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느님만 아신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가톨릭신문
지난 여름, 태풍 ‘솔릭’이 우리나라를 찾아온 때에 4박5일 일정으로 제주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3일 동안, 태풍과 함께 숙소에서만 아주 잘(?) 지냈습니다. 특히 제주도는 태풍의 직접 영향권에 있었기에 실제로 엄청난 양의 비를 눈으로 보았고, 굉장히 강한 바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온 뒤, 다음 날 곧바로 전주교구 나바위성지로 출장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청년 순교자 축제’라는 행사를 열 예정이었기에, 마지막 답사를 갔던 것입니다. 거기서도 1박2일 내내 ‘충남, 전북 지역 호우 경보’ 속에 있었고, 우리 일행은 온통 비를 맞으며 답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답사를 마친 후 서울로 돌아온 날, 경기도 지역의 호우 특보가 발효됐고 다음 날에는 ‘서울 지역 호우 경보’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재단대책본부’에서 보낸 ‘강북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예상되니 각별히 주의 바랍니다’라는 단체 문자도 받았습니다. 왜 내가 가는 곳마다 비가 오는지! 그 당시,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오직 한 가지 소원만을 빌었습니다. ‘제발 행사 동안에는 비가 내리지 않기를…!’
그렇게 서울에서 비와 함께 며칠을 보낸 후, 행사 전 날 나바위성지로 출발했습니다. 서울에서 나바위성지로 가는 도중에도 청년 순교자 축제 기간 동안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렸지만, 야속한 비바람은 나를 또 쫓아왔습니다. 우리가 나바위성지에 도착하는 순간, ‘행정안전부’와 ‘전라북도청’에서 단체 문자가 온 것입니다. 충남의 논산 지역과 전북의 익산 지역에 호우 경보를 발령한다고!
‘아, 서울에선 비바람이 그쳤다는데….’ 문자 내용도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산사태, 상습침수 등 위험 지역 대피, 외출 자체 등 안전에 주의 바랍니다.’ 무슨 행사를 한다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두려움도 느껴졌습니다. 그날 밤, 나바위성지에서도 ‘비를 좀 그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바치며 잠을 잤습니다.
이윽고 ‘청년 순교자 축제’가 시작되는 날, 새벽에 눈을 떠 보니, 창밖에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우려와는 달리, 행사 준비를 하는 동료 형제들은 비가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행사 준비를 했습니다. 그 뒤, 후발대 형제들이 도착했고, 그들도 나바위성지 실내에서 행사를 앞두고 준비물을 점검했습니다. 오직 나만 믿음이 없는 듯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행사 준비를 점검하고 있는데, 또다시 재난문자가 왔습니다. ‘도내 폭우가 내리고 있으니, 산사태 위험지역 대피, 저지대 침수, 출근길 주의 등 안전에 유의 바랍니다.’ 정말이지, 친절한 재난 대비 문자로 인해, 나의 속은 불이 나서 까맣게 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산을 쓴 채, 나바위성지의 잔디밭으로 가서, 하늘을 보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님,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주님, 제발 이 비 좀 어떻게 해 주세요!”
그렇게 하느님께 마구 땡강(?)을 부렸는데, 놀랍게도 정오 즈음 비가 멎기 시작하더니, 이내 곧 맑고 푸른 하늘이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본 행사가 진행될 무렵, 저녁에는 나바위성지 앞 넓게 펼쳐진 논밭 사이로 황홀한 구름이 펼쳐지더니, 불그스레한 노을까지 멋진 그림이 연출되었습니다. 이에 행사에 참여한 청년들은 탄성을 지르는데, 나만 혼자 몰래, 주님께 빌었습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주님!’
진심 좋은 행사라면,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배려해 놓으시고, 자연도 가장 자연스럽게 펼쳐지는데! 잘나고, 똑똑하다는 인간만이 사소함에 안달하고, 작은 일에 못 견뎌하고, 제 뜻대로 안 된다고 낙담하고 실망합니다. 행사 내내, 나만 혼자 주님께 고개를 못 들고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