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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별곡
한 승 원
1
안골 연안의 모래밭에 붙은 멧기슭의 손바닥만 한 보리밭으로 허우허우 달려오는 할머니의 귀에 「아리랑 타령」 한 가닥이 서려 있었다.
재 너머 마을은, 아비와 함께 징용에 갔다가 억수로 돈을 벌어가지고 나온 달식이네 아버지가 마을의 회관 짓고 사장에서 넓바위 선창까지 신작로 만들 돈을 내놓고, 돼지 두 마리에 술을 내놓는 바람에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늙은 축은 달식이네 마당을 차지하고, 젊은 축은 아랫골목의 사장을 차지한 채 노래하고 춤추고들 있었다. 이날의 주역인 달식이네 아버지가 자꾸 「아리랑 타령」을 부르자고 했고, 그를 둘러싼 또래의 노인들이나 사십 대 오십 대의 중년들이 모두 그 노래를 부르는 탓으로 마을 안은 온통 아리랑의 물결이 판을 쳤다.
이웃 마을인 삼리나 죽산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 실카장* 먹고 마시고 돌아가면서 추는 춤과 부르는 노래 넋두리 때문에 골목들은 물론 주변의 산과 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우렁우렁 노래를 하는 듯했다.
그런 속에서 마을 아낙네들 사이에는 머리끝이 곤두서고 가슴을 저미게 하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장인 정창호가 돈을 훔쳐가지고 도망치는 큰딸 영심이를 잡아다가 방 안에 가두어놓고 옷을 갈기갈기 찢어 벗긴 다음, 너무 깊이 박히지 않도록 송곳 끝부분에 실을 많이 감아 들고 허벅다리를 밤새 쪼아댔다는 것이었다. 영심이가 숨넘어가는 듯한 소리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살려달라고 하며 울부짖어댔지만 영심이네는 귀를 막았는지 지레 어디로 도망을 쳤는지 그 방에 얼씬하지를 않았다더라고 했다. 거기 대하여 아낙네들은 “독살스런 놈, 지옥에도 못 가겄네” “아무리 이녁 딸이라고 그렇게 빨가벳게서 작살내는 법이 어디 있당가” “법만 없으면 잡아서 회 쳐 묵었을 놈이구만잉” 하고 정창호를 욕하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귀때기에 피도 안 마른 년이 이놈 저놈 붙어묵다가 칼부림 나게 해놓고, 그새 또 어느 놈에 붙었는지 돈을 돌라서* 달아난 것을 생각하면 맷돌에다가 갈어뿌러도 싸겄네” “옛날 같으면 두 가랭이를 쫙 찢어갖고 이 간짓대* 저 간짓대 끄트머리에다가 달아놓고, 질 가는 사람들한테 구경을 시켰드라네, 칼부림 나게 한 그런 년들은” 하는 무리도 있었다.
밭둑에 선 할머니는 정말 그런 년은 육시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때같은* 손자 철승이 바로 그 영심이 때문에 칼부림을 내고 죽었으니 말이었다. 정창호가 달식이네 집 잔치에 얼굴을 내밀지 않은 것을 보고 숙덕거리는 아낙네들의 말을 들으며 할머니는, 왜 진즉 딸 간수를 잘하지 않고 있다가 탈이 나버린 뒤에야 늦게 잡고 되게 채고 있느냐고 속으로 볼멘소리를 했다. 여느 때 길거리에서 만나면 흰떡 같은 얼굴에 까맣게 박힌 눈으로 이편을 바라보면서 허연 떡니를 내놓고 웃곤 하던 영심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게 바로 그년의 화냥기였던 것을, 세상을 살 만큼 산 자기도 그게 그렇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손자를 미처 타이르지 못했던 것이었다.
할머니는 박살난 으등카리처럼 조각난 주름살들을 굳히면서 이를 물고 한숨을 쉬었다. 제 새끼 잡아먹는 호랑이 없다고 다 사정 두고 하는 짓일 뿐이지 자기 딸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죽이네 살리네 해싸도 죽어 흙밥 된 놈만 불쌍한 것이었다.
밭귀에서는 놀짱놀짱해지는 보리 까라기*들 사이로 하얀 찔레꽃 한 떨기가, 소복한 채 상여 뒤따르며 함박눈 맞은 과수댁의 흰 얼굴처럼 맥없이 바닷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 쓴 지 한 달 남짓한 새 무덤이 있었다. 덮인 잔디 사이로 붉은 황토흙이 드러나 있었다.
“육시럴 놈, 이르쿨로 찐득찐득 살고 있는 내 꼴 본께 씨언할 것이다.”
할머니는 죽은 손자가 원망스러웠다. 넓바위 쪽에서 미역가공공장의 양수기 엔진 소리가 온 해안을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가 할머니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바닷귀신은 무얼 하느라고 저놈의 미역가공공장을 쓸어가버리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던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모두들 잘 먹고 잘 살아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색 바랜 검정 치맛자락을 걷어 허리에 찌르고 밭고랑으로 들어섰다.
쪽빛 바다 물굽이에 부딪힌 햇조각들이 찔레꽃잎에 설핏 걸터앉았다가 하필 할머니의 눈으로만 날아오고 있었다. 손등으로 눈물 어려 흐릿해진 눈을 비비면서 밭고랑을 내려다보았다. 지고 새면 이 밭으로 달려 나와 김을 매고 북을 주고 한 터라, 고랑이나 보릿그루 사이에는 검누른 흙이 있을 뿐 귀리는 물론이요, 이런 갯가 밭에 흔한 바랭이*나 갈퀴덩굴 한 가닥이 없었다.
할머니는 보리밭 언덕으로 나와서 쪼그려 앉았다. 언덕에서 무성하게 자라 보릿그루로 잎을 뻗은 억새풀이나 띠풀 줄기를 뜯었다. 가슴이 멀미한 속처럼 울렁거렸다. 달식 이네 아버지가, 영보의 아비하고 함께 일본 오사카로 끌리어 가던 일을 생각하면 가슴에 피멍울이 맺힌다면서 억지로 끌어다가 부어준 술을 석 잔이나 거푸 마신 때문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달식이네 아버지가 무정하다고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손을 내저으며 술이고 뭐고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넓바위 선창까지 길을 내면, 우리 밭을 다 길로 잡아넣게 될 것이 아니냐고, 만일 그렇게 되면 아들과 손자의 무덤이 모두 길 한복판으로 튀어나오게 된다고, 그렇게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아주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우리 밭은 한 자 한 치도 파먹어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로 하고 신작로를 낸다는 확약을 하여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신작로를 내기 시작하는 날이 나 죽는 날이라고, 할머니는 달식이네 아버지를 붙잡고 애원을 하여댔다. 달식이네 아버지는 ‘조선말’ 한 지가 하두 오래되었기 때문에 서투르다면서, 여부 있느냐고, 달식이한테 모든 것을 잘 부탁할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떠듬떠듬 말하면서 술을 권하는 바람에, 내리 석 잔이나 거듭 들었던 것이었다.
눈앞이 보얗게 흐려지면서, 가슴이 감태라도 한 입 잘못 삼켜서 걸린 듯 답답하여왔다. 술을 마신 탓일까. 새삼스럽게 영보 아비 생각이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무정한 아비였다. 해방되면서, 함께 징용에 간 사람들은 모두 돌아왔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고 해쌓던 달식이네 아버지한테서는 6 .25가 지난 이듬해부터 한 달이나 두 달 만에 편지가 오곤 했었다. 그랬다가 이렇게 억수로 돈을 벌어가지고 돌아온 것이었다. 한데 이 무정한 사람은 해방되던 때부터 이날까지 감감무소식이었다.
달식이네 아버지는 일본 여자를 얻어 아들딸 낳고 살림을 하느라고 이때껏 이 땅에 나오질 않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이 무정한 사람도 제발 덕분에 그러기라도 하느라고, 정말로 얻은 일본 여자가 박꽃같이 예뻐서 찰떡같이 정이 들어버렸기 때문에 소식을 그렇게 끊어버리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저쪽(이북)으로 머리 쓰는 사람들하고 손을 잡거나 어쨌거나 했기 때문에 이때껏 이 땅엘 건너오지 못하던 사람들도 이 몇 해 들면서는 모두 올 수 있게 되었노라고 하던 것이지만, 이 막막하고 무정한 사람은 그것도 모르고 일본 어느 산골이나 해변 구석에 처박혀 살고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 싶었다.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해방되던 해 징용군들을 태운 배 두 척이 대마도 근처의 바다에서 가라앉아버렸다던 말을 생각했다. 답답하게 차오른 가슴속의 덩어리를 하아 하고 내뿜으면서, 죽는 게 그렇듯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라도 이 보리밭 고랑에 꿍 드러누워서 눈을 힘주어 감고 숨을 안 쉬어버리면 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누워버린 몸뚱이에 누가 흙 한 줌 덮어줄 것인가. 숨이 막혔다. 허리를 펐다. 산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 같은 어둠이 눈앞을 가렸다. 피용 하고 귀가 울었다. 보리 이삭을 헤치고 손자의 무덤 앞으로 나왔다. 무덤 위의 듬성듬성한 잔디에 기대앉으면서 할머니는 며느리를 원망했다. 손자가 죽은 것도 따지고 보면 며느리 때문이라고 생 각했다.
“서방 까묵고, 새끼 잡아묵은 년, 어디 가서 얼마나 잘 산가보자.”
이렇게 중열거리던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날벼락 맞을 소리를 하느냐고 했다. 며느리로 보아서는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쪽빛 물굽이에 잔물결이 일고 있었다. 아득하게 바라다 보이는 금당도와 소록도 뒤로 솜털 같은 구름이 피어올랐다.
술이 건들하게 취한 남자의 컬컬한 노랫가락이 산줄기를 타고 계곡을 감돌아서 할머니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였다. 그 노래 줄기를 따라, 퍼덕퍼덕 살아 날뛸 손자를 죽게 만든 것이 아무래도 며느리와 늙은 자기이거니 하는 생각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할머니는 혀를 깨물었다. 며느리 년이 어느 놈을 안고 돌든지 말든지, 또 소갈머리* 없는 손자가 제 어머니를 안고 도는 바로 그놈을 멋모르고 따르든지 말든지 그저 모르는 척하고, 손자의 허리띠를 붙잡고 딴생각을 못하게 하고, 사립 밖에 나다니지 못하도록 얼싸안고 돌았더라면, 그렇듯 허망하게 놓치지는 않았을 것을 그랬다 싶었다.
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그날 아침, 손자 철승이는 벽장에서 검붉은 피를 칠해놓은 듯한 깡깡이(기타)를 내려 안고 윗목 구석으로 두르고 앉아 줄을 퉁기고 있었다.
