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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과 결단의 달☜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8)
딤전1:1-20절) 아름다운 교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아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진리(眞理)를 채움 받지 못하고, 교회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리 바른 신앙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영혼(靈魂)은 병들 수밖에 없고, 정신적으로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의 많은 부분이 목회자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바른 신앙(信仰)과 인격(人格)을 갖고 있어야 하고, 이 진리(眞理)를 위하여 올바른 헌신(獻身)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는 사도 바울이 자기가 사랑하는 신앙의 아들, 디모데에게 목회를 어떻게 해야 교회가 건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가르쳐준 내용입니다.
특히 전반부는 교회의 직분을 맡은 목사나, 장로나, 집사가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디모데전서나 디도서를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Ⅰ.건강하지 못한 가르침
교회가 병들고 행복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가르침이 성경적(聖經的)이지 못하고,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면서 에베소에 신앙의 아들 디모데를 남겨두게 되었고, 또 이 펀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에베소 교회에 건강하지 못한 가르침이 파고 들어와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1-2절)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 지어다”
하나님께서 수천 년 전에 한 아람인인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귀한 믿음을 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이 복은 보통 복이 아니라, 남을 축복하면 그에게 복이 이루어지고, 남을 저주하면 저주가 그에게 이루어지는 근원적인 복이었습니다(창12: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 축복이 상속된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은 시간이 흐르면서 마치 눈덩이가 커지듯, 어마어마하게 커지게 되었습니다. 즉 모세를 지나고, 다윗을 지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지나면서 이 복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중요한 복을 다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이 복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면 곧 예수 믿는 사람들의 교회(공동체)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곳은 곧 축복의 집이요, 어마어마한 복이 준비되어 있는 곳이 교회(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이 복이 전부 어디에 들어 있느냐? 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목회자는 이 복을 관리하는 자요, 이 엄청난 복을 캐내어 성도들에게 나눠주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최고로 많은 복을 캐낸 사람입니다. 수천 년 세월동안 사도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캐낸 진리(眞理)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최고였습니다.
디모데는 곧 이 사도 바울이 믿음 안에서 낳은 영적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디모데는 마치 이삭이 아브라함의 복을 상속 받았듯이 바울의 복을 상속받은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모든 복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디모데는 육신(肉身)의 부모로부터 별로 물려받은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아마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마어마한 복이 상속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최근에 교회 안에서 이 복을 도둑질하려는 자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마치 어느 집에 갑부(甲富)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았는데, 주위에 있는 사기꾼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들을 속여서 재산을 가로채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유산은 모두 성경(聖經)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聖經)적인 진리(眞理)를 놓치면, 하나님의 그 엄청난 복을 전부 다 사기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믿는 자들이나, 교회가 하나님의 바른 진리(眞理)에 대하여 얼마나 등한히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충격 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교회나 믿는 자들이 가장 소홀히 하고 있는 부분이 곧 이 하나님의 진리(眞理)인 것입니다. 즉 명예나, 주도권이나, 규칙에 대해서는 거의 목숨을 걸고 따지는 사람들이 진리(眞理)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똑똑한 것 같지만, 실제로 유산을 모두 사기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이미 엄청난 부흥의 축복을 체험하고도 건강하지 못한 교훈에 영향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디모데를 그곳에 남겨두었고, 또 다시 편지를 써서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그 건강하지 못한 가르침 중 하나가 신화(神話)와 족보(族譜)였습니다.
1:3-4절)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족보에 끝없이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여기서 *신화(神話)와 족보(族譜)*가 무엇일까? 우리는 구약 성경(聖經)을 보면, 여러 곳에서 지루할 정도로 족보(族譜)가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죽하면, 마태복음은 처음부터 *낳고, 낳고......*하면서 예수님의 족보(族譜)가 나오는데, 이 족보(族譜) 때문에 사람들 중에는 성경을 못 읽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족보(族譜)는 성경(聖經)의 족보(族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신화(神話)와 족보(族譜)*라는 것은 그리스 신화(神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神話)에는 옛날 신(神)들이나, 영웅(英雄)들의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또 영웅(英雄)들은 모두 신(神)들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아주 복잡한 족보(族譜)가 나옵니다.
