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종문)
《돈, 666, 신앙》
도둑이 왜 도둑질 하는가요? 깡패가 왜 깡패질 하는가요? 사기꾼은 왜 사기를 치는가요? 농부는 왜 농사 짓나요? 공장 직공은 왜 일하지요? 사업가는 왜 자꾸 일거리를 만들어 냅니까? 그렇잖아도 할 일 많은 세상인데...!!!
대한민국 사람들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습니다. 다들 왜 그러지요?
다~ 돈 때문입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돈이 있기도 하지만 돈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요. 다 돈 때문에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서 돈의 힘은 그렇게도 위대합니다!
정상적인 사람들도 비정상적인 사람들도 누구든지 돈을 따라갑니다.
그 무서운 돈으로 씨를 뿌리면 그만한 열매가 있는 법입니다.
과거 러시아에서 공산당 혁명을 성공시킨 블라디미르 레닌이 우리나라 임시정부에 40만 루블 상당의 금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에는 레닌의 사상을 따르는 좌파들이 부지기수로 존재합니다. 돈으로 씨를 뿌렸으니 그 열매가 있는 것이지요.
2차 대전이 미국과 영국과 소련과 연합국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던 배경에도 그 무서운 돈이 있습니다. 당시 전세계 생산량의 반절을 감당했던 미국이 세계대전의 승패를 좌우했지요. 돈 많은 나라 미국에서 영국에 소련에 연합국들에 돈을 퍼주어서 독일 히틀러의 군대를 쳐부수었습니다. 돈이 있어야 전쟁에서도 이기는 법입니다.
그 돈 많은 나라 미국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 일본을 쳐부수자 비로소 한국이 독립할 수 있었어요. 그 미국이 6.5에 개입해서 인력과 물자를 쏟아 부어서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지켜졌습니다. 그 덕에 우리가 이만큼 살아갑니다.
돈은 그렇게도 무서운 것입니다! 도둑놈 깡패 사기꾼에게도 농부에게도 군인에게도 자본주의자에게도 공산당들에게도 정치인에게도 성직자에게도 전쟁에 있어서도 돈은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살아있는 권력으로 존재합니다.
만약 그 돈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진짜 강한 사람입니다. 그 돈 앞에 순결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불제자(佛弟子)라 하면서 돈 욕심을 못버리고 나랏돈 돈 타먹을 궁리 하는 자들은 머리를 빡빡 밀었어도 세상 냄새 물씬 나는 땡중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노라 하면서도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목사는 교회 말아먹을 종교 장삿군입니다.
돈이란 이 세상에서 파생된 가치입니다. 세상 힘의 상징이지요.
구약성경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치세 절정기에 1년 세수가 금 666 달란트였답니다.(왕상 10 : 14, 역대하 9 :13)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13 : 16~18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여기에서 오른 손이나 이마에 받는 표, 짐승의 이름이나 그 숫자, 사람의 숫자가 바로 666입니다.
이는 구약성경 왕상 10 : 14과 역대하 9 : 13을
간접 인용한 대목입니다.
"오른 손이나 이마"라는 내용도 신명기 6 :6~9에서 가져온 간접 인용입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 지니라"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손목"과 "미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실생활 속에, 곧 우리들이 얼굴을 내밀고 손으로 일하는 그 모든 삶의 영역에 우리의 신앙고백을 드러내라는 교훈이지요.
그런데 요한 계시록에서는 땅에서 올라온 두번 째 짐승이 사람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이 세상 짐승의 표요 사람의 표를 받게 한다고 하십니다. 그 표는 이 세상 부와 영광이 극에 달한 상태를 상징하는 666이지요.
다시 말해 이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내버리고 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게 한다, 곧 불신앙고백을 하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불신앙고백을 하게 될까요? 그 내용은 계시록 13 : 8에 나옵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말씀이 "창세 이후"라는 말씀입니다. 창세 이후 세상 최후 심판의 날까지... 그러니 사실상 모든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 최후의 날이 닥치기 전 마지막 몇 년 또는 몇 십년 만을 다루는 책이 아닙니다.
계시록의 전망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의 전 기간을 꿰뚫고 있습니다.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요?
이 세상이란 우리의 정직한 신앙고백대로 살아기가 어렵고 거의 불가능한 세상이란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시스템 자체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땅에서 나온 두번 째 짐승은 양처럼 뿔이 있으나 용처럼 말을 합니다.(계시록 13 : 11)
생김새는 하나님의 어린양처럼 생겼는데 그 말하는 내용은 용의 말을 하는 사람들... 바로 그들이 사람들에게 신앙고백에 따라 바르게 살아가지 못하도록 교묘한 말로 꾀어 가르치고 이 세상 악법과 시스템으로 바른 신앙 생활을 강제로 억압합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신앙고백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과거 면죄부 팔아먹던 교황청과 오늘날 중국과 북한 사회의 그 많은 짝퉁과 권력자들의 부정부패, 그리고 이슬람권의 위선과 잔인함을 바라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아직 최후의 심판 기간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라 할찌라도
우리가 이 세상의 영광과 이 세상의 돈을 최고의 가치관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의 반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겠구나...!!!
오늘날 우리가 신앙으로 돈을 다스리지 못하고 돈이 나를 다스리고
내가 돈의 노예가 된다면 나는 짐승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요?
"탐심은 곧 우상숭배"(골로새서 3 : 5)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 짐승에게 경배하는 줄도 모르고
이 세상 영광을 제 일의 가치관으로 알고 세상 영광따라 살다 갑니다.
그 세상 영광의 핵심은 곧 돈입니다! 돈을 무서워하고 돈을 사랑하고
돈에 절하는... 이 세상 가치관에서 벗어나 신앙으로 돈을 다스리는 삶... 그런 삶을 꿈꾸며 나의 꿈과 일치하지 않는 오늘의 현실에서 다시 나를 돌아봅시다.
~~~~~~~~
[오종문 페북 글(24.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