산신령이나 용왕님네가 알이라도 낳듯 뻥 낳아주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만 같이 다행스럽고 귀엽고 고마운 씨요, 아들 죽은 뒤, 네가 언제 커서 내 서방 되어주겠느냐고 아쉬워하며 코흘리개 신랑 키우는 생과부처럼, 놓으면 깨질까 불면 날아갈까 하며, 횃대*에 매달아 늘일 수 있을 것 같으면 늘이고 싶을 만큼 어서어서 키우고 싶던 손자 철승이가 이해 스무 살이었다. 올 가을이나 겨울에는 마땅한 데가 생기는 대로 여의살이*를 시킬 생각을, 늦봄의 묵은 김치 우거지 다독거리듯 다져오는 할머니는, 정초에 토정비결을 보니 3∼4월 운수가 아주 불길하더라면서, 제발 재익의 아들 성삼이하고 더 ‘웬수야 악수야’ 하고 다투지 말라고 타이르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이놈은 또 그게 듣기 싫어 깡깡이를 내려 안은 것이었다.
깡깡이 소리는, 이제 겨우 「아리랑 타령」 한 곡초를 배웠을 뿐이어서인지 어째서인지, 자꾸 들어봐야 그 소리가 그 소리였다. ‘똥 누러 갔다, 오줌 누러 갔다’를 몇 번 하는 듯하다가 ‘아리랑 타령’을 하곤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놈은 싫증 내지 않고 열심히 퉁겨댔다. 오죽한 손자라고, 그 손자가 퉁겨대는 깡깡이 소리가 귀 아파 못 견딜 만큼 싫을 것인가. 얼핏 들어 코맹맹이 소리일 뿐이요, 거기에서 절 나오고 돈 나오지 않을 것이언만, 그렇게 퉁기고 있는 손자의 모습을 한없이 보고 싶어지는 할머니였다. 다만, 그 깡깡이를 하필 재익의 동생인 재술이가 가져다가 준 것이라는 게 꺼림칙하고 싫은 정이 들 뿐이었다. 기름장사 밑구멍처럼 미끄럽고, 소록도 가는 나그네의 콧구멍에서 마늘씨 뽑아 먹을 만큼 간사스러운 떠돌이 장사꾼인 재술이가 왜 자기 것 아까운 줄 모르고 이걸 철승이한테 선뜻 준 것인지를 할머니는 잘 알고 있었다.
툇마루로 나왔다. 검은 땟국이 앉은 널빤지가 비거덕거렸다. 흙담 위로 밝은 공기를 뚫고 쏟아진 4월의 햇살에 눈이 부셨다. 이해 마흔 살 되는 며느리는 넓바윗개의 모래밭가에 있는 손바닥만 한 밭으로 김을 매러 나갔다, 그 며느리를 뒤쫓아 가서 타이르고 싶은 말이 있었다.
전날 밤, 할머니는 며느리가 잠을 못 이루고 자꾸 한숨을 쉬어쌓다가 집을 나가는 것을 살금살금 뒤따라 가보았던 것이었다. 며느리는 넓바윗개로 가는 앞메 잔등을 넘더니 모래밭에 붙은 밭으로 가고 있었다. 가슴이 꽉 막힌 듯 아파왔다. 밭귀에는 제 서방의 무덤이 있었다. 오죽이나 복장이 터질 듯 아픈 멍울이 차올랐으면 저렇게 한밤중에 서방 무덤을 찾아가는 것이겠느냐고, 피둥피둥 젊은 시절을 한숨만 쉬며 살아온 할머니는 목줄이 대릉처럼 뻣뻣해지고, 가슴이 양잿물 덩이라도 삼킨 듯 아리고 쓰리면서 화끈거리는 것을, 이 악물어 침 삼켜 삭이고 긴 숨을 들이쉬면서 눈살을 찌푸려 달랬다. 기둥서방 얻어놓고 사는 꾀를 진즉 귀띔해주었는데도, 저 불쌍한 것이 비틀걸음* 한번 걸을 생각을 못하고 있다 싶었다. 이 시어머니가 파서 만든 용달샘 물 길어 마시고, 거적문 늘어뜨린 부엌 드나들며 냄비밥 지어 먹어온 며느리가 간덩이가 크면 얼마나 커서 제 서방 아닌 어느 남정의 허리 안고 돌 만큼 잡되어 있을 것인가. 밤이면 암내 낸 개같이 마을의 사랑방 문틈으로 사내 냄새를 맡으러 다닌다더라는 터무니없는 소문은 어느 연놈이 지어 퍼뜨린 것인지는 몰라도, 그 입 놀리는 사람들은 제명 대로 살지 못하고 벼락을 맞아도 칼벼락을 맞으리라.
울려는 사람 실컷 울게 해야지 못 울게 하면 안 되느니라 하며 발을 돌리려는데, 밭귀에서 도란거리는 남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세웠다. 며느리가 귀신에 씌었는지도 모른다 싶었다. 귀신에 씌었다면 분명 아들 귀신일 것이었다. 머리끝이 쭈뻣 서는 것이었으나, 바위 뒤에 몸을 숨기면서 발소리를 죽이고 밭귀 쪽으로 다가갔다. 귀신이 되어 나타난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바위 모서리에 얼굴을 기댄 채 밭귀의 아들 무덤을 바라보았다. 넓바위 연안에서 앞메 잔등 위로 펼쳐진 설익은 먹딸기 빛깔의 하늘에 민들레 꽃가루 같은 별들이 줄레줄레 달려 있었다. 가득 밀려 오른 바닷물은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원시 양서류처럼 넘실거리면서 잠든 사람의 숨길처럼 불규칙 적으로 게으르게 모래톱을 핥고 있었다. 그 물결에서 민들레 꽃가루 같은 별들이 덩어리지기도 하고 더욱 잘게 깨어지기도 하고 있었다. 아들의 무덤 주변에서는 바야흐로 흐드러진 보리 잎사귀들과 산기슭의 곰솔숲이 드리운 암청색 어둠을 별빛이 눅여놓고 있었다.
새로 맞춘 개량(2리터)되를 두 개 포개놓은 것만 한 상자에 담겨온 아들의 허깨비같이 가벼운 유골이 생각났다. 그 유골 묻힌 무덤 앞에 며느리는 엎드리거나 쪼그려 앉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볼수록 그 무덤 주변의 별빛에 눅여진 암청색 어둠은 소용돌이치듯 술렁거리고 있었다. 그 술렁거림 속에서 며느리는 울고 있었다. 할머니가 기대선 바위에서 스며드는 차갑고 딱딱함이 가슴을 차갑게 굳히고 있었다. 바위 모서리를 으스러뜨릴 듯이 잡아 쥐었다.
찰브락거리는 물결에 섞여 들려오는 며느리의 울음소리는 예사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며느리는 앓고 있었다. 그것은 숨넘어갈 듯이 헐떡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뱀에게 먹히는 개구리처림 목줄이 늘리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남자의 억누름에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쥐약 같은 것을 먹고 혀가 굳어서 버르적 거리면서 내는 단말마의 비명 같기도 하고, 호랑이나 도둑에게 쫓기는 꿈을 꾸는 사람이 발버둥치면서 낑낑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머리끝이 곤두섰다. 며느리가 팍팍한 이놈의 세상 못 살겠다 하고 쥐약이나 농약 같은 것을 먹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싶었다. 워따 어메, 이 일을 어째사 쓸꼬 하며 우르르 달려 나가려는 순간, 남자의 끙 하는 안간힘 소리가 술렁거리는 어둠을 발끈 뒤집었다. 동시에 며느리의 외마디 비명 같은 “여보” 하는 소리가 할머니의 뒤통수를 때렸다. 머릿속에 두 마리의 검은 구렁이가 그려졌다. 허벅다리처럼 굵고 소나무 껍질같이 거무스레한 비늘이 엉긴 구렁이는 암수 한 쌍이 바다에 산다던 것이었고, 그것들은 늘어져 얽히고설킨 드렁칡처럼 한번 얽히어지면 이틀 밤낮을 꼬박 지낸 다음이라야 풀린다던 것이었으며, 그렇게 얽히어 있는 동안 그 구렁 이 주변에는 짚불 연기 같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다던 것이었다. 그럴 때 바다는 암내 낸 미친 여자가 바위나 기둥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며 울어대거나 앓아대는 듯한 소리로 아악아악 하고 운다던 것이었고, 그러면 이튿날부터는 어김없이 샛바람*이 기어들고 큰비가 내린다던 것 이었다.
아들의 무덤 주변의 어둠 속에는 두 마리의 검은 구렁이가 늘어져 얽힌 드렁칡처럼 얽히어 있는 듯만 싶었다. 할머니는 제발 뱀으로 환생한 아들이 제 아내를 친친 감고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를 바랐다. 눈을 힘주어 감았다. 잠시 후, 남자의 두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고생 하지 말고 나 따라갑시다.”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린 할머니는 미친 소처럼 모래밭을 내달렸다. 바위에 몸을 부딪혀 주저앉기도 하고, 발을 헛디뎌 개울 속으로 곤두박질쳐 넘어지기도 하면서 재를 넘었다.
아비가 징용에 끌려간 뒤 혼자 사는 세상에 신물이 날 만큼은 난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수절을 하며 혼자 살아가라는 말 한번 한 적 없었다. 몸 튼튼하고 마음씨 좋은 남자 하나를 골라서 기둥서방으로 보듬고 살면서 손자 여의살이 시킬 때까지만 고생하라고 한 터였다.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한다면 맑고 밝은 한낮에 날벼락을 맞아 앉고 못 일어날 것이었다. 약 좋고 기술 좋고 영리한 머리들 잘 쓰므로 바라지 않는 ‘삼시랑’* 오게 될까 걱정하지 않고 잘 살아가는 세상인데,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다고 피둥피둥 젊은 세상 밤마다 머리 질꾸 동여매고 한숨만 쉬며 살아가야할 까닭이 어디 있느냐고, 몇 번이고 씹어 이른 터였다. 철승이 여의살이만 시키고는 너 알아서 가고 싶은 데로 가라고 당부를 한 터였다.
할머니는 두 주먹으로 앙가슴*을 치며 널뛰듯이 뛰어 마을로 들어갔다. 다른 데도 아닌 서방의 무덤 앞에서, 하고 많은 남자들 다 던지고, 그 서방이 살았을 적에 그렇게 ‘웬수야, 악수야’ 해쌓던 재술이를 안고 나댈 게 무어란 말인가. 다 긁어모아도 바지락껍데기 한 짝에도 못 찰 소갈머리여서인지 할머니는 그 꼴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본 척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년이 잡아 죄어도, 하필 목줄을 훑어 죄며 버티는 것만 같아 분하고 억울했다. 그 억분*을 담배 대통에 써레기* 재듯 눌러 재고 불붙여 연기를 빨아 뿜어 날리면서 밤을 새웠다. 그러다가, 이런 일 모처럼 저지른 홀어미 속이 오죽 울링거릴 것인가 하며, 하룻밤이 지난 다음에 조근조근 씹어 타이르자는 매듭을 지었다.
