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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당신은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되었습니까?/ 갈라디아서 3:13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렘브란트가 그린 ‘탕자의 귀향’이라는 그림을 보면 남루한 옷에 흉한 몰골을 한 탕자가 등을 보인 채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깊은 연민으로 그 아들을 바라보며 아들의 등을 어루만집니다. 바로 옆에는 아버지와 똑같은 붉은색 외투를 입고 수염을 기른 큰 아들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큰 아들은 아버지와 달리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작가 수잔 헤르츠는 이 큰 아들을 ‘제2의 탕자’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신학자 사이먼 키스트메이커는 큰 아들을 ‘자기 의에 가득 찬 사람’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큰 아들은 ‘율법의 눈’으로 동생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창녀와 더불어 탕진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동생을 용납하지 못하고 오로지 율법적으로 심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큰 아들과 같은 율법의 눈으로 둘째 아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사랑과 자비의 눈, 복음의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눈으로 보는 것과 은혜의 눈으로 보는 것이 다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구약성경의 중심이자 기초입니다. 구약의 첫 다섯 권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토라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율법입니다. 하지만 율법은 모세오경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모든 계명과 규례를 말합니다.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셔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주제를 다루겠습니다.
1. 율법의 분류
1) 도덕법
도덕법은 하나님의 영원하고 불변하는 성품을 반영하는 법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등과 같은 계명을 말합니다. 도덕법은 모든 시대와 문화에 걸쳐 모든 인간에게 적용됩니다. 이것은 특정 민족이나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어디서나 적용됩니다.
2) 의식법
의식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동물 제사, 할례, 유월절과 같은 절기, 제사장의 역할과 복장, 정결례 등에 관한 규정입니다. 의식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재해석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식법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구속 사역을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골 2:17).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심으로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의식법은 더 이상 효력이 없습니다.
3) 사회법
사회법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백성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입니다. 노예법, 토지 소유권, 재산 상속, 범죄에 대한 형벌 등등입니다. 사회법은 이스라엘의 특수한 상황에 맞게 제정되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 특화된 법이므로 현대 사회에 문자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 시대에는 이 시대에 맡는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한 법들이 있습니다. 도피성이라든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율법의 사회법을 이 시대에 적용한다면 이 사회는 더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2. 율법의 핵심적인 의미와 역할
1).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은 하나님의 진실함, 신실함, 그리고 공의의 성품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며, 거짓이 조금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기에 약속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말씀하신 대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며 거짓말을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해야 합니다.
율법에는 추수할 때에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밭모퉁이의 곡식을 남겨두어야 하며, 곡식을 베는 중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는 안 된다는 사회법이 있습니다. 이 사회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성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합니다.
2) 죄를 깨닫게 합니다.
네덜란드의 한 시인이 꿈에 천국에 갔습니다. 한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금빛나는 책을 보여 주었습니다. 시인이 “그게 무슨 책입니까?”하고 물으니 “당신의 삶을 기록한 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고 하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가까이 다가가 첫장을 열어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빽빽히 적혀 있었습니다. 시인이 그 내용이 무엇이냐고 묻자 천사는 “당신의 악한 행동들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시인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다음 장을 넘겨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천사는 ‘당신이 했던 사악한 말들’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음 장을 보니 더 빽빽했습니다. 천사는 ‘이것은 당신이 했던 악한 생각들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제 그는 다음 장을 넘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넘기는데 보니까 온통 검정색으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놀란 그에게 천사는 “이것이 당신의 악한 마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은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 나오고, 악한 생각에서 악한 말과 행동들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시인은 자신이 변명할 수 없는 죄덩어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 앞에서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인간은 죄중에 태어나서 죄악 가운데 살다가 죄악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볼 수 있는데, 율법이 거울의 역할을 합니다. 율법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게 됩니다(롬 3:20). 율법은 우리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완전한 기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율법은 우리의 노력에 대하여 절망하게 합니다. 스스로 의로워질 수도 거룩해질 수 없고,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3)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간의 언약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이 있습니다. 율법은 옛언약입니다. 율법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언약이었습니다. 율법은 단순히 지키면 축복 못 지키면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간의 관계를 위한 언약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행복을 위함이며(신 10:12-13),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지침서였습니다.
