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속 평등주의 적 대명사를 껴안는 순간, 한국에서 태어난 기자는 모국어의 위계적 구조에서 풀려났다.
By K. Connie Kang, Times Staff WriterJuly 24, 2006
다름 아닌 you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50여 년 전 서울, 난 아버지의 무릎맡에서 처음 이 단어와 만났고, 곧 사랑에 빠졌다.
처음에 날 사로잡았던 것은 그 울림이었다. 그 후 난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며 꾸준히 영어를 공부했고-개척 정신이 강했던 아버지는 당시 한국에 있는 국립 서울 대학교에서 영어와 독일어를 가르치던 교수였다-난 세글자로 된 이 단어를 줄곧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건 단어가 주는 어떤 감흥때문이었다.
"Good morning to 'you'," 미국,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우리집을 방문할 때면, 난 항상 저렇게 강세를 주면서 인사를 했다.
선교사들이 빙그레 웃으며 "Good morning to you too," 라고 화답할 땐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다.
you는 내게 힘을 실어주던 든든한 원군이었다.
you는 모국어 속 족쇄들로 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세계에서 제일 까다롭고 제일 미묘한 것도 모자라 경어로 가득하기 까지 했던 언어로부터 말이다. you는 유교가 뿌리깊게 박힌, 위계적인 한국어의 테두리로 부터 나를 밀어내 평등주의적 충동의 세계로 이끌었다.
분명 한국어는 경탄을 자아낼 정도로 시적인 언어다. 그 속에는 두운과 의성어가 가득하다. 그리고 난 조리 있게 말하는 한국어를 듣는 것이 즐겁다.
그렇지만 한국어를 찬찬히 더듬어가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어에는 단계에 따라 6개나 되는 화법이 존재하며-각 단계마다 독특한 동사어미가 있어서 형식성이 어느 정도 인지 알려주는데, 극존칭부터 노골적인 무례로 까지 이어 진다-각 단계 사이에도 미세한 차이가 셀 수도 없이 존재한다.
다른 언어를 살펴봐도 호칭에는 급이 나눠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 누리에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들 가운데 두 가지를 꼽아 말하자면 두 단계로 족하다-불어에는 vous와 tu가 있고, 스페인어에는 usted과 tu가 있다.
반면 you를 나타내는 한국말은 4가지다. 아이러니 한 것은 우리가 나중에 대체 어구를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어구를 열심히 찾는다는 것이다.
이런 형식 성-그리고 이를 유지 혹은 거부하려는 충동- 은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를 쓰는 한국계 미국인의 숫자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두 문화가 만나 뭔가 독특한 미국만의 무엇을 창조해낸다는, 同化를 이야기 하는 고전에나 나올법한 어지럼이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는 기이한 뒤섞임이기도 하다. 한국인은 공동체를 중시하며,-수줍어하지 않고 미국적인 ‘나’보다는-다소곳한 ‘우리’를 더 좋아한다.
어떤 한국 여성은 남편을 이야기 할 때 마다 “우리 남편”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라고 한다.
“영어로 ‘우리 남편’이라고 말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산호세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김 기정 씨는 이렇게 전한다. 그는 학자인 동시에 작가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이 듣기에 “우리 엄마”라고 하는 것은 “집과 가정,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에 자신을 이어주는 것이다. 그런 느낌은 영어에는 없다.” 김이 덧붙여 말했다. 영어로 ”우리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은 주기도문 속에서일 뿐이다.
전화를 끊을 때 이따금 “사랑해”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 그럴 때 마다 “우리도 그래”라고 대답하는 나를 보면서, 앵글로 섹슨 계인 이 친구는 뭔가를 알아챘다. “‘나’라고 말하는 걸 꺼려하는 네 모습. 참 한국적이다.”
물론이지.
영어에서 새는 노래한다. 한국어로는 새가 운다. 전통적인 한국의 창은 구슬프고 단조로 연주된다. 영어에서는 명사와 동사가 지배 축을 이룬다. 한국어에서는 형용사와 부사가 그렇다.
“한국어는 표현과 감성이 풍부한 언어입니다.” LA에서 태어난 김 아람 학생이 말했다. 이 학생은 Van Nuys 고등학교에 다니는 우등생으로, LA 곳곳에 자리 잡은 한국어 학교 가운데 한 곳에서 공부하고 있다. 또래인
David Mo학생이 맞장구치면서 말하길, 언젠가는 Hi 대신 한국어 ‘안녕 하세요’를 쓰겠단다.
