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명_길고양이도 집이 있다 ●지은이_진영대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0. 3. 13
●전체페이지_120쪽 ●ISBN 979-11-86111-77-2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0,000원 ● 입고 2019. 3. 16
문짝이 떨어져나간 빈집일망정 꽃등불로 환한 시편
진영대 시인은 1997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그리고 2002년 첫 시집 『술병처럼 서 있다』를 출간한 지 만 18년 만에 최근 두 번째 시집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진영대 시인은 이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시인에게 미안하고 세상의 혁명가에게 미한하다. 그리고 아내에게 미안하고 하나님에게 미안하다’ 고백하고 있다. 이는 시에 대한 게으른 자신에 대한 질책이며 시대의 기로에서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로 보인다.
암컷 사마귀
수컷의 등을 타고
사랑해, 하며
머리통을 먹어 치웠다
가지 마, 가지 마 수컷의 가슴에 안겨
심장을 오래도록 파먹었다
나뭇가지 위에
먹다 남은 몸통을 내려놓고
저 혼자 밤새
알을 쏟아놓았다
암컷 사마귀 다시 돌아와
먹다 남은 수컷의 다리까지
모두 먹어 치웠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가족」 전문
시인은 도시에 나가 집을 장만할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평생 살았고, 자신이 태어났던 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 293번지에서 살았다. 따라서 사는 문제, 즉 밥의 문제로 한때 시를 멀리하며 살았다. 제 몸뚱어리 내어줄 곳은 시가 아니라 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밥도 되지 않는 시를 쓰겠다고 “저 혼자 밤새/알을 쏟아놓”고 “다시 돌아와” “먹다 남은” 것들을 또 “모두 먹워 치”워야 하는 아팠던 삶의 현실을 이 시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전체 4부로 나누어 구성된 이 시집의 많은 시편들은 유년의 기억을 통해 가족사를 중심으로 고향을 생생하게 복원하고 있다. 비록 “집 팔고, 땅 팔고, 어머니 무덤까지 팔”아 행정수도라 불리는 세종특별자치시민이 되었지만 여전히 시인은 강가를 거닐며 고향을 그린다. 과거 논으로 추정되는 “세종시 반곡동 수루배마을5단지이거나/솔빛초등학교 3학년 교실”이 아마도 “열두 마지기 둠벙”이었을 거라 하면서 현재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을 고향 사람처럼 “버들붕어”(「나는 강가에 산다 15」)로 객관화시키고 있다. 진영대 시인은 가장 낮은 곳, 그늘진 곳, 구석진 곳에서 빛을 발한다. “짱짱하게 우는/매미 떼처럼” 자신도 “악착같이 어딘가를 기어 오”(「탈피(脫皮)―이주민에게」)르면서 “털려도 골백번은 털렸을” 빈집을 꽃등불 환한 집 한 채로 바꾸어놓는 “호박넝쿨”의 여정이 바로 진영대 시인이 추구하는 시적 미학이다.
