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
이상규
차츰 줄어듭니다
차츰 가벼워집니다
체중도 식사량도
찾는 이도 찾을 이도
착신 우편물도
초대장도
그리움도
차츰 줄어듭니다
존재의 무용
서글픔이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저녁 무렵
아내는 그래도 웃음으로
여위어 가는 내 손목을 잡아줍니다
성그런 밥상 앞에 마주앉다
줄어든 배를 채웁니다
허무한 식은 밥으로
아직 익숙하지 않은
노년의 일상
그 언저리에는
지난 숱한 영상이 엄청난 속도로
포개져 있습니다
---[늙음] 전문
외롭다는 것은 무섭다는 것이고, 무섭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외롭다는 것은 의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고, 의로운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때 묻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외롭다는 것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고,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특정종교와 특정집단의 패거리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롭다는 것은 신화의 나라에 살고 싶다는 것이고, 신화의 나라에 살고 싶다는 것은 너와 내가 다같이 손에 손을 맞잡고 우리 모두의 행복을 연주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상규 시인은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고,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을 했으며, 시집으로는 {종이나발}, {거대한 집을 나서며}, {헬리콥터와 새}, {13월의 시} 등을 출간한 바가 있다. 이상규 시인은 외로움의 시인이며, 그는 그 외로움의 시학을 통해서 [키다리 도광의 시인]이나 [이야기 나라]와도 같은 매우 아름답고 탁월한 시들을 쓴 바가 있다.
늙음은 줄어듦이며, 줄어듦은 가벼워짐이다. 가벼워짐은 연소되고 있다는 것이며, 연소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생명의 불꽃이 타고 있다는 것이다. 체중도 타고 있고, 식사량도 타고 있다. 찾는 이도, 찾을 이도 타고 있고, 착신우편물도, 초대장도 타고 있다.삶이란 불이며, 불꽃이고, 대연소 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줄어듦이란 에너지의 사용량과 그 나머지를 말한다.
늙음이란 황혼이며, 황혼이란 마지막 대연소 과정의 불꽃을 말한다. “존재의 무용”도 타오르고, “서글픔이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저녁무렵”도 타오른다. “여위어가는 내 손목을 잡아”주는 아내도 타오르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노년의 일상”도 타오른다. 대연소과정의 불꽃이란 시인의 인생 전체를 되비추어주는 환영이며, 떠나갈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서럽고 눈물겨운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눌 시간을 말한다. 외롭기 때문에 순수했고, 순수했기 때문에, 이상규 시인의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늙음]이란 시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