“Hi는 너무 단순해요.”David 이 덧붙였다. 한국식 인사에는 깊이가 있다고 했다.
온 누리를 통틀어 7천 9백만이 말하고, 미국 안에서만 1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어가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중 하나라고 말한다. 김 아람 학생은 일상적으로 묻는 것, 이를테면 “밥 먹었니?” 같은 질문도 한국어로는 복잡 미묘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이런 언어의 미로를 더듬어 가기 위해서, 우리는 예리하게 갈린 ‘눈치’-문자 그대로 말하자면 ‘눈에 의한 측정’-라는 육감을 써서 나이와 교육 수준, 사회적 지위, 직업 등을 판단한다.
그런 다음, 한국어 속에 있는 두 가지 말 가운데 하나를 골라낸다: ‘존댓말’ 이라는 ‘점잖은’ 것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형식에서 벗어난 ‘반말’인데 말 그대로 하자면 ‘절반-말’이라는 뜻이다.
내게 있어서 you는 이 모든 것을 우회하게끔 도와준 것이다. you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도 즐겁게 얘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는 연장자는 말하고, 어린 사람은 허락받지 않는 이상 질문할 수 없는 우리 문화권에서는 드문 일이다.
아시아에 살 때 난 미국 초등학교를 다녔고, 그렇기 때문에 난 어릴 적 한국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도, 영어로 you라고 말할 수 있는 보기 드문 특권을 누렸다.
1961년 내가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격식을 따지지 않는 미국식 습성과 전통적인 한국 언어 관습을 뒤섞는다고 해서 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이야기를 나눌 한국 사람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지금 캘리포니아의 한국 교민 사회-약 50십 만 명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아시아 밖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에서는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모두를 끌어안는 you의 이런 모습에 애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서로 나누고 있다.
“you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변호사 Tong S. Suhr 씨가 말했다. 그는 지역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you는 [한국판] 카스트 제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사는 게 더 수월해 진 측면도 있죠.
한국에서 태어나, 지금은 West Hollywood에 있는 Jarrow Formulas사 생산 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Kay S. Duncan씨는, 자신이 방 뒤편에 앉으려 하는 소심한 아시아계 여성에서 주위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기주장이 뚜렷한 중역으로 변모하기 까지 you의 도움이 컸다고 말한다.
“‘you는 이렇게 했죠, 혹은 you는 저렇게 했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회사 CEO앞에서조차 말이죠.”
반면, Manoa의 하와이 대학교 한국어 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손 호민 씨는 이 세 글자 단어를 쓰면서 마음이 편했던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지난 1965년 언어학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한국을 떠난 그는 교수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you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지만, 결국 학위를 땄다. 학생이 교수를 앞에 두고 평등을 주장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색한 듯 했다.
앞서 얘기했던 산호세 출신 작가 김씨는 you가 말할 때보다는 글 속에서 더 편하게 다가온다고 느낀다.
“영어로 말한다고 해도 you는 약간 무례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한국 사람은 you를 쓸 때는 조심스러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네 전통 때문이죠. 이야기를 나눌 때는 문화적으로 봐도 그렇고, 그리고 서로 관계를 봐도 훨씬 더 예의가 바릅니다. 실제로는 사람이 거친 경우도 있겠죠. 그렇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한국어에서 you는 못해도 4가지 모습으로 나올 수 있다: 귀하, 당신, 자네, 너. 그런데 이 중 you와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귀하’는 ‘각하’와 ‘존경하는 ~님’ 같은 호칭이 합쳐진 것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넬 때 쓴다.
‘당신’은 격식을 차릴 때 쓰는 you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조심하지 않으면 오해를 살 수 있다. 아내가 웃는 얼굴로 남편을 “당신”이라고 부르면서 품에 안겨든다면, you는 밀어로 쓰인 것이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에게 그 말을 한다면 you는 ‘도발적 언사’가 되어 버리죠.” 변호사 Suhr 씨가 말한다. (고전이 된 New Yorkism을 생각해 보라. “당신 뭘 봐?”)
‘자네’는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혹은 노인이 젊은이에게 말을 건넬 때, 이를 테면 손자에게 말을 하는 것 같은 상황에서 쓰인다.
(역자 각주: 자네의 용법에 대해선 작가가 잘 모르는 듯함.)
‘너’는 어린이나 자기보다 어린 형제, 자매에게 쓰는 것이다.
