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리 여행 ]
구정을 앞두고 5일간 여행하기로 했다.
우선 대략적인 계획이 머리에서 구상되었다.
그 동안 가보고 싶었던 풍기, 영주, 영덕, 포항을 거쳐 부산으로 해서
마지막 날은 고속철로 귀향하는 계획이다.
그런데 기차표를 예약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하행선이 완전 전멸했다는 대답이다.
나는 기차 아니면 도저히 여행을 못하는 체질이다.
과민성 대장증상으로 항상 화장실이 근처에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기차가 제격이다.
고민 끝에 대한민국 어디라도 좋으니 하행선 표가 있는 곳을 검색해 달라고 했다.
경춘선에 표가 남아있단다.
경춘선이라면 불과 몇 개월 전에 강촌에 갔던 기억이 있다.
춘천에도 그 유명한 닭갈비를 먹으러 간 적도 있고 특히 기억나는 것은 눈이 흠뻑 오던 날
아버지를 모시고 기차를 타고 가서 송어회를 먹고 온 기억도 있다.
지금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추억을 많이 남겨주셨기 때문에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글쎄 경춘선을 또 타야하나하고 한숨을 쉬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가평에 남이섬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남이섬은 근래 마누라와 2번이나 도전했다가 한 번은 인간이 너무 많아서
또 한 번은 너무 늦게 도착해서 포기한 이력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청량리 역으로 가서 가평 행 좌석 왕복과 풍기 행 입석으로 하나씩 끊어 놓았다.
풍기까지는 중구장창 4시간 거리다. 4시간을 어떻게 서서 간담..
가평은 그저 강줄기만 떠오르는 동네였는데 남이섬과 연결이 되는 줄은 몰랐다.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아주아주 작은 동네이다.
남이섬행 버스를 찾아보니 1시간 15분 뒤에 있다고 매표원이 택시를 타고 가라고 권장한다.
그러면서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는 어둑한 시간에 혼자 남이섬을 찾아가는
중년의 사내를 갸우뚱거리며 쳐다본다.
인생의 여유를 즐기러 가는 여행에서 택시를 타면서까지 시간을 쪼갤 필요는 없다.
모름지기 여행은 느긋해야 제 맛이 있는 법이다.
시간이 남아 가평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 작은 동네에 없는 것이 없이 다 있다.
그런데 동네 구경이고 뭐고 없다. 좌우로 5분씩 걸으니 그 것으로 끝이다.
터미널 앞에 9,900원짜리 광어회가 있어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코딱지만한 회와 소주 한 병의 양을 가늠하며 홀짝거리고 있는데
부인인 듯한 여인이 장을 봐가지고 무거운 짐을 낑낑대며 들고 들어온다.
지아비의 일을 도와 열심히 종부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이런 아름답고 순종하는 여인을 얻은 주인인 남편은 행복한 사람이다.
유치원, 초등학생 어린이가 엄마 뒤를 졸랑졸랑 따라다닌다.
내 직업이 또 뭔가. 아이들 다루는 일 아닌가.
아이들을 옆으로 불러 그림을 그려주니 깔깔거리고 좋아한다.
식사를 끝내고 아이들에게 과자 사먹으라고 2천 원씩 주고 나왔다.
내가 은총을 베풀어주었으니 이 가정은 반드시 복된 가정이 될 것이다.
남이섬에 도착하니 칠흑같이 깜깜하다.
배를 타니 승객은 친구인 듯한 젊은 여자 2명과 나 혼자뿐이다.
겨울소나타에서 보았던 길게 펼쳐진 길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바닥에는 밝은 등을 깔아놓아 길을 안내하고 있다.
엠피쓰리를 꺼내 김정민의 ‘그대 사랑 안에 머물러’와 이승철에 ‘인연’을 듣는다.
김정민은 거친 목소리가 매력이고 이승철은 감미로운 목소리가 매력이다.
내 인생에 앞으로 이런 여유로운 감상에 젖을 기회가 다시 있을까싶다.
좀더 깊이 들어가 탐색하고 싶지만 조명이 없어 위험할 수 있어 포기했다.
간간이 팔짱을 낀 남녀가 남이섬 분위기를 그럴 듯하게 살려주고 있다.
이렇게 작은 섬에 호텔 등 완벽한 시설이 구비되어 있는 것을 보니
비로소 욘사마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다.
주변이 온통 일본어 천지다.
하늘을 쳐다보다가 놀라고 말았다.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서울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별천지가 지금 내 위에 펼쳐지고 있다.
