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7일 금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도 참으로 복되고 좋은날 황금의 금요일 새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원인을 알 수 없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어서 힘들어 지는 모습이지만, 극복하고 가야 할 문제이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과정으로 보고 지혜롭게 위기를 잘 극복합시다.
- 아무리 바쁜 일정 속에 당연한 일에도 말씀보고 기도하는 삶이 유익하게 되니 항상 먼저 엎드려 묻고 겸손히 시작합시다.
- 위기 때에 기도하는 주의 자녀들이 있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피할 길을 주실 줄 믿고, 찬양하며 밝게 살아내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마가복음9장1-13절}
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제 목 ◑◑◑◑
◗◗ 예수님의 공생에 말기에 제자들을 양육하심
◑◑◑ 본문 이해와 요약 ◑◑◑
◗ 9장에서는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의 갑작스런 고난 예고로 인해 당황하며 낙심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위로와 새로운 소망을 안겨 줍니다.
-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있은 지 엿새 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에서 변형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그리고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을 예수님께서 추방하신 기적이 기록되었습니다.
- 제자들과 서기관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 그리고 논쟁을 벌이는 제자들에게 천국에서 큰 자에 관한 교훈과 믿는 자를 실족케 하는 자에게 형벌 있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이제 9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8절에서 다볼산에서 변모하시는 예수님을 모습을 봅니다.
- 그리고 9-13절에서 엘리야에 대하여 가르치시고 있는데, 엘리야는 구약 예언의 대표자이며, 하나님과 언약을 갱신하였고,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으며, 죽지 않고 승천한 자입니다.
-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율법과 예언의 완성자이시며,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한 자이고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를 보이신 분이며, 죽은 후에 부활하신 분입니다.
- 예수님께서 이들과 함께 나타나신 것은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 한편 14-29절에서 벙어리 귀신들인 아이를 고쳐주셨는데, 귀신들린 아이는 아버지의 믿음 때문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 그 아이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자신의 아들을 고치지 못했던 제자들로 인해서 예수님의 능력도 의심하여 ‘할 수 있거든 병을 고쳐 달라.’는 식의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이러한 아버지의 믿음 때문에 그의 아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 한편 30-32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해 두 번째로 예언하시고 있습니다.
- 또한 33-37절에서 겸손에 관하여 제자들을 가르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정치적 메시야로서 유대의 왕이 되실 줄 알았습니다.
- 그래서 그 영광의 날에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주장하다가 다툰 것입니다.
-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님께서 고난당하고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온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이심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 한편 38-42절에서 다른 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금하지 말 것을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 그리고 43-50절에서 범죄 하지 말 것에 대하여 가르치시며, 특히 소금의 교훈에서 소금은 자신을 희생하여 자신을 녹이고 그 맛을 냅니다.
-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너희 속에 소금을 두라고 하신 것은 서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화목을 도모하라는 의미입니다.
- 화목이라는 맛을 위하여 소금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바로 겸손히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 이제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우선 2절에서 높은 신앙의 경지에 오를수록 주님의 영광을 더욱 볼 수 있습니다.
- 그리고 3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실 때는 감당할 힘도 주십니다.
- 한편 4절에서 주님의 십자가 대속 진리는 이미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언한 진리입니다.
- 그리고 4절에서 현세 너머에는 영원한 세계가 있습니다.
- 한편 5절에서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어떤 특정한 장소에 붙잡아 두려는 시도를 하곤 합니다.
- 또한 기독교는 산 속의 종교가 아니라 시장 속의 종교입니다.
- 그리고 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신앙의 유일한 초점입니다.
- 한편 9절에서 진리를 전할 때도 체계와 조화가 요구됩니다.
- 그리고 10절에서 심령의 거듭남을 체험한 성도만이 부활의 진리를 믿을 수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은사의 선물을 주셨으나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접촉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 은사는 쓸모가 없게 됨을 보게 됩니다.
-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은사를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선포하고 섬겨내야 합니다.
- 주님의 가르침을 확실히 깨닫지 못한 제자들이 노중에서 누가 크냐고 쟁론한 사건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명예를 추구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자기를 낮추고 종의 자세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교만과 불손함을 제거하고 겸손한 성도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자신의 아들을 고치지 못했던 제자들로 인해서 예수님의 능력도 의심하여 ‘할 수 있거든 병을 고쳐 달라.’는 식의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이러한 아버지의 믿음 때문에 그의 아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예수님은 만민의 구주가 되신다.(마가복음9장5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어떤 특정한 장소에 붙잡아 두려는 시도를 하지만, 기독교는 산 속의 종교가 아니라 세상속의 종교입니다.
