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선 / 김수우
바구미 한마리 모니터 앞을 기어간다 수상하다, 느릿느릿
오래된 만행인 듯 어린 척후병인 듯 돌아본다
다음 날 선풍기 옆에 또 한마리 서성인다 조심조심, 의아하다
부엌서 베란다서 자꾸 마주치는 여섯 개 발목을 가진 점, 점들, 점들
밤을 새웠는지 큰 산을 넘었는지 비틀비틀, 어디서 출발했을까
나흘 만에 그 첫 길을 발견한 날 후두염이 시작됐다
묵은 쌀 봉지에서 새까맣게 기어나온 무수한 바구미의 무수한 이데아
그 치밀한 절망 그 꼬깃꼬깃한 혁명을 막을 수 있을까
모든 고독은, 모든 모순은 최전선을 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총알도 팔레스타인의 핏자국도 인디언 아이가 부는 자칼 호각도
걸어 걸어 구멍 많은 지평선을 꿰매는 중
귀신보다 더 귀신같은 슬픔, 난민들의 찢어진 목록이 펄럭인다
점점이, 살아내라 살아내라, 닳은 발톱마다 화약 냄새 진한데
순간순간에 부지런히 목숨 걸었던 저 눈물화석들
그예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멀고 멀다
ㅡ 계간 《창작과비평》 202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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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우 시인 (사진 작가, 본명 김경복).
1959년 부산 출생. 경희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1995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 『붉은 사하라』 『젯밥과 화분』 『몰락경전』 『뿌리주의자』 등.
번역시집 『호세 마르티 시선집』.
산문집 『씨앗을 지키는 새』 『白年魚』 『유쾌한 달팽이』 『참죽나무 서랍』 『쿠바, 춤추는 악어』 『어리석은 여행자』 등
사진에세이집 『하늘이 보이는 쪽창』, 『지붕 밑 푸른 바다』 등
2005년 부산작가상, 2017년 최계락문학상, 2023년 송수권시문학상 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