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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4월 9일, 대한민국 제18대 총선 국민주권을 유일하게 행사하는 그러나 그것이 민주주의의 전부가 되어버린 선거일이다. 각자 옳은 데로 소신껏 투표하겠지······. 그러나 그 결과가 심히 걱정스럽기만 한데······. 사람답게 사는 것보다 잘 사는 게 지상최대 목표······. 아니 아무 것도 필요 없이 "잘 살기만 하면 좋다"는 실용주의 그 거침없는 소용돌이가 난 두렵다······. ▶ "잘 살아보세" 원조 박정희 시절의 4월 9일 1975년 4월 9일은 제네바의 국제법학자협회에서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던 "인혁당 관련자 처형 33주년"이 되는 날이다
박정희 시절의 대표적인 용공 조작 사건이자 박정희 유신체제의 광기가 섬뜩하게 드러난 날 가운데 하나다. 서도원(52. 무직. 전 대구매일신문 기자), 도예종(51. 삼화토건회장), 하재완(43. 양조장 경영), 이수병(37. 삼락일어학원 강사), 김용원(39. 경기여고 교사), 우홍선(45. 한국골든스탬프사 상무), 송상진(46. 양봉업), 여정남(31. 무직. 전 경북대학생회장) 여덟 사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대법원이 형을 확정한지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1975년 4월 9일 아침. 서대문 구치소 앞의 조그마한 공간은 그야말로 눈물과 통곡, 그리고 바탄의 바다였다. 대법원 판결이 내린 바로 다음날 새벽 4시부터 같은 사건의 관계자 8명이 잇따라 처형된 경우는 아마도 그 유례가 없을 것이다. 느닷없는 사형집행 소식을 듣고 시체라도 찾기 위해 몰려온 가족들은 모두들 넋이 빠진 사람들처럼 몸부림치며 통곡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느님 아버지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는데 어떻게 여덟 생명 앗아갈 수 있나. 뉴스 듣고, 여덟 사람 소식 듣고, 가족들 꿈이길 바라, 정말 꿈이길 바랐으나······." "신부님들 안 죽을 거라 하더니 이렇게 죽었지 않아요? 안 죽는다더니만 이렇게 죽었지 않아요?" 하고 신부님들의 옷깃을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유언 조작, 포크레인까지 동원된 시체 인수 과정의 그 희비극적인 작태들. 소위 인혁당 신부라고 불리시던 문정현 신부님은 시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차라리 나를 깔고 가라"시며 길바닥에 드러누우시고. 영구차는 경찰차의 호위(?)아래 강제로 화장터로 향하고. 겨우 빼앗아 온 시신에는 끔찍한 고문 흔적, 흔적들.
인혁당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로 스러져한 여덟 명 중의 한 사람인 우홍선 피고인의 부인 강순희씨는 “나는 남편이 사형당한 이후 신문에 나는 박정희 사진을 그가 죽을 때까지 약 5년간 이가 아프도록 꼭꼭 씹어서 뱉곤 했어요.”라고 말하면서 남편 산소에 매주 꽃을 들고 찾아가서 ‘살인마 박정희 천벌을 받으라!’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제 오늘······. 나는······. 타국에서······. 목이 마른다······. 목이 탄다······. |
첫댓글 이명박 정권을 타도 하자.....
민주주의 만세!!
답답한 국민들이 많습니다.. 숨이 막힙니다.. 큰집님 타국에서 고생 많으십니다.. 잘지내시는지요?? ^^
네에 님의글 잘 봅니다 타는 목 마름으로....저도 외쳤지요 예전에...
바로 서는 대한민국을 위해...
나.1827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