그렇지만 청소년이라 해도, 만약 상대가 고등학생이라면, 한국 사람들은 ‘너’보다는 그
냥 묶어서 학생이라는 뜻으로 'haksaeng'이라 말하는 걸 더 좋아한다.
우리는 직함을 사랑한다. Sonsaeng-nim(존경스러운 교사)은 직업을 가진 40대 이상 장년
층에 붙는 존경스러운 직함이다. 언론인마저 직함으로 불린다. 한국 사람들은 날 Kang kij
a-nim(존경스러운 강 기자)라고 부른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말을 한다면 더욱 까다로워진다. 하급자는 사장에게 말할 때 2인칭
을 쓰지 않는다. 격식을 차린 말도 예외일 수는 없다.
손 교수는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부하가 사장 더러 “you가 가실 시간이 다 됐습니다.”
말하고 싶을 땐 3인칭으로 바꿔서 “사장님 가실 시간 다 됐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
다.
그런데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는 마치 꿰진 양식 진주 속 기묘한 염주 알 마냥, 한국어 문장 속에서 you가 불쑥 튀어나오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한국계 미국인이 한식당이나 교회 모임 같은 곳에서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you가 알짜 역할을 하는 진화된 콩글리쉬를 목격할 수 있다.
양쪽 언어를 할 줄 하는 친구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you-neun-uh-tuk-hae-saeng-gak-hae?"
번역: 넌 어떻게 생각해?
또 영어로든 혹은 한국어로든, you에 반항 하는듯한 상황도 여럿 존재한다.
Kay Duncan씨의 남편인 역사학자 John B. Duncan씨는 UCLA 한국학 센터 소장으로 한국어가 유창하다.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면서 두 문화는 서로 녹아드는 만큼이나 충돌하기 시작했고, 존과 케이는 서로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 지를 놓고 씨름했다.
이들은 영어의 ‘honey'와 한국의 ’여보‘는 물론, ‘당신’(예의를 갖춘 you)과 격식 없는 ‘너’ 까지 눈여겨보고 있었다.
“‘당신’이라 말하면 차갑고 거리감 있게 느껴져,” 남편이 말했다.
“'honey'라고 하면 닭살 돋아요.” 부인이 말했다. 그건 너무 남사스러웠다.
부부는 결국 불어 tu를 쓰기로 정했다.
30여년이 지났지만, 이들은 아직도 생일 축하 카드나 발렌 타인 데이 카드를 쓸 때 ‘Dear tu'로 시작하고 ’Your tu'로 끝낸다.
COLUMN ONE
To Know You Is to Love You
A Korean-born reporter's embrace of an egalitarian English pronoun freed her from the hierarchal strictures of her native tongue.
By K. Connie Kang, Times Staff Writer
July 24, 2006
It's all about you.
I fell in love with this English pronoun when I first met it on my father's knees more than half a century ago in Seoul.
Initially, it was the sound that captivated me.
Later, as I continued to study English under my father's tutelage — he was a pioneering scholar of English and German at South Korea's Seoul National University — I began to love this three-letter word for the way it made me feel.
"Good morning to you," I said with emphasis whenever American and Canadian Presbyterian missionaries visited our home.
When they responded with a big smile and "Good morning to you too," I was in heaven.
You was an ally that empowered me.
It freed me from the encumbrances of my mother tongue, which is one of the world's most complicated and nuanced languages, laden with honorifics. You pushed me out of the confines of Confucian-steeped, hierarchal Korean language into a world of egalitarian impulses.
To be sure, Korean is a wonderfully poetic language, full of alliteration and onomatopoeia. And I love listening to well-spoken Korean.
But navigating it is another story.
Korean has no fewer than six speech levels — each with a unique set of verb endings to indicate the degree of formality, ranging from extremely polite to actively impolite — and many gradations in between.
Other languages employ varying degrees of address. For two of the world's more popular languages, two levels suffice — vous and tu in French, usted and tu in Spanish.
But Korean has four words for you. The irony is we go out of our way to find substitutes so we won't have to use them.
This formality — and the impulses to maintain or reject it — colors not just how many Korean Americans speak Korean, but our English. It's a spin on the classic tale of assimilation, when two cultures meet and create something uniquely American.
Sometimes it's an odd blend. Koreans are a communal people who prefer an unassuming "we" over a bold, American "I."
A Korean woman always refers to her husband as "our husband" — oori nampyon. And we say, "our mother, our father."
