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산성산 입구에 있는 보명사(普明寺) 텃밭 울타리 밑에
재작년부터 봉선화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금년 봄에 그 보명사 노여승에게 부탁해서 5포기를
얻어 제 밭에다 심었더니 사진처럼 빨간간 꽃이 예쁘게 피었
습니다.
꽃 모종을 사오건 씨를 파종하건 간에 화초에는 비료를 많이
주면 이상하게 죽어버립니다. 그러니 화초 주위에 퇴비로
웃거름을 주었더니 이 처럼 싱싱하게 자랐습니다.
여기에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이 봉선화꽃으로 제가 5살 때 비오는 날 마루에서 누님이
손톱에 꽃물을 들여주던 생각이 납니다.
통영 출신의 시조 시인 김상옥의 시조를 올립니다.
그는 서예가, 서화가, 수필가이기도 했습니다.
봉선화
비오자 장독간에 봉숭아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 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듯 힘줄 만이 서누나
지금은 꿈속에나 본듯 힘줄만이 서누나.
제 누님은 10여년 전 돌아가시기 전 우리
밭에 한 번 와보신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피난 시절 어릴 적 일곱살 위의 누님은 제
보호자였습니다.
아! 정말 누님이 보고 싶네요.
오늘 아침에 밭일을 끝내고 마지막에
이 봉선화에 물을 뜸뿍 주고 왔습니다.
첫댓글 여름밤 손가락 챙챙 매고 잤다가
아침 온 이불에 봉숭아 물이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손끝에 봉숭아 물이 첫눈이 올때까지 남아 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설레였던 날도 있었지요.
마루끝에 앉아 봉숭아꽃에 백반넣고 콩콩 찧으시던
엄니가 눈에 선하네요.
지금 제 나이보다 더 고우셨던 울 엄마~
아름답게 피었네요
누님의 생각과 꽃 모종 이야기 잘듣고 갑니다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모양이 처량하다... 이 동요가 생각나네요^~
동요가 아니고 홍난파의 가곡입니다. 소프라노
김천애가 최초로 불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