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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는 헌팅
설용수 극작가
오로라 공주야!
나는 어린왕자가 내 가슴에 심어준 바
오밥나무 씨앗 덕택에 작년에 마다가
스카르를 다녀왔어. 바오밥나무에 안
겨 다음 여행으로 오로라를 보고 싶다
소원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이런저런
정보를 주었어.
너를 볼 수 있는 나라는 캐나다, 노르
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여러 곳인
데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아
직 못 가본 나라 아이슬란드가 있으니
까.
2024년과 25년을 잇는 겨울시즌이 11
년 만에 찾아오는 역대급 오로라 출현
시기래. 이왕이면 때를 맞추려고 여행
사 홈피에 들어갔더니 12월, 1월은 이
미 접수가 끝났지 뭐야. 할 수 없이 2월
중 가장 빠른 날로 예약했어.
“가자. 오로라공주님을 만나러!”
마냥 들떠있는 나에게 네가 물었어.
“오로라가 뭔지 아니?”
“몰라!”
“그 정도는 알고 가야지.”
“걱정마. 우리에겐 뭐든지 알려주는
도깨비방망이가 있으니까.”
나는 얼른 핸드폰으로 내용을 찾아 읽
어줬어.
“오로라는 태양에서 방출되는 플라즈
마 입자가 지구 대기권 상층부의 자기
장과 마찰하여 빛을 내는 광전현상이
다. 이들 입자가 태양풍을 따라 지구 근
처에 왔다가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대
기로 진입하는데……”
“됐어!”
네가 나의 말을 막았어.
“오로라 자체를 즐기고 와!”
“빙고!!”
2025년 2월6일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약 14시간을 달려 핀란드 헬
싱키공항에 도착했다. 2시간 30분 후에
는 아이슬란드의 ‘케플라비크 국제공
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시 4시
간을 가야 한다. 여행은 좋지만 장거리
비행은 정말 힘들다. 좁은 좌석, 선택의
여지가 없는 영화, 허술한 식사까지!
케플라비크 공항에 도착하니 오전 9
시. 비행장 안에 쌓여있는 눈더미 위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에 부딪히는 빗
방울들이 어수선한 것을 보니 바람도
거세게 불고 있는 것 같다. 순간 쫄깃하
게 다가오는 노파심!
‘이러다 오로라를 못 보는 거 아냐?’
불현듯 인천공항까지 배웅한 내 아이
의 말이 생각났다.
“여행 후기에서 날씨 때문에 오로라를
못 봐서 분통 터진다는 글을 봤어요. 혹
시 그래도 너무 실망하진 말고 잘 다
갑자기 머리가 쭈뼛해졌다. 아이슬란
드의 겨울여행 목적은 하나도 오로라,
둘도 오로라, 셋도 오로라가 아닌가!
“괜찮아. 날씨요정을 모시고 왔잖아.”
옆자리의 젊은 여인이 밖을 보며 환하
게 웃었다.
“오로라는 운칠삼기야.”
뒷자리 젊은 남성도 스스로를 달랬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가?’
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며 비행장
을 나섰다. 우리의 현지 안내인은 독일
에서 왔다는 키 큰 미녀 리나였다. 그녀
는 독일인답게 20킬로가 넘는 여행 가
방들을 번쩍 들어 짐 칸에 실었다.
아이슬란드는 그린란드, 노르웨이, 아
일랜드의 삼각점 안에 있는 커다란 섬
나라이다. 남한과 국토 면적이 비슷하
고 인구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해 사
는 모습도 비슷하다. 우리의 인구는 약
5,100만 명, 아이슬란드는 약 38만 명
그중 80,000명은 해외에서 온 일꾼들
이라고 한다. 남한의 주 산업은 자영업,
서비스업, 정보통신인데 아이슬란드는
어업, 금융업, 관광이다. GDP는 아이슬
란드가 우리의 두 배보다 많다.
아이슬란드엔 없는 것이 많다.
“뱀과 모기가 없다니 정말 좋겠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산에 나무와 새가 없어?”
계절 따라 변하는 우리 산의 낭만 가
득한 모습이 떠올랐다. 봄엔 봄꽃들이
가득 피어 울긋불긋한, 여름엔 나무가
검초록으로 우거져 빽빽한, 가을엔 빨
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잎들이 맑은 계
곡물 따라 떠내려가는, 겨울엔 가지마
다 눈꽃들이 잔치를 여는 우리나라의
산들! 아,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아이슬란드엔 군대도 없다. 대신 해안
경비대가 나라를 지킨다. 부자나라가
국방비도 적게 들면 그 많은 돈은 어디
에 쓸까? 세금 싸고 모든 학비가 공짜라
면 유토피아일까?
