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 감독의 작은 영화관
영화 <위대한 침묵>
Stat crux dumvolviturorbis
세상은 변해도 십자가는 우뚝 서 있다.
- 카르투시오회 헌장 中
깊은 어둠 속,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기도하는 한 수도자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땔감의 붉은 불꽃만이 자신의 존재를 조심스럽게, 하지만 자유롭게 알리는 듯하다. 먼지처럼 눈발이 날리는 하늘 위로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소복하게 눈이 쌓이는 소리, 겨울바람 소리, 눈이 녹는 소리, 그 위로 다시 종소리가 들리고 이내 해발1300m 알프스 자락에 자리한 카르투시오 수도원이 나타난다.
이곳은 수도자들이 평균 60년 이상을 머무는 봉쇄수도원. 그들은 독방 생활을 하며 기도, 침묵, 고독 가운데 하느님을 찾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오롯이 자신을 마주하며 영적 성찰을 한다.
1984년 침묵에 관한 영화를 구상하던 필립 그로닝 감독은 카르투시오 수도원을 찾아 영화 제작 허가를 받으려 했다. 하지만 아직은 너무 이르다는 수도원의 대답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1000년 동안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는 카르투시오 수도회 본원 – 그랑드샤르 트뢰즈. 감독은 앞으로 1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흘러야 촬영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수도원의 회신을 받아든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어느 날, 수도원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수화기 너머로 아직도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있냐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영화는 2년의 준비 기간과 1년의 촬영, 다시 2년의 후반 작업을 거쳐 이 영화에 대한 영감을 얻은 날로부터 21년만인 지난 2005년에야 완성한다.
감독은 촬영 기간 동안 수도자들과 같이 독방 생활을 하고 노동하며 수도원의 규칙에 맞춰 생활했다. 감독은 그런 과정이 꼭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들의 일상과 삶의 리듬을 모르고서 영화를 만들 순 없었기 때문이다. 인공 조명을 사용하지 말 것, 자연의 소리 외 인공적인 사운드나 음악을 사용하지 말 것, 감독 혼자서만 촬영할 것 등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수도원이 내건 조건이 까다로웠지만 어찌 보면 그 모든 것은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대사가 거의 없는 2시간 40여 분의 영화는 그렇게 천천히 수도원의 시간을 담아냈다. 수도원의 하루는 사계절이라는
또 다른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보인다. ‘침묵’이라는 관념적인 소재를 이미지와 사운드라는 영화적 도구를 통해 느낄 수 있게 한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소리, 정물화 같은 책상에 놓인 과일과 식사, 카메라를 응시하는 깊고 선한 얼굴들과 눈빛들, 악기 없이 울려 퍼지는 수도자들의 성가 등 장면 하나하나가 묵상의 과정 혹은 그 결과처럼 느껴진다. 자연의 이미지와 사운드로 가득한 영화의 후반 부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노老수사의 인터뷰가 침묵을 깨고 흐른다.
“아니요 왜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죽음은 모든 사람의 운명이지요.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집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과거, 현재 이런 것들은 인간적인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과거란 없습니다.
오직 현재만이 있을 뿐.”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그분은 우리 삶 전체를 통찰하십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무한한 존재이시며
그분은 영원토록 우리가 잘 되기만을 추구하십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에도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날 장님으로 만들어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곤 합니다.
내 영혼에 이롭다고 여기셔서 배려하신 겁니다.”
한 잔의 물, 빛이 닿은 오래된 의자, 반으로 갈라진 사과. 화질이 좋지 않아 오히려 아련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미지들은 노수사의 마음속 이미지처럼 다가온다. 눈처럼 소복이 쌓인 그의 흰 눈썹 아래로 그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영화를 보는 나는 마치 그의 눈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후략>
윤세영 영화감독. 대표작으로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있다.
(생활성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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