한데, 엎친 데 덮친다고 손자가 또 덩달아 재술이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꿈만 같이 공교롭게 얻어가지고, 어려움과 쓰라림 속에서 얼마나 안타깝고 조급하게 어르며 달래며 얼싸안고 키워온 손자라고, 그 손자가 좋아하는 재술이를 미워해야 할 건더기는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재술이 쪽으로 기우는 며느리와 손자를 그냥 내버려둘 수는 도저히 없었다.
몽땅몽땅 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타이르려는데, 밖에서 자고 들어온 손자 놈이 아침 밥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지게에 구럭을 짊기고 물옷*을 구럭 속에 담은 뒤 점심밥을 싸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시키지도 않은 섬개엘 갈 모양이었다.
덕도에서 ‘섬개에 간다’고 하는 것은 금당도의 서남쪽에 있는 꽃섬이나 장구섬 같은 데로 갯것*을 하러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 살지 않는 그 섬들에 갈 경우, 사람들은 그 섬에서 귀한 파래, 톳, 참몰, 우뭇가사리, 돌김 등을 맘껏 뜯어 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펄쩍 뛰었다. 손바닥만 한 배를 타고 오가다가 바람을 만나면 배가 뒤집혀 죽기 꼭 알맞은 것이었다. 요행 살아온다 하여도 그 바람 속을 저어 오느라고 하는 고생은 입에서 닳고 닳은 쓴 내가 사흘 동안은 내지른다고 하는 말이 있는 것이었다. 예전처럼 돛단배가 아니요, 노만 젓는 배도 아니며, 눈 깜짝할 사이에 갈 수 있는 기계배가 있다고 하지만 그 배 또한 채취선의 크기와 같을 뿐이었다. 샛개농장 생기지 않은 십여 년 전, 다음 날 아침의 끼니 안칠 거리가 없을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집 사람들이 목숨 걸어놓고 다니던 섬개였다. 그러나 요 몇 해 들면서는 아무도 그 섬개엘 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섬개엘 가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아비가 월남 가서 죽어오는 바람에 나온 돈으로 논 두 필을 사서 벌어먹고 있는 터라, 세 식구가 노적더미 쌓아놓고 배 두드려가며 먹고살지는 못해도 풀칠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처지에 그토록 먼 섬까지 갯것 하러 갈 까닭이 어디 있는가 말이었다. 그것도 옛말이지, 이 몇 해 사이로는 꽃섬이나 장구섬도 금당 사람들이 자기들 땅이라고 말뚝을 박아놓고 어촌계 청년들을 풀어 지키기 때문에, 눈치코치 없이 얼씬거리다가는 금당도로 끌려가서 한 이틀씩 발이 묶여 있다가 오기 일쑤라던 것이었다.
하긴, 처녀 총각들이 뱃놀이 겸하여 보는 사람 없는 데서 실컷 노래 부르고 춤추고 놀다 올 생각으로 파래나 톳을 캐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더러 갔다 오곤 하는 모양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첫 마디에 안 된다고 했다.
입맛 껄껄해서 밥 한 숟가락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호미를 찾아들던 할머니는 손자의 지게에서 물옷을 빼앗아 팽개치고, 너보고 누가 섬개에 가서 파래 뜯어 오라 하더냐고 소리쳐 말하고, 꼭 일을 하고 싶거든 안산에 가서 땔나무나 조금 긁어 오라고 했다. 그 말에 철승이는 눈살을 으등카리같이 찌푸리고, “구경 삼어서 한번 갔다가 올락 한께 그라요?” 하고 대들었다.
“워따 워메, 이것이 뭔 소리란가. 이 넓은 땅 놔두고 해필 그 멀고 험한 뱃길을 달려서 그 좁은 섬구석에까지 구경을 가야? 금당도 사람들이 쫓아와갖고, 한 이틀 붙잡어놔두면 어짤라고 그라냐, 이녁 것도 아닌 배 타고 가갖고” 하는 할머니의 말에 철승이는 “큰 애기들만 싣고 가면 아무 일 없닥 합니다”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더니 깡깡이를 보듬고 앉아버린 것이었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요내 가슴엔 수심도 많다.
손자의 깡깡이는 어쩌면 이 대목을 간신히 울어 넘기고 있는 듯하더니, 또 거푸 ‘똥 누러 갔다, 오줌 누러 갔다’를 늘어놓고 있었다.
손자가 미역가공공장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이 깡깡이가 생긴 뒤부터였다. 아무리 돈이 아쉽다 하기로, 어떻게 얻어 얼마나 귀하게 키운 손자인데 이놈의 등에 무거운 짐 지워 골병들게 하는 김 양식을 하겠느냐는 할머니의 생각에 따라, 농사철 외에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던 손자가 누구의 꾐에 빠져 거기에 발을 들여놓은 것인지 몰랐다.
재익이네 미역가공공장엘 나간다는 것이 꺼림칙하였다. 흰 모래밭에 혀를 박고 죽는 한이 있어도 할머니는 이제껏 재익이네 사립 한번 얼씬해보질 않고 살아오고 있었다. 할머니의 팔자를 이날까지 혼자 허덕거리며 살지 않을 수 없도록 대막대기처럼 분지르고 꺾어놓은 게 바로 재익이네 아버지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 손자의 마음을 들쑤실 필요는 없었다. 꺼림칙한 대로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했다. 거기 가서 힘겨운 일 할 것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아프고 짠한 노릇이었지만 할머니는 인제 죽더라도 눈감고 죽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무슨 일이든 해보려고 덤벼드는 손자의 마음가짐이 고마웠다.
한데, 그게 바로 동네 처녀들과 어울려 놀 생각에서였던 것이었다. 동네 처녀들은 겨울철의 김 거두어들이기가 이른 봄 들면서 끝나면 곧 넓바윗개 안고랑에 생긴 미역가공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는 것이었다. 날품 드는 일 한 가지로 들고나기가 자유스럽고 고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 칠팔백 원의 노임을 받으면서도 처녀들은 싫어하지 않고 잘 나다녔다. 또한 공장에서는 남자 공원들을 예닐곱씩 쓰곤 하였는데, 처녀들은 공장을 오가는 걸음에 뒷골이나 앞메 잔등에서 어울려 놀곤 하였다. 손자는 바로 이 재미를 보느라고 가공공장엘 나
다니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며칠 동안은 낮에 내내 잠을 자고 밤에 나가 일을 하곤 하더니, 하릇밤에는 옷에 온통 피범벅이 되어가지고 돌아왔었다. 할머니는 펄쩍펄쩍 뛰면서, 누구하고 싸웠느냐고, 누구한테 이렇게 두들겨 맞았느냐고 울부짖었다. 손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공장으로 달려가서 일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공장집 아들 성삼이하고 싸웠다고 했다.
성삼이하고 싸웠다면 따져 들어보나 마나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았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성삼이는 읍내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대학 예비고사에 떨어져서 집에 와 있는데, 공부하고는 이미 담을 쌓고 공장에서 일하는 처녀들하고 시시덕거리며 꼬집고 때리는 장난질이나 하는 것으로 재미를 삼고 있는 아이였다. 학교 다닐 때, 하라는 공부는 않고 주먹질 발길질만 배우러 다닌다더라는 소문이 마을 안에 퍼져있지 않던가. 할머니는 공장 안으로 뛰어들어 가서 성삼이의 멱살을 잡아끌면서 가슴이며 어깨며 할 것 없이 마구 꼬집고 두들겨댔다. 어떻게 얻어가지고 얼마나 귀하게 키워온 자식인데, 내 자식 패 죽이려고 주먹질 배웠느냐고 소리쳐댔다. 공장 사람들이 몰려들어 말리는 바람에 성삼이의 여드름투성이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어주지 못하고 밀려 나온 것이 그렇게도 가슴 아픈 할머니였다.
이런 일이 있은 뒤, 내내 속은 아리고 쓰리는 것이었지만 할머니는 손자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틈이 있을 때마다 철승이를 타일렀다. 이 바닥에 살지 않으려면 몰라도 살 바에야 끝끝내 성삼이 하고 ‘웬수야, 악수야’ 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에도 할머니는 손자의 무릎 앞에 앉으면서, “아가, 내 말 조깐 듣고 그것 튕게라” 하고 말했다. 손자가 고개를 들고 할머니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을 흘끗 건너다보았다. 볼이 부풀어 있고 입술이 튀어나와 있었다. 제 얼굴 하나 들여다보고 사는 이 할머니의 마음을 몰라주는 소갈머리가 야속했지만, “성삼이하고 다시는 쌈하지 마라잉. 그쪽에서 뭣이라고 하드라도 잘못했다고 말해뿌러라. 싸우고 친구 사귄닥 안 하디야? 오히려 더 흠결* 없이 대하고 살어라” 하고 타일렀다. 손자가 고개를 떨어뜨리면서 깡깡이 줄을 와드랑와드랑 신경 질적으로 굵어댔다.
“얼릉 밭에나 가소.”
퉁명스럽게 내뱉고, 또 ‘똥 누러 갔다, 오줌 누러 갔다’ 하는 소리를 내더니, 이어 「아리랑 타령」을 퉁겨갔다. 손자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다고 생각되었다. 섬개에 갈 것을 포기한 듯했다.
“섬개에 안 갈 것이지야?”
다짐을 주자, 손자는 걱정 말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며 깡깡이만 퉁겼다.
“나도 나지마는, 느그 어메는 참말로 너 한나 들고나고 하는 것 보고 산다잉. 그란디 니가 혹시 섬 개에 갔다가 섬사람들한테 붙잡히든지 바람이 불어서 못 오든지 하면 참말로 다 말라져 죽을 것이다잉.”
이 말을 남기고 사립을 나섰다.
골목길을 걸어 나가는 할머니의 눈앞에, 간밤 아들의 무덤 주변에서 낙지 잡으며 파둔 구덩이 속의 소용돌이치는 갯벌물처럼 술렁거리던 어둠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앓아대던 며느리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었다. 앞메 잔등 위에 뜬 해의 보리 까라기 같은 빛살이 눈 속에 시푸른 어둠을 담아 넣었다. 눈을 감았다. 간밤 일을 전혀 모른 체하고 며느리를 타이르리라 했다.
