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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 산행기록(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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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서 남고개 방향으로 하산코스의 능선모습 -
- 능선에서의 조망 -
- 능선의 등산로 모습 -
- 능선 등산로의 바위와 소나무 모습 -
- 능선 등산로의 바위와 소나무 모습2 -
- 능선 등산로의 바위와 소나무 모습3 -
- 바위와 소나무를 배경으로 -
- 능선에서의 조망 -
- 능선의 멋진 풍경 -
- 능선에서 조망2 -
- 전망대 풍경 -
- 전망대에서 바라 본 바위와 소나무들 -
- 전망대 바로 밑의 바위와 소나무 -
- 나무사이로 보이는 상어이빨 모습의 바위모습 -
- 남고개의 이정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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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하산하는 코스(D코스라고 하더군요)를 택하여 능선을 따라 얼마를 내려가면 헬기장이 나오고 좀 더 가면 전망바위 있으며, 더 밑으로 내려가면 남고개에 닿게 됩니다. 전망바위까지 내려가는 등산로에는 암릉이 곳곳에 나타나는데 고산이 아닌데도 고사목이 몰려있는 곳도 있고 바위와 소나무들이 어울려 멋진 풍경을 연출하여 지루한 줄 모르고 하산할 수 있는 멋진 코스였습니다. 커다란 바위 절벽 끝에 있는 전망바위에는 등산객들이 몰려 주위의 멋진 풍광을 감상하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으며. 단풍이 끝물이라 붉은 단풍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유난히 파란 자연분재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모습은 한폭의 그림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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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사 뒤편 숲 모습 -
- 부도 -
- 영국사의 창건자인 원각국사비 -
- 영국사 대웅전과 보물인 삼층석탑 -
- 영국사 은행나무 색깔이 너무 고와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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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천태산자락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영국사에 도착합니다. 뒤편의 노송과 굴참나무 숲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영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로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 8년(서기 668년)에 원각국사(圓覺國師)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제32대 효소왕(孝昭王)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피난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려 제23대 고종(高宗) 때 감역(監役) 안종필(安鍾弼)이 왕명으로 탑 ·부도 ·금당(金堂)을 중건하고, 절 이름을 국청사(國淸寺)라고 하였었는데,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에 원(元)나라의 홍건적(紅巾賊)이 개성까지 쳐들어와 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몽진(蒙塵)하여 국태민안의 기도를 계속하였으며, 마침내 근위병들이 홍건적을 무찌르고 개경(開京)을 수복하게 되자 왕이 기뻐하며 부처에게 감사드리고 떠나면서 절 이름을 영국사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조선 태조 때 세사국사(洗師國師)가 산명을 지륵, 절 이름을 영국이라 명명하였다고도 전합니다.(백과사전)
영국사로 내려오면서 위에서부터 부도(보물 제532호),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대웅전과 삼층석탑(보물 제533호)등을 차례로 보고 다시 은행나무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한낮의 햇살이 은행나무를 밝게 비치니 샛노란 은행나무 잎사귀 색깔이 너무나 고와서 그 앞에서 다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천태산 탐방이 끝났습니다. 산행거리가 약간 짧고 암벽구간을 제외하고는 어려운 구간도 없어 좀 싱겁게 산행이 끝났습니다만 숲과 바위가 적당히 섞여있는 아기자기한 등산코스는 저 같은 시니어에게는 그만이었으며. 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역사적인 유물들을 볼 수 있는 재미도 더하여 만족한 산행이었습니다. 우리는 혹시나 이 산에서 단풍을 볼 수 있을까 하고 기대를 하였는데 단풍은 산행들머리에 있는 붉다 못하여 검정색을 띠고 있는 단풍나무를 한그루를 만났을 뿐 더 이상의 붉은 단풍나무는 만나지 못하여 너무나 아쉬웠고, 내일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하니 가을도 그냥 지나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더하고, 마침 요즘 바쁜 일도 없으니 더 추워지기 전에 한곳의 산이라도 더 보자고 의기투합하여 내일은 충남 공주에 있는 계룡산을 보기로 하고 계룡산에서 가까운 유성온천으로 달려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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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점점 가보고 싶어지네요
여기는노란단풍이네요..
노란 은행단풍아래 선배님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충청도의 설악산이라 불릴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