"In English, you can't imagine saying, 'our husband,' " said Kichung Kim of San Jose, a Korean American scholar and writer.
To the Korean ear, "our mother" creates a "connection to home, family and all that. That feeling is absent in English," Kim said. "The only time we say 'our father' in English is in the Lord's Prayer."
I have a friend who often ends our phone conversation with "Love you." After hearing me repeatedly reply, 'We do too,' my Anglo friend figured it out. "Your reluctance to say 'I' is a Korean thing."
You bet.
In English, birds sing. In Korean, birds cry. Traditional Korean songs are plaintive — played in minor keys. In English, nouns and verbs rule. In Korean, adjectives and adverbs do.
"Korean is so expressive and emotional," said Los Angeles-born Aram Kim, an honor student at Van Nuys High School who is studying at one of the many Korean-language schools in the region.
David Mo, a fellow student, agrees and says he'll take the Korean Ahn-young-ha-sae-yo (Are you well?) to "Hi" any day.
" 'Hi' is so simple," he said, explaining that the Korean greeting has depth.
Still, experts say that Korean, spoken by 79 million people worldwide and more than 1 million in the United States, is one of the most difficult languages to learn. Aram Kim acknowledges that even a routine query, such as "Have you eaten?" can get complicated in Korean.
To navigate this linguistic maze, we use our well-honed sixth sense called nunchi — literally, "measure of the eye" — to size up age, education and social and professional position.
Then, we choose from two types of language within the language: a "respectable" form known as jondae-mal, and informal talk called ban-mal, literally meaning "half-talk."
For me, you helped me bypass all that. The word let me enjoy conversations with people older than me — a rare thing in my culture, where older people talk and younger ones listen unless asked to speak.
I attended an American primary school when I lived in Asia, so I had the rare privilege of using the English you when I was a child, without offending Korean sensibilities.
When I came to the United States in 1961, blending American informality with Korean linguistic tradition wasn't an issue because there were so few Koreans to talk to.
These days in California's Korean community — estimated at 500,000, the largest outside Asia — many Korean Americans share my fondness for the all-too-embraceable you.
"You represents the essence of democracy," said attorney Tong S. Suhr, a community leader. "You liberates us from that [Korean] caste system, and it makes life so much easier."
Korean-born Kay S. Duncan, director of production with Jarrow Formulas in West Hollywood, says you helped transform her from a shy Asian woman who preferred to sit in the back of the room to an assertive executive equal to those around her.
"You can say, 'You did this, or you did that,' even if you're addressing the CEO of your company," Duncan said.
By contrast, Ho-min Sohn, professor of Korean linguistics at the 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says he has never felt at home with this three-letter word.
Sohn, who came to the U.S. in 1965 from South Korea to work on a doctorate in linguistics, managed to get his degree without once using you when addressing his professors. It seemed so out of place for a student to claim equality with his professor.
Kim, the writer from San Jose, finds you more comfortable in writing than in speech.
Even in English, he said, "you seems a little abrupt. Koreans are careful with you because of our tradition. We are much more culturally and interpersonally civilized in discourses. We may be brutal in real life, but we, at least, have that pretense."
In Korean, you comes in at least four forms: gwiha, dangshin, jahnae and nuh. And yet none is quite like you.
Gwiha is "your excellency" and your honor" rolled into one, used to address a person in a high position.
Dangshin is the formal you, but it can be misconstrued if used carelessly. When a smiling wife calls her husband dangshin and snuggles up to him, it is a term of endearment.
"But use it with a stranger," Suhr said, "and it becomes a 'fighting word.' " (Think of the classic New Yorkism, "What are you looking at?")
Jahnae is used among school chums or by older people addressing young adults, like a man talking to his son-in-law.
Nuh is for children and younger siblings.
But even with youths, if they're in high school, Koreans prefer to address them with the generic title haksaeng, meaning "student," over nuh.
We love titles. Sonsaeng-nim (honorable teacher) is a respectable title for all professionals over 40. Even journalists get titles. Koreans call me Kang kija-nim ("Honorable reporter Kang").
It gets more complicated speaking to people of high rank. A subordinate would not address his company's president in the second person, even the formal version.
Professor Sohn explains that when the subordinate wants to tell his boss, "It's time for you to go," he'll switch to the third person: "The honorable president should go."
But in Southern California, you pops up in the middle of Korean sentences, like an odd bead in a string of cultured pearls. Listen to Korean Americans talk in Korean restaurants and church gatherings and you witness an evolving Konglish where you plays a key role.