-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고백했던 엿새 후에 변화 산 사건입니다.
- 변화산의 주님 영광은 앞으로 다가온 십자가 수난에 뒤이어 승리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장차 영광스러운 재림의 예수님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 또한 제자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영원한 내세 진정한 소망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 5절에 살펴보면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예수님의 신적 영광을 목격한 베드로의 요청이 나온 말입니다. 베드로의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 예수님을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한 곳 곧 변화 산에 붙잡아 두려는 시도가 아닙니까? 우리 인간들은 신령한 장소를 좋아합니다.
- 그래서 하나님을 어떤 특정한 장소에 유착시켜 그곳을 신성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 예수님 당시의 성전도 그러한 장소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곳을 신성시하였습니다.
- 그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베드로가 변화 산에 초막을 지어 그곳에 주님을 붙잡아 두고 그곳을 신성시하려고 한 것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나 초막에, 또는 어떤 특정 장소에 붙잡혀 계실 분이 아닙니다.
- 그분은 초월자로서 하늘은 그의 보좌이며, 땅은 그의 발등상입니다
-이사야 66장1절에서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라고 하였습니다.
- 물론 우리는 예배나 기도 장소로서의 교회가 지니는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 그러나 교회 건물 자체를 신성시 하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태도이기에, 우리는 다만 예수님의 편재하심을 알고 어떤 장소에서든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기를 힘쓰며 특정 장소를 신성시하는 헛된 미신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 한편 우리의 기독교는 산 속의 종교가 아니라 세상과 시장 속에서 구원의 종교입니다.
- 베드로가 변화 산에서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고 평생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 베드로는 말은 사실 이것이 우리 인간들의 너무나 가벼운 마음입니다.
- 우리는 얼마나 자주 오직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하고만 은밀히 생활하기를 소원합니까?
-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 험난한 세상을 벗어나고 싶어 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가 은둔하여 도피형의 종교가 아니라 세상을 향하는 구원의 종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지? 성령과 은혜 충만을 받고 감당할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은혜 받은 자의 삶은 세상 속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내야 하겠는지?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은 우리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오늘 성령님은 받은 은혜를 가지고 어디를 가며 누구를 섬길 것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은혜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특정한 장소에 붙잡아 두려는 시도를 하지만, 기독교는 산 속의 종교가 아니라 세상속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만민의 구주가 되십니다.
- 이 세상 종교인들의 생활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첫째는 은둔 칩거 형 종교 생활인데, 베드로처럼 자기가 신앙하는 대상과 함께 깊은 산이나 오지에서 종교적 수양만 하고 세상을 기피하는 종교인들이 그들입니다.
- 한편 둘째는 세상과 무력으로 싸우는 종교인들인데, 이는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무력으로 온 세상을 이슬람 화하려는 마호멧 교도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 또한 셋째는 세상에 봉사하는 종교인들인데, 이는 세상에 살되 세속 풍조에는 물들지 않고 어찌하든 진리와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종교인들이 그들입니다.
- 예수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도피하려 하거나 세상을 기피하려는 자세를 지녀서는 합당치 않습니다.
- 우리 기독교는 ‘산 속의 종교’가 아니라 ‘세상 속의 종교’입니다.
- 물론 우리도 때로는 이 세상을 피하여 예수님과 단 둘이 교제만 하고 싶은 때가 있을 줄 압니다.
-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마태 5장 13-16절)는 주님의 사명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한 알의 밀알로서 세상에서 썩어져 가도록 하기 위함이지 산 속에 은둔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합시다.
❥ 그러므로 지금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이 세상과 열방은 우리의 복음의 사역의 현장이지, 결코 기피의 대상이 아니며, 고난과 역경의 현실을 딛고 힘들어도 이 죄 많은 세상에 뛰어들어 오셔서 고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정신을 겸손히 본 받아야 할 것이며, 특히 갈급하여 은혜를 받으러 기도원을 찾은 성도들은 먼저 성령과 은혜를 충만하게 받은 것을 더욱 낮아짐과 겸손으로 이웃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려고 이제 다시 은혜의 산 밑에 세상 속으로 내려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