유일하게 아는 북두칠성을 찾다가 목이 꺾어져서 그만 두고 말았다.
이 별무리만으로 남이섬에 온 본전은 건진 셈이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가 없어 콜택시를 불러 탔다.
가평에서 가장 최근에 지은 모텔로 안내해달라고 했더니
이 방면에서는 택시기사가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방을 잡고 배가 출출해서 아까 회를 먹었던 곳으로 가서
5천 원짜리 매운탕을 먹었는데 너무 맛이 있어서 그만 두 공기를 먹고 말았다.
여행에서는 과식은 절대 금물이다.
뚜벅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과식하면 몸이 무거워지고 자연히 발걸음이 힘들어 진다.
종일 움직여야 할 몸이 힘들어지면서 저녁 때까지 체력적인 고통이 수반된다.
청량리 행 10시 20분 표를 끊어놓았기 때문에 긴장한 탓인지
새벽에 자주 깨어 잠을 설쳤다. 기차를 놓치는 낭패만큼 황당한 일은 없다.
아침에 청량리에 도착하자마다 혹 풍기 행 좌석 예약 취소된 것 없느냐고 물으니
마침 하나 있다고 해서 얼른 입석을 좌석으로 바꾸었다. 횡재를 한 기분이다.
이 것도 여행을 하면서 배운 재치이다.
자, 4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절대 필요한 것이 책이다.
점심은 김밥으로 간단히 채우고 역 앞의 세븐일레븐에서 능소화란 책을 하나 샀다. 9천원.
내용을 보니 불과 며칠 전 안동에서 발견한 미이라의 무덤에서 나온 부인이 쓴 사부곡을
소설로 각색한 내용인데 그렇지 않아도 꼭 구해서 보고 싶었던 책이다.
기차 안에서 한 번 펼친 그 책을 닫을 수가 없었다.
시공을 뛰어넘은 부인의 애틋한 마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좋은 책을 한 번에 다 보면 아쉬움이 크다.
맛있는 음식을 감추어두었다가 나중에 먹듯이
남은 부분은 자기 전에 읽기로 하고 아껴두었다.
다시 엠피쓰리를 들으면서 차가운 맥주를 마신다.
차창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산하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아까 읽었던 책의 내용만 머리 속에 맴돈다.
철저한 유교 전통 사회에서 이렇게 멋진 글을 쓴 여늬란 여인은 대체 어떤 여인일까.
얼마나 그리웠으면 ‘꿈에라도 나타나주세요.’하는 대목에서는
애절한 마음이 내 뼈에 사무칠 정도이다.
100년쯤 지나 타임머신이 발명되면 그 얼굴 볼 수나 있을까.
풍기는 대략 25년 전에 회사 업무상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다.
강산이 2번 하고도 반이 바뀌었으니 옛날의 그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목이 칼칼해서 어디 호프집에서 생맥주나 한잔 하려했는데 아직 문을 연 곳이 없다.
오늘이 바로 구정 당일이다.
마침 비비큐 문 연 곳이 있어 생맥주 한 잔 팔 수 있냐고 물으니 들어오란다.
지도를 펴들고 다음 계획을 세우면서 가지고 온 땅콩으로 맥주를 하고 있는데
주인놈이 느닷없이 ‘서울 사람들 깍쟁이지요?’한다.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오늘 내가 첫 번째 손님인데
첫 손님이 이렇게 안주까지 들고 와 마시면 좋아하는 사람 없단다.
게다가 이런 손님은 일년에 한두 명인데 내가 새해 첫날
첫 손님이 되어 불쾌하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나는 지나가는 나그네로 물 한 잔 얻어먹는 기분으로 가볍게 왔다고 했다.
그들에게 나쁜 인상을 줄 필요가 없겠다 싶어 닭 반 마리를 시켜
그만 생맥주로 취하고 말았다.
주인놈 때문에 풍기 인심은 걸레가 되고 말았다.
남은 닭을 싸가지고 나와서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구경하려 했는데 벌써 어둑해진다.
시골이 도시보다 밤이 빨리 찾아오는 이유가 밤을 밝혀줄 야경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변이 온통 산이라 일몰이 빠르기 때문이다.
내일 가기로 하고 풍기 호텔로 숙박을 정했다. 깔끔하다.
모텔은 음침한 분위기인데 호텔은 로비가 환하고 커피숖도 있고 식당도 있다.
4만원이면 호텔치고 상당히 싼 금액이다. 방도 깨끗한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내일 부석사행 버스 시각표를 프론트에서 확인해 두었다.
