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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왕숙천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진접 여경구 가옥 전경 >
남양주 태묘산(태봉, 胎峯) 자락 원내곡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진접 여경구 가옥(榛接 呂卿九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29호,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금강로 961번길 25-14)은 고(故) 여경구 씨의 장인인 연안이씨(延安李氏) 이덕승의 8대조가 약 250여 년 전에 건립했다고 전해지는 집이다. ‘연안이씨 동관댁’이라고도 불리는 이 집은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 배치한 대문채·사랑채·안채·사당이 비교적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조선 후기 이 지역 사대부가의 건축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사랑채와 안채가 앞뒤로 배치된 일반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마을을 향해 옆으로 나란히 지었으며 안채는 ‘T’자형의 독특한 구조로 공간 구성을 하고 있다.
가파른 길을 올라 대문채에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 너머 잘 다듬어진 큼직큼직한 기단 위에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사랑채와 그 옆으로 길게 ‘L’ 자형 광채가 있다. 사랑마당에 서면 여기까지 올라온 수고가 헛되지 않을 만큼 시원하게 탁 트인 전망에 다시 한 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집 뒤로는 고목들이 호위하듯 둘러 서 있고, 앞으로는 마을과 굽이굽이 흐르는 왕숙천(王宿川) 너머 들판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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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채 >
정면 4칸 반, 측면 1칸 반 규모의 ‘一’자형 사랑채는 큰 사랑방, 대청, 작은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쪽으로 반 칸의 툇마루를 설치하고 뒤쪽으로는 쪽마루와 벽장을 두었다. 대문채는 솟을대문을 가운데 두고 외양간과 행랑방을 좌우에 배치했다. 사랑채 맞은편에 헛간채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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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채 >
앞마당을 중심으로 배치한 ‘L’자형 광채의 중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먼저 내외벽이 방문객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만든다. 물론 안채에서도 잠시나마 손님맞이 채비를 할 여유가 생기게 될 테이고.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높은 기단 위에 독특하게 ‘T’자형 구조로 설계된 안채가 자리하고 있다. 생각보다 기단이 높아 어른들이 오르내리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면 7칸, 측면 1칸 안채는 가운데 넓은 대청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건넌방을, 오른쪽으로는 안방, 안방에 연이어 2개의 방과 광을 연결했다. 그리고 안방 앞으로 돌출된 넓은 부엌을 두었다. 대청 앞으로는 툇마루를 두어 건넌방과 연결되게 하고, 안방과 이어지는 작은방 앞으로는 쪽마루를 설치해 다니기 편리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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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당 측면의 꽃담 >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자리한 광채는 꺽어지는 모서리에 안채로 출입하는 중대문을 두었고, 안채와 사랑채가 만나는 부분에 또 하나의 통로인 협문을 설치해 중대문을 통하지 않고도 안채로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사랑채 쪽으로는 2개의 큼직한 광을 두고 사랑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고려했고, 안채 정면에 외양간과 광, 뒷간을 배치해 안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부엌 동쪽으로는 조그만 뒤뜰과 우물이 있어 안살림을 하는데 편리하도록 했다.사당은 사랑채 뒤편 한단 높은 곳에 따로 세웠고, 2칸 규모의 사당 좌우 벽은 꽃담으로 장식해 놓았다. 벽이 허물어져 보수를 하면서 예전의 아름다웠던 그 모습을 살리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이것 또한 이 집안의 역사로 남게 되리라.사랑마당과 안마당은 앞면이 터져 있어 전망이 시원하도록 별도의 정원은 꾸미지 않고 안채 뒤꼍은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 화단을 만들어 우리 꽃을 심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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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접으로 가기 전 먼저 서울 북촌에서 신경정신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고(故) 여경구 씨의 차남 여인중 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외가댁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가 않아 집안 내력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딸만 있고 아들이 없어서 맏사위인 아버지께 이 집을 물려주셨다고 한다.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 댁에 놀러갔던 기억과 민속촌이 없을 당시 사극이나 영화촬영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곳에 머물면서 고향 같은 푸근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선생께서는 청소년 관계 일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노후에는 그곳에서 내려가 청소년 학교나 청소년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운영하고 싶고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도저히 살 수 없는 선조의 숨결이 담겨있는 이런 집을 남겨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하셨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는 보수를 한다고 여기저기 25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어수선하더니 이번엔 말끔하게 단장을 끝내고 당당하게 제 모습을 다 보여주고 있었다.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진접 여경구 가옥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묵묵히 자신을 지키며 진정한 가치를 알고 다시 찾아 줄 주인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