모래언덕을 따라 좁다랗게 띠처럼 멧기슭에 둘러져 았는 밭은 두 마지기였다. 며느리는 북쪽 밭귀에 쪼그려 앉아 김을 매고 있었다.
빛바랜 쪽물이 담긴 듯한 바다는 살랑거리는 마파람*에 잔물결이 일어나 있었다. 모래톱을 치는 물결이 햇살을 깨면서 철썩거렸다. 건너다보이는 도리섬의 칼바위 주변에는 금빛 고기비늘을 깔아놓은 듯 햇조각들이 떠서 반짝거렸다. 아니, 섬 주변에 사는 모든 물고기들이 일시에 물 위로 솟아올라서 질펀히 깔린 금싸라기들을 쪼아 먹느라고 날뛰어대는 것만 같았다. 넓바위 연안에 있는 미역가공공장의 양수기 엔진 소리가 하늬바람결을 타고 흩어져서 아득하게 들렸다.
할머니는 선창 쪽 밭귀에 있는 아들의 무덤 앞으로 갔다. 이게 바로 아들의 무덤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할머니는 도무지 그게 정말 같지가 않았다.
유골이라 하여 오는 나무 상자 속에는 기껏 손톱하고 머리카락 몇 가닥하고 가는 톱밥 같은 뼛가루 한 숟갈 정도가 들어 있을 뿐이라던 것이었다. 그걸 열어서 그게 아들의 것인지 아닌지 확인해본들 무엇하랴 해서, 정말로 아들이 죽어 돌아온 것이거니 하고 장사를 지내기는 했지만, 아들의 무덤 아닌 가묘를 써둔 것만 같은 생각이 들곤 하는 할머니였다. 아들은 이 바다 안에서 가장 빠르다는 어협조합의 대형 발동선을 타고 갈 경우, 이틀 낮과 밤을 내내 달려가고도 하루 낮을 더 달려가야 겨우 닿는다는 월남이란 데서 그 흰자위 많은 눈을 껌벅거리고 살아 있을 것만 같았다. 무덤의 마른 풀들 속에서 푸른 잎들이 솟아 나오고 있었다. 간밤 며느리가 재술이와 함께 무슨 일인가를 치렀을 자리를 눈짐작으로 가려 더듬으면서 모래언덕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 두 홉들이 삼학 소주병 한 개하고, 과자며 빵의 비닐봉지 몇 개하고가 햇살을 받아 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반짝하는 햇조각이 불을 확 댕기어놓기라도 한 듯, 가슴에 화끈하는 뜨거움이 일어났다. 밭둑을 걸어서 며느리에게로 갔다.
검정 사각무늬가 있는 가지색 통치마에 배추 꽃물을 들인 샛노란 스웨터를 입은 며느리의 얼굴은 반죽을 해놓은 밀가루같이 해반주그레했다.* 눈두덩이 부석부석 했다.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을 터인데도 며느리는 고개를 들지 않고 뿌리 깊이 박힌 바랭이 가닥을 호미 끝으로 파내고만 있었다.
할머니는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며느리가 앉은 옆 고랑에 쪼그리고 앉았다. 며느리가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것을 생각하고, 어디 아프냐고 하며 며느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며느리는 흡사 귀머거리가 되어버리기라도 한 듯 시어머니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호미질만 했다. 내리깐 눈의 검고 긴 눈썹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며느리의 마음이 이미 자기나 손자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간밤, 아들의 무덤 주변에서 술렁거리던 시푸른 어둠이 떠올랐고, 그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며느리의 앓던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재미없이 팍팍하고 슬프기만 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며느리가 원망스러웠다. 그 원망스러움을 말로 뿜어낼 수 없었다. 말로 뿜어내지 못하고 속에 묻어 삭인다 하여, 한숨을 쉬거나 넋두리를 늘어놓거나 홍타령* 같은 것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널려 있는 설움이란 설움은 모두 자기가 다 떠맡아 안고 지고 품고 머금고 있는 듯이 생각하고 있는 며느리이므로.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이 안골 연안이 숫제 며느리의 울음바다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자기의 속이야 어떻게 곯고 아리고 쓰리어도 천연스럽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야 하는 것이었다. 며느리가 듣거나 말거나 할머니는 말을 하여가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세상 탁탁하고 맥없기는 할 것이다마는 그래도 철승이 조깐 타이르고 그래라이. 큰일 났어야. 저 하는 대로 보고만 있어서는 못쓰겄다. 오늘 아침에는 뭔 놈의 섬개엘 간닥 해서 못 가게 몇 번 씹어 일러놓고 나왔다. 너도 모른 척하지만 말고, 그 애기가 어디 가서 뭔 일을 하는가 보기도 하고, 혹시라도 누구하고 쌈을 하는지 미리미리 타이르기도 하고…… 저번 참에도 안 나다녀도 될 미역공장엘 다닌다고 다니다가 그 일을 안 저지르디야?”
며느리는 보릿그루에 얽힌 갈퀴덩굴 한 가닥을 뽑으며 한숨을 투우 하고 내쉬었다. 할머니는 얼른 말을 돌렸다.
“니 아픈 속을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니다마는, 어쩔 것이냐. 너나 나나 원수 놈의 팔자가 사나워서 안 그라냐? 내 말 잘 들어라.”
몇 번이고 흘려준 말을 다시 곱씹어 흘려주었다. 마음씨 좋고 몸 튼튼한 기둥서 방을 하나 얻어서 살아보라는 말이었다.
“다 눈감어줄 것인께, 동네 사람들 눈에만 띄지 않게 쥐도 새도 모르게 한번 살아봐라. 고생이 어째서 안 될 것이냐마는 저 새끼 여의살이 시키도록만 살어주라” 하고 난 할머니는 가슴이 꽉 막혀왔다. 머리카락 한 오라기 손톱 한 개가 묻혔더라도 그게 정말로 아들의 것이라면 분명 혼령이 들어 있을 아들의 무덤 앞에서 며느리에게 이런 소리를 해야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었다.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펴면서 투우 하고 막혔던 숨을 내뿜었다. 간밤,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며느리의 앓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 밭고랑에 두 발을 뻗고 주저앉아 한바탕 소리쳐 울어버리고 싶은 할머니였지만, “그런디” 하고 말을 뽑았다. 마치 남의 이야기라도 하여가듯 말을 했다.
“나는 이참에 재술이가 철승이한테 깡깡이를 준 것이 암만해도 맘에 걸려 죽겄다. 내 속이 쪽박같이 좁아서 그란지는 몰겄다마는, 그 집 식구들하고는 절대로 정 두고 살아서는 못쓴다. 이 얘기는 잘 들어 갖고 니가 철승이를 조깐 잘 씹어 일러라.”
할머니의 쪼그려 앉은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두둑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주저앉으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먼 바다에서 이랑진 물결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어쩌면 할머니의 가슴속으로 밀려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물결 같은 수많은 말들이 응어리져 있는 가슴을 펐다.
“재술이네 아부지는 죽어갖고 어쩌면 구렁이가 되었을 것이다. 살어서 남 못 할 일을 그렇게도 많이 했는디 구렁이가 안 되고 뭣이 될 것이냐? 내 팔재가 뭣 땀시 파싹파싹 깨져뿐 바가지같이 되어뿌렀다냐? 하고많은 사람 다 놔두고, 순사들 앞세우고 우리 집으로 달려들어 갖고 느그 아부지 징용에 보내뿐 사람이 바로 재술이네 아부지다. 알기를 그리 알고 살어가사 쓸 것이다. 그런다고 웬수야, 악수야 하고 살어갈 것은 없는 일이지마는, 속은 두고 살어사 쓴다. 재술이네 아부지가 보통으로 간삽고 독하곤 모진 사람이 아니드니라. 배급이 나오면 하필 우리 집만 쏙 빼뿔드니라. 철승 애비가 살었을 때 어째서 재익이나 재술이하고 그렇게 쌈을 붙어대고는 했는 줄 아냐?”
철승 아비도 다 생각이 있어서였을 것이었다. 딱지고 보면 철승 아비가 월남에 가서 죽은 것도 재익이네 식구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재익이네 아버지는 자기가 서둘러 이편의 남편을 징용에 보내놓고도 가슴에 찔려 하는 구석이 손톱만큼도 없던 것이었다. 오히려 한두 번의 노랑 설탕 배급을 주고, 안남미* 배급에 차례를 넣어주고, 그 대가로 이편의 몸을 요구했었다. 그게 철승 아비가 다섯 살 되던 해의 봄이었다.
날품으로 밭을 매고 들어와 설핏 잠이 들었을 때, 대오리문* 창살을 가만가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스라쳐 일어나며 누구냐고 소리쳤다. 그러자,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낮게 새어 들어왔다.
“뭔 잠이 그렇게 깊이 들었소? 사람들 모르게 배급쌀 조깐 갖다 줄라고 왔소.”
잠결이었지만 가슴이 짜릿하면서 뭉클 뜨거워졌다. 간사하고 표독스러운 그였지만, 이편의 남편을 징용에 보내놓고는 속이 편하지 못한가 싶었다. 여느 때 밉고 저주스럽던 그가 고마웠다. 일어나 문고리를 따려고 했다. 그러다가 멈칫 했다. 한밤중에 홀어미가 혼자 자는 방엘 들어오려고 하는 그 남자의 속셈은 뻔한 것이었다. 여차하면 쓸 생각으로 아랫목 머리맡에 놓아둔 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그 배급쌀 받지 않겠다고, 얼른 돌아가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겠다고 외쳐댔다.
“영보네는 어째서 내 속을 그렇게 몰라주요?”
남자는 이렇게 달래면서 대오리문 창살을 북 뜯고 손을 들이밀었다. 문고리를 벗기려고 했다. 눈앞이 아찔했다. 방망이로 내리쳤다. “도둑이야” 하고 소리쳐댔다. 그는 두 손을 입에다 가져다 대고 후후 불며 엄살을 떨다가 어물어물 돌아갔다. 철승이의 아비를 끌어안고 부들부들 떨면서 밤을 새웠다. 새벽녘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남자가 놓고 갔을지도 모르는 배급 쌀자루를 재익이네 집으로 가져다가 주어버릴 셈이었다. 그러나 남자가 놓고 갔음 직한 배급 쌀자루는 거적문 늘어뜨린 부엌이나 손바닥만 한 마당 어디에도 없었다.
