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지극정성이면 하늘도 감천(感天)이라.
조선 영조때 암행어사 박문수가 거지 꼴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민정을 살피고 탐관 오리들을 벌 주던 때였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 주막에 들렀는데,
봉놋방에 들어가 보니
한 거지가 큰 대자로 퍼지르고 누워 있었다.
(봉놋방 : 여러 나그네가 한데 모여 하루밤 자고가는 주막집의 큰 방, 즉 합숙소)
사람이 들어와도
본 체 만 체 밥상이 들어와도 그대로 누워 있었다.
어사 박문수가 말했다
댁은 저녁 밥을 드셨수?
아니요 돈이 있어야
밥을 사 먹지.
그래서 어사박문수는
밥을 한상 더 시켜 주었다.
그 이튿날 아침에도
밥을 한상 더 시켜서 주니까
거지가 먹고 나서 말을 꺼냈다.
보아하니 댁도 거지고
나도 거진데 이럴게 아니라
같이 다니면서 빌어먹는게 어떻겠소?
박문수도 영락없는 거지 꼴이니 그런 말을 할만도 했다.
그래서 그 날부터 두 사람은 같이 다니게 되었는데.
어느날 제법 큰 동네로 들어서니 마침 소나기가
막 쏟아졌다.
그러자 거지는 박문수를 데리고 그 동네에서 제일
큰 기왓집으로 불쑥 들어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한다는 말이 지금 이 댁 식구
세 사람 목숨이 위태롭게 됐으니 잔말 말고 나 시키는 대로만 하시오
지금 당장 마당에 멍석을 깔고 머리 풀고 곡을 하시오.
안 그러면 세 사람이 죽는다고 하니 시키는 대로 했다.
그 때 이 집 남편은 머슴 둘을 데리고 뒷산에 나무를 베러 가 있었다.
어머니가 나이 아흔이라
미리 관(棺)을 짤 나무나 장만해 놓으려고 간 것이다.
나무를 베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자 비를 피한다고
큰 바위 밑에 들어갔다.
그 때 저 아래서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구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나 보다
얘들아 어서 내려가자.
머슴 둘을 데리고 부리나게 내려오는데 뒤에서 천둥소리가 나더니 벼락에 바위가 쿵 하고 무너져 내렸다.
간발의 차이로 위험을 모면하고 내려온 남편은
전후 사정을 듣고 거지한데 절을 열두 번도 더 했다.
우리 세 사람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 무엇으로 보답하면 좋겠소?
정, 그러면 돈 백 냥만 주시구려.
그래서 돈 백 냥을 받았다
받아서는 대뜸 박문수에게 주는 게 아닌가.
이거 잘 간수해 두오.
앞으로 쓸 데가 있을 테니.
박문수가 가만히 보니
이 거지가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시키는 대로 돈 백 냥을 받아서 속주머니에 잘 넣어 두었다.
다시 며칠을 지나서 어떤 마을에 가게 됐다.
그 동네 큰 기와집에서 온 식구가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거지가 박문수를 데리고
그 집으로 쑥 들어갔다.
이 댁에 무슨 일이 있기에 이리 슬피 우시오?
우리 집에 7 대 독자
귀한 아들이 있는데
이 아이가 병이 들어 죽어가니 어찌
안 울겠소?
어디 내가 한 번 봅시다
그러더니 병 든 아이가 누워 있는 곳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곧장 사랑채로 들어가선 주인에게 말했다.
아이 손목에 실을 매어 가지고 그 끄트머리를 가져오시오.
미덥지 않았으나
주인은 아이 손목에다 실을 매어 가지고 왔다.
거지가 실 끄트머리를 한 번 만져 보더니
뭐 별것도 아니구나
거 바람벽에서 흙을 한줌 떼어 오시오.
바람벽에 붙은 흙을 한줌 떼어다 주니
동글 동글하게 환약 세 개를 지었다.
주인이 약을 받아 아이한테 먹이니 다 죽어가던 아이가 말짱해 졌다.
주인이 그만 감복해서 절을 열두 번도 더 했다.
7대 독자 귀한 아들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
내 재산을 다 달란대도 드리리다.