Among friends who are bilingual, one might say: "You-neun-uh-tuk-hae-saeng-gak-hae?"
Translation: "What do you think?"
Then there are those situations that seem to defy you — whether in English or Korean.
Kay Duncan's husband, historian John B. Duncan, is director of UCLA's Center for Korean Studies and a fluent Korean speaker. When they were dating and their two cultures began to clash as well as merge, John and Kay grappled with how they should address each other.
They considered dangshin (formal you) and informal nuh, as well as the English honey and yobo, the Korean equivalent of "dear" or "honey."
"Dangshin sounded cold and distant," he said.
"Honey gave me shivers," she said. It was too touchy-feely.
They settled on the French tu.
More than three decades later, they still start their birthday and Valentine cards with "Dear tu" and end with "Your tu."
영어를 쓰는사람이 손짓(제스쳐)가 많은 이유가 단조로운 감정표현,형용사때문이라고 합니다..말로 100%정확한 감정을 표현해내지 못하기 때문이죠...우리나라사람이 다른나라에 비해 손짓이 거의 없는이유중의 하나가 한국어 표현의 무한한 자유로움때문이라고 합니다..........
you를 찬양하고 우리말을 낮게 보는 글이 아니고 한국어와 한국인의 의식에 대하여 이를 잘 모르는 미국인들에게 소개하는 글입니다..기본적인 차이가 경어에 있고 직접 상대방을 표현하는 대신 제3의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예의임을 알리면서 한국인들의 예의에 관한 의식을 소개하려는 글입니다..전혀 불쾌감을 느낄 이유가 없고 우리의 다양한 표현방식에 대하여 자긍심을 느낄수 있는 글이라고 봅니다..그만큼 외국인들에게는 어려운 언어라는 의미도 되겠지요
우리가 토플등에서 많이 보는 전형적인 영어 설명문이네요. 글 구조로 봐서는 주제를 you에 대한 장점이라고 할수있겠고 우리말에 대해선 비하까지는 아니더라도 you의 장점에 비교대상이긴 합니다.(독자가 미국인이지만 이런 구조로 한국어를 소개하니 좀 아쉽네요__;;); 문제를 많이 풀어보신분이라면 두괄식인 이문장에서 To be sure ~ BUT ~만 보고도 대충 뒤를 유추하실수 있을겁니다. 끝부분의 호칭문제도 굳이 프랑스어를 쓰는건 부인이 한국인이기 때문이겠죠.마지막도 재미있게 장식하는 멋진 글인것 같긴 하네요.
엉뚱한데서 자존심을 상하고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문화적인 충격을 실감 못한 것과 함께 우리 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나온 과민반응이라고 봅니다..카스트란 신분의 구분을 의미하는데 그 단어가 우리를 비하한다고 지레 짐작하는 것이 바로 열등의식이고 과민반응입니다..평등주의와 신분주의는 전혀 다른 의식의 세계이고 거기에 높낮이가 없는 개념입니다..우리 사회가 신분주의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신분주의라고 말한 것이 불쾌하다면 잘못된 반응이라 하겠읍니다
카스트 운운은 제치고라도 강기자님의 기사 내용은 요약하면 이런거네요. '한국말은 오묘하고 깊이가 있지만 그것은 불평등을 야기한다. 그러나 영어의 경우 불평등으로부터의 자유를 가져온다. 하지만, 이것을 느끼는 사람들 사이에는 각각 차이가 있다.(즉, 불평등이라기보다는 깊은 맛으로~ 자유라기보다는 너무 대등함으로)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각각은 너무 대척점에 있으므로 그 중간단계는 어떨까?'라는 것이군요. 근데 기사를 보니 대단히 객관적으로 작성했네요. 건조할 정도로요~ ㅋㅋ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그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you-neun-uh-tuk-hae-saeng-gak-hae부분 만으로 이탤릭체로 영어 you와 알파벳으로 표기된 한국어 발음이 뒤섞인 모습을 보임으로서 독자의 주목과 웃음을 의도했지만, 그렇게 뒤섞인 건 알겠지만 뜻은 알 수없는 현지 독자를 위해 번역: what do you think를 보조적으로 덧붙인 거라고 봅니다. what do you think의 you가 이탤릭체나 작은 따옴표로 부각되지 않은 점이 그렇습니다. 또한 번역시 이 글을 읽는 한국 독자라면 "you-neun-uh-tuk-hae-saeng-gak-hae?" 가 작자가 유머스럽게 얘기하는 콩글리쉬라는 것을 알아챌수있다고 판단해서,뒷부분은손대지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뒷 부분 번역: "넌 어떻게 생각해?" 는 작가의 의도로 볼 때, 제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단순하게 you-neun-uh-tuk-hae-saeng-gak-hae 의 뜻을 풀이한 것 이외에 다른 의미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되니깐요. 한국독자도 첫 문장 만으로 작자의도대로 유머를 알아챌 수 있는데 굳이 뒷부분까지 유(you)는 어떻게 생각해?로 번역하는 건, 작자의도를 훼손하는 것이 되겠죠?
