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 휘민
ㅡ 비인칭
그는 자신의 몸을 깊이로 바꿈으로써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
길 위에 남겨진 망설임을 포기하고 나서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의 진짜 주인이 되었다
비석이 세워지고 이름과 생졸년이 기록됐지만
그는 없다
어디에도
그의 무덤 앞에서 침묵은
한참을 서성이다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한다
나, 라는 옷을 벗고
이제 막 우주의 한 면이 된
비인칭의 얼굴을
바람이 어루만지다 간다
지상에선 오늘도
갓 태어난 부고들이 날아들고
하늘과 땅 사이에
인칭을 벗어던진 나들이 활보한다
이제 막 자신과 동격이 된
한 사람의 고독을
무료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구름 구름 구름 구름들
- 계간 『시와 정신』 202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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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민 시인(본명 박옥순)1974년 충북 청원 출생. 충주대(구 청주과학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시집 『생일 꽃바구니』 『온전히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 『중력을 달래는 사람』동시집 『기린을 만났어』동화집 『할머니는 축구 선수』그림책 『라 벨라 치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