우리는 첫날부터 해안가 중심의 대표
관광지를 돌기 시작했다. 끝없이 펼쳐
진 지평선에 하얀 눈이 가득 쌓여있다.
만화영화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의
궁전처럼 높은 산들도 눈부시게 빛나
고 있다. 사방을 둘러보니 에베레스트
산 어디쯤 서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
다. 이등변삼각형을 닮은 유난히 뾰족
한 산은 드라마 왕자의 게임 시즌 7의
촬영지 ‘키르큐펠’이다.
겨울왕국은 날이 갈수록 누런 잡초 들
판으로 바뀌었다가 초록빛이 도는 이
끼 들판으로 바뀌었다. ‘이끼 덮인 지평
선이라니.’ 아이슬란드는 지평선의 종
류도 다양하다고 생각하는데 차가 멈
췄다. 아무것도 손대지 말라는 당부를
들으며 이끼 덮인 바위산으로 내려갔
다.
산을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바위들은
2,000만 년 전에 생성되었을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온통 이끼로 덮인
이 산이 여름엔 어떻게 변할까?’ 생각하
니 가슴에 초록초록이 스며들었다. 어
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풍경
이다.
한참을 더 달리니 크고 높은 산들이
나타났다. 산은 모두 검은데 흰 눈이 쌓
여 흑백의 조화를 이루니 마치 거대한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아이슬란드 여행의 선호도는 둘로 나
뉜다.
“나라 앞에 아이스가 붙었으니 그래도
겨울 여행이 참맛이지.”
“천만에, 아이슬란드 여행은 여름이
성수기야.”
어느 계절인들 좋지 않을까마는 나는
눈 덮인 지평선을 보는 것이 좋다.
“오로라까지 생각한다면 겨울여행 강
추!”
“여름 평균기온이 영상 18℃, 뱀과 모
기가 지긋지긋하다면 여름여행 강추!”
그러나 여름엔 흡혈 파리가 있음을 기
억하자.
아이슬란드는 극지방에 가까운 섬이
기 때문에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따뜻
한 해가 내리쬐다 갑자기 눈과 비바람
이 몰아치니 방수와 방풍에 좋은 기능
성 옷이 필수이다. 한겨울 실제 기온은
영상 1℃ 내외이지만 체감온도가 영하
15℃까지 떨어질 정도로 매섭단다.
1. 빙하와 트래킹
1) 빙하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알 수 없는 둘
리, 둘리
빙하 타고 내려와 친구를 만났지만
…… (중략)
외로운 둘리는 귀여운 아기공룡
호이 호이 둘리는 초능력 내 친구”
2009년 방영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
었던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가이다. 드
넓고 가파른 계곡에 가득 쌓인 빙하를
보자 빙하 타고 내려왔다는 둘리가 생
각났다. 역시 아이슬란드는 빙하의 나
라구나.
햇살 바른 날에는 빙하가 금강석만큼
반짝이련만 우리는 우산 들고 멀리서
바라보아야 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
면서.
‘둘리가 타고 온 빙하가 여기 어디 있
으려나?’
‘기후변동으로 빙하가 빨리 녹으면 둘
리도 어린 왕자처럼 별을 타고 올까?’
빙하는 산 위에 쌓인 눈이 수백 년 동
안 압력을 받으면서 일반 얼음보다 훨
씬 단단하고 무거워진다. 그 무게에 의
해 계곡 아래로 밀려와 우리와 마주 보
는 것이다.
다음 날, 점심 식당에 이르자 뒤쪽에
빙하산이 있다는 파발이다. 뷔페식이
라 얼른 먹고 일어나 잘 만들어진 길을
내달렸다. 꼭대기에 이르니 빙하 골짜
기에서 떨어져나온 집채만 한 얼음덩
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
였다. 얼음과 얼음 사이에 서서 어마어
마한 빙하를 보고 있자니 지구에서 몇
백 광년 떨어진 어느 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우주인이 되어 무념무상
으로 빙하를 즐겼다.
“빙하는 일반 얼음보다 약 5배에서 8
배 정도 강하기 때문에 녹는 것도 느려
요.”
“아이슬란드에서는 빙하에 위스키를
타서 마셔도 합법입니다.”
“모든 수돗물은 빙하수니까 그냥 드세
요.”