재익이네 아버지는 그 뒤로도 몇 번이고 호젓한 데서 단둘이 만나 가지고는 손목을 잡으면서, 정이나 두고 살자고, 서로 입만 열지 않으면 정 두고 사는 것을 누가 안다냐고 꾀었다. 한번은 밤늦게 김 이삭을 주워가지고 재를 넘어오는데 이편을 솔숲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었다. 만약에 소리 지르면 당신 죽고 나 죽고 해버리겠다고 하면서 입을 막았다. 이편은 그편의 가슴을 물어뜯었다. 그가 나동그라졌을 때 사람 살리라고 외치면서 마을로 내달렸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그는 이편을 아예 배급 주는 차례에서 빼버렸다.
해방이 된 뒤로, 때려죽이겠다고 나대는 청년들을 피하여 한 일 년 동안 어디선가 살다 들어온 그는 다시 마을을 휘어잡았다. 그를 죽여야 한다고 괭이나 낫을 내두르던 마을 사람들도 그의 대소가* 사람들의 위세에는 꼼짝을 못했다. 무식한 마을 사람들은 다시 그에게 이장과 어협총대를 맡겼다. 그러면서부터 그는 이편에게 더욱 괄시를 하여댔다. 울력*이 났을 때 홀어미를 빼주곤 하는 관례를 무시하고 이편에게 기어이 궐*을 물게 하였우며, 마을에서 넓바위 선창까지의 길을 내는 데 이편의 밭언덕을 까뭉개게 하는 억지 계획을 만들기도 하였다. 물론 자기 형님을 징용에 보냈다고 이를 갈던 억보가 경비대엘 간다고 갔다가 반란군이 되어 돌아와가지고 총질을 하여 그가 죽은 뒤로, 성근지게* 나서는 사람이 없어 길 내는 일은 세우나 마나한 계획이 되어버렸었다. 그러나 마을에서 넓바위 선창으로 큰길을 내기로 했다는 마을 회의가 있은 뒷날 이편은 재익이네 집으로 쫓아가서 악다구니를 쓰면서 대들었던 것이었다.
문제는 그런저런 꼴을 보고 자란 철승 아비가 이편의 통사정에 따라 장가를 들고 영장도 나오지 않은 군대엘 자원하여 가기까지 재익이네 식구들을 보고 이를 갈곤 한 것이었다. 재술이하고흔 동갑이었지만 서로 말도 주고받지를 않으려 했었다. 한번은 음력 대보름날 풍물을 치다가 싸움을 한 적이 있었다. 마당밟기*를 하면서 괜히 술바람에 한 짓거리들이기는 했겠지만, 따지고 보면 쌓인 원한이 터져 나와서 된 싸움이던 것이었다. 이 싸움에서 철승 아비는 코피를 한 바가지나 쏟을 만큼 재익이네 형제한테 두들겨 맞았던 것이었다. 입심이 셀 뿐 아니라 싸움이 붙었다 하면 떼로 몰려 덤벼드는 최씨네 형제를 때려눕힐 장사는 없었다. 만일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기라도 했다가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들은 보복을 하고 나섰다. 아버지가 죽은 뒤로 이장이나 총대를 대물려 하는 그들은, 자기들을 건드린 사람이 허가 없이 솔가지 하나를 베면 대번 산림계를 불러들이고, 멸치 덤장*이나 정치망* 그물을 놓거나 삼마이* 그물을 놓으면 오면가면 낫으로 쳐서 떠내려 보내는 심술을 부리기도 하고, 세금을 비싸게 먹이기도 하는 것이었으며, 마을의 규정을 어기고 김발 한 떼만 더 막아도 기어이 철거반을 들이밀던 것이었다. 철승 아비가 자원입대를 한 것은 바로 그 싸움이 있은 후였다.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월남 파병에 자원을 하여 갈 셈으로 자원입대를 하였던 것이었다. 돈을 벌어 와서 재익이네 형제한테 보아란 듯이 살아보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돈 도둑질해가지고 바깥바람 쐬러 가기라도 하듯 훌쩍 밤새 도망질 쳐서 군대에 가버린 철승 아비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혀올 뿐이었다.
할머니는 긴 한숨을 들이쉬면서, “내 말 잘 알어듣고 철승이한테 차근차근히 조깐 씹어 일러라” 하고 곱씹어주었다.
천상 해보아야, 어느 거지의 등에 업히어 다니다가 이웃 마을의 윤씨네 집에 맡겨진 다음, 코를 가리기 시작하면서 애기업개 노릇을 하며 살아왔을 뿐인 며느리는 늙은 시어머니의 말이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호미질만 하고 있었다. 반죽해놓은 밀가루처럼 우중충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할머니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쪽빛이던 바다가 희부옇게 가라앉고 있었다. 물결이 더욱 가늘어지고 있었다. 마파람이 자고 있었다.
이때 넓바위 선창 쪽에서 양수기 엔진을 단 배 한 척이 부웅 소리를 내면서 달려왔다. 철승이 또래의 청년 둘이 타고 있었다. 철승이는 타고 있지 않았다. 미역밭엘 가는 듯했다. 기계배가 허연 솜 같은 물결을 이물과 뱃전으로 내뿜으면서 할머니가 앉아 있는 안골 모래밭 앞을 지나 노룻골 쪽으로 달려갔다. 노룻골의 검푸른 멧부리가 아득하여 멀어 보였다. 그 골짜기에 뿌연 바람곱자기*가 끼어 있었다. 하늬바람*이라도 터질 모양이었다.
노룻골 멧부리 끝으로 간 배가 갑자기 변속을 하면서 엔진 소리가 그쳤다. 서서히 메 끝으로 다가가더니 검은바위에 뱃전을 댔다.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처녀들 셋이 곰솔숲에서 갯벌밭의 꽃게들처럼 바르르 뛰어나가더니 배에 올랐다. 이어, 배가 도망이라도 치듯 부웅 하는 엔진 소리를 내면서 달렸다. 뱃머리를 길마섬 건너편의 꽃섬으로 두르고 있었다. 꽃섬 쪽의 하늘은 아직 쪽빛으로 밝아 있었다.
할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철승이가 그 배에 타고 있지 않은 게 다행스러웠다. 벌써 아득하게 멀어진 배를 바라보았다. 그 배 위에 탄 사람들이 사람 살지 않은 꽃섬에 가서 갯것을 하다가 불바람*처럼 일어난 하늬바람에 갇히거나 금당도 사람들한테 붙잡혀가지고 며칠을 갇혀 있다가 오거나 자기는 상관할 것이 없다고 했다. 생각은 그러면서도 혹시 자기의 흐릿한 눈이 잘못 보았는지도 旱른다 싶어, “이아그야, 저 배에 우리 철승이는 분명히 안 탔지야?” 하고 물었다. 며느리는 잠시 호미를 놓고 그 배를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 며느리가 야속했다. 무슨 놈의 삼시랑이 씌어댔기에 이렇듯 묘한 소갈머리가 점지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할머니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다시 김을 매기 시작했다. 이해야말로 보리밭에는 웬 갈퀴덩굴풀이 이렇게도 속속들이 보릿그루에 얽히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풀을 구럭 가득하게 뜯어 오곤 하던 철승 아비가 생각났다. 토끼 한 쌍을 키우고 싶다고 하두 졸라대기에 보리밭 매기 날품을 들어 번 것으로 토끼 한 쌍을 사주었는데, 철승 아비는 아직 갓 깐 병아리만 할 뿐인 토끼가 돌아설 틈도 없이 많은 풀들을 뜯어다가 넣어주던 것이었다. 그렇게 키우던 토끼 한 쌍이 제법 목침덩이만 해지고, 이제 접을 붙이면 줄참외같이 많은 새끼를 줄지어 낳을 것이라고 해쌓던 초여름의 어느 날, 비가 오려고 찌는 듯이 무더운 밤을 새우고 나니 두 마리가 나란히 죽어 늘어져 있었는데, 그때 철승 아비는 토끼 집 안에 주저앉아 학교에 갈 생각도 하지를 않고 울어대던 것이었다. 인정 많던 그놈의 흰자위뿐인 눈알이 눈에 보이는 듯하여 가슴이 그새 뜨거워지고 목구멍이 뻣뻣해졌다.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며 밭머리에 있는 무덤을 바라보는데, 넓바위 선창 쪽에서 오토바이 엔진을 단 채취선이 두루릉 소리를 내더니, 이내 물살을 가르면서 할머니네 밭이 있는 안골 앞으로 달려왔다. 할머니는 호미를 놓고 그 배를 바라보았다. 흐릿한 눈을 벌려 떴다. 순간 할머니는 자기가 금방 보리밭 고랑에 놓은 호미자루로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부엉이처럼 탐스럽고 큰 깡깡이의 핏빛으로 붉은 모서리가 뱃전 위에서 반짝 햇살을 되쏘고 있는 것이었다.
“워따 워메, 이 일을 어째사 쓸꼬.”
발을 굴렀다. 배의 고물에서 키를 잡고 앉아 있는 것은 철승이였다. 밤빛 잠바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했다. 할머니는 밭언덕 밑으로 굴러 떨어지듯 모래밭으로 뛰어내렸다. 바닷물결 같은 파란 어둠이 눈앞을 가렸다. 귀가 피용 하고 울었다. 모래톱으로 달려갔다.
“철승아, 너 뭣 하로 가냐아, 나 죽는 디 볼라고 그라냐아? 얼릉 이리 안 돌아올래애?”
할머니는 두 손바닥으로 허공을 번갈아 끌어당기며 천관산과 도리섬 어귀에 펴지고 있는 바람곱자기를 가리키면서, 금방 불바람이 불것 같은데 어디를 간다고 가느냐고, 얼른 뱃머리를 돌리라고 외쳐댔다. 그 소리는 모래톱을 핥는 잔물결의 이랑 속에 파묻히고 있을 뿐이었다. 안골 연안에는 오토바이 엔진을 단 채취선의 요란한 소리가 가득 찼다. 밭 한가운데서 일어선 며느리가 호미를 든 채 꽃섬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채취선 위의 철승을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네 이놈, 너 배 안 타고 올래애?”
넓바위 선창 끝에서 남자가 목이 터져라고 소리쳐댔다. 멀어져 가고 있는 채취선 위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남자는 새파람*에 일어난 높은 물결이 바위와 모래톱을 치듯 장쾌하고 큰 목소리로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욕을 퍼부어대고 나서, “존 말로 할 때 싸게 배 타고 들어오니라이” 하고 소리쳤다. 그 소리가 잔물결들을 뛰어넘어 먼 바다로 퍼져가고 있었으나, 철승이가 탄 배는 아랑곳없이 꽃섬 쪽으로 멀어져 가기만 했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배창자를 움켜잡으면서 철승이를 불러 댔다.
할머니가 더 태우려야 태울 건더기가 없는 애간장을 태우면서 통사정하듯 못 가게 만류한 섬개엘 간다고 해서 무슨 달콤하고 간지러운 수가 있을 까닭이 없었다.