사실 나도 우리말에 존대어와 하대어의 구분이 사라지고 하나로 통일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언어가 인간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말에서부터 관계를 위.아래로 구분짓는다는 것이 그리 좋은 것 아닌 듯. 생활속에서 반말했니 어쨌니로 다투는 경우도 흔하지 않나.. 반말 듣고 겉으로는 티 안내도 속으로 기분나빠하는 경우도 있고. 존대어와 하대어의 구분이 없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니만큼 우리말도 존대어가 지금보다 단순화 됐음 좋겠음.
윗글 중간에 보이는 남편과 아내의 대화도 남편은 반말, 여자는 존댓말..(이런 건 남편이 연하라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대다수) 원문을 번역한 사람의 의식구조 자체에 벌써 그런 틀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임. 말에서부터 한쪽은 위, 한쪽은 아래로 구분이 딱 되어지는 것이 좋게 생각되지는 않음.
이 사람은 한국말 보다 영어가 편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이지만 한국말도 꽤 가능한 사람으로서 한글을 바라보고 있네요. 즉, 영어 사용자로서 한국어와 문화의 단점 및 영어와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어요. 당연히 기분 상해야 되는 건 아니지만, 기분이 나빠질 수 있는 글입니다. 한국에서 2~3년 살았던 적이 있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어와 그에 따른 문화 같네요.
음..역시 그녀는 미국인입니다. 한국문화를 제대로 모르고 무조건 자신이 살던 미국인의 눈으로 무엇이든 편리한것으로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언어는 그나라의 문화의 집결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녀는 미국의 문화는 잘알지만, 한국의 문화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글을 쓰다니..어디가서 한국인이라고 말하기 창피할것입니다. 한국인에게 언어는 자신을 보이는 거울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가며 지켜온 우리말과 글입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언어로써 우리가 자신 마음과 어른을 존경하고 배려하는 그마음 자체를 행동인 말로 행하는 모습을 저렇게 간단하게 단지 실용적인 측면으로만 보다니요..
첫댓글 뭔 소리야~
↑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 분이 있다니....
저도 ㅋㅋㅋㅋㅋ
저도 번역하면서 고민 좀 했습니다-_-;;;
한국어에 대한 문화적 설명도 있지만.... you에 대한 예찬이 더 주된 포인트 같네요.
오호.... 그런거 였군요... 읽고 나서도 내용이 정리가 않돼는.....
음...제가 보기에도 you에 대한 예찬이 포인트지만..한국 여론을 감안해서 '그렇지만 어쩌고~'하면서 물타기를 좀 한 듯.
정말 생각한거와 완전 틀린 내용이라 좀 많이 실망했습니다.
저도...-_-..
제일 궁금한것은 과연 지금 내가 읽은 글이 영어로 잘 표기가 되었을려나.. 하는겁니다..
자네라는 말은..아마 저사람의 나이대에는 저런 용도로 사용되었던 말같은데..요사이는 잘 안쓰는 말이지만..
내용을 읽어보니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때 미묘한점을 말한걸로 보는데,,태어나서부터 한국어를 쓰는사람은 여러 존칭의 미묘함이라는게 없습니다.. 존칭자체가 you처럼 자유로울 뿐이죠..어렵다고 느끼는사람 없습니다...그걸 단점으로 지적하셧듯. 한국어는 무한한 감정표현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오히려 장점에 비하면 티끌만한 단점이라고 볼수있죠....님글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때의 어려움을 비판한걸로밖에 보지않습니다.......
영어를 쓰는사람이 손짓(제스쳐)가 많은 이유가 단조로운 감정표현,형용사때문이라고 합니다..말로 100%정확한 감정을 표현해내지 못하기 때문이죠...우리나라사람이 다른나라에 비해 손짓이 거의 없는이유중의 하나가 한국어 표현의 무한한 자유로움때문이라고 합니다..........