아까 읽다 남은 능소화를 다 읽고 한동안 멍한 기분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책의 내용을 여기에 다 쓸 수는 없다. 각자 돈 주고 사서 보길 바란다.
영양군 입암면 신구리 823번지..
내일 갈 예정인 영주에서도 가깝고 영덕에서도 가깝다. 우연의 일치 아닌가.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인도하는 것 같다.
소주 한 병을 들고 가서 무덤에 뿌리고 예를 차리기로 했다.
저녁을 먹어야겠는데 닭을 너무 많이 먹어 굶기로 했다.
자기 전에 욕실 문을 열어놓고 더운물 샤워를 약하게 틀어놓았다.
이 것이 가습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침에 심한 물설사를 했다. 어제 기름기 투성이인 닭을 혼자서 다 먹은 탓이다.
올리브에 튀긴다고 그렇게 광고를 해대더니만 좋은 기름도 이렇게 과하면
몸에서 일방통행이 되는 법이다.
아침에 부석사에서 약간 경사진 길을 오르느라 땀이 밴다.
숨도 가쁘니 모처럼 운동도 된 셈이다.
오르는 길에 비석이 하나 있는데 글씨가 하도 명필인데다 눈에 익어
뒷면의 글쓴이를 보니 역시 여초 선생이다.
이 양반은 서예 대가 중의 대가인데다가 안동 김씨 명문가 집안이고
나도 몇 번 뵌 적이 있다. 아쉽게도 한 달 전에 돌아가셨다.
절이란 것이 대개 엇비슷하다. 하도 유명해서 찾아온 것뿐이다.
내 친구 근성이도 부석사.. 하니깐 무량수전하고 척 답하지 않는가.
대략 구경하고 내려와 소수서원 행 버스를 시간을 보니 35분 정도 남았다.
1시가 넘었는데 아침도 안 먹었으니 출출하다.
도토리묵 5천원, 동동주 5천원.
작년 밀양 얼음골 여행에서 동동주 한통 다 먹었다가 오후 내내 무기력증에 빠진
경험이 있어 인상이 좋은 여주인에게 한통 다 마시면 남은 일정에 장애가 되니
각각 반씩만 팔라고 부탁했다.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승낙한다. 좋은 주인이다.
도토리묵 2,500원, 동동주 2,500원.
혹 이 주인도 날보고 서울깍쟁이라고 했다면 화딱지가 나서
아마도 한통 다 마셨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도토리묵은 이런 깊은 산골이 제 맛이다.
향긋한 나물과 어우러져서 동동주와 궁합이 너무 잘 맞는다.
마치 신선놀음을 하는 기분이다.
책 읽고 음악 듣고 좋아하는 술 마시고
드넓은 들녘은 봐도 봐도 지루하지 않고
오늘 하루가 끝나면 내일 찾아가야 하는 미지의 세계가 있고..
소수서원은 紹修라고 쓴다.
이을소, 닦을수이니 배움을 중단하지 말고 이어서 수양하라는 뜻이다.
옆에 선비촌은 더 재미있다. 선비들이 살던 마을 그대로 보존한 곳이다.
참 정감이 가는 곳이다.
집구조가 여름이면 통풍이 잘 되도록 앞뒤로 큼지막한 문이 있고
바로 앞에선 널직한 난간이 있어 겨울에는 햇볕 받기 좋도록 되어 있다.
수십억짜리 강남 아파트가 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사방이 갇힌 공기 탁한 헬스클럽에서 땀 흘리고 고급스런 지하 식당에 들어가서
비싼 음식 처먹는 것이 웰빙이라면 우리네 선비는 무릉도원이다 이 놈들아.
영주 행 버스를 탔다.
영주는 한우고기가 유명하다고 홍보를 하고 있다.
간 김에 먹고 가려고 홍보전단에 나와 있는 한우 식당에 전화를 했더니 1인분은 안 판단다.
영주.. 꽤 큰데 참 지저분한 동네이다.
이 지저분한 마을에서 기른 소가 얼마나 맛있을까. 안 먹길 잘했다.
신구리로 가는 차편은 이미 끊어졌다.
봉화에 닭실마을이 있는데 이름도 특이하고 티브이에서 본 기억이 나서
봉화에서 일박하기로 하고 봉화로 갔다.
웬 걸 도시형의 꼴을 갖추고 있지만 아주 작은 마을이다.
