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편지
... 수천 개 연등 / 들고 계신 어머니 / 나보다도 더 날 사랑해/
탈 대로 탄 붉은 가슴 열린 / 저 무한천공...
- 천양희, ‘ 감나무 ’ 중에서
초겨울 벽공 (碧空) 에 걸린 감을 볼 때마다 저는 고향이 떠오릅니다.
정겨운 외할머니 댁이 감나무집이었지요.
저의 원시, 태초의 둥지는 감나무 울타리였고,
남빛 하늘의 그리움이었습니다. 그하늘의 등불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라서는 연말이면 수도 없이
감을 그린 연하장을 띄우곤 했지요.
들려오기로 어떤 이는 그 작은 졸작을 표구해
걸어두었다고도 했습니다.
“하늘의 한 모서리가 잔잔하게 불타오르고 있소…, 코발트빛 하늘을 배경
으로 일제히 불을 켠 유황빛, 또는 홍색의 무수한 등불, 한 해에 한 번씩
노을빛 무게에서 수많은 해돋이, 낙조 또 달빛의 흔적을 찾으며 뜨락을 지
나오. 흔들리는 불빛에 부서지는 노을빛 바람 한 자락과 바람도 없이 떨어
지던 가을 물든 감나무잎 한 장을 동봉하오 … ,”
- 허만화, ‘감나무 편지’ 중에서
이렇듯 해마다 감나무를 바라보는 상념은 특별한지,
지난 일기도 붉게 물들어 있네요.
“바람에 날려 떨어진 감나무잎 한 장 주워와 바라보니
신비와 화엄의 세계가 펼쳐진다.
잎맥이 거미줄처럼 영롱한 인드라망의 우주!
햇살과 물과 공기가 만든 저 다양한 색채를 보며
내 안의 삶은 어떠했는지? 한해의 삶을 돌이켜 본다.
내 속 뜰과 영혼의 무늬에 대해…,
이제 잎은 마지막 빛이 바래고 형체는 삭아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어느 생명의 거름이 될 것이다. 남은 감은 까치밥이 되고…
나의 삶도 저와 같을 수 있기를, 오늘의 부끄럼도,
거친 미움도 부디 삭고 삭아서 새날의 생명에게 거름되기를….”
한 해가 저무는 시간, 허공의 감을 보며 열매 맺어야 할 것과
비워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은혜의 시간 속에 붓을 들어 그림편지 띄웁니다. ♧
이호신 ⊙ 화가
첫댓글 감을 연등이나,등불에 비유할 수 있는 마음이... 하늘을 배경으로 잎이 다 떨어진 나무에 올망올망 매려 있는 주홍빛 감.. 정말 등불같겠습니다. 저의 시댁 영동은 시내 가로수가 감나무인데, 40여년이 됐다고 합니다. 그래도 한번도 그런 생각 못해봤는데.... 무딘 정서가 슬프네요.
서산 선원앞 마당에 늙은감나무도 자식들을 주렁주렁 매달아 놨는데 올해는 누가 따가질 않아서
지금은 빠알간 열매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합니다.
전에는 지후가 따다가 나눠먹기도 했는데 지금은 직박구리란놈이 날마다 찾아와
아껴가면서 독차지하고 있다합니다. 동짓날이나 볼수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