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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남공작부서에서 고위직으로 근무하다 탈북한 김국성씨는 대한민국에 북한 간첩이 15만명이나 있으며, 심지어는 공개된 장소에서 문재인도 간첩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간첩을 잡았다거나, 잡고 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때, 참고가 될 글이 있어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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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한국에는 제2의 김창룡이와 오제도가 없는가?》
김창룡 장군은 특무대(기무사 전신)를 창설한 초대 대장으로 군내부 간첩을 소탕한 공로자였으며, 오제도 검사는 군 밖에서 거물 간첩들을 소탕한 공로자였다.
이 두사람이 해방정국에서 부터 6.25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간첩을 안잡았더라면 남로당 괴수 박헌영이 김일성과 스탈린에게 "인민군이 남침을 하게되면 60만 남로당원이 들고 일어나 남조선을 뒤집을 것이다."라고 장담했던 말이 현실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사람이 남로당 간첩들을 철저히 파멸시켰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항간에는 대한민국에 10만여명의 간첩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런데 잡히는 간첩은 없다. 그러면 이 소문은 유언비어란 말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왜냐? 간간이 북괴를 찬양, 고무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고 심지여 지상파 방송 토론자들 입에서도 북한을 편들고 자기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폄훼하는 발언을 하는 자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해방정국에서 남로당이 뿌린 간첩의 씨는 정계, 군ㆍ경 할것 없이 무수히 많았다.
군에는 최고계급으로 유일하게 별 하나를 달고 국방경비대 총사령관직에 있던 송호성이 남로당 간첩이었으며, 그 밑에 최고 계급인 중령으로 4연대장 김종석(일본육사 55기), 15연대장 최남근(봉천군관학교 5기), 소령으로 육사 생도대장 오일균(일본육사 60기) 등 많은 간첩들이 창군멤버들 중에 침투해 있었다.
특히 오일균 소령이 경비사관학교 생도대장으로 있던 시기인 1947년 1월부터 4월까지 교육을 받은 경비사관 3기생이 간첩이 제일 많았는데, 졸업생 281명 중 80%가 남로당 간첩이었다.
3기생이 그렇게 된 원인은 군내 남로당 세포조직 책임자인 생도대장 오일균 소령과 교수부장 조병걸 소령에게 포섭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48년 제주 4.3사건과 10.19여수 14연대 반란사건 때 간첩행적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제주 9연대에서는 3기생 간첩 문상길 중위와 이윤록 중위가 연대장 박진경 중령을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으며, 여수에서는 역시 3기생 김지회 중위와 홍순석 중위가 14연대 반란을 일으켰다.
토벌군으로 출동했던 중대장들이 대부분 3기생들이었는데, 광주 4연대의 김남근 중위, 김응록 중위 등이 반란군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반란군에 투항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이때 간첩 잡는 저승사자로 유명세를 날리던 김창룡 중위도 3기생이었다.
김창룡 중위는 경비사령부 정보과에서 방첩업무를 수행하였는데, 주 업무가 간첩잡는 일이었다.
김창룡은 47년 4월 19일날 소위로 임관하여 1연대 정보과에 부임한지 한달만에 1연대장으로 부임하게 될 감참사령관(경비대 총사령부 감찰참모) 이병주 소령을 간첩혐의로 검거할 정도의 용기와 사명감이 투철했던 정보맨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당시 소위와 소령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김창룡은 이 문제로 경비사령관 송호성에게 찍혀 보직해임되어 타부대로 전출갈 위기에 처했으나, 주위에서 말려 임무를 계속수행하였다.
1948년 14연대 반란사건 때는 대위가 되어 경비대 총사령부 정보국 방첩과에 근무하면서 군 내부 간첩을 숙청하는데 앞장 섰다. 그때 잡혀온 사람 중에는 자신의 직속상관인 송호성 준장도 있었다.(송호성은 간첩죄가 인정되어 파면됨)
그당시 김창룡의 상관은 과장으로 김안일 소령, 정보국장에 백선엽 중령이 있었다.
여수14연대 반란을 진압한 직후 군 내부 간첩을 색출했는데, 10,317명을 검거했다. 이는 전체 병력의 10%였으며, 이들 중에 장교가 100여명이나 되었다.
김창룡은 공산주의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권총을 잡는 사람이었다.
그런 김창룡은 남로당들에게 저승사자로 통했다.
김창룡은 소령이 되어 1950년 3월까지 군 내부의 간첩들을 완전히 소탕하였다.
그때부터 김창룡은 이승만 대통령의 총애를 받고 직접 대면 보고를 할 정도가 되었으며 특무대를 창설하고 초대 대장이 되어 남로당 거두 김삼룡과 이주하, 이중업 등을 체포하는 등 타공전선(빨갱이 때려잡는 전선)을 진두지휘하여 6.25 전쟁이 터졌을 때 남쪽에서 빨치산 60만이 봉기할 것이라고 장담했던 박헌영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60만 아니라 단, 한명도 봉기하는 세력이 없었다.
이유는 김창룡 특무대장과 오제도 검사가 군ㆍ검ㆍ경 합동으로 남로당 간첩들의 씨를 말려버렸기 때문이었다.
북한에서 대남공작을 담당하다 귀순한 김국성(대좌)의 말을 빌리면 정부에 간첩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 세상에 무슨 간첩이 있느냐고 태평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런 인간하고도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야 하는지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간첩이란 "적대(敵對)되는 상대방의 내부에 침투하여 그 기밀을 알아내는 사람이다."라고 국어사전에 명기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의 기밀을 알아내어 구두건 문서로건 북괴에 전달한 사람은 전부 간첩이다.
그래서 고영주 변호사가 문재인을 간첩이라고 해도 법원은 무죄판결을 한것이다.
지금도 방송토론자들 중에 자진월북이라고 떠드는 자들이 있다. 판문점 경계선을 넘지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저 모습을 보고도 저러니, 실체가 없는 허위날조는 얼마나 하겠는가!
김창룡 특무대장과 오제도 검사가 필요한 요즘이다.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