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로 본 중생 (눅 1:34-38)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이 시간에 “마리아로 본 중생”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온전한 구원 안에서 자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의신학에 중생에 대한 정의를 보면 '중생이란 사람 안에 새 생명의 원소를 심고 영혼의 주관적 성향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행위'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중생이란 구원의 시점에서 구원의 완성까지를 중생으로 보는 것입니다.
누룩이 가루 서말을 다 부풀게 하듯 예수의 새 생명은 우리 안에서 자라나서 우리를 온전히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는 이 비밀을 예수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서 봅니다.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는데, 어떤 면에서 이 원리는 우리가 예수 믿어 구원 얻는 원리와 아주 흡사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를 영접했으면 온전히 그 예수가 나타나도록 생명을 기르는 것입니다.
마리아로 본 중생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1. 구주는 오직 예수여야 합니다.
마1:16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했습니다. 마태가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은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주이심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 예수나 믿고 나는 중생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유대 나라에서 다윗의 자손도 많았고 예수라는 이름도 많았습니다. 여호수아나 호세아도 예수와 동명입니다. 유명한 사람이니 당연히 그 이름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에서는 여러 방향에서 예수만이 성경에서 약속한 분이심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믿는 예수가 어떤 예수인지 다른 예수라면 안 됩니다.
2.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눅1:30-31에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은혜라는 말씀이 28절에도 있듯 은혜가 강조됩니다.
이처럼 중생도 은혜입니다. 선택해 주심도 불러주심도 믿음도 은혜입니다. 고전12:3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기도하고 전도하는 인간의 수고도 있지만 그것 역시 은혜로 봐야 합니다. 육신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또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의 수고도 은혜인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자 에이든 윌슨 토저(Aiden Wilson Tozer)는 “인간 편에서 보면 구원은 일종의 선택이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것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에 의해 붙들리고 사로잡히고 정복당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은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행동이라기보다는 반응(reactions)이다.” 말했습니다.
구원받은 것이 믿음이냐? 은혜냐? 그러나 롬4:16에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한 말씀을 볼 때 두 단어는 본질적으로는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그냥 감사만 하면 됩니다.
3. 중생은 성령으로 이루어집니다.
눅1:35에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신 원리가 성령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34절) 이때 천사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말씀하면서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35-37절) 했습니다.
요 3장에 니고데모도 거듭남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그러나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6절) 하신 것처럼 이것은 영적인 일입니다.
이처럼 예수 믿어 중생한다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는 걸까? 이 신비적 연합은 사람이 설명할 수 없지만, 요1:12 말씀과 같이 예수를 나의 주로 믿는 것이 영접입니다. 그럼 사람이 할 일은 없을까요? 성령의 일이기 때문에 기도 없이는 한 영혼도 길러낼 수가 없습니다.
4. 믿음과 겸손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38절에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그리고 눅1:45에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마리아의 믿음과 겸손과 헌신을 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인간이 해야 할 반응은 먼저 믿음입니다. 롬1:16에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했습니다. 또 겸손입니다. 예수의 복음 그대로 믿는 것이 겸손입니다. 자꾸만 복음에다 내 사상이나 세상의 이론 혼합시키면 안 됩니다.
고전1:30에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는 말씀처럼 예수 한 분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도, 죄 사함도, 새 사람되는 것도, 하늘의 권세와 영광과 권능도 예수 안에 들었으니 예수님을 얼마나 영화롭게 섬기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리아와 같은 헌신이 필요합니다. 당시 간음죄는 돌로 쳐 죽였습니다. 마리아에게 파혼과 죽음의 위험이 있었지만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목숨 걸고 예수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숨 걸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왕에게 시집가 왕자를 배면 그 왕후의 몸값은 상상할 수 없이 존귀해집니다. 몸 관리 역시 소홀하면 안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모신 우리라는 것을 깨닫고 믿음관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더 거룩하고 더 사랑하고 더 경외하고 더 기뻐하고 더 충성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 낳은 마리아를 중생을 설명해 보았습니다. 이미 예수 믿는 우리는 예수를 밴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마리아의 태에서 아기 예수가 크게 자라나듯, 새 생명 예수가 우리 안에서 온전히 자라나 나타나실 수 있도록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온전히 함께하시고 변화 받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