■ 차례
시인의 말·05
제1부
석류·13
황태덕장·14
복장(伏藏)·16
풍금·18
가족·20
대나무·21
산29번지·22
길고양이도 집이 있다·24
봄, 윤회·25
방하착(防下着)·26
여수에서·28
이승의 옷 한 벌·30
탈피(脫皮)·32
우유팩을 말리며·34
표고버섯을 따며·36
제2부
빈집·39
사과 향·40
된장독·42
소녀상·43
장마·44
이사 가는 날·45
간격·46
노숙·47
꽃 피는 봄이 오면·48
눈이 내렸다·50
황금개구리·51
눈빛·52
폐교에서·53
고로쇠나무 수액·54
향나무·55
제3부
등 굽은 소나무·59
칼·60
살음·61
울음통·62
폐목·64
소나무·65
묵형(墨刑)·66
물가에 앉아·67
압화(壓花)·68
추월·69
달력·70
달팽이·71
민들레·72
뒤주·73
물병·74
제4부
나는 강가에 산다·12·77
나는 강가에 산다·13·78
나는 강가에 산다·14·80
나는 강가에 산다·15·82
나는 강가에 산다·16·84
나는 강가에 산다·17·86
나는 강가에 산다·18·88
나는 강가에 산다·19·90
나는 강가에 산다·20·92
나는 강가에 산다·21·93
나는 강가에 산다·22·94
나는 강가에 산다·23·96
나는 강가에 산다·24·97
나는 강가에 산다·25·98
나는 강가에 산다·26·99
시인의 산문│진영대·101
■ 시집 속의 시 한 편
담장 밑에
비스듬히 세워둔 냉장고
버려졌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해두려는 듯
문짝이 열려 있다
한낮
가득 담아놓았던
햇볕을
다 꺼내먹고
길고양이 한 마리
잠들어 있다
―「길고양이도 집이 있다」 전문
■ 시인의 말
시인들에게 미안하다. 밥버러지라서 미안하다.
세상의 혁명가들에게 미안하다. 남의 집 불타는 것 구경만 하여서 미안하다. 티끌 하나 태우지 못해서 미안하다. 내 집이든 남의 집이든 티끌 하나도 태울 용기가 없다. 비겁해서 미안하다.
아내에게 미안하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나 자신보다 더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어서 미안하다.
하나님에게 미안하다. 믿는 척해서 미안하다.
2002년에 시집 『술병처럼 서 있다』를 낸 후 18년이 되었다.
다시 18년 후에도 나의 몸 안에 한 권의 시집이 또 남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2020년 입춘지절에
아버지가 쓰던 골방에서 진영대
■ 표4(약평)
진영대 시인의 시는 낮은 곳, 그늘진 곳, 구석진 곳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가족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그의 시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서사적 요소를 거느리고 있다. 그가 경험한 유년기의 가난과 고통, 상처, 이별, 상실, 버려짐, 소외, 절망, 떠남, 투병, 단절, 얽매임, 부패, 죽음 등은 비극적인 정서 위에 구축된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일편 어둡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끝내 인내, 극복 의지, 생의 온기와 사랑, 재생과 부활을 통해 그의 시가 상처의 향기로 생명의 힘에 가닿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어둠과 고난을 박차고 마침내 가파른 바지랑대 타고 올라가 그 희망찬 나팔소리 불어 올리는데, 이것이 바로 진영대 시인의 시가 보여주는 미학이다. 이번 시집에서 그의 시는 특히「봄, 윤회」,「빈집」,「민들레」,「뒤주」등에서 절창으로 빛나고 있다._김완하(시인, 한남대학교 교수)
진영대 시인의 시는 자리가 지니는, 혹은 가져야만 하는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그 자리는 모든 사람과 사물이 우주적 질서 안에 고유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의 그것과는 다르다. 누구든 무엇이든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의 자리로 존재한다. 길고양이가 잠들어 있는 버려진 냉장고(「길고양이도 집이 있다」)나 폐지를 줍던 할머니와 그 자리에 피어난 할미꽃(「봄, 윤회」), 이 모두는 하나의 자리다. 신자유주의는 이 자리에 대한 싸움을 만들어냈으며(「산29번지」), 가족 역시 서로의 살을 파먹는 존재(「가족」)라는 불편한 진실 역시 이 자리가 감당해야 할 운명이다. 하지만 이 자리는 문짝이 떨어져 나간 빈집일망정 꽃등불로 환하다(「빈집」).「나는 강가에 산다」 연작 시편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기억도 하나의 자리다. 자리를 하나의 자리로 인정하려면, 그것이 지니는 가치를 괄호 안에 넣은 채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리로부터 절대적 환대를 받을 수 있다. 진영대 시인의 시는 그 모든 자리에 대한 이야기다._여태천(시인,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진영대
세종에서 태어났다. 한밭대학교 전기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술병처럼 서 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