4)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초등교사입니다.
갈 3:24,25입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율법으로 자신이 죄인인 것이 알아져야 그리스도를 찾게 됩니다. 여기 나오는 초등교사는 고대사회에서 주로 노예나 해방된 노예 중에서 지식과 인격을 갖춘 사람이 맡았습니다. 초등교사의 역할은 주인의 아이를 학교나 체육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길을 가면서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지키는 보호자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아이의 행동과 태도를 감시하고, 예의범절을 가르쳤습니다. 아이가 정직하고 겸손하며, 사회적 규범을 따르도록 훈육했습니다. 초등교사는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도록 돕고, 숙제를 지도하는 보조 교사 역할도 했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한시적이었습니다.
율법이 초등교사의 역할을 한다는 말은 율법이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의롭게 될 수 없음을 보여주어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고대에 초등교사의 역할은 아이가 성인이 되면 끝납니다. 율법의 역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면 효력이 완성됩니다. 그리스도를 믿어 자유를 얻은 성도는 더 이상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율법의 정신인 사랑과 성령의 인도를 따르게 됩니다.
3. 율법의 저주
율법의 저주는 율법을 범하므로 받게 되는 불행한 결과나 형벌을 의미합니다. 율법의 저주에 포함되는 핵심적인 내용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입니다.
율법의 저주는 외적인 형벌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단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외적인 형벌들이 수많은 질병들이라면 하나님과의 단절은 죽음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를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깨지는 것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는 약 1억 4,960만 km입니다. 빛의 속도로 약 8분 20초 걸리죠. 이 거리가 깨지면 지구는 멸망합니다.
먼저 지구가 태양과 가까워지면 지구의 온도가 급상승하고, 물이 증발하고,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며, 결국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됩니다. 태양풍의 영향이 강해져 지구의 대기가 우주로 날아가 버리고, 지구 표면은 태양의 유해한 방사선에 직접 노출됩니다. 그리고 태양의 강력한 중력에 이끌려 결국 태양과 충돌하게 됩니다. 결국 지구는 멸망합니다.
지구가 태양과 멀어지면 지구의 기온은 급속도로 떨어지고, 바다는 얼어붙고, 식물은 광합성을 할 수 없어 지구 전체가 빙하기에 빠집니다. 태양 에너지가 부족해하여 먹이사슬이 붕괴되고, 모든 생명 활동이 멈춥니다. 지구가 태양의 중력 영향권에서 벗어나면 지구는 우주 미아가 되어 무한한 어둠 속을 떠돌게 됩니다. 결국 지구는 멸망합니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는 지구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한 핵심적인 조건입니다. 하나님은 기가 막힌 거리에 태양과 지구를 두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미세한 균형이 깨지면 지구는 더 이상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행성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양, 인간은 지구라고 생각해보십시오. 인간이 가진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되므로 생긴 것입니다. 율법의 저주 중에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죄를 범함으로써 율법의 저주를 받아서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치명적인 저주이며, 인간의 모든 불행의 근원입니다.
2) 육체적 사망입니다.
율법을 어긴 죄의 궁극적인 결과는 사망입니다 로마서 6:23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은 영적인 사망입니다. 영적인 사망의 결과로 육체적인 죽음도 찾아왔습니다.
3) 질병과 고통입니다.
율법의 저주는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포함합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율법을 따르지 않으면 전염병, 열병, 염증, 종기, 눈멂 등 다양한 질병에 시달리게 되고 정신병도 걸리게 됩니다. 신명기 28:28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치는 것과 눈 머는 것과 정신병으로 치시리니" 미치는 것과 정신병도 율법의 저주입니다.
4) 경제적인 어려움입니다.
성경은 율법을 어긴 사람들 때문에 땅이 망가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포함합니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고, 땅은 소출을 내지 못하고, 자연재해로 인해 고통 받게 됩니다. 결국 식량이 부족해지고 굶주리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자식을 잡아먹은 사건도 나옵니다. 율법의 저주입니다.