둘러보니 꾀죄죄한 여관만 눈에 뜨일 뿐 모텔다운 모텔이 없다.
닭실마을은 실망 그 자체이다. 아까 본 선비촌의 10프로도 정비가 안 되어 있다.
실망만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봉화로 돌아왔다.
신구리로 가기 위해서는 오늘 봉화에서 묵어야하는데 동네도 마음에 안 들고 황량하다.
터미날로 와서 시간표를 보니 곧 바로 영덕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신구리는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냉큼 올라탔다.
영덕에 가면 봉화보다야 낫겠지.
나는 나그네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여행을 떠나면 땅을 요 삼아 하늘을 이불 삼아야 한다고 책에서 보았다.
그러나 나는 결벽증이 있어 하루라도 목욕을 안 하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이해해 주길 바란다. 참 청결한 사나이이다.
영덕에 도착하니 캄캄한 9시쯤..
저녁은 영덕대게로 먹기로 하고 항구를 찾으니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한단다.
젠장.. 버스가 끊어졌으니 택시를 탈 수 밖에 없다. 여행 중 두 번째 택시 이용이다.
강구 항구. 여기가 그 유명한 영덕인데 원래 이름은 강구란다.
택시 기사에게 가장 깨끗한 작년 여름에 지었다는 여관을 소개 받았다.
서울에서 9만원에 파는 영덕게를 여기서는 대략 2-3만원이면 해결될 줄 알았다.
10만원이란다. 한 마리에.. 미친 놈 아닌가.
그래서 반 마리는 안 되냐니까 주인이 오히려 나를 미친 놈 보듯이 한다.
허긴 반 마리 5만원이래도 너무 비싸 먹을 수가 없다.
짜장면이나 먹고 자야겠다고 터벅터벅 걷는데 지하로 들어가는 식당 골목이 보인다.
혹시나 하고 들어가서 가격을 물어보니 7만원이란다.
조금 걸어가다 마지막으로 한 군데서 물어보니 이미 쪄놓은 것이 있는데 1만원에 주겠단다.
너무너무 고마워서 손님인 내가 절로 고개를 굽신굽신 한다.
유감없이 서울 깍쟁이 기질을 보이고 말았다.
창가에 자리 잡고 앉으니 혼자뿐인 나를 위해 친절히 온돌난방을 해준다.
밖에는 강 하류와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바닷바람이 경쾌하다.
만 원짜리임에도 살이 제법 들어있다.
밥 한 공기를 부탁하니 시키지도 않은 게 매운탕을 서비스로 준다.
국물 맛이 기가 막히게 시원하다.
여행 중에서 가장 잘 먹은 한 끼다.
이런 인심도 있다는 것을 풍기의 그놈은 알아야 한다.
조금 있으니 동네 아낙네 4명이 들어와 여주인과 술을 마시는데
날보고 합석을 하자고 해서 같이 합석하면서 나눈 대화가 신구리 가는 길이다.
친절하게도 어떤 아주머니가 자기가 차로 안내해준다는 것을 거절했다.
혼자 여행하기로 결정을 했으면 철저하게 혼자여야 한다.
누군가 동행한다는 것은 그를 항상 의식해야 하므로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까 그 여관에서 일박 했다.
창문을 열어놓고 잤는데 이상하게 춥지가 않다.
낮에 데워진 바닷바람이 육지로 불어오기 때문일까.
새벽에 잠이 깨어 잠시 여늬라는 주인공을 생각했다.
오싹 하는 기분이 느껴진다. 옆에 와 있는 것처럼..
어제 아낙네들이 알려 준대로 영덕으로 다시 나가 영해로 가서 신구리를 찾아가기고 하고
터미널에 갔는데 표를 파는 휠체어는 탄 장애 사내가 더 좋은 길을 알려준다.
진보로 가면 신구리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단다.
시간과 돈을 번 것이 고마워서 캔커피 하나 건넸다.
진보현으로 가보니 꽤 큰 도시다. 옆에는 청송 감호소가 있다.
여기서 신 아무개하고 조 아무개가 탈출했던 기사가 생각난다.
혹 청송 감호소 때문에 진보의 상권이 활발한 것이 아닐까.
많은 가족들이 면화를 오고가고 할 테니까..
신구리 행 버스를 탔다. 신구리가 다가올수록 가슴이 두근거린다.
여기저기 보이는 높고 낮은 봉분들에만 눈길이 간다.
혹 떼가 벗겨진 것이 있다면 그 곳이 내가 찾아가는 곳일 수 도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둘러보았다.