빙하수는 아무것도 생존할 수 없어서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라고 한
다. 물이 필요하면 아무 곳에서나 수돗물을
마시면 된다. 슈퍼에서 파는 물이
나 화장실의 수돗물이나 똑같으니까.
미리 알았다면 소주와 맥주를 가져가
서 빙하 넣은 소맥을 마셔보는 건데 아
깝다!
2) 빙하트래킹
빙하트래킹은 오로라와 더불어 아이
슬란드 여행의 백미이다. 현지 관광사
에 들려 그들이 대여해 준 하이킹 장비
를 들고 버스를 탔다. 트래킹 안내자는
이탈리아와 덴마크에서 왔다는 미녀들
이다.
차에서 내려 20분 정도 검은 흙산을
걸었다. 안내에 따라 장비들을 착용하
자 본격적인 트래킹이 시작됐다. 흙에
덮인 집채만 한 빙하들이 모습을 드러
냈고 몇 구비를 돌자 비스듬히 누워있
는 드넓은 빙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
었다. 둘리처럼 몇억 년은 아니지만 몇
천만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을 장엄한
자연 앞에 서자 ‘헉’ 숨이 막혔다.
안내자가 악어의 이빨처럼 생긴 아이
젠으로 빙하를 콱콱 찍으며 내딛으라
고 했다. 봄날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시
냇물처럼 빙하 아래로 빙하수가 줄줄
흘렀다.
‘2월인데 벌써 이렇게 녹아내리면 한
여름에는 얼마나 많이 녹을까?’
빙하 체험이 아니라 이상기온을 체험
하러 온 것 같았다. 앞에서 바람이 세차
게 불자 몸이 저절로 뒷걸음질을 쳤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몸을 반으
로 접으며 바람을 피했다.
다시 빙하를 돌아서 어느 지점에 이르
니 얼음동굴이 보였다. 바람과 햇살이
드나들며 넓혀놓았을 그 얼음동굴도
벽 안쪽에서 빙하수가 줄줄 흘러내렸
다. 마치 투명인간의 피가 핏줄을 통해
흘러가는 것처럼. 동굴의 크기는 입구
와 출구가 한눈에 보일 정도의 길이에
사람 하나 지나갈 만큼의 높이였다. 빙
하 바닥이 계단처럼 깎여있어 오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얼음동굴을 나와 우리는 같은 길로 하
산했다.
“여름에도 빙하 트래킹이 가능해요?”
“네. 빙하가 겨울엔 파랗게 보이지만
여름에는 하얗게 보여요.”
안내자가 두 계절의 빙하 사진을 보여
줬다. 색이 다른 이유는 빛의 산란 때문
일 것이다.
2. 골든써클
아이슬란드 남서부의 대표 관광명소
를 원으로 묶어서 이르는 ‘골든써클’은
자연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1) 싱벨리어 국립공원
‘싱벨리어 국립공원’에 도착했을 때
도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우산은 무
용지물, 우비가 필요한 날이다. 얇은 비
닐 우비는 찢어질 정도이니 온몸을 덮
을 수 있는 판초가 안전할 것이다. 전망
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드넓은
들판에 강인 듯 냇물인 듯 보이는 물줄
기가 비단구렁이같이 구불구불 흐르고
있었다. 뱀이 없는 나라에서 그것도 몇
마리 씩이나!
싱벨리어 국립공원은 세계 최초로 의
회가 열린 역사적인 장소이다. 930년에
바이킹들이 모여 의회 ‘알싱’을 구성하
고 국가를 수립했던 곳이다. 지질학적
으로는 유라시아판과 북아메리카판이
만나는 판의 경계이다. 두 지각판은 1
년에 2cm씩 멀어지고 있단다.
두 판의 사이, 계곡 양쪽에 형성된 거
대한 바위산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
다. 생김이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거인 ‘트롤’ 같다. 트롤의 나라 아이슬
란드의 싱벨리어 국립공원은 2004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
었다.
2) 게이시르 간헐천
게이시르는 아이슬란드어로 ‘물 솟구
치는 샘’을 의미한다. 아이슬란드에서
도 손꼽히는 관광명소이다. 주차장에
서 길을 건너자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
때문일까? 넓은 지역에 안개 같기도 구름
같기도 한 몽실몽실한 덩이들
이 떠다니고 있었다. 겨울의 찬 기온과
지하수의 뜨거운 수온이 만나 생성되
는 안개가 아닐까?
