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보 두 발 물린 370마력 암행순찰자가 두 눈에 불을 뿜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비명을 지를 차례다
영화 <나쁜 녀석들 2>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극 중에서 형사 역을 맡은 윌 스미스와 마틴 로렌스는 범죄자와 숨 막히는 고속도로 추격전을 펼친다. 이때 두 형사가 탄 차는 은색 페라리 575M 마라넬로였다. 범죄자들을 놓치지 않고 지옥까지라도 따라가던 두 형사의 눈부신 활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비록 연출된 장면이긴 했지만, 압도적인 주행성을 자랑하는 고성능 자동차를 경찰 임무에 투입했을 때 거둘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OECD 가입국이 실제로 경찰 임무에 고성능 자동차를 투입한다. 위장 단속 임무에도 사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경우 닷지 차저가 대표적인 위장단속 자동차다. 크라이슬러 V6 3.6L 펜타스타 엔진이 기본으로 장착되지만, 옵션으로 370마력을 발휘하는 V8 5.7L 헤미 엔진을 고를 수 있다. 고성능 8기통 모델인 포드 팔콘 SR8과 홀덴의 코모도어 SS는 오랫동안 호주에서 위장 경찰차로 활약했다.
고성능 경찰차는 더 이상 영화 속 허황된 이야기나 먼 나라의 부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4년 차에 접어든 우리나라 암행순찰차도 올해 1월부터 고성능 모델 2대를 도입했다. 강력한 V6 트윈터보 엔진을 품은 제네시스 G70 3.3T다. 암행순찰차 도입 초기만 해도 일반 순찰차로 많이 쓰이는 YF, LF쏘나타를 사용했다. 이후 도입한 쏘나타 뉴라이즈 터보도 성능은 훌륭했지만, 이번에 새로 들여온 고성능 암행순찰차는 차원이 다르다. 최고출력이 무려 100마력 이상 높다. G70 암행순찰차는 임무 시작 첫 6개월 사이 한 대당 법규 위반을 무려 1000여 건 가까이 단속했다.
7월 어느 날, 어김없이 고속도로로 달려가는 G70 암행순찰차 한 대를 따라나섰다. 고성능 모델 도입으로 전력이 강화된 암행순찰차 단속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다. 함께한 G70 암행순찰차는 서해안고속도로 순찰대 12지구대 소속이다. 단정한 근무복 차림의 경찰관 두 명이 한 조다. 암행순찰차로 변신한 G70은 외관만 보고는 경찰차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없다. 측후면 틴팅은 제법 진한 편이어서 실내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릴 안쪽을 자세히 보면 경광등 하나가 보인다. 실내에 설치한 경광등과 전광판도 유리에 살며시 비친다. 비교적 틴팅이 약한 앞유리 안을 들여다보면, 대시보드 위로 복잡하게 놓인 단속 장비가 눈에 들어온다. 꼼꼼히 살펴보면 결코 평범한 세단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바퀴를 굴리기 시작하면 거짓말처럼 경찰의 흔적을 감춘다.
오전 10시, 편도 3차선 서해안고속도로는 출근 시간대가 지나 비교적 한산하다. 하지만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에서도 암행순찰차는 분주하다. 앞 차를 추월한 후에도 계속 상위 차로로 진행하는 화물차를 소몰이하듯 3차로로 몬다. 그대로 두면 교통에 방해가 될 요인이다. 사이렌을 짧게 울려 암행순찰차임을 알리고 창밖으로 팔을 꺼내 손짓으로 차로 변경을 유도한다.
1차로로 정속주행 하는 1t 화물차를 발견했다. 속도위반은 아니니 괜찮지 않냐고? 화물차 1차로 주행은 지정차로 위반이다. 곧장 단속에 들어간다. 화물차를 빠르게 앞질러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린다. 후면 전광판에서는 차를 세우라는 메시지가 뜬다. 위반 사실을 순순히 인정한 운전자는 갓길에 잠시 정차한 후, 범칙금 4만원과 벌점 10점을 받고 씁쓸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암행순찰차의 갓길 정차는 위험하다. 정차하는 시간 동안 단속하는 쪽이나, 단속받는 쪽이나 추돌 위험에 노출된다. 단속된 화물차가 자리를 뜨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분 남짓. 위반 사실을 극구 부인하는 진상 운전자를 만나면 위험한 갓길에 더 오래 머물러야 한다. 경광등을 켜더라도 일반 순찰차보다 시인성이 낮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경찰관 한 명이 차 뒤에서 경광봉을 흔들어 뒤에서 다가오는 운전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갓길 정차는 위험했다. 단속된 차를 가급적 비상 정차구역, 휴게소, 졸음쉼터로 유도하는 이유다.
평소 많은 운전자가 무심코 하던 행동 하나도 단속대상이다. 도로교통법은 앞차를 추월할 때 왼쪽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어기면 앞지르기 방법 위반이다. 범칙금 6만원과 벌점 10점이다. 이날, 암행순찰차 바로 앞에서 하위 차로로 차선 변경하여 앞지르기한 운전자가 즉시 단속됐다.
