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어머니의 교훈
조선 시대 희대의 폭군인 연산군이 중종 반정에 물러나고 중종 시대의 원칙과 백성을 위한 충정을
고집하여 무모하게 강직한 신하가 바로 조광조이다.
조광조는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 '남곤'이라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 지냈다.
둘은 누가 공부를 더 잘하는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성적이 뛰어나고 우정 또한 깊었다.
남곤이 조광조 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둘은 격의 없이 친구처럼 지냈다.
어느 날 두 친구는 산으로 놀러 가게 됐다.
길에는 그들처럼 놀러 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예쁜 여자들도 많았다.
조광조는 마음을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 처녀들에게 관심이 가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아찔했다.
그런데 친구인 남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의연하기만 했다.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 조광조는 어머니께 돌아와서 자신의 수양이 덜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여성 앞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남곤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조광조의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얘야, 어서 짐을 꾸려라.
우리는 오늘 밤에 아무도 모르게 이사를 해야겠구나.”
조광조는 영문을 몰라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젊은 사람은 젊은이 답게 살아야 하느니라.
아름다운 처녀가 있는데 젊은이의 심정이 어찌 잠잠하겠느냐?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나무나 돌 같은 목석이지.
네가 처녀들에게 한 눈 판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철이 들면 분별할 때가 있느니라.
나는 너 때문에 이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인 남곤과 사귀지 않도록 급히 이사를 가는 것이다."
그래도 조광조는 어머니께서 왜 그리 수양이 많이 된 친구와 절교를 하게 하려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계속해서 말했다.
“남곤은 목석 같은 사람이고 젊은이의 피가 끓지 않으며, 냉찬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겉으로 보면 수양이 있어 보이지만 속으론 자기도 처녀들에게 쏠렸을 것이다.
그것을 참는다는 것이 너희 나이에는 어려운 일이다.그런데 남곤은 한눈 하나 팔지 않았다면
얼마나 모진 사람이냐?
훗날 남곤이 정치를 한다면 인정 사정없는 무서운 정치를 할 것이다.
사람의 약한 정, 미운 정을 헤아리지 않는 판단을 내릴 것이다.
인간이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는데, 그럴 때 윗사람은 너그러움이
있어야 하느니라.
그래야 죄 지은 사람을 다음에 잘 하라고 용서할 수도 있는 것이지.
그런데 남곤은 그런 아량이 적어, 많은 사람을 피 흘리게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걱정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너를 그런 사람과 사귀게 하겠느냐?
그래서 떠나려는 것이다.
여기서 살면 안 만날 수 없고, 그렇다고 남곤에게 네가 무서워서 떠난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이렇게 부랴부랴 떠나는 것이다.”
조광조는 어머니의 판단에 놀랬다.
“어머니, 그래도 그 친구는 큰일을 하여 나라의 기둥이 될 것입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러나 지금은 너하고 같이 지내게 할 수는 없다.”
먼 훗날 조광조는 나라의 대신이 되어 바른 정치를 펴나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38세에 큰 뜻을 펴지도 못하고 죽음을 당했다.
이때 '조광조'를 해친 사람은 다름 아닌 '남곤'이었다.
※※※※※※
정암 조광조가 백성 위한 위민 정치를 펼치다 자손 대대로 저주 받을 세력들의 모함으로
화순 능주로 위배되어 한 달 만에 사약을 받고 죽었습니다.
달구지에 실려 고향 길에 오른 조광조 선생 시신이 학동과 지원1동을 잇는 다리 원지교를 지날 때
서창 지금의 공항 인근 거주 의로운 선비 박상이 다리에서 기다리다 조광조 시신 앞에 술 한잔 따라
올리며 마지막 작별을 고하며 남긴 시가 생각납니다.
✍ 무등 산 앞에서 서로 손을 붙잡았는데 관 실은 소달구지 만 바쁘게 고향으로 가는구나.
후일 저 세상에서 다시 서로 만나더라도 인간사 부질없는 시비일 랑 더 이상 논하지 말세나.
💢세상사 늘 시기, 미움, 질투, 음모자 있는 법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 없다.
괜히 도와주고 싶었는데 남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가능한 시비일랑 꺼리에 휘말리지 않는 게 최상의 삶이란 점 깊이 새겨본다.
조선 중종 때 훈구파의 남곤, 심정 등이 기묘 사화를 꾸며 사림파 조광조의 개혁 정치를 뭉개버렸다.
결국 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나 모함으로 조광조를 죽이고 영의정에 올랐던 남곤도
'문경'이란 시호와 관작까지 삭탈 당하고 역사에 더러운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하게 웃으면서 살아요.
늘 감사합니다.
<받은 메일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