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7일(금)
생명의 삶 큐티 묵상과나눔 - [행동 개시]
●성경본문 : 에스더 5:1~14
한 사람의 변화와 실천은 공동체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 냅니다.
위기 가운데에도 기회는 늘 존재합니다.
출애굽의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는 유월절이 되었는데도, 유다인들을 에스더의 명령으로 인해 잔치를 열 수 없었습니다.
모르드개를 비롯한 유다인들 모두 전통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한 마음으로 에스더를 위해 금식하며, 잔치를 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공동체가 위기에 능력 있게 대처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다고 뭐가 바뀌겠어. 달라질 게 뭐야. 소용없어. 차라리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인데 즐겨...’
외부의 적은 그러다치고, 더욱 견디기 어렵게 하는 것은 내부의 적일 겁니다.
유다인들 중에 왜 이런 사람들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애굽을 탈출했던 조상들이 경험했을 초긴장 상태로 부정의 목소리를 잠재워 버렸습니다.
약속한 삼일이 되자 에스더는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기 동족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한 에스더의 모습은 완전히 능동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에스더는 왕을 대면하기 위해 어전 맞은편에 섰습니다.
33일이나 왕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그녀입니다.
에스더는 무턱대고 왕 앞으로 가지 않고 신중하게 행동합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에스더가 왕 앞에 가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왕이 먼저 그녀에게 다가온 형국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던 예외 규정이 실행되고(4:11), 에스더는 왕에게 합법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왕은 에스더에게 무슨 일이며, 무슨 요구가 있는지 묻습니다(3).
첫 번째 질문이 일반적인 안부 인사 정도였다면, 두 번째 질문은 왕후의 방문에 특별한 요구가 있을 것임을 간파한 왕의 배려로 보입니다.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는 말은 형식적으로 들리지만, 결정적 순간 에스더의 어떤 요구도 들어주어야 하는 상황으로 이끌어 가게 될 것입니다.
왕의 질문에 에스더는 우리의 예상을 깨고, 자신이 왕과 하만을 위해 베푼 잔치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4).
왕은 하만을 급히 왕궁으로 소환하여 함께 에스더의 잔치에 참석합니다(5).
잔치 자리에서 왕은 더 적극적으로 에스더의 요구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요구와 함께 ‘소청’(6)이라는 말이 추가된 것을 보면, 왕의 질문이 더 진지해졌음을 나타냅니다.
왕은 에스더가 어떤 요구를 하든 곧바로 들어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또 한 번 우리의 기대와 달리, 내일 그들을 위해 배설할 잔치에 참석해 달라고 합니다(8).
예상치 못한 왕후의 선대로 하만의 마음은 즐겁고 기뻤습니다.
그의 이런 기분을 망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바로 모르드개입니다.
하만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전보다 더 강경해졌습니다. 하만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일어나기는커녕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하만은 겨우 분노를 참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에스더는 홀로 행동하는데, 하만은 주위에 함께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친구들과 아내 세레스에게 어떤 것도 부족한 것 없는 지금의 상황을 자랑하면서, 모르드개의 일로 불평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르드개를 높은 나무에 달아 처형할 것을 제안하고 동조합니다.
하만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모르드개는 11개월 후에 모든 유다인과 함께 몰살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인내심이란 궁궐 문에서 나와 집까지 오는 시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만은 왕이 그의 제안을 아무 검토 없이 바로 승인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가득 찬 분노를 품고 모르드개를 장대에 매달겠죠.
과연 그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될지, 그의 유일한 불만족 사항이 제거될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되지 않을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악인은 자신만 악을 행하지 않고 반드시 다른 사람까지 꾀어 함께 악을 행합니다(잠16:29).
그러므로 우리가 의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의롭게 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의의 길을 걸을 사람을 사귀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가보다, 믿음의 선한 길로 동행할 단 한 사람의 친구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그런 이들을 친구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2년 6월 16일(목)
생명의 삶 큐티 묵상과나눔 - [죽으면 죽으리이다]
●성경본문 : 에스더 4:1~17
유다인들을 몰살시키겠다는 조서가 반포되고 이 모든 것이 현실로 드러난 위기 앞에서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굵은 베 옷과 재를 뒤집어쓰며, 성 광장에 나가 크고 쓰라린 목소리로 울부짖습니다(1).
이런 모습은 각 지방의 유다인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3).
지금 그들의 모습은 수치스러운 모습입니다.
주변인들의 동정도 참기 어려운데, 멸시의 눈초리와 모멸감을 주는 말과 행동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사람들을 의식하거나 보이기 위함이 아닌 하나님께 탄원하고 도움을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앞장선 이가 있었습니다. 모르드개입니다.
마치 그는 유다인의 대표처럼 행동합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닙니다. 누구도 그로 하여금 유다인의 대표가 되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모르드개, 그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을까요?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을까요?
선조들을 욕하고, 무능하고 비겁한 동족들을 비난함으로서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을까요?
우리는 고통의 때에 하나님께 우리의 수치와 고통을 솔직하게 알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수치를 감추고 피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릎 쓰는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는 계획했을까요?
지금 자신이 벌이는 일이 에스더의 귀에 들어갈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까지 말입니다.
에스더는 시녀와 내시들로부터 모르드개의 상황을 듣게 됩니다.
이에 에스더는 그의 안위를 바라는 마음으로 의복을 보내지만 모르드개는 거절합니다.
베옷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면 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왕후 에스더를 직접 만날 수도 있습니다.
성도는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일 하심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내 생각이 아무리 옳게 여겨져도 하나님의 뜻하심을 생각하고 인도하심을 기다려 행동해야 합니다.
그 길은 내가 생각해낸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괴로울 수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한심하게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서면 비로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광의 문 앞에 도착하게 하십니다.
고난을 피하지 마십시오. 고난을 통과하십시오.
모르드개는 이 일이 사적인 밀실 대화로 끝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자신의 조카가 아닌 왕후로 대하며 공식적으로 요청합니다.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기 위해 얼마의 돈을 바쳤는지, 유다인을 진멸하라는 조서가 어떻게 내려왔는지 정확하게 알립니다(7~8).
이는 하만과 아하수에로 왕이 밀실에서 각자의 사적 이익을 위해 야합하고 조서를 작성한 것과 대조됩니다.
그럼에도 바사의 궁중 법도는 모르드개와 에스더에게 불리합니다.
왕이 부르지 않은 상황에서 왕에게 나아갔다가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11).
그러나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주저 없이 올바른 길을 선택합니다.
이제 유다인들의 유일한 희망은 왕후 에스더 뿐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동족을 외면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13).
모르드개는 비록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그분의 구원과 섭리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며,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은 동족을 구원하라는 사명임을 강조합니다(14).
그런데 모르드개의 우려와는 달리, 에스더는 동족의 위험을 외면하는 이기적인 겁쟁이가 아니었습니다.
에스더는 동족 모두가 죽을 위기 앞에서 자기 혼자 살기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인식하고, 동족에게 금식하며 간절히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16).
사는 게 위기의 연속입니다. 아니 나는 날마다 위기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위기의 매 순간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사명(使命)입니다. 목숨으로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나는 지도자가 아니니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로 부름을 받았고, 크든 작든 삶의 영역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도록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형제와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고, 올바른 길을 선택해서 따르고,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라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그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입니다.
연합은 훈련입니다.
홀로 싸워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 그리고 유다인들의 연합,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로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과의 연합을 목표로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각오를 세웠습니다.
연합을 위한 당신의 바른 선택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