여기저기서 솟는 샘들을 지나 가장 높
게 뿜는 곳을 찾아 올라갔다. 그게 어디
냐고 묻거나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넓
은 샘가에 울타리가 쳐져 있는 곳, 울타
리 따라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샘이 솟구치는 순간을 사진에 담으
려는 마음들이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는 곳을 찾아 가면 된다.
새해 첫날 시계를 보며 5, 4, 3, 2, 1, 0을
외칠 때처럼 샘물도 시간 맞춰 솟아주
면 얼마나 좋을까.
“샘물아, 언제 나올래?”
“칫, 내 맘이지.”
결국 기다릴 수밖에 없다.
비바람에 핸드폰 든 손이 시려 울 즈
음, 물기둥이 ‘퍽’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동시에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이어 다
시 한번 ‘푹’ 솟더니 잠잠해졌다. 다음
물기둥도 보고 싶지만 기약 없는 기다
림에 마음 쓰고 싶지 않아서 포기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흐르는 물에 손
을 넣었더니 생각보다 차다. 비바람 때
문에 물의 온도가 낮아진 것 같다.
3) 굴포스 폭포
‘황금폭포’라는 뜻의 굴포스는 거대
한 2단 폭포이다. 폭포를 돌아보는 길
은 모두 네 갈래이다. 오름길로 오르니
평지를 흐르던 물이 우렁찬 소리를 내
지르며 곤두박질치는 것이 보였다. 한
동안 휘몰아치는 광경을 바라보니 속
세를 잊을 것처럼 머릿속이 간결해진
다.
내려와 다른 길로 이르니 떨어지는 폭
포수와 눈높이가 같아졌다. 거센 물줄
기가 바닥으로 내려꽂혀 돌아치는 모
습이 또 다른 풍경이다. 바다로 흘러갈
폭포수야, 안녕!
3. 다이아몬드 비치와 검은 해변
1) 다이아몬드 비치
아이슬란드 남동부에 위치한 호수 ‘요
쿨산론’과 ‘다이아몬드 비치’는 인접해
있다. 다이아몬드 비치는 요쿨산론에
서 떨어져나온 얼음덩이들이 검은 모
래 위에서 금강석처럼 반짝이기 때문
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다양한 크기와 여러 모양의 얼음덩이
들은 해가 비치는 방향에 따라 다른 색
을 보인다는데…… 그래선지 대포만
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유난히 많았다. 사진이 빛의 예술이라
면 이만한 소재를 찾기도 어려울 것 같
다.
2) 검은 해변
검은 모래 해변을 볼 수 있는 ‘디르홀
레이’는 상부와 하부로 나뉜다. 검은 모
래를 밟으며 독특한 주상절리를 보려
면 하부로, 검은 해변을 내려다보며 코
끼리 바위와 등대까지 보려면 상부로
가면 된다.
겨울엔 상부의 통행이 통제된다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바람이 잦아들
고 반짝 햇살이 비친 덕에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를 수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길고 곧게 뻗은 검은 모래 해변으
로 하얀 파도가 쉼 없이 달려들었다. 흑
과 백의 대비가 그렇게 화려할 수 있다
니. 무채색 감성이 뿜뿜한 해변이다!
4. 지열에너지
아이슬란드는 92%가 수력발전, 나머
지는 지열발전을 통해 전기를 얻는다.
화산섬과 빙하라는 자연조건에 의해
화석연료의 도움 없이 에너지를 자급
자족할 수 있다고 한다. 전기가 많이 소
모되는 알루미늄 제련이 발달한 것은
전기값이 저렴하기 때문이며 온천이
유명한 것은 어디서나 솟는 지열수 덕
택이다.
여행 일정 중에 ‘시크릿라군’의 온천
욕이 예정되어 있다. 나는 반바지와 반
팔 티셔츠를 입고 온천수에 몸을 담궜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물속에서 은
은하게 풍기는 유황 냄새를 맡으며 주
변을 살폈다. 눈 덮인 산과 마을에서 찬
바람이 불어왔다. 냉온이 교차하는 곳
에서 한껏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다음 일정에도 온천욕이 있었지만 몇
분의 의견으로 주변 관광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온천 경험은 한 번으
로 만족하기에 주변 관광을 선택했다.
영리한 가이드 리나가 우리를 안내하
면서 구글 음성 번역으로 탐방지를 소
개했다.
