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업자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께 2억6864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민호(43·사법연수원 31기) 수원지법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법관징계위원회가 9일 최 판사에 대해 정직 1년이 의결함에 따라 양승태 대법원장은 조만간 징계를 내리고 사표를 수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직 1년은 법관징계법상 가장 무거운 징계다. 하지만 최 판사가 현직 법관으로서는 처음으로 구속기소됐다는 점, 전면적인 법조일원화를 앞두고 일벌백계(一罰百戒)의 필요성이 높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집행도 이뤄지지 않는 징계로 끝낼 것이 아니라 탄핵을 통한 파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최 판사에게 할 수 있는 제재는 검찰의 공소제기를 통한 알선수재에 대한 형사재판, 사법부 자체의 징계, 국회의 탄핵 소추 방안이 있다.
법관에 대한 탄핵은 헌법에 따라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헌법 제65조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발의안이 통과돼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하면 최 판사는 공직에서 파면된다. 파면되더라도 최 판사에 대한 형사재판은 그대로 진행된다.
파면이 확정되면 변호사법에 따라 변호사 등록이 5년 동안 제한되고 대한변호사협회의 등록 거부사유가 될 수도 있다. 퇴직급여 감액 사유도 된다. 법관이 형사재판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파면돼도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탄핵에 의한 파면과 유죄판결로 인한 파면은 그 사유가 다르기 때문에 엄정하게 절차를 따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재판은 금품 수수에 대한 행위에 대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고, 탄핵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을 때 소추하는 것이기 때문에 요건이 달라 충분히 별개의 절차로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구나 법원에서 직무 관련한 범죄에 대해서는 징계 처분을 받았다는 것을 이유로 감형을 해주기 때문에, 별도의 탄핵 절차를 통해 책임을 엄하게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1947년 재판관탄핵재판소가 출범한 이래 법관 9명에 대한 탄핵소추가 있었고 이 중 7명에 대한 파면 결정이 있었다. 판사가 파산관재인으로부터 골프용품과 양복 등을 받은 혐의, 음주와 식사 등 접대를 받은 혐의, 직무 해태, 원조교제, 법원 여직원에 대한 스토킹, 지하철에서 여성의 속옷을 촬영한 혐의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故) 유태흥 전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사건이 있었다. 유 전 대법원장은 당시 인천지법 판사로 근무하던 박시환(62·12기) 전 대법관이 1985년 불법시위 혐의로 즉결심판에 넘겨진 대학생들에게 무더기로 무죄를 선고하자 그해 9월 인사에서 춘천지법 영월지원 판사로 좌천했다. 또 법률신문에 칼럼 '인사유감'을 기고해 박 대법관 등에 대한 인사를 비판한 서태영 판사도 울산지원으로 좌천했다. 이 일로 일선 법관들이 반발해 사법파동이 일어났고, 국회는 유 전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탄핵안은 재석 247명 중 찬성 95, 반대 146, 기권 5, 무효 1표로 부결됐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이번 최 판사 사건 이전에도 판사의 금품수수 사건이 있었지만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국회가 부담을 느낀다는 것"이라며 "특히 탄핵소추안 발의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관에 대해서는 국회 탄핵을 통한 파면을 함으로써 법관의 위상과 책임에 걸맞는 처벌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도 거세다.
한편,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위원장 민일영 대법관)는 9일 최 판사에 대한 징계 심의를 비공개로 열고 "최 판사가 법관의 품위를 손상하고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며 정직 1년을 결정했다. 양 대법원장은 곧 징계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여 최 판사에게 징계 처분을 하고 관보에 공고할 예정이다.
최 판사는 지난 2010년 3월 '명동 사채왕'으로 불리는 사채업자 최모(61·구속기소)씨로부터 지인의 수사를 무마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1000만원을 받고, 2011년 12월 1억원을 받는 등 모두 1억1000만원을 받은 사유로 징계위에 회부됐다. 이 밖에도 최 판사는 2009년 최씨로부터 사건 로비 대가로 1억5864만원을 더 받은 혐의를 받고 있지만, 이 부분은 징계시효(3년)가 지나 징계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징계위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