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는 100대 명산-
블로그 이전부터 여러번, 여러갈래로 다녀간 산이다.
나의 처가가 청송이기 때문.
주왕산(周王山 722.1m)은 암벽으로 둘러싸인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석병산(石屛山)’ 또는 ‘주방산(周房山)’이라고도 불렸다.
주왕산이라는 이름은 중국 진나라에서 주왕이 이곳에 피신하여 왔다고해서 붙은 것으로 산봉우리, 암굴마다 주왕의 전설이 얽혀 있다.
명소로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한 고찰 ‘대전사(大典寺)’를 비롯해 주왕의 딸 백련공주의 이름을 딴 ‘백련암(白蓮庵)’, 청학과 백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鶴巢臺), 앞으로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汲水臺),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치렀다는 기암(旗巖),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 구경을 했다는 망월대(望月臺), 동해가 바라다보이는 왕거암, 주왕이 숨어 살다가 죽었다는 주왕굴(周王窟) 등이 있다.
그밖에 자하성(紫霞城, 일명 주방산성), 주왕이 무기를 감추었다고 하는 무장굴(武藏窟)·연화굴(蓮花窟)이 있다.
연꽃 모양의 연화봉과 만화봉, 신선이 놀았다는 신선대와 선녀탕, 그리고 폭포 등이 있다.
‘주왕굴(周王窟)’은 주왕암 뒷편 계곡 50m쯤 되는 암벽 하단에 가로 2m·세로 5m정도의 동굴이다.
협곡 사이 암벽에 자리한 자연동굴로 주왕이 마장군의 공격을 피해 이곳에 은거했다가 마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후주천왕(後周天王)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애절하게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주왕의 최후의 전설이 서린 굴 옆에는 주왕이 세수했다는 폭포수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주왕산 연화굴(周王山 蓮花窟)’은 주왕굴에서 내려온 삼거리(자하교)에서 용추폭포쪽으로 150여m 오르면 좌측 이정표를 따라 200여m를 올라야 한다.
높이 3m·너비 5m·길이 10m의 통로형 굴로서 뒷편 좁은 바위 틈새로 하늘이 보인다.
주왕산에 은거하던 주왕의 군사가 이 굴에서 훈련했다고 하며, 주왕의 딸 백련공주가 성불한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산행코스: 상의주차장-대전사-기암교-주왕산-가마봉 갈림길-후리메기삼거리-후리메기입구-구룡사-시루봉-급수대-망월대-주왕암-주왕굴-자하교-연화굴입구-연화굴(U턴)-기암교-대전사-상의주차장(12km,4.5h)
◇ 지난 ☞ 달기약수~금은광이사거리~장군봉 대전사
약 12km(4시간 40분)
고도표.
<산길샘>
주왕산 국립공원과 낙동정맥.
<김형수의 555산행기>
주왕산 주봉에서 급조한 표지기를 앞에 싣는다.
주중임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도로엔 정체가 일어난다. 미리 내려 걸을 수밖에 없었다. <청송 사과축제는 11.1~11.5>
주왕산국립공원 입간판을 지나니...
상의주차장.
다시 상의탐방지원센터.
고개를 드니 범상치 않은 바위군. 우측이 기암(旗巖)이고 좌측이 혈암(穴巖).
슬로시티 주왕산의 안내판.
대전사로 들어가며...
관람안내를 본다. 무료다.
현재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새로 중건되었다. 보광전은 대전사 경내 한가운데에 있다.
뒤쪽으로는 기암을 등지고 좌측으로는 봉향각·수선당·관음전이 있고, 우측으로는 명부전·산령각을 거느리고 있다.
대전사의 본전인 보광전(보물 재1570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보광전 앞엔 삼층석탑이 있다.
보광전으로 올라 합장한 뒤 석조여래삼존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6호)을 카메라에 담았다
보광전 안내판.
그 옆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명부전.
다시 건너엔 정면 5칸 맞배지붕의 응진전.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관음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은 관음보살이 과거세의 모든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변화하여 나타낸 몸.
대전사를 지나자 '주왕전고기(周王殿故基)'라는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1538∼1593)의 시비(詩碑)가 있다.
선생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류성룡과 함께 남인을 대표하는 인물.
1590년(선조23) 일본에 파견되어 선조에게 보고하기를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보고하여 그 과오을 씻어내기 위하여 곽재우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을 사수한 인물이다.
