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가집 동생 부부가 승용차를 새로 사주었다. 부끄럽고 부담되는 일이지만
사자암의 경제는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아 자동차 바꿈은 조금은 버거울 수도 있을 터.
하여, 이번까지 신세를 여러 차례 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차를 몰고 지리산을 자주 간다. 정해진 목적지도 없고 오라며 반기는 사람도 없다.
유명한 절이나 아는 스님을 피해, 작은 절 모르는 곳으로 차를 몰고 간다.
아무 사찰에서나 나의 현주소를 밝히지 않은 채,
식은 밥이든 남은 국수든 상차람을 마다하고 선 채로 훌훌 먹고는 다시 길을 나서는 나그네의 삶을 즐긴다.
방랑객 객승 취급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사찰에서는 불쌍한 처지의 딱한 노승으로여겨 몇 푼의 동정을 베풀지만 한 차례도 받은 바 없다.
그저 찬밥을 먹으면서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며 합장으로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그 자리를 바람처럼 떠나온다.
어떤 사찰의 경우 젊은 스님이 호되게 나를 꾸짖으며 수행자로 되돌아가라며 질타한 적도 있지만,
그저 고맙고 감사한 좋은 스승이요 착한 벗으로 다가온다.
어떤 절의 할머니보살은 자기와 함께 살며 목탁 치는 부전을 하라며 꼬드기는 일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짠하고 동정 똑으로 기우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경전 속의 가르침이 되어 나에게 밝은 빛을 더해준다.
상대가 누구이든 장소가 어디이든 몇 년째 지리산 순례를 즐기는 나에게는
그들의 몸짓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새로운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SUV 차량의 뒷좌석을 떼내고 마루를 깔아, 끼니 걱정쯤은 누룽지와 라면으로 거뜬하게 해결한다.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차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 만나야 할 사자암의 부처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설렘이다. 또 다른 경전이요, 스승과 벗을 만나는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