뭐..외국에서 오래 사셨으니 그렇게 관점이 굳어진 걸 수도 있는데,저도 좀 아쉽긴 합니다.
단순하게 you로만 쓰던 사람들이 귀하, 당신, 너, 자네..등으로 구분해서 쓰자니 어려워서 하는 소리죠. 거기다 대고 무슨 평등주의가 어떻고 한국판 카스트가 어떻고..나 참..
you를 찬양하고 우리말을 낮게 보는 글이 아니고 한국어와 한국인의 의식에 대하여 이를 잘 모르는 미국인들에게 소개하는 글입니다..기본적인 차이가 경어에 있고 직접 상대방을 표현하는 대신 제3의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예의임을 알리면서 한국인들의 예의에 관한 의식을 소개하려는 글입니다..전혀 불쾌감을 느낄 이유가 없고 우리의 다양한 표현방식에 대하여 자긍심을 느낄수 있는 글이라고 봅니다..그만큼 외국인들에게는 어려운 언어라는 의미도 되겠지요
우리가 토플등에서 많이 보는 전형적인 영어 설명문이네요. 글 구조로 봐서는 주제를 you에 대한 장점이라고 할수있겠고 우리말에 대해선 비하까지는 아니더라도 you의 장점에 비교대상이긴 합니다.(독자가 미국인이지만 이런 구조로 한국어를 소개하니 좀 아쉽네요__;;); 문제를 많이 풀어보신분이라면 두괄식인 이문장에서 To be sure ~ BUT ~만 보고도 대충 뒤를 유추하실수 있을겁니다. 끝부분의 호칭문제도 굳이 프랑스어를 쓰는건 부인이 한국인이기 때문이겠죠.마지막도 재미있게 장식하는 멋진 글인것 같긴 하네요.
한국어가 뭔지 모르는 외국인이 쓴듯... 아버지가 한국인이라고 한국인아닙니다. 정신이 한국인이어야지. 한국어에 경어가 발전한 것은 공동체 생활에서의 경험이 풍부한 연장자에대한 존경심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기본문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미국엔 이런게 없죠.
아..적어도 미국에 사는 한국인은 그렇지 않다고...믿어야죠^^
이런.. 밑에 기사에 완전히 낚였다. 예절 차리는게 [한국판] 카스트제도? 참 어이 없네요.
진짜 좀 당황스럽네요. 뭐라 표현하기가..참..
엉뚱한데서 자존심을 상하고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문화적인 충격을 실감 못한 것과 함께 우리 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나온 과민반응이라고 봅니다..카스트란 신분의 구분을 의미하는데 그 단어가 우리를 비하한다고 지레 짐작하는 것이 바로 열등의식이고 과민반응입니다..평등주의와 신분주의는 전혀 다른 의식의 세계이고 거기에 높낮이가 없는 개념입니다..우리 사회가 신분주의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신분주의라고 말한 것이 불쾌하다면 잘못된 반응이라 하겠읍니다
네..어쩌다 말이 그렇게 나온거지 굳이 한국어에 대고 신분이 어쩌고 할 의도는 없었다고 봅니다.
솔직히 예기에서... 극 존칭은 내생각엔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본다... 그냥 내생각이야..
카스트 운운은 제치고라도 강기자님의 기사 내용은 요약하면 이런거네요. '한국말은 오묘하고 깊이가 있지만 그것은 불평등을 야기한다. 그러나 영어의 경우 불평등으로부터의 자유를 가져온다. 하지만, 이것을 느끼는 사람들 사이에는 각각 차이가 있다.(즉, 불평등이라기보다는 깊은 맛으로~ 자유라기보다는 너무 대등함으로)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각각은 너무 대척점에 있으므로 그 중간단계는 어떨까?'라는 것이군요. 근데 기사를 보니 대단히 객관적으로 작성했네요. 건조할 정도로요~ ㅋㅋ
번역이 무슨 번역기로 한것 같이 이해하기 힘들었는데....한류기쁨님과 레드맨님 글보고 쪼금 알것 같네요.....ㅋㅋㅋ
헐 번역이 서툴러서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더 연마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__)
머라카노.....
헉..죄송합니다.-_;;;번역이 서툴러서 그런거 같습니다.
영어 원문은 정말 놀랍도록 아름다운 글이네요. 통째로 외워둬도 좋을 듯...