周王殿故基(주왕전고기) 주왕전의 옛터에서
披草尋行闕 (피초심행궐) 풀숲 헤치며 주왕 궁궐 찾노라니
山椒落日低 (산초낙일저) 산마루 지는 해 낮게 드리웠네
階平已無級 (계평이무급) 계단은 무너져 이미 층계는 없어졌고
瓦解半成泥 (와해반성니) 기와는 부서져 반 진흙 되었네
制陋非堯殿 (제루비요전) 규모는 초라하여 높은 사람 집은 아닌 것 같고
林深是鳥栖 (임심시조서) 숲은 깊어 산새들 서식지 되었네
興亡千古恨 (흥망천고한) 흥망이 천고의 한이 되어
長嘯過溪西 (장소과계서) 길게 휘파람 불며 서쪽 계곡을 지나네. <학봉집>
기암교를 건너지 전, 계류를 좌측 겨드랑이에 끼고 '주봉 마루길'을 들어선다.
예나 지금이나 주왕산 계곡은 수려하다.
국립공원이니만큼 등산로 정비는 기본 인프라.
주봉은 주왕산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주왕산은 주왕산국립공원의 주봉이라는 말. 대전사에서 주왕산의 거리는 2.3km인 셈.
전망데크에 당도한 뒤 내려다보는 전망은 바위를 둘러친 병풍인 셈.
안내판을 비교하며 짚어본다.
데크 전망대.
얼마지나지 않아 다시 데크전망대.
아까와 같은 뷰가 펼쳐진다. 왜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렸는지 알 만하다.
맞은 편 장군봉 능선이 우측으로 펼쳐지고, 달기약수로 내려가는 금은광이 안부가 잘록하게 보인다.
바위병풍.
주왕산에 올랐다. 정상석은 주봉으로 바뀌었다.
필름 카메라속의 추억(위)과 또 처갓집 나들이 때의 추억(아래).
급조한 표지기를 걸었다. 국립공원이어서 곧 떼어질 것.
탐방로 안내.
앞서간 일행들을 만나 식사를 한 뒤 뒤따랐으나 금새 뒤쳐졌다.
젊은이들을 뒤따르다...
데크를 기어가는 아주 괴이하게 생긴 곤충을 보았다. 그놈은 진화가 덜 됐는지 완전한 보호색을 띄었다.
이제 단풍이 곱게 물든 골짜기로 떨어진다. 계단길.
주왕산에서 2km 내려온 지점.
단풍은 골짜기가 아름다운 법. 이는 단풍도 봄 새잎처럼 충분한 수분이 있어야 된다는 뜻이니, 모든 생명의 근원은 물이라는 말.
여러번, 왔다리갔다리 목교를 건너며, 단풍이 곱게 물든 계곡을 지난다.
주왕산 단풍 #1
#2
주왕산 소나무의 송진채취한 상처. 일제강점기가 아니더라도 오래전 우리들은 송진을 생활에 활용해 왔던 것.
대전사에서 내원동으로 이어지는 주왕산계곡 본류에 내려섰다.
그곳이 후리메기 입구다.
'후리메기'는 산을 크게 휘돌아 간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는 군사들이 훈련하던 '훈련목'이 변했다는 설도 있다.
용연폭포는 기억에 남은 것으로 대신하고 대전사 방향 주왕굴로 내려간다.
절구폭포 갈림길에서 절구폭포로 들어가다 되돌아 나왔다. 연화굴을 답사할 시간을 비축하기 위함이다.
절구폭포는 안내판으로 대신하고...
협곡을 지난다.
인위적인 등산로를 내지 않았다면 주왕산협곡도, 주왕산절경도 그저 그림의 떡.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鶴巢臺).
학소대 안내판.
마치 사람얼굴 같기도 하고, 남근석 같기도 한 이 바위는 시루봉(증봉 甑峰).
지질명소: 용추협곡의 안내판.
'돌개구멍'은 깨어진 바위 구멍으로 자갈과 모래가 소용돌이 치면서 생긴 원통형의 구멍이고, '폭호'는 물이 떨어지면서 만들어진 웅덩이로서 소(沼)라고 한다.
떡을 찌는 시루를 닮아 시루봉이라고 한다지만 이목고비가 선명한 사람의 얼굴이다.