깡촌으로 생각했던 신구리가 제법 아담한 마을이다.
동네 촌로 두 분에게 여쭈었더니 모른단다.
면사무소로 들어가 주소를 들이대고 안내를 부탁했더니 산으로 시작되는
주소도 없을 뿐이고 이 작은 마을에 800번지까지 가는 주소가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대체 뭔가 이게..
책의 저자하고 통화를 하려다가 면사무소 직원에게서 이장 전화번호를 얻었다.
옛날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소설가란 자기가 쓴 글이 진짜인양 독자에게 전달이 되어야 진짜 실력 있는 소설가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설은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픽션, 즉 허구로 스토리를 구상하는
작업인데 책을 읽는 독자들이 진짜인양 느낄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통화 연결된 이장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그 작가란 사람과 함께 여기저기 다 뒤졌으나 결국은 찾지 못하고 그냥 갔단다.
책의 내용은 작가가 자기 나름대로 구성을 해서 쓴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맥이 탁 풀린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안동대학교 교수이고 나이가 나보다 10년 아래인데
내가 나이 값도 못하고 속아 넘어간 것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없다.
그 옆에 흐르는 반변천은 옛 이름 그대로이고 사방에 둘러친 산의 이름도 그대로이다.
신구리까지 와서 여늬가 살았던 동네를 탐방했음으로 해서 웅태와 여늬가 안동과 신기를
오가며 살았을 그 광경을 즐겁게 상상할 수가 있지 않은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여늬와 그 어여쁜 남편(여늬의 표현)과
원이, 승회가 손잡고 걸었던 길일 수도 있다.
내가 들어갔던 면사무소가 어쩌면 여늬의 집이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심호흡을 깊이 했다. 420년 전에 여늬가 마셨던 공기를 나는 지금 마시고 있는 것이다.
그냥 떠나기가 아쉬워서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려고 했으나 작은 목로주점은 찾을 수
없고 족발이니 갈비니 하는 지저분한 메뉴만 보인다.
정류소에 가서 다시 진보로 나간 뒤 포항으로 가서 구룡포 과메기를 먹고 부산 기장에서
일박하고 내일 귀향할 계획을 잡았는데 갑자기 미원에 계신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어머니 댁에서 하루 자기로 작정을 하고 노선을 살펴보니 안동으로 가서 거기서
기차로 제천으로 가서 다시 조치원으로 가는 일정이 잡힌다.
마침 5분 뒤에 안동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상당히 운이 좋은 것이다.
여늬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앞으로 다시 올 일이 없는 신구리를 가슴 깊이 새겨두었다.
그 버스가 진보에 잠시 멈추기에 차가운 맥주 하나 사서 안동까지 홀짝거리며 왔다.
안동은 작년에 온 기억이 있다. 양반의 도시다.
제까짓 것들이 양반이래야 왕족인 전주 이씨를 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안동 한우 맛있게 먹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안동 역으로 가니 또 5분 뒤에 제천으로 떠나는 기차가 있어 서둘러 표를 샀다.
플랫홈에 가니 기차는 이미 와있고 내가 타자마자 출발한다.
이번 여행 내내 이렇게 시차가 신기할 정도로 딱딱 들어맞는다.
여늬의 도움 같다는 생각이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어머니와 통화가 안 된다.
제천까지 통화가 안 되면 그냥 청량리로 가야할 판이다.
계속 어머니 댁과 핸드폰으로 신호를 보냈지만 연결이 불발되어
역무원에게 추가요금을 지불하고 청량리로 직행하고 말았다.
양평 쯤에서 겨우 통화가 되어 30분간 수다를 떨었다.
언제나 정겨운 고운 음성이다.
여행의 마무리는 술로 해야 하는 것이 나그네의 철칙이다.
그래야 그날은 잠도 잘 오고 여독도 빨리 풀리는 법이다.
광명에 사는 내 친구 근성이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깊은 속내까지 털어놓다보니 12시다.
여하튼 좋은 여행, 좋은 술, 좋은 친구.
나는 행복한 놈이다.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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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필
신구리 기행.. 혼자서도 잘 다녀요..
쓰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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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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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함께 여행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운날 건강하세요...
행복한 사람의 글을 읽으면 ........나도 행복해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혼자 여러날 하는 여행을 아직 한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고독을 즐기며(?) 사색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되어.. 한 번 해볼까.. 생각만하며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일탈의 매력은 대단합니다.. 떠나세요.
일상을 떠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동행 한 듯 하옵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