5) 국가의 몰락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도 율법의 저주에 포함 됩니다. 율법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적들에게 정복당하고,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그 결과 북이스라엘은 앗스르에 멸망당했고, 남유다는 바벨론에 멸망당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강력하고 잔인하게 짓밟혔습니다. 앗수르는 주변 국가들의 저항을 막기 위하여 자인한 방법들을 사용했습니다. 포로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거나 생가죽을 벗기는 등 극심한 고통을 주었습니다. 앗수르는 정복한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강제 이주 정책을 썼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앗수르 제국 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했고, 대신 앗수르의 다른 민족들을 사마리아 지역에 이주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민족적 순수성을 잃고 다른 민족들과 뒤섞이게 되었습니다.
이 강제 이주는 북이스라엘 10지파를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공동체는 해체되었습니다. 앗수르에 끌려간 백성들은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단순한 식민 지배를 넘어, 민족 전체가 겪는 절멸에 가까운 고통이었습니다. 율법의 저주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던 남유다는 결국 바벨론에게 멸망했습니다. 바벨론은 예루살렘 성을 철저히 파괴하고, 솔로몬 성전을 불태웠습니다. 성전 기물들은 약탈했고, 왕족과 귀족, 기술자 등 사회의 핵심 인물들은 바벨론으로 끌고 가 노예로 강제 노동을 시켰습니다.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앗수르 군대는 시드기야의 두 아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강제로 지켜보게 하였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뽑고 쇠사슬에 묶어 바벨론으로 끌고갔습니다. 율법의 저주였습니다.
율법의 저주는 개인과 공동체의 사회적 몰락과 수치를 가져옵니다. 저는 요즘 대한민국을 보면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봐 두렵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치 지도자들과 국민들의 행태를 보면 이 나라가 하나님의 매를 맞게 될까 두렵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공의가 무너지고 정의가 사라진 시대입니다.
잠 29:2입니다.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대통령과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의 전과를 합치니 전과11범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민주당이 2019년에 공산당 중앙당교와 엄무 협약을 맺었습니다. 공산당의 중급, 고급 간부를 양성하는 학교입니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거쳐 가는 "리더십 사관학교"입니다. 당과 국가의 중요한 간부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교육 코스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무엇 때문에 공산당 학교와 업무협약을 맺습니까? 민주당은 거기서 무엇을 배우려고 합니까? 그 학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마오쩌둥, 후진타오, 시진핑 등 역대 최고 지도자들이 그 당교의 교장직을 역임했습니다. 그런 학교하고 업무협약을 해서 무엇을 배우려는 것입니까?
대한민국이 지금 어디에 줄을 서고 있습니까? 1인 독재를 위하여 존재하는 공산주의자들 쪽에 줄을 섭니까? 러시아의 푸틴, 독재자죠. 중국의 시진핑도 독재자죠. 북한의 김정은도 독재자죠. 트럼프 안 좋아하는 사람들 많은데 트럼프가 아무리 안 좋아도 그 세 명의 독재자만 하겠습니까?
여러분! 중국의 전승절이 뭡니까?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고, 중국이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승전국이며, 세계 반파시즘 전쟁에 기여했음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행사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역사 왜곡입니다. 일본에 대한 승리를 중국이 자력으로 얻었습니까? 아니죠. 미국이 일본에 원자포탄을 투하하므로 일본이 항복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과 싸웠던 군대는 장제스의 국민혁명군이었습니다. 공산당군은 일본과의 싸움은 30%, 중국내 권력 장악을 위해서는 70%의 힘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공산당답게 역사를 왜곡해서 마치 자기들의 희생으로 전쟁에 승리한 것처럼 전승절행사를 합니다. 거기에 우리나라 서열 2위요 입법부의 수장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갔습니다. 거기서 김정은 하고 악수 한 번한 것 가지고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 의외의 성과”라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동맹 중에서 대한민국만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했습니다.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절대 하나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무신론입니다. 유물론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물질 취급하는 집단입니다. 그러니까 6.25때는 이념이 다르다고 가족도, 친척도, 이웃도 죽창으로 찔러 죽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절대 공당주의와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이 나라가 손잡을 곳이 없어서 공산당과 손을 잡습니까? 우리나라가 중국처럼, 러시아처럼, 북한처럼 되는 것을 원하십니까?