시루봉 안내판.
주왕굴(주왕암) 방향 이정표.
급수대 바위.
신라시대 왕이 되지 못한 김주원이 이곳 급수대 위에서 대궐을 짓고 살면서 물을 길어 올렸다고 '급수대'라고 불린다.
안내판에서 보는 급수대의 주상절리.
달을 바라본다는 망월대(望月臺)에 올라 #1
#2
<망월대의 안내판> 주왕산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3대(설악산,월출산,주왕산) 바위산이다.
주왕굴(주왕암) 입구의 화장실 삼거리.
삼거리의 이정표.
주왕암(周王庵)은 대전사의 부속암자로서 주왕이 은거하였다는 동진(東晉)의 주왕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주왕이 은거하였다는 주왕굴.
마장군의 화살에 맞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애절하게 죽은 주왕의 영혼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영험한 동굴이란다.
문간체인 가학루(駕鶴樓)는 중층누각으로 되어 있으며, 종무소를 겸하고 있다.
이 현판은 전주의 대표적인 향토작가 월담 권영도(月潭 權寧燾)서체다.
경북 안동 출생인 월담은 10세 때 전북 정읍으로 옮겨 서당에 다니던 중 15세 때 담당 송우용(澹堂 宋友用) 선생으로부터 붓 잡는 법을 배우기 시작,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선생에게서 사군자를 익혔다.
월담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붓을 놓아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작품들을 남겼으며, 특히 박진감 넘치는 필치로 일가를 이루면서 서예계에서 독창적 위치를 굳혀왔다.
가학루 현판의 원판(原版)은 현재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며, 지금의 가학루 현판은 모사본(模寫本)이다.
나한전(羅漢殿)은 가학루를 지나 좌측 4단의 석축 위에 정면 3칸·측면 2칸의 팔작지붕 주심포 양식의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나한전에는 석가모니삼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좌상(坐像)의 16나한상과 입상(立像)의 동자상 2구와 기타 1구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중앙의 삼존불(三尊佛)을 중심으로 3방향의 벽면을 따라 배치하였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은 둥글고 사각진 대를 이중으로 쌓은 대좌(臺座) 위에 봉안되어 있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은 좌상이고, 협시불인 보현보살(普賢菩薩)과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입상이다.
석가모니삼존불 뒤에는 1800년(정조 24)에 제작되었고, 2004년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0호로 지정된 후불탱화(後佛幁畵)가 있다.
본존불 왼쪽 벽면에는 신중탱화(神衆幁畵)가 있으며, 채색이나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대전사 주왕암 나한전 후불탱화'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0호이다.
주왕굴은 주왕암의 산신각이다.
협곡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
작은 동굴 -주왕이 은거하였다는- 주왕굴이다.
주왕굴 안내판.
계단을 따라 내려서...
대전사 방향으로 10여분 내려섰더니 안내소가 있는 삼거리.
고개를 드니 거대한 바위산이 버티고 섰다. 연화굴을 탐방하기 위하여 용추폭포 방향으로 200여m 올라가니...
좌측으로 연화굴(0.2km)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울긋불긋 추색으로 물든 돌계단을 올랐더니 5분여 만에 가지런히 석축이 쌓여진 곳, 연화굴이다.
고개를 한껏 제끼면 단풍사이로 높다란 바위들.
전설이 깃던 굴안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둘러 보는데,
뒷쪽으로 뻥 뚫린 데가 있어...
들어가 보았더니 양 옆으로 좁디 좁은 협곡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조심하면 오르내릴 수 있을 각도. 그제사 지형도의 촘촘한 등고선의 의문이 풀린다.
연화굴 안에서 밖으로 내다보는 모습.
대전사로 내려오다 주왕굴 입구에 있는 '주왕산성'의 무너진 성돌들.
주왕산성 안내판.
당나라에 패한 주왕이 숨어든 후 당의 요청을 받은 신라군사를 막기위해 12km에 달하는 성곽을 쌓았다고 한다.
기암의 모형이 있다. 흡사 닮은 꼴이다.
대전사로 들어와 돌아보는 기암.
그런 뒤 상의주차장.
주왕산국립공원탐방안내소와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전시관.
제일 구석자리에 똬리를 튼 우리 버스.
다시 찾는 '100대 명산 시리즈'.
周王山-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로고~
첫댓글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