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사회에서도 어쩔 수 없는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잘못된 관계를, 이렇게 마음에 와 닿게 잘 표현한 엄 상익 변호사의 글을 만나 공유하고싶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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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몇 명의 선배들과 점심을 함께하는 모임에 나갔다. 많은 세상 경험과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진 분들이었다.
재벌은 아니지만 상당한 부자인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죽은 일본 아베 총리는 귀족이고 부자 출신이면서도 틈만 나면 노숙자나 서민들을 찾아갔어요. 자민당이 계속 집권한 배경에는 양극화의 감정대립을 방지(防止)해 온 그런 노력에 있기도 해요. 일본은 부자들이라도 겸손하고 소박하게 생활해요. 그런데 우리 재벌은 그런 정신이 무너지고 있어요.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지금 실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어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다른 선배가 물었다.
“예전에는 보통사람이 밥과 김치를 먹을 때 부자는 고기를 먹을 정도의 차이였어요. 그런데 산업화 과정에서 재벌이 만들어지고 그 3세 4세가 기업을 물려받은 요즈음 그들의 철없는 사치가 엄청난 것 같아요.
집안에 궁전같이 방을 꾸미고 전속 세프가 만들어 주는 요리를 먹는 겁니다. 그 옆에는 정장을 한 웨이터가 시종장처럼 서브를 하고 있구요. 한번 같이 그런 식사를 한 사람은 주눅이 든다고 하더라구요.”
드라마의 그런 장면을 과장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 게 실제로 있다는 소리였다. 그 선배가 말을 계속했다.
“사실 국민들은 심정적으로 그 재벌기업의 공동주주인 면이 있어요. 박정희 대통령 때 ‘저축의 날’이라는 게 있었잖아요? 온 국민에게 저축을 강요하고 그 돈을 재벌에게 거의 무이자로 건네줬어요. ‘
국민투자기금’이라는 걸 만들어서 말이에요. 재벌에 대해 정부가 보증을 서주고 손해가 나면 정부가 갚아줬어요. 정부가 갚아준다는 건 국민한테 받은 돈으로 물어줬다는 소리죠. 그러니까 이익이 나면 재벌이 먹고 손해가 나면 국민이 당한 셈이죠.
국민들이 재벌가의 형성에 일조를 한 겁니다. 그러니까 재벌들은 그걸 알고 감사하고 겸손해야 하는 겁니다. 자기네들이 세금을 내서 국민들을 다 먹여살린다고 말해서는 안돼요. 그런데 지금의 우리 사회는 완전히 재벌과 서민으로 나누어지는 ‘계급사회’가 된 것 같아.
그 계급의 이동도 불가능하게 됐어요. 서민들이 수십억이 되는 아파트를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림없죠. 재벌들의 혼사만을 담당하는 중매회사가 따로 있어요. 재벌집 아이들이 스무살만 되면 그 아이들의 모든 걸 관리하면서 재벌가끼리 짝을 맺어주는 겁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도 재벌가 자식들이 입학하기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어 있어요. 미국의 미술경매시장을 한번 가봤어요. 한국의 재벌들이 최고의 고객이더라구요. 고가의 미술작품들을 이용하면 상속세도 내지 않고 자식한테 재산을 물려줄 수 있어서 그런지도 몰라요.”
얼핏 들으면 재벌에 적대적인 좌파의 주장 같기도 했다. 그러나 말하는 선배는 철저하게 우파를 대표하는 명예와 부를 가진 유명한 지식인이었다. 사회적 지진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예언자의 말 같았다. 정보통이고 분석의 귀재인 그가 덧붙였다.
“이번에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와서 재벌기업과 손을 잡은 것만 봐도 있는 자는 더 있게 되는 걸 보게 되요. 바이든이 우리 재벌에게 미국의 땅을 그냥 줄 테니 투자를 하라는 거였죠. 약속이 된 거 같아요.
미국측은 자기네 노동자들을 고용하라는 조건을 붙였죠. 땅값은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재벌들은 엄청난 땅을 거저 얻어 더 큰 부자가 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미국에 투자하는 돈이 재벌의 돈이 아니란 말이에요. 우리의 국민연금기금이나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아 미국에 투자하는 거죠. 시간이 흐르면 돈벼락을 맞게 되는 거죠.”
그가 이렇게 결론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나라 건국 초 헌법이 만들어질 때 이승만 대통령은 ‘이익균점권’이라는 조항을 넣자고 했어요. 자유민주주의를 하되 부자나 지주의 이익을 국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하자는 정신이었죠.
그런 입장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지주들이 독점하던 농지를 유상으로 소작농에게 분배시켜 이 나라가 공산화 되는 걸 막았어요. 지금 대우조선 등의 노조 등에서 극한투쟁을 하는 배경에는 ‘왜 재벌 너희들만 이익을 다 먹느냐’ 하는 그런 것들이 잠재해 있어요.
재벌들이 겸손하고 국민들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가 사회주의로 넘어가고 그들이 단 한 푼도 가지지 못하는 날이 오게 됩니다.”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성경 속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평한 장면이 떠올랐다. 빚을 져 부자에게 딸을 노예로 빼앗긴 가난한 사람들이 말한다. 우리들이 어떻게 부자들과 같은 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민족대회가 열리는 장면이었다.
몇 명이 모여 자유롭게 얘기하는 사석의 말이기에 나는 더 진정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 최보식 의 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