그리스 신화(神話)를 읽으면, 생소한 이름이 너무나 많이 나오는데, 기억하기도 어렵고, 특히 복잡한 족보(族譜)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 하나는 *그리스 신화(神話)*를 자꾸 읽으면, 놀라울 정도로 신앙(信仰)이 없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 신화(神話)에 나오는 사람들이 신(神)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진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전(神殿)에서 사제(司祭)가 하는 예언을 신탁(神託)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이들의 말을 완전히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경(聖經)을 믿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신화(神話)를 믿었습니다. 즉 이들은 델포이(Delphoe)나, 다른 신전(神殿)에 있는 사제(司祭)들이 한 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고, 그것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까지 죽여서 제물로 바치는 일들이 비일비재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신화(神話)와 족보(族譜)*가 그리스인들의 신화(神話)와 족보(族譜)를 말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방 신전(神殿)의 신탁(神託)의 말씀을 굉장히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르침의 권위를 족보(族譜)를 가지고 따져서 그리스도의 영웅(英雄)들의 후손이라면, 훨씬 더 권위 있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신화(神話)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점(点)쟁이들이 하는 수작(秀作)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따지는 권위(權威)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전부 비성경적((非聖經的)인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그 당시 세상의 풍조는 이런 것들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생각들은 다 비슷비슷한 것 같습니다. 지금도 지나치게 성경적(聖經的)인 것은 독선적(獨善的)이라고 해서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학문적(學問的)인 것을 좋아합니다.
사도 바울 당시의 학문(學文)은 그리스의 신화(神話)였고, 족보(族譜)였고, 신전의 신탁(神託)이었습니다. 사람이 무식하고, 가난할 때는 독선적(獨善的)일 수 있지만, 지식이 있고, 돈이 많으면, 어떤 극단적인 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솔로몬의 경우도 처음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왕이 되었을 때는 일천 번제까지 드리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지만, 유명해지고,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난 후는 많은 우상(偶像)들을 받아들여서 보편적인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능력 있는 축복의 공동체가 되려면, 언제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전혀 오염(汚染)되어 있지 않는 순수한 진리(眞理)여야 합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지키려면, 생명의 말씀에 있어서 오히려 독선적(獨善的)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잘못된 율법의 교훈이었습니다.
1:5-8절)이 교훈의 목적은 정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은 선생이 데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도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우리는 율법과 복음(福音)의 관계는 벼와 그 속에 들어 있는 씨(쌀)로 생각하면 좋습니다. 즉 율법도 복음(福音)이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인데, 껍질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즉 율법에는 *하지 말라. 하지 말라*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모두 똑바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을 잘 믿으라는 뜻입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는 것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 즉 성적인 순결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도적질 하지 말라*는 것은 열심히 일해서 아름다운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자신의 공로로 받아들이려는 것입니다. 즉 기도는 몇 시간을 했고, 금식은 몇 번 했고, 십일조를 얼마나 했기 때문에 나는 믿음이 좋다는 식으로 자부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남들을 자기처럼 만들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복음을 믿는 자들을 오히려 신앙이 없다고 핍박하고, 정죄(定罪)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율법은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들에게 더 적용되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9-10절)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 하는 인신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성적인 유혹이나, 폭력이나, 거짓의 유혹을 받지 않는다는 뜻일까? 결코 그런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율법의 용도와 다른 것입니다.
아직 믿지 않는 불신자는 그들을 정죄하고, 심판(審判)하는 기준으로 율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곧바로 심판(審判)이 언도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죄의 추악함을 깨닫게 해서 죄를 예방하는 기능을 율법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이런 것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1:11절)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福音)을 따름이니라.”
복음(福音)은 이런 신화나 자기 구원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요, 축복이요, 능력인 것입니다.