파도가 일 년을 하루같이 어마어마한
높이로 몰아치는 해안가, 지열발전소
부근에서 뿜는 뜨거운 지열수, 북아리
카판과 유라시아판을 이어주는 행운의
다리를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가 새로 만든 도로 위를 달리는데
까만 아스팔트 양옆으로 하얀 수증기
줄기가 뿜어나오고 있었다. 마치 거대
한 동물의 옆구리에서 하얀 다리가 계
속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땅만 파면
뜨거운 물이 솟구친다더니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진기한 풍경이다.
‘블루라군’은 2024년 11월20일 화산이
폭발해서 그해 12월5일까지 잠정 폐쇄
되었다고 한다. 버스 안에서 블루라군
이 다시 폭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미
리 안내했다. 넓은 들판에 위치한 블루
라군은 화산이 폭발해도 대피할 곳이
없을 것이다. 국가도 회사도 관광객도
모두 설마 하는 마음이겠지. 어느 날 설
마가 사람 잡았다는 소식이 없기를!
5. 수도 레이캬비크
길가에 가로수와 가로등이 없고 신호
등도 없더니 수도 ‘레이캬비크’에 다다
르자 단층 아파트와 높은 건물들이 보
였다. 물론 신호등과 가로등, 가끔은 교
통체증을 일으키는 곳도 있었다. 낮이
짧아 하루의 대부분이 깜깜한 12월에
는 도시 전체가 환하고 따스한 조명으
로 거리를 비춘다고 한다.
자연을 정복하기보다 친환경적인 방
법으로 어우러져 살아온 나라의 특성
때문일까? 아이슬란드는 유난히 상상
력이 필요한 나라이다. 빙하도 그냥 보
면 얼음덩이일 뿐이지만 그 위에 상상
력을 입히면 나만의 빙하를 얻을 수 있
다. 시내를 돌며 불야성의 레이캬비크
를 상상하니 단조롭던 도시가 라스베
가스 만큼이나 화려하게 살아났다.
점심은 쌀국수라는 게 뜬금없지만 식
사 후 30분 여유가 있다기에 얼른 먹고
일어섰다. 주변을 살피니 물고기 박물
관 건물이 보였다. 막상 들어가니 물고
기 전시가 아니라 바이킹의 후예답게
배의 변천사가 중심이었다. 인근 해역
에서는 주로 대구가 잡히는데 제철에
는 물 반 고기 반일 정도로 어획량이 굉
장하단다.
6. 오로라는 헌팅
날씨요정이 아니라 날씨괴물이 따라
왔는지 매일 비바람이 불었다. 오로라
를 못 볼 것 같아 슬슬 걱정이 되었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조건은 어두운 밤,
구름 없는 하늘, 강한 오로라 지수가 중
요하다. 오로라 지수가 강한 춘분과 추
분이면 더 좋단다. 안내자가 매일 오
로라 지수를 확인했지만 밤하늘의 검
은 구름은 가시질 않았다. 어쩌다 별이
보이면 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오로
라공주와 인연이 없거나 전생에 나라
를 못 구했기 때문인 것 같아 점점 체념
에 이르렀다. 오로라만을 위한 여행을
또 가야 하나? 암담한 생각도 들었다.
일정이 끝나갈 무렵의 어느 날 밤, 그
날도 오로라 헌팅을 위해 차를 타고 20
분 정도 달렸다. 캄캄한 들판에 서서 하
염없이 하늘만 보고 있는데 검은 구름
은 숨바꼭질하듯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며 우리의 애간장을 태웠
추위에 지쳐갈 무렵 누군가 외쳤다.
“오로라다!”
순간 오로라공주가 안개 같은 길고 하
얀 옷자락을 끌며 나타났다. 옷자락이
넓어지더니 중심의 어느 부분이 초록
색을 띄며 빠른 속도로 춤을 추기 시작
했다. 춤사위가 용의 머리로, 끈 풀린
리본으로, U자로 변신하더니 다시 하
얀 드레스 자락을 끌고 순식간에 사라
졌다. 5분이나 됐을까?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렀다. 드디어
봤다는 안도감과 너무 짧은 출몰의 아
쉬움 때문일 것이다. 오로라는 마다가
스카르의 바오밥나무처럼 한 곳에 서
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타나날지 모르는 도깨비불 같
아서 적극적인 헌팅이 필요하다. 그래
서 더 매력적일까?
마지막 밤은 케플라비크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묵었다. 미련이 남아서 밤 8
시에 다시 모여 오로라를 헌팅하기로
했다. 호텔 건너편 넓은 공터에 서서 언
제 올지 모르는 공주를 기다리는 마음
이 오죽했으랴.