오후 2시, 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에서 암행순찰차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흰색 SUV를 포착했다. 강력한 토크를 자랑하는 메르세데스-벤츠 GLE 350d다. 일반 자동차 틈에 섞여 있던 암행순찰차가 먹이를 쫓는 호랑이처럼 맹렬한 추격을 시작했다. V6 3.3L 트윈터보 엔진의 진면모를 보여줄 시간이다. 위반 차량의 속도 확인은 필수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 흰색 SUV 바로 뒤에 붙어 달렸다. 장비로 측정한 위반 차의 속도는 시속 182km. 서해안고속도로 규정 속도 시속 110km를 한참 초과했다.
차로를 이리저리 바꾸면서 곡예 운전을 하는 ‘칼치기’ 운전자를 만나도 암행 경찰관은 당황하지 않는다. 목표물의 목덜미를 문 호랑이는 결코 놔줄 생각이 없다. 이런 일이 익숙한지 차분하게 기록을 시작한다. 속도 측정 장비로 주행속도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추격하는 동안 위반 차는 시속 224km까지 속도를 높였다.
위반 차의 모든 행적은 블랙박스로 빠짐없이 담는다. 카메라 화각이 넓어서 대상이 실제보다 멀리 담기기 때문에 종종 번호판 식별이 어렵다. 고정식 캠코더를 추가로 사용하는 이유다.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뚜렷한 번호판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속도 측정 장비, 블랙박스, 캠코더 모두 같은 곳을 보지만, 하는 일은 각자 다르다. 단속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하나로 모든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통합 장비가 개발 중이다.
흰색 SUV는 잠깐 사이 과속, 지그재그 운전 등 총 네 가지 법규를 반복적으로 위반했다. 난폭운전으로 규정하기 충분했다. 위험한 질주를 끝낼 때가 왔다. 화물차에 가로막혀 속도가 느려진 틈을 타 재빠르게 위반 차를 앞질렀다. 숨겨왔던 정체를 드러내고 경광등에 불을 밝혔다. 위반 차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폭풍 같던 질주가 끝났다. 성난 황소처럼 달리던 위반 차의 운전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해졌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단속이 한창인 G70 암행순찰차를 다시 마주쳤다. 졸음운전이 의심되는 운전자에게 경적을 울려 깨워주고, 지정차로 위반 차를 향해 달려갔다. 든든한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위험을 무릅쓰고 교통안전을 수호하는 암행순찰차와 경찰의 헌신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빛난다. 때로는 친근한 가족처럼, 때로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맹수처럼 고속도로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들은 오늘도 듬직한 존재감으로 우리를 지킨다.
※ 전국 암행순찰차에 묻는다!
고속 주행이 반복되는 임무 특성상 고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암행순찰차를 모는 경찰들이 일반 순찰차 담당과 달리 특별한 운전 교육이나 위험수당을 받는지 궁금하다
올해 편성한 암행순찰차 전담 인원들은 이미 오랫동안 순찰차로 단속 활동을 벌여왔던 베테랑 경찰관들이다. 이들이 배치 전 특별 교육을 받긴 했지만, 운전 스킬을 배우는 프로그램은 따로 없다. 암행순찰차에게 주어지는 수당이 있진 않다. 모두가 투철한 사명감으로 임무에 임한다.
일반 승용차로 위장한 암행순찰차도 블랙박스 신고 대상이 될 수 있다. 난폭운전이나 기타 교통 법규 위반으로 신고 당한 적이 있나?
다행히 아직 그런 일이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암행순찰차는 옛 암행어사처럼 어떤 특별한 권력을 가진 위치가 아니다. 임무 중이 아니라면 일반 국민들처럼 교통 법규를 지킨다.
단속된 운전자의 진상 유형 1위를 꼽는다면?
난폭운전으로 적발되면 대부분 형사처벌을 피하려고 사정사정한다. 가끔 봐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운전자도 있다. 단속 경찰관에게 욕설을 퍼붓고, 처분을 받고 나서도 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해당 지구대로 항의 전화를 계속했다.
지금까지 암행순찰차로 적발한 최고속도는 얼마였나?
G70 암행순찰차을 운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목숨을 걸고 달렸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위반 차량이 기록한 속도는 무려 시속 260km다. 포르쉐 911 GT3였다.
가장 뿌듯했을 때와 가장 속상했을 때는?
휴게소에 잠시 들렀을 때 암행순찰차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거나 파이팅을 외쳐주시는 분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내가 언제 위반했냐고 거세게 항의하는 운전자가 많은데, 분노를 참지 못하고 상의를 벗어 던지고 고속도로에 몸을 던진 사람도 있었다. 다행히 생명은 구했지만, 큰 소동을 일으킨 탓에 40분 동안 주변 교통이 마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