섬개엘 간 기계 채취선 두 척은, 이날 앞메 잔등 너머로 해가 떨어지고 자줏빛 산그늘이 넓바위 선창과 안골 앞바다를 덮을 때까지도 돌아오지를 않았다. 썰물 졌던 바닷물이 모래톱으로 수국의 꽃송이 같은 흰 거품을 밀어 올리며 밀려들었고, 늦하늬바람이 매섭게 일어나 바다는 온통 흰 누엣결로 덮이어 있었다. 밀물의 흐름 타고 바람 속을 뚫어 오르려고 그사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겠지, 날이 어두워지면 오겠지, 노를 젓는 것도 아니고 기계가 달린 배로 오는 것이니 쉬 올라오겠지 하면서 밭둑에 앉아 기다리는 할머니의 가슴은 불 밑에서 다 닳아져가는 기름을 빨아올리는 심지처럼 타들어가고 있었고, 그 가슴에서는 가쁜 숨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넓바위 선창 주변의 모래밭과 사태밭 언덕에는 섬개엘 간 처녀 총각들의 식구들이 앉거나 서서 흰 누엣결 덮인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며느리가 원망스러웠다. 며느리는 밥을 짓겠단다고 먼저 들어가고 없었다. 하늘에서 따온 복숭아〔天桃〕 만같이 신통하고 귀한 자식이 섬개엘 간다고 가서 흰 누엣결 허옇게 덮인 바다에서 살아 돌아오느냐, 돌아오다가 무슨 일을 당하느냐 하는 판국인데, 목구멍에 밥 우겨넣을 생각밖엔 못하는 며느리의 소갈머리가 밉살스럽기 그지 없었다.
우리네 서방님은 갈치잽이를 갔는디
바람아 강풍아 석 달 열흘만 불어라.
앞메 잔등을 오르는 누군가가 넓바위 선창 주변의 사람들 들으라고 심술스럽게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너냥 나냥 두리둥실 놉시다. 낮이낮이나 밤이밤이나 쌍사랑이로구나’ 하는 후렴까지를 흥겹게 불러 젖혔다. 할머니는 노래하며 재 넘는 사람에게, 오냐 너는 그 재 넘어가다가 다리뼈나 콱 부러져 죽어라, 하고 속으로 욕을 퍼부어댔다.
우산도 끝에 있는 어협창고의 양철지붕이 붉게 물들어 반짝거리고 바다의 흰 누엣결이 핏빛이 되는가 했는데, 땅거미가 천관산과 우산도의 검은 솔숲에서 밀려 나와 온 바다를 덮었다. 꽃섬 쪽에서 양수기 엔진 소리나 오토바이 엔진 소리를 내면서 달려와야 할 채취선은 끝내 달려와주질 않았다.
부지런한 며느리가 개밥 퍼주면서 본다는 초사흘 달이 거짓말로 그어놓은 눈썹처럼 떠 있다가 져버렸다. 있으나 마나 한 그 달이 없어진 뒤로 곧 어둠이 밀려들었다. 이때부터 넓바위 선창 주변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사태밭 언덕 위에다가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갯물 묻은 발대*나 목나무를 태우는 그 불은 도깨비불처럼 파르스름하면서도 노란빛을 띠었다. 몰아치는 늦하늬바람에 심 하게 가물거렸다. 꽃섬에서 어둠을 뚫고 오는 배에게 방향을 알려주려고 피우는 불인 것이었다.
할머니는 밭언덕에서 모래밭으로 내려섰다. 모닥불 피우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자기도 그 모닥불 옆에 앉아 손자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다리가 휘청휘청했다. 넘어질 듯만 싶었다. 모래밭을 건너 선창 모퉁이의 자갈밭으로 들어섰다. 자갈밭에는 가짓빛 어둠이 깔려 있었다. 어둠 속에 들어서자 몸이 부응 뜨는 듯한 현기증이 일어났다. 발끝에 돌이 차였다. 비칠 쓰러졌다. 성문다리*가 돌에 받혔다. 사태 밭 위에서 타고 있는 모닥불 같은 불이 눈에서 번쩍했다. 그래도 아픈 줄을 몰랐다. 돌 모서리를 걷어 밀면서 몸을 일으키는데 등 뒤에서 희끗한 것이 어른거렸다. 찬찬히 보니 며느리였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 뜨거움이 목구멍으로 넘어왔다. 소갈머리 있네 없네 해싸도 며느리는 섬개에 간 제 자식이 이 바람 속에서 돌아오지 않으니 좀이 쑤셔서 집 안에 주저앉아 있을 수가 도저히 없었나 싶었다. 며느리의 손을 잡았다. 며느리의 다른 한 손에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저녁밥을 내어온 것이었다.
“뭣 할라고 밥 내왔냐? 이 속에 밥 들어간다냐?”
며느리는 말이 없었다. 선창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할머니는 자기의 말이 며느리에게 너무 퉁명스럽고 야속하게 들린 듯하여, “뭔 일 있을라디야? 기계배 타고 갔은께 금방 올 것이다” 하고 안심을 시켰다.
모닥불가에는 재익이와 그의 아내가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변에 기춘이네, 영심이네, 춘자네, 영자네 들이 앉아 있었다. 미역가공공장에서 일하는 기술자 몇 사람과 처녀들 몇이 저희들끼리 어울려서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밤이 되면서 거세던 바람이 수그러졌다.
“요 새끼들이 오기만 오면, 내가 다리뻬를 때깍 분질러서 물속에다가 처박어 죽인가 안 죽인가 보소.”
재익이가 모닥불에서 피는 연기와 함께 소주 냄새를 뿜어 날리면서 이를 갈았다. 이때 그의 동생 재술이가 마을 쪽에서 헐레벌떡이며 뛰어왔다. 모닥불 앞의 재익을 데리고 저만큼 가더니 잠시 귀옛말을 하였다.
“뭣이 어째야?” 하더니 재익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쳐든 채 멍해졌다. 먹딸깃빛 하늘에는 치잣빛 별들이 줄레줄레 달려 있었다.
“끝까지 웬수가 되고 말구마잉, 그 개 같은 새끼가.”
재익은 이렇게 소리쳐 말하더니 갑자기 미친 기가 일어난 사람처럼 철승 할머니 앞으로 뛰어갔다. 할머니의 목을 두 손으로 훑어 죄면서, “네 이년, 니가 대신 내 손판에 뒈져봐라. 시원하게 잘되았다. 느그 손자가 우리 새끼를 칼로 쑤셔 죽에뿌렀단다” 하고 이를 갈았다. 할머니는 목줄이 으깨어지는 듯 아프고 숨이 막혔다. 캑캑거리지도 못한 채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옆의 사람들은 그저 멍해 있을 뿐이었다. 재술이가 덤벼들어 재익의 손을 떼어내지 않았다면 새끼줄에 옭아매어진 채 나뭇가지 위로 끌어 올려진 개처럼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 채 혀를 빼어 물고 나자빠졌을 것이었다. 목줄을 쓸면서 가쁜 숨을 쉬는데, 사태밭 언덕 아래로 재익을 밀고 내려간 재술이가 “얼릉 동네로 들어가보기나 하씨요. 파출소에서 순경이 나와서 성님을 기다리고 있은께 확실한 것을 알어보씨요. 그라고 철승이네 할머니가 뭔 죄가 있다고 그라요? 저 할머니가 죽이라고 시켰다우?” 하고 말했다.
할머니는 꿈만 같았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물에 빠진 듯만 싶었다. 밀물 줄기처럼 큰 어둠 덩어리가 몸을 떠이고 흘러가고 있는 듯 눈앞이 빙빙 돌았다. 멍청히 서 있던 며느리가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재익의 아내가 허둥지둥 사태밭을 내려갔다. 기춘이네, 춘자네, 영자네, 영심 이네도 뒤따라 내려갔다.
“차근차근 조깐 말을 해보씨요, 뭔 일이 어떻게 났다우?”
사태밭 아래서 기춘이네가 재술이의 팔을 잡아 흔들면서 발을 굴렀다. 겁 많은 영심이네가 영자네 팔에 매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며느리가 할머니를 부축하고 사태밭을 내려갔다. 재술이가 밭은 목에 침을 넘기면서 말했다.
“큰일은 벌써 나뿌렀어라우. 금당도 전경대에서 회진 파출소로 연락이 왔다는디라우, 시방 배는 금당도에 갇혀 있고, 성삼이하고 철승이하고는 녹동병원에 있닥 하드만이라우. 그런디 둘이 다 죽어뿌렀닥 안 하요?”
늦하늬바람이 더욱 세차졌다. 사태밭 언덕의 소나무 가지는 휘어꺾일 듯이 휘파람 소리를 냈고, 면 바다로부터 밀려온 파도가 모래톱을 까뒤집을 듯이 후려치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할머니는 며느리의 팔에 매달린 채 어떻게 앞메 잔등을 넘어서 마을로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할머니의 눈앞에는 장막 같은 어둠이 절진해 있었고, 귀에는 칠퍽거리는 물결 소리뿐이었다. 마을로 들어온 재익과 이장인 창호는 순경을 따라 회진엘 가고 없었다. 바람이 웬만큼 자면 한밤중에라도 조합의 발동선을 빌려 타고 녹동으로 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업히다시피 하여가지고 집으로 갔다. 혀가 꼬부라지고 목구멍이 막혀 말을 할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방바닥에 번듯이 드러누워 버렸다. 목구멍이 바싹 밭았지만 침 한 방울 우려 넘길 수가 없었다. 철승이가 왜 성삼이를 칼로 찔렀으며, 어떻게 해서 칼을 맞고 죽었다는 말이냐고, 얼른 녹동으로 가보아야 될 것 아니냐고, 제 아비의 죽음으로 해서 얻어 벌고 있는 논 여섯 마지기를 다 팔아넘기더라도 기어이 그놈을 살려내야 할 것이 아니냐고…… 생각은 총철환* 달리듯 주름살 깊은 몸뚱이 속을 휘도는 것이었지만,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어어 하는 소리를 내면서 며느리의 손을 잡아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있었다.
재술이가 와서 며느리를 마당으로 불러냈다. 한동안 속닥거리다가 갔다. 바람이 쉬 자지 않을 듯하니 조합 발동선도 뜨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회진에서 택시를 대절해가지고 육로로 돌아 녹동에 가보아야 한다고 했다. 얼른 시체를 실어 오자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멍히 듣고만 있다가 고개를 끄덕거려주었고, 재술은, “돈이사 어느 끝이 어디로 가든지 내다가 쓰고 봅시다” 하고 나서 사립을 나갔다.