‘이왕이면 오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검은 구름 위로 흰 선이 나타났다.
“오로라다.”
깜깜한 하늘에 흰색으로 보이는 것이
오로라인지 확인하려면 핸드폰의 사진
화면을 보면 된다. 흰색이 화면에서는
초록으로 보이니까. 오로라는 구름 주
변에서 몇 차례 나타났다 사라졌지만
더 이상은 어려울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밤 10시까지 기다렸지만 ‘역시나’!
다음 날 비행기를 바꿔타려고 헬싱키
비행장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다른 여행사 손님들이 앉았다. 오로라
를 봤냐고 물었더니 어젯밤 11시 우리
와 같은 호텔 부근에서 봤다며 초록빛
화려한 오로라 사진을 보여줬다.
‘아깝다. 한 시간만 더 기다릴걸!’
저절로 탄식이 흘렀지만 이미 기차는
떠났고 대신 감기가 찾아왔다. 쿨럭!
오로라공주야!
어린왕자가 다시 지구별에 올 생각이
라면 이번에는 사막 대신 아이슬란드
가 좋겠다고 전해주렴. 겨울에는 오후
4시 30분만 되어도 한밤중이지만 여름
에는 오후 11시가 넘어도 해가 떠 있는
나라, 1년 내내 기온이 가을부터 초겨
울 수준이라 폭염이 없지만 농경에는
매우 불리한 나라, 여성 혼자 여행해도
안전한 나라, 인터넷이 자유로운 나라,
술은 전매공사에서 직영하는 주류 백
화점 ‘빈부드’에서만 살 수 있는 매력적
인 나라 아이슬란드로!
가장 부러운 것은 국민이 독서를 좋아
해서 책 쓰는 사람도 많고 읽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란다. 출간되는 책이 1천
명당 3권 정도인데 독일 0.8권, 영국 0.6
권, 미국이 0.4권임을 비교하면 그들이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지?
1990년대 관광 안내서에 실린 ‘아이슬
란드에서 쓸모없는 질문 세 가지’를 알
려줄게.
“기차역이 어딨어요?”
“더 싼 건 없어요?”
“오늘 날씨는 좋을까요?”
왕자에게 그런 것 묻지 말고 있는 그
대로의 아이슬란드를 즐기라고 전해
줘.
어린왕자가 사막에서는 독사에 물린
후 몸을 벗어던지고 영혼만 자기 별로
돌아갔잖아. 그럼 뱀이 없는 이곳에서
는 어떻게 가지? 맞아. 너의 길고 흰 옷
자락을 잡고 소행성 B612까지 갈 수 있
도록 안내해주렴. 왕자는 아이슬란드
에서의 새로운 경험들을 소중한 추억
으로 간직할 거야.
참, 우리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고
싶을 때가 언제인지 아니? 케플라비크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버
스를 탔어. 머리 하얀 동행인이 올라타
자 좌석에 앉아있던 젊은이가 얼른 일
어나 자리를 양보했지. DNA 안에 박혀
있는 한국인의 효성은 언제 어디서든
통하는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어.
그 버스가 비행장 중간에 서서 움직이
지 않는 거야. 무슨 일이지? 앞을 보니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가 날개의 주유
구를 열고 기름을 넣고 있더라. 그걸 보
며 우리가 뭐라고 했게?
“이제야 기름을 넣다니 한국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
이만하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매사에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지 알겠지? 어느
사이에 다른 나라의 일들이 대한민국
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더라.
“대한민국이라면 이랬을 텐데.”
“대한민국이라면 저랬을 텐데.”
“대한민국이라면……”
형용할 수 없게 가슴 뿌듯한 일이지!
공주야.
우리는 다음 여행에서 또 만나자. 아
직은 언제가 될지, 그곳이 어딜지 잘 모
르겠어. 여행은 돈, 건강, 시간의 삼박
자가 잘 맞아줘야 하니까. 생각 같아선
중미의 멕시코, 벨리즈, 과테말라, 온두
라스, 엘살바도르, 파나마, 코스타리카,
트리니다드토바고를 가고 싶은데 상황
이 어떨지 미지수야.
희망은 품으라고 있는 것이니까 가슴
에 희망의 싹을 심고 기다려 볼게. 어린
왕자가 심어준 바오밥나무 씨앗이 50
여 년 만에 싹을 틔운 것처럼 언젠가 중
미의 꽃도 피울 수 있겠지. 그때까지 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