리는 강빛마을이다. 아기자기한 주황색 독채 펜션이 수십 채나 늘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카페와 식당, 공원, 편의점을 갖춰 사진놀이에 흠뻑 빠진 후 쉬어가기 좋다. 이곳은 본래 곡성군이 대도시에서 정년 은퇴한 사람들을 이곳에 정착시키기 위해 지은 대규모 숙박시설이다. 1층은 각자의 주거지로, 2층은 숙박시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 그들의 노년 경제활동을 장려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은 코레일이 운영을 맡아 펜션 용도로만 사용 중이다.
영화 <곡성> 속 외지인의 집. 감독은 어떻게 이런 외딴 집을 찾아냈을까?
영화 <곡성>에서 외지인(쿠니무라 준 役)이 살던 집도 빼 놓으면 서운하다. 외지인의 집이 있는 여울마을까지는 국도를 타고 가다가 차 한 대가 간신히 통과할 만큼 좁은 샛길로 몇 분이나 달려야 한다. 이 길은 민가도 드물고 가로등도 없어 택시 기사조차 긴장하게 만든다. 차에서 내린 후에는 150m 남짓 덤불길을 걸어 들어간다. 그렇게 마을의 가장 끝, 외지인의 집에 닿는다. 한낮에도 다소 습하고 어두워 호기롭게 왔다가 벌벌 떠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촬영 당시에는 멀쩡했던 집이 무슨 이유에선지 많이 허물어져 있다. 뒷벽과 문짝은 아예 남아있지 않다. 녹슨 슬레이트 지붕만이 새 기와로 교체돼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너저분하지만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이외에도 곡성에 하나뿐이었던 오래된 극장을 개조해 만든 곡성극장카페, 심청전의 원류로 추정되는 원홍장설화를 조형물에 은근히 녹여낸 심청한옥마을, 마천목 장군이 어머니를 위해 섬진강에서 물고기를 잡아드리려다 도깨비의 도움을 받았다는 데서 유래한 호곡리 도깨비마을 등 다양한 관광지가 있다. 그러나 관광하지 않아도 즐겁다. 우연히 맛본 막걸리가 맛있을 땐 몇 시간이든 취하면 되고, 유유자적 떠돌고 싶을 땐 시골 돌담길로 가면 된다. 곡성은 그렇게 ‘여행’하는 법을 일깨워준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은 오후 6시 37분. 아직 머무를 수 있어 다행이다.
여행정보곡성관광택시
코레일관광개발(광택열차 예매)
압록유원지
주변 음식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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