Ⅱ.예수님이 맡기신 직분의 가치
목회자의 직분은 분명히 세상적인 직책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의 다른 작업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즉 세상에서는 의사나, 교수나, 변호사는 일하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이런 직업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목회자인 내가 세상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정체성(正體性)의 혼동(混同)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목회자가 다루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지극히 거룩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다른 어떤 추잡한 욕심이나, 탐욕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과연 인간 중, 누가 정말 흠 없이, 티 없이, 순결하여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완전히 감당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생각 해 보면,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도 기적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엄청난 기적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죄인인 목사가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죄인으로서 감히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감당할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자비로 이 사명을 감당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 있어서 가장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종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대략 다음 몇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자기는 전혀 충성되지 못한데 주님이 자기를 충성되게 여겨주셨습니다.
1:12절)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주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맡기셨다는 것은 천국의 인감증명을 맡긴 것과 같습니다. 즉 주님은 천국의 가장 중요한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벌레보다 못한 저 의영(義永)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원수에게 비밀금고 열쇠를 맡긴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은혜(恩惠)에 감격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이라면, 그리고 양심이 있다면, 이 큰 은혜(恩惠)를 죽어도 배반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1:13절)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사도가 될 자격이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기는 악질 중에 악질이요, 복음의 원수였는데, 오직 주님이 자기를 믿고, 맡겨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15절)...죄인 중에 내가 괴수(魁首)”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기를 믿고, 이 어마어마한 복음(福音)을 맡겼는데, 어떻게 딴 짓 할 수 있으며, 다른 욕심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심정으로 목회를 해야만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야말로 자격이 있고, 너무나도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생명의 말씀을 제대로 감당할 자격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 할뿐입니다.
②예수님께서 앞으로 오고 오는 세대에 누구든지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는 사도 바울같이 쓰시겠다는 표시로 서신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1:16절)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무한히 오래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도 바울이 그렇게 엉뚱한 짓 하고, 못된 짓 할 때도 끝까지 참고 계시다가 그를 바로 잡으셔서 위대한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사도 바울과 같이 위대한 주의 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만 위대하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은 하나의 모델(model)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주님께 붙들려서 사용되는 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恩惠)(矜恤)(智識)(極端的))(靈的)雄)(福音)(眞理)(信仰)(言渡)(寶物)(忠誠)(祝福權)(純潔)(良心)(價値)(破船)(詐誕)
Ⅲ.위대한 축복을 지키라
우리에게는 위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상속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어마어마한 축복권(祝福權)을 빼앗기거나, 사기 당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얌전하게 상대하지 말고.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명령합니다.
1:18절)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우리는 사도 바울이 다른 사람에게 *싸우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싸우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축복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요, 우리의 보물을 지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계3:11절)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전하는데, 있어서 전투적(戰鬪的)인 자세를 취해야합니다.
오늘날 우리 공군은 24시간 우리나라 영공을 레이더로 지켜보면서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그 즉시 폭격기를 출격시켜서 우리나라 영토를 방어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원수(怨讐) 마귀(魔鬼)가 탈취(奪取)하지 못하도록 지켜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지켜야 할 또 다른 보물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착한 양심*입니다.
1:19-20절)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 앞에서 가장 보배로운 것은 순결한 믿음과 깨끗한 양심(良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깨끗한 양심(良心)이 얼마나 비싼 줄 모르고, 양심(良心)을 쉽게 팔아먹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양심(良心)의 가치(價値)는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1:5절)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 양심(良心)이 살아납니다. 이 양심(良心)을 가지고 기도하고, 이 양심(良心)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음에 파선(破船)된 사람들은 말씀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곧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믿음을 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사탄(詐誕)에게 내 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에서 잘라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양심(良心)을 지킬 때, 교회는 가장 영광스러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각 가족 셀(cell)공동체가 아름답게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찬송가 208장 *내 주의 나라와*
※새벽(冬)5-6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늘에 보물 쌓을 교갱원설립 創立member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농협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종류)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궁금한 내용 문의 ☞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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