할머니는 혀를 물어뜯었다. ‘웬수놈, 웬수놈’ 하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재술이가 며느리를 밖으로 불러냈다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에서 주먹 같은 멍울이 차올랐다. 재술 아버지와 재익과 재익의 아들인 성삼이가 생각났다. 재술이네 식구들 때문에 남편도, 아들도, 손자도 모두 죽어간 것이니 말이었다.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주먹같이 차오른 멍울만 내려가면 일어날 수 있을 듯하였다. 며느리가 물을 떠가지고 들어왔다. 목이라도 축여야 한다면서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주었다. 그 물을 받아 마시고 나니 살 것 같았다. 며느리가 다시 미음을 쑤어 왔다.
이튿날 새벽녘에야 바람이 잦아들었다. 지서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나온 기춘이, 영심이, 영자, 춘자 들이 마을에 돌아옴으로 해서, 둘이 다 죽은 칼부림에 관한 이야기는 간밤에 몰아친 늦하늬바람 때문에 들썽거리던 바다처럼 마을 안을 술렁거리게 하였다.
그 칼부림은 함께 심개엘 간 영심이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여자가 끼이지 않고는 살인나지 않는다더니 그 말이 왜 그렇게 잘 들어맞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영심이는 살빛이 흰 데다 속눈씹이 먹물을 찍어 바른 듯 검고 길면서 콧날이 제법 오뚝하였으며, 입술은 언제 보아도 침을 금방 묻혀놓은 듯 윤기가 있었고, 끝이 약간 누른빛 나는 머리는 목덜미께까지 늘어져 있었다. 영심이는 언제 어느 때 누구를 보고도 잘 닦아놓은 사기그릇같이 흰 이를 내놓고는 샐쭉 웃곤 하였다. 눈을 치켜뜰 때 흰자위가 많은 것과 목이 가늘게 긴 것이 흠이었지만, 그것은 영심이를 더욱 안타까운 생각이 들 만큼 예쁘게 느껴지도록 했다. 어쨌든 영심이는 그 마을에서 빼어난 미모였다. 이웃 마을의 총각들이 영심이 얼굴 구경을 하러 품을 버려가며 놀러를 올 정도이니 말이었다.
요년, 벼락이나 맞아 죽어라, 불벼락도 말고 칼벼락을 맞아 죽어라, 하고 할머니는 영심이를 저주하였다.
이날 저녁 무렵 조합의 발동선이 두 구의 시체를 넓바위 선창으로 실어 왔다. 회진에서 택시를 불러 타고 육로로 돌아간 재술이도 그 발동선을 타고 성삼이의 아버지 재익이랑 함께 돌아왔다. 재술이는, 따지고 보면 과부인 철승이네를 생각해서 천방지축 녹동으로 달려갔을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녹동에서 시체를 실을 때도 재익이 자기 아들의 시체만 실어 가겠다고 코뚜레 꿰지 않은 부루기* 고집 부리듯 했지만, 함께 간 이장과 재술이가 불쌍한 사람들한테 적선해준 셈으로 실어 가자고 달래어 실어 왔다던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누가 그렇게 하자고 제의를 한 것도 아닌데 두 패로 나뉘어서 두 청년의 장사를 지냈다. 징용에 간 철승 할아버지나 월남에 간 철승 아비하고 그럴 수 없게 살았던 사람들 서넛과, 기춘이와 그 또래의 친구들 몇 이 철승이의 관을 메고, 재익의 대소가 사람들이며 미역공장에 붙어 돈벌이하는 사람들이며, 재익 이네한테 구정물 한 방울이라도 튀어 간 사돈네 팔촌뻘 되는 사람들이며가 성삼이의 관을 메었다. 철승이의 시체는 앞메 잔등을 넘지 않은 채 그냥 안골 자기 아버지가 묻힌 밭으로 가 묻혔고, 성삼이의 시체는 샛개농장으로 가는 신작로를 따라 비펀 산모퉁이를 돌아가다가 비탈길을 올라서 최씨 문중 산골짜기에 묻혔다.
마을 사람들이 아들의 무덤 앞에 구덩이를 파고 손자의 시체를 넣고 흙을 떠 넣으면서 발로 밟아댈 때, 할머니는 두 다리 죽 뻗고 앉은 채 아들의 무덤을 손바닥으로 두들겨댔다.
손자의 가슴에서 흘러나왔을 선지피 같은 저녁놀이 우산도 끝에 뜬 구름 자락을 뻘겋게 물들이더니 순식간에 호수 같은 득량바다를 꽃자줏빛으로 덮었다. 바다는 잔잔했고, 갈매기의 날개폭만 한 잔물결들이 게으르게 밀려와서 모래톱을 핥고 있었다.
“에끼, 에끼 무정한 놈의 새끼들!”
할머니의 가슴에는 그저 이 말이 피멍처럼 응어리진 채 목구멍으로 차오르고 있었지만, 혓바닥은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굳어져서 말을 만들지 못했다. 며느리는 무덤의 마른 풀잎 속에서 바야흐로 새잎이 돋고 있는 남편의 무덤을 두들겨대는 시어머니 옆에 멍히 선 채, 밭 한가운데 만들어지고 있는 제 아들의 무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며느리의 창백한 얼굴과 옥색 스웨터가 바다의 꽃자줏빛에 젖어들고 있었다.
이날 밤, 그 며느리가 온다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재술이를 따라 자취를 감추어버 린 것 이었다.
3
찔레나무 그루터기 옆에 앉으면서 할머니는 허옇게 어우러진 찔레꽃들을 바라보았다. 술을 석 잔이나 마신 코끝에도 찔레꽃의 분결 같은 냄새는 진하게 맡아졌다. 재술이하고 가까워지면서부터 짙은 화장 냄새를 풍기곤 하던 며느리가 생각났다.
돈 잘 벌고 튼튼한 서방 만났으니 인제라도 세상 맛나게 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아니 드는 것은 아니나, ‘서방 까묵고 새끼 잡어묵은 년, 어디 가서 얼마나 잘 사는가보자’ 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은 또 무슨 짓궂은 심술인지 알 수 없었다. 수북한 띠풀 한 줌을 뜯으면서 할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며느리를 저주하는 자기를 꾸짖었다. 어디 가서 사는지 수소문을 해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예순 살이 이마에 맞닿은 이 늙은 게 살면 얼마나 살랴. 이 눈에 흙 들어가면 누가 아들과 손자의 제삿날에 물 한 모금 떠놓으랴. 새 서방이 좋기야 좋고, 나이 이제 마흔일 뿐이니 아들딸 한둘은 금방 낳을 수 있어 딴 정신이 있을 리 없을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복 타 살려면 제삿날 부디 잊지 말고 물이라도 떠놓으라고 타이르리라 했다. 그리고 아들딸 얼른 길러가지고, 본 서방인 철승 아비가 월남에 가서 죽은 핏값으로 생긴 논 여섯 마지기를 제사답*으로 물려주면서, 올데갈데없는 불쌍한 두 귀신한테 떠놓는 일을 부디 잊지 말게 하라고 당부하고 싶었다.
손자의 무덤 쪽으로 나아가며 한 무더기의 억새풀 줄기들을 뜯었다. 이때 찔레나무 뒤쪽에서 얼른 움직이는 게 있었다. 고개를 돌렸다. 흐릿한 눈을 벌려 떴다.
헐렁헐렁한 쑥빛 스웨터에 검정 통치마를 입고 나타난 것은 영심이였다. 겨울철 같은 때 뚱뚱한 영심이네가 걸치곤 하던 스웨터와 통치마를 입은 영심이는 아낙처럼 숙성해 보였다. 얼핏 산고라도 치른 아낙같이 얼굴이 부석부석하고 맥이 없어 보였다. 얼굴빛이 반죽해 놓은 밀가루처럼 허여멀쑥했다.
할머니는 억새풀 위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멀겋게 날이 선 억새풀잎 가장자리를 내려다보았다. 그 풀잎 한 가닥을 뜯었다. 내 새끼 잡어먹은 백여우 같은 년, 하는 생각이 가슴을 꽉 막히게 했다. 이를 물었다. 이년이 무슨 낯으로 이렇게 내 앞에 나서고 있는 것일까. 이 남자한테 샐쭉 웃고, 저 남자한테 히죽 웃어가지고 칼부림 나게 한 여우 같은 것, 가까이 오기만 하면 호미 끝으로 눈알을 파놓으리라. 다시는 샐쭉 웃고 히죽 웃지 못하게 낯껍질을 벗겨놓으리라 하는데, 영심이가 등 뒤에 선 채, “할머니” 하고 불렀다.
‘뭣 할라고 부르냐, 내가 어째서 느그 할머니냐, 혓바닥을 톡 끊어뿔기 전에 얼릉 쩌리 가뿌러라’ 하는 말이 가슴에서 주먹처럼 뭉쳐지고 있었으나, 할머니는 입을 꼭 다문 채 풀만 뜯었다.
“할마니, 나보고 욕하지 말소. 인제 와서 그런 것 말해서 뭣 할 것인가마는, 이 말은 꼭 해사 쓰겄네.”
영심이가 한때나마 철승이와 눈이 맞아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앞메 잔등을 넘어 안골의 숲 속을 걸어 다니거나, 뒷등 언덕 같은 데서 만나곤 하던 것은 선뜻 고개가 끄떡거려지지 않은 일이었다. 영심이는 농사가 이십여 마지기나 되는 부잣집 딸인 데다 아버지인 창호가 재익의 뒤를 이어 이장을 하여오는 터요, 철승이는 외짝인 할머니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있는 데다 농사래야 겨우 여섯 마지기가 고작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철승 어머니는 백치처럼 말이 없긴 하지만, 밤이면 마을의 사랑방 문 앞을 기웃거리면서 남자 냄새를 맡고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마을 안에 퍼져 있곤 하던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영심이가 철승이와 눈이 맞은 것은 어쩌면 철승이가 퉁기는 기타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철승이가 기타를 퉁기기 이전에는 그의 목소리가 유달리 곱다 하여 처녀들의 눈길과 관심이 몰려들곤 했다. 거기에는 철승이의 얼굴이 예쁘장한 것도 한 것이지만, 그의 집에 대물리어 일어난 불행에 대한 동정이 곁들여졌을 것이었다.
철승이가 느닷없이 재익 이네 미역공장엘 나다니기 시작한 것도 영심이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들은 한시도 떨어져 살기가 싫었던 것이었다. 한데, 재익의 아들 성삼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비고사에 들지 못한 채 대학을 포기하고 마을로 돌아오면서부터 영심이를 자꾸 꾀어내곤 하였다. 이 무렵, 누구 쪽에서 먼저 이끈 것인지는 모르나, 철승이가 이따금 영심이의 눈을 피해가면서 춘자를 만나곤 한 것이었다. 영심이가 그걸 눈치 못 챌 까닭이 없었다. 이후로 영심이가 철승이를 만나주지 않았다.