그런 건 필요 없고
돈 백 냥만 주구려.
이렇게 해서 백 냥을 받아 가지고는 또 박문수를 주었다.
잘 간수해 두오.
앞으로 쓸 데가 있을 거요.
다시 길을 가다가 보니 큰 산 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웬 행세 꽤나 하는 집에서 장사 지내는 것 같았다.
기웃기웃 구경하고 다니더니 마침 하관을 끝내고 봉분을 짓는 데 가서
에이, 거 송장도 없는 무덤에다 무슨 짓을 해?
하고 마구 소리를 쳤다.
일하던 사람들이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네 이놈 그게 무슨
방정맞은 소리냐
이 무덤 속에 송장이 있으면 어떡할 테냐?
아, 그럼 내 목을 베시오
그렇지만 내 말이 맞으면 돈 백냥을 내놓으시오.
일꾼들이 달려들어 무덤을 파헤쳐 보니
참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과연 방금 묻은 관이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그걸 찾아 주려고 온 사람이오 염려 말고 북쪽으로 아홉자 아홉치
떨어진 곳을 파보시오.
그 곳을 파 보니 아닌게 아니라 거기에 관이 턱 묻혀 있었다.
여기가 명당은 천하 명당인데
도시혈(逃屍穴) (시체가 움직여 다른곳으로 도망가는 혈)이라서 그렇소 지금 묻혀 있는 곳에 무덤을 쓰면 복 받을 거요.
이렇게 해서 무사히 장사를 지내고 나니
상주들이 고맙다고 절을 열두 번도 더 했다.
명당 자리를 보아 주셨으니 이 은혜를 어떠게 갚아야 할지요?
아, 다른건 필요 없으니
돈 백 냥만 주구려.
그래서 또 돈 백냥을 받아서
다시 박문수에게 주었다.
이것도 잘 간수해 두시오. 반드시 쓸데가 있을 거요.
그리고 나서 또 가는데,
거기는 산중이라서 한참을 가도 사람사는 마을이 없었다.
그런 산중에서 갑자기 거지가 말을 꺼냈다.
자, 이제 우리는 여기서 그만 헤어져야 되겠소.
이 산중에서 헤어지면 나는 어떡하란 말이오?
염려 말고 이 길로 쭉 올라가시오.
가다가 보면 사람을 만나게 될 거요.
그리고는 연기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한참 동안 올라가니
고갯마루에 장승하나가 떡 버티고 서 있었고
그 앞에서 웬 처녀가
물 한 그릇을 떠다놓고
빌고 있었다.
장승님 장승님, 영험하신 장승님 우리 아버지 백일 정성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한시 바삐 제 아버지를 살려 주십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박문수가 무슨 일로 이렇게 비느냐고 물어보니
처녀가 울면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관청에서 일하는 아전이 온데
나랏돈 삼백 냥을 잃어버렸습니다.
내일까지 돈 삼백 냥을 관청에 갖다 바치지 않으면 아버지 목을 벤다는데, 돈을 구할 길이 없어 여기서 백일 정성을 드리는 중입니다.
박문수는 거지가 마련해 준 돈 삼백냥이 떠올랐다.
반드시 쓸 데가 있으리라 하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이로구나 생각했다.
돈 삼백 냥을 꺼내어 처녀한테 건네 주었다.
자, 아무 염려 말고
이것으로 아버지 목숨을 구하시오.
이렇게 해서 억울한 목숨을 구하게 됐다.
그런데 그 처녀가 빌던 장승이 비록 나무로 만든 것이련만 가만히 살펴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조금 전까지 같이 다니던
그 거지 얼굴을 쏙 빼다 박은 게 아닌가 ! ...
어린시절 여름밤 모기불 연기가 자욱한 마당에서 은하수를 쳐다보며 할아버지께 들었던
아련한 옛날 이야기다.
- 펌 글 -
*유비 현덕에게 제갈량있듯이
우리의 암행어사박문수에게도
거지로 둔갑한 귀인있었네
우둔한 나의 현자는?ᆢ
오늘도 주변 賢者들과 함께!!♡
9월 11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