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길을 걸어가는 것을 즐긴다. '꾸역꾸역'은 달팽이의 속도를 꿈으로 품는다. 느릿한 속도는 자동차를 타고 휙 지나갈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을 만나게 한다. 예상치 못했던 것들이 눈앞에 나타나며―그것이 즐거움이든 두려움이든―우리 몸은 자기라는 좁은 영역을
벗어나 세계로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애초 남일초등학교 교정에 자리잡아
학교 옆
도로확장 공사 베어질 운명
주민·학부모 백방 노력 위기 넘겨
부산 메리놀 병원에
병문안을 갈 일이 있었던 날, 꾸역꾸역 오르막을 걸어가던 영선고갯길에서 이 특별한 은행나무도 그렇게 만났다. 길에는 아직은
호리호리한 튤립나무들이 가로수로 심어져 옅은 바람결에도 귀여운 잎을 조금씩 흔들었다. 도시생활의 중요한 한 특징은 질서다.
가로수도 도로 선을 따라 일렬로 줄을 지어 서있다. 직선으로 그어진 도시 선과 함께 우리의 타고난 자연으로서 감각도 상상력도
구획되며 점점 길들여지고 퇴화되어 간다. 그런데 도시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던 모습 앞에 발걸음이 우연히 닿았다. 도로의 선이
양보를 하였다! 우람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도로 안에 들어가 서있다. 응당 직선이어야 할 4차선 도로 선은 은행나무 몸이 생긴
대로 둥글게 휘어져 있다.
차들도 은행나무 앞에서 조금 돌아간다. 도로를 완만한 곡선으로 만든 나무는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1912년 남일국민학교가 개교할 때 교정에 심어져 90여 년 동안 학교의 역사를 지켜보며 자라던 나무다.
학교 옆 영선고개 도로 확장공사에 들어가게 되어 어느 날 하루아침에 베어질 형편이 되었다. 나무와 오랜 세월 오가며 이웃으로 살던
주민들과 남일국민학교 학부모들이 나무를 살리도록 중구청에 요청을 하였다. 보호철책에 붙어있는 안내판에는 이런 나무와 사람의
이야기가 있고 통행에 조금 불편하더라도 양해하기를 부탁하는 말이 적혀있다.
여러 의견이 있었겠지만 은행나무는 제 있던
자리에 변함없이 서있게 되었다. 학교 교정 안에서 꼬물꼬물 지나는 아이들을 보고 지내다가, 나무는 차들이 쉬지 않고 휙휙
지나다니며 매연을 뿜어대는 정신없는 도로를 보고 서있게 되었다. 환경이 힘들 터인데도 나무는 생기 있고 늠름하게 잘 자라나고
있다. 그건 은행나무가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의 힘 덕일 거다. 이제 110살 쯤 나이를 먹은 이 나무는 오래 된 은행나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곁가지에서 땅으로 향해 나는 긴 돌기인 유주를 달고 있다. 1000년을 넘게 사는 은행나무의 수명으로 보면 한참
더 번성하게 성장할 나무다. 나무를 보고 있으니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이 생각난다.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나무도 사랑으로 산다. 하지만 도시 생활 속에 밀려오는 나날의 숙제는 그것을 깜박 잊게 한다.
잊는 것은 잃는
것이기도 하다. 하루하루 변화하는 이 도시에서 생을 완수하느라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는 동안 우리의 주변을 사랑하고 믿는 감각은
조금씩 무뎌진다. 어린아이 때 우리들의 감각은 소와 나무와 시냇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지 않았던가. 지금은 사람의 말조차도 귀
기울여 듣지 못한다는 열패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러기에 틀에 박힌 도로 선에서 조금의 휘돌아가는 양보를 이뤄낸 은행나무가 늠름하게
보이고 나무가 잘 자라는 것이 우리들의 사랑과 믿음이 굵게 자라는 것만 같다.
환경이 변하면서 사라질 뻔 한
나무를 살리기 위해 사람들이 노력한 예로 경북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가 있다. 나이가 700살인 이 나무가 있던 자리에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물속에 잠겨 죽게 되자 사람들이 살려내기로 결정하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그 자리에 두고 흙을 쌓아 높여가는 방법으로
30m나 되는 인공산을 3년에 걸쳐 만들었다. 나무를 보호하는 데 든 비용이 무려 12억원이라고 한다. 한 나무를 살리기 위하여
이토록 노력할 수 있으니, 우리나라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랑의 힘이 아직 살아있는 밝은 곳이라는 자부심이 든다. 영선고개는
부산 중구 영주동 부산터널 입구에서 메리놀병원, 가톨릭센터, 국제시장 입구 사거리로 이어지는 고갯길이다. 이 길은 6.25 전쟁 때
부산에 상륙한 유엔군이 부산에서 처음으로 아스팔트를 포장하여 '유엔도로'라고 불리기도 하는 부산의 역사가 담긴 옛 추억의
길이다. 지금은 헐려 없어진 영선산의 숲속 오솔길을 넘어오면 부산 앞바다가 넓게 펼쳐진 것을 보며 이 길을 걸어 내려갔다고 한다.
길도 나무도 사람들과 함께 곡절을 겪으며 크게 보아 한 몸으로 시절을 살아나간다. 어느 한쪽이 상처받으면 다른 한쪽도 아프다.
나무를 보호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더 큰 테두리로 보호하는 것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