네 원문은 상당히 정제되고 깔끔하다고 느꼈습니다. 번역하면서도 감탄할 정도로..
결론은 you가 아름답고 놀랍단.....말??
이게 미국 어느 신문에서 크게 실렸다고 했던거 같은데................이유가 있었구나...풉
마지막에서 아홉번째 줄 번역: "넌 어떻게 생각해?" 가 아니라 "유 (You)는 어떻게 생각해?" 라고 표현해야 맞습니다. 한국어와 영어가 우스꽝스럽게 섞인 대화를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그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you-neun-uh-tuk-hae-saeng-gak-hae부분 만으로 이탤릭체로 영어 you와 알파벳으로 표기된 한국어 발음이 뒤섞인 모습을 보임으로서 독자의 주목과 웃음을 의도했지만, 그렇게 뒤섞인 건 알겠지만 뜻은 알 수없는 현지 독자를 위해 번역: what do you think를 보조적으로 덧붙인 거라고 봅니다. what do you think의 you가 이탤릭체나 작은 따옴표로 부각되지 않은 점이 그렇습니다. 또한 번역시 이 글을 읽는 한국 독자라면 "you-neun-uh-tuk-hae-saeng-gak-hae?" 가 작자가 유머스럽게 얘기하는 콩글리쉬라는 것을 알아챌수있다고 판단해서,뒷부분은손대지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뒷 부분 번역: "넌 어떻게 생각해?" 는 작가의 의도로 볼 때, 제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단순하게 you-neun-uh-tuk-hae-saeng-gak-hae 의 뜻을 풀이한 것 이외에 다른 의미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되니깐요. 한국독자도 첫 문장 만으로 작자의도대로 유머를 알아챌 수 있는데 굳이 뒷부분까지 유(you)는 어떻게 생각해?로 번역하는 건, 작자의도를 훼손하는 것이 되겠죠?
사실 나도 우리말에 존대어와 하대어의 구분이 사라지고 하나로 통일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언어가 인간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말에서부터 관계를 위.아래로 구분짓는다는 것이 그리 좋은 것 아닌 듯. 생활속에서 반말했니 어쨌니로 다투는 경우도 흔하지 않나.. 반말 듣고 겉으로는 티 안내도 속으로 기분나빠하는 경우도 있고. 존대어와 하대어의 구분이 없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니만큼 우리말도 존대어가 지금보다 단순화 됐음 좋겠음.
저도 영어처럼 급진적인 평등 사고는 찬성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호칭문제로 쓸데없이 인간관계에서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화될 필요는 있겠죠. 한국사람도 헷갈리는 호칭..
윗글 중간에 보이는 남편과 아내의 대화도 남편은 반말, 여자는 존댓말..(이런 건 남편이 연하라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대다수) 원문을 번역한 사람의 의식구조 자체에 벌써 그런 틀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임. 말에서부터 한쪽은 위, 한쪽은 아래로 구분이 딱 되어지는 것이 좋게 생각되지는 않음.
음 외화번역시 부부간 대화는 그런 구조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그 틀을 따랐구요. 그걸 가지고 의식구조 운운한다는 건 좀 편협한 사고 같습니다. 그 부분까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참고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한국말 보다 영어가 편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이지만 한국말도 꽤 가능한 사람으로서 한글을 바라보고 있네요. 즉, 영어 사용자로서 한국어와 문화의 단점 및 영어와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어요. 당연히 기분 상해야 되는 건 아니지만, 기분이 나빠질 수 있는 글입니다. 한국에서 2~3년 살았던 적이 있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어와 그에 따른 문화 같네요.
음..역시 그녀는 미국인입니다. 한국문화를 제대로 모르고 무조건 자신이 살던 미국인의 눈으로 무엇이든 편리한것으로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언어는 그나라의 문화의 집결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녀는 미국의 문화는 잘알지만, 한국의 문화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글을 쓰다니..어디가서 한국인이라고 말하기 창피할것입니다. 한국인에게 언어는 자신을 보이는 거울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가며 지켜온 우리말과 글입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언어로써 우리가 자신 마음과 어른을 존경하고 배려하는 그마음 자체를 행동인 말로 행하는 모습을 저렇게 간단하게 단지 실용적인 측면으로만 보다니요..
한 언론인으로써 자신의 문화와 다른 문화의 차이를 쓰고 싶다면 제대로 그 문화를 알고 썼으면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