이 정권은 종교탄압을 시작했습니다. 트럼프가 이재명에게 교회 탄압은 나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특검은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압수수색했고, 기독교 방송국인 극동방송 이사장이신 김장환목사님 자택을 압수수색 했습니다. 군사정권 때도 교회와 성당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부산 세계로 교회 손현보목사님을 구속시켰습니다.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당했습니다. 초범은 벌금 100만 원 정도입니다. 많아야 600만 원입니다. 그런데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목회자를 구속시킵니까? 사모님이 경찰서 유치장에 손목사님 면회를 가셨는데, 포승줄에 묵인 채 가족이나 변호인에게 사전 통보도 없이 검찰청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셨답니다. 그분이 뭘 그리지 잘못했습니까? 이건 명백히 이 정권과 노선이 다르다고 종교 탄압하는 것입니다. 이 정권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온전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권과 권력자가 온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하여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율법의 저주는 국가를 무너지게 하는 것입니다.
4.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는 길
사실 모든 사람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의 저주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절망적인 현실에 갇히지 말라고 선포합니다. 저는 이제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유일하고 완전한 길을 나누겠습니다.
1) 율법의 행위로는 불가능함을 인정하십시오.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행과 노력, 종교 의식을 통해 하나님께 인정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말씀합니다. 로마서 3:20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헛된 노력에서 벗어나 참된 구원의 길을 받아드리게 됩니다.
2)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굉장히 가난한 아주머니 한 분이 슈퍼마켓에 갔습니다. 그녀는 빵과 우유를 샀지만 고기를 몇 근 훔쳤습니다.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할 때 그녀는 빵 값과 우유 값만 지불했습니다. 그런데 계산하던 아가씨가 "아줌마, 그 가방 좀 열어 보세요"하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열지 않겠다고 우겼으나 경찰이 왔을 땐 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가방에서 고기가 나왔습니다. 그녀는 당연히 경찰서로 끌려갔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판사는 그 가난한 아주머니를 부드럽게 심문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아주머니가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현재 다섯 명의 아이를 기르고 있고, 집도 절도 없으며, 몇 달 동안 기름진 음식이라곤 한 번도 입에 대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정을 알게 된 판사는 그 아주머니를 감옥에 보내는 대신 그 가족이 살기 적절한 집을 제공해 주고 연금을 지급 받도록 해주었습니다. 이 판사에게는 법의 정신이 법조문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간음하다 붙잡혀 온 어떤 연인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율법대로 그 여인을 돌로 쳐죽이려 하는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양심에 찔림을 받아 돌을 버리고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제정자인 동시에 그 여인의 마음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 연인의 주위 환경도 아셨고, 그녀가 지금 회개했다는 사실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 예수님에게는 율법 자체보다 율법의 정신이 더 중요합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본문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으신데,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 희생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부터 속량하셨습니다.
속량이라는 말은 고대 노예제도에서 사용되던 용어입니다. 노예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주인에게 몸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노예가 스스로 몸값을 지불할 수 없으니 다른 누군가가 노예의 몸값을 대신 지불해주고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속량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죄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만이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는 순간, 그분의 완전한 의가 우리에게 전가됩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십시오.
로마서 8:2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난 우리는 이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삶은 율법의 조항들을 억지로 지키려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삶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기쁨으로 행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믿는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정죄 아래 있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4)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사십시오.
유월절이 다가오면 유대인들은 유월절 무교병을 굽는 법칙에 따라 무교병을 굽습니다. 생수로 반죽하고, 이방인들이 보면 부정 타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보지 않게 굽습니다. 다른 것이 섞이면 안 됩니다. 불은 반드시 나무로 피워야 합니다. 살란터라는 랍비의 임무는 사람들이 제대로 무교병을 굽는지 감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유월절을 며칠 앞두고 병들어 눕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제자들을 감독관으로 세웠습니다. 감독으로 선정된 제자들이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랍비님, 감독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살란터 랍비가 말했습니다. “무교병을 굽는 여인들에게 보수가 제대로 지급되는지 감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물질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가난한 여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감독입니다. 사랑이 율법입니다. 성경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랑으로 열매 맺는 삶입니다. 율법의 모든 조항은 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4입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었습니다. 우리의 자유는 방종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율법의 저주로부터 자유로운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율법의 행위로는 불가능함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으십시오. 그러면 율법의 저주로부터 해방 된 것입니다.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십시오. 그리고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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