하루는 성삼이와 영심이가 도리섬으로 배를 타고 놀러 갔다가 왔다는 말이 철승이의 귀에 들어왔다. 이날 저녁에 철승이와 성삼이는 공장 안에서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한판 싸움을 벌인 것이었다. 뒤에 알고 보니, 철승이와 춘자 가운데서 둘의 만남을 이루어지도록 수작을 붙인 것은 성삼이였다.
“저기 덤장막 뒤에서 춘자가 꼭 할 말이 있다고 만나자고 하드라”
하고 철승이를 만나 수작을 붙인 성삼이는 곧 춘자를 불러서, “철승이가 사실은 너를 좋아한 모양이드라. 저기 덤장막 뒤에서 기다리고 있은께 가봐라” 한 것이었다.
철승이가 성삼이의 수작에 넘어간 것을 알아차리고 싸움을 건 것이었다. 그 싸움에서 철승이는 성삼이에게 맥없이 얻어맞기만 했었다. 주먹과 발길을 발동기의 피스톤처럼 내어 날리는 성삼이와 허리를 끌어안으려고 덤벼드는 철승이는 애초에 싸움 상대가 되지를 않았다. 이번 꽃섬에 가서 일어난 칼부림은 그때 그 싸움의 연속인 셈이었다. 너 죽고 나 죽고 하자 하면서 칼을 든 것은 철승이였다고 했다.
어쩌면 집에서부터 칼을 가지고 온 듯했다. 그것은 시꺼먼 식칼이었다. 성삼이가 칼을 보고 달아나기만 했어도 이렇게 피바람이 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데 성삼이가 잠바 지퍼를 찢어 젖히고 맨가슴을 내밀면서, 찔러볼 테면 얼마든지 찔러보라고 한 것이었다. 찔러도 자기 가슴에는 칼끝이 절대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설사 들어간다 하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철승이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희어지면서 몸을 후들후들 떨었다.
이때 누군가가 덤벼들어서 철승이의 손에서 식칼을 빼앗으면서 싸움을 말렸으면 탈이 없었을 것이었다. 철승이도 은근히 그것을 바라고 있었는지 몰랐다. 그러나 춘자나 영자 들은 갯바구니를 든 채, 개와 고양이처럼 자갈밭에서 버티고 서서 으르렁거리고 있는 둘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직 영심이만 조금 전에 철승이 타고 온 가공공장의 배를 정박시키느라고 닻을 던지고 있는 기춘을 향해, “얼릉 내려와서 칼 조깐 뺏아뿌러야” 하고 소리치면서 발을 굴러댔다. 기춘은 배 안에 선 채, 철승과 성삼을 향해서, “느그들 참말로 그렇게 싸울래?” 하고 소리쳐주기만 하고 있었다.
“성삼이 니가 저리 달어나뿌러야.”
춘자가 소리쳤다.
성삼이는 여전히 가슴을 활짝 까 내민 채 칼 든 철승이 앞으로 한 발 한 발 다가서며 소리치고 있었다.
“이 새꺄, 찌를 테면 찔러보란 말이야, 호래새끼*야.”
영자는 성삼이의 위세에 눌린 철승이가 금방 칼을 던지고 도망을 칠 것이라고만 믿고 있었다. 설사 철승이가 어떻게 칼을 휘두른다 하더라도 성삼이는 교묘하게 피하면서 발길질을 함으로써 철승이를 쓰러뜨릴 것으로만 믿었다. 성삼이의 비호같은 발길질을 아는 철승이가 더 버티고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여느 때 성삼이는 자기의 태권도 실력이 칼이나 몽둥이쯤을 상대할 것이 아니요, 권총하고 상대할 수 있는 것임을 늘 자랑하여오던 터였다. 그 자랑이 거짓이 아닌 듯 성삼이는 기세 좋게 칼 든 철승이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고, 철승이는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얘진 채 뒷걸음질을 쳤다. 기춘이도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데 뒷걸음질 치던 철승이가 눈을 부릅뜬 채, “이 새꺄, 안 죽을라면 무릎 꿇고 빌어, 콱 쑤셔 죽에뿔기 전에 얼릉 빌어, 새까” 하고 소리친 것이었다. 성삼이가 하늘을 향해 허허 하고 헛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이를 갈면서 철승이를 노려보았다. 여차하면 몸을 날려 칼을 빼앗고 철승이를 묵사발처럼 깔아뭉개버릴 기세였다.
“기춘아, 쌈 조깐 말려야.”
영심이가 소리쳤다. 철승이가 칼로 성삼이의 가슴을 겨눈 채 눈을 부릅떴다. 성삼이는 또 찔러볼 테면 찔러보라고 하면서 가슴을 철승이 앞에 내놓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윽고, 철승이의 등이 언덕굽이의 바위 앞에 닿았다. 몸을 틀어 옆으로 빠져나가기 전에는 다가서는 성삼이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철승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다리가 떨렸다. 성삼이가 그걸 놓칠 리 없었다.
“찔러봐, 내 가슴에 그 같은 놈의 칼이 들어갈 것 같으냐?”
성삼이의 이 말 속에는 ‘못 찌르겠으면 얼른 무릎 꿇고 빌어’ 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 성삼이는 철승이에게 달아날 틈을 주지 않기 위하여 가랑이를 양옆으로 크게 벌린 채 윗몸을 굽히고 두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금방이라도 치고받고 할 기세였다. 그러면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철승이가 바위에 등을 기댔고, 성삼이가 철승이의 칼 든 손을 재빨리 잡아 젖히는 듯했다. 두 몸뚱이가 한데 엉기었다. 철승이가 성삼이의 옆구리를 껴안고 있었다. 순간 성삼이가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아나 찔렀다, 새꺄. 어짤래? 니 가슴에는 철판 깔었냐?”
철승이가 칼을 든 채 쓰러진 성삼이를 향해 소리쳤다. 철승이의 손에 벌건 피가 묻어 흘렀다. 성삼이의 몸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고, 왼쪽 가슴 한복판에서 벌건 선지피가 솟고 있었다. 배에서 뛰어내려 달려온 기춘이가 쓰러진 성삼이를 흔들었다. 영심이, 춘자, 영자가 달려갔을 때는 성삼이의 눈이 허옇게 뒤집히어 있었다.
“찔러보란 대로 찔렀다, 어짤래?”
이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던 철승이가 모래언덕을 달려 내려갔다. 바위 뒤쪽의 자갈밭을 달려갔다.
“철승아, 어디 가냐아” 하며 기춘이가, 성삼이를 얼른 병원으로 싣고 가야 할 게 아니냐고 소리쳤지만, 철승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때 금당도 어촌계의 발동선이 꽃섬을 향해 달려왔다. 기춘이랑 이 금당도 청년들과 함께 자갈밭을 휘돌아 바위 무더기만 깔려 있는 연안으로 갔을 때, 철승이는 덕도를 향한 바윗돌 틈에 처박혀 있었는데, 가슴에 칼이 꽂혀 있었다.
“나한테는 죄 없어여. 알기를 바로 알소.”
영심이가 구구하게 변명하듯 말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뒤로 돌아앉으면서, “듣기 싫다 이년아, 불난 집에 부채질하러 왔냐?” 하고 악을 쓰듯 소리쳤다. 가슴이 두방망이질하듯 뛰고 숨이 가빠왔다. 영심이의 먹물 찍어 바른 듯한 속눈썹에 물이 묻어났다. 그것이 햇살을 받아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처럼 반짝 빛났다.
“내 속은 불 안 났는지 안가? 아무 말 말고 내 말을 들어보소. 나 시방 부산으로 갈 것이네. 철승이네 어무니가 간 데를 안께 그리로 갈 것이네. 인제 나는 여그서 더 못 살어여. 울 아부지가 나를 어떻게 닦달한 중 안가. 꼼지락 달싹을 못하게 하네. 내가 입든 옷이라고 생긴 것이면 다 찢어갖고 불 처질러뿌렀어여. 잡년질하다가 칼부림 나게 했다고.”
영심이는 잠시 말을 끊더니 흐느껴 울었다.
“내가 참말로 잡년이란가? 철승이를 보듬고 살다가 고등학교 댕긴 성삼이가 온께 성삼이를 또 보듬고 살고 그랬는 중 안가? 아무도 내 속 모를 것이네. 나는 첨부터 철승이하고 둘이 불쌍한 할머니하고 아짐하고를 모시고 살라고 맘묵었어여. 그랬는디 철승이 지가 먼저 변해뿌렸어여. 그런 속이나 알소.”
이 말을 남기고 영심이가 밭언덕을 내려서서 모래밭을 달렸다. 샛개농장 둑을 건너서 삼산으로 가 버스를 탈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일어서서 영심이를 불렀다. 할 말이 있었다. 며느리가 있는 데로 간다는 영심이에게 할 말이 있었다. 해주겠다고 벼른 말이 금방 혀 끝에 맺혀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일단 영심이를 불러 세워놓고 싶었다. 치마꾸리에 달린 붉은 비단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오백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노비로 쥐여주고 싶기도 했다. 할머니는 모래밭으로 내려서서 몇 걸음 뒤쫓아 가면서 배창자를 그러쥐고 목청껏 영심 이를 불렀다. 영심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금방 샛개농장 둑으로 난 신작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농장 둑 아래로 질펀히 펼쳐진 바다는 찔레꽃잎만 한 고기비늘들을 깔아놓은 듯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이때 앞메 잔등을 넘어오는 남자의 걸걸한 목소리가, “나아르을 버어리이고오 가시는 니임으은” 하고 노래를 하고 있었다. 아리랑의 물결 속에 잠겨 있는 마을에서 막걸리를 몇 잔 얼근히 걸치고 오는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발을 멈추고 섰다. 미친 여자처럼 치맛자락을 날리면서 흰 보퉁이를 내두르고 농장 둑으로 들어서는 영섭이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흐릿한 눈이 더욱 침침해졌다. 가슴이 꽉 막힌 듯 아파오고, 어디에 또 그게 그렇게 남아 있었는지, 눈에는 홍건히 눈물이 괴고 있었다.
“시입 리도오 모옷 가아서어 바알병 난다.”
남자의 걸걸한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들과 손자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그 무덤 위로 쏟아지고 있는 햇살에 눈이 부셔 눈살을 찌푸리면서 퉁명 스럽게 흥얼거렸다.
“……발병도 안 나고 잘만 가드라.”
『세계의 문학』 6호(1977년 겨울); 『한승원 중단편전집』 2권(문이당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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