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뉴욕시 잭슨 하이츠
엄마가 오기 전날, 세사르와 나는 엄마 방을 마련하기 위해 아파트 공간 배치를 다시 했다. 세사르는 엄마가 우리 집에서 지내는 것이나 자기 음악 스튜디오가 없어진다는 것에 대해 전혀 걱정하거나 섭섭해 하지 않았다.
"방 안에만 계속 계실 것 같으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지금 다 꺼내와야 돼." 나는 세사르에게 엄마가 낯선 사람과 상대하는 걸 무척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괜찮아 그레이시." 그는 미소 지으며 콩가 악기 세트를 우리 침실로 옮겼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부 캘리포니아 출신 특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며, 나는 오래된 순면 요를 회색 카펫이 깔린 바닥에 펼치기 시작했다. 세사르와 나는 몇 년을 함께 산 사이였지만, 함께 엄마를 만난 건 1999년에 딱 한 번뿐이었고, 그나마도 그가 엄마를 소개시켜달라고 나를 은근히 재촉해서 이뤄진 만남이었다.
"언제쯤이면 어머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 그는 투어를 마치고 돌아와 잠시 쉬던 참에 물었다. "우리 사귄 지 이제 5년이나 됐어."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났다니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우리가 함께한 5년 중 2년을 뉴저지에 살았는데,나는 엄마를 방문할 때 세사르를 데려간 적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머뭇거리노라니. 평소 같으면 내 침묵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는 세사르가 이번엔 한마디 덧붙였다.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에 만나뵐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테데."
"정말?" 왜 그가 우리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얘기를 이때 처음했는지 궁금해 하며 되물었다. 내가 부모님 문제를 숨기고 싶어하고, 아버지와의 갈등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데 공포증이 있는 엄마를 보호하려 한다는 걸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부탁도 받았겠다. 나는 엄마한테 이제 세사르를 마날 때가 되었다며 고집을 부렸다. 엄마는 잠깐의 언쟁 끝에 결국 내 말을 받아들였고, 나는 엄마가 받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기 몇 주 전, 나는 배관 수리를 맡길 일이 있어서 뉴저지주 엄마 집에 갔다. 현관 초인종이 울리자마자 엄마는 "어째, 이걸 어쩌지"라고 되뇌며,정신없이 숨을 곳을 찾았다. 배관공이 들어오자, 엄마는 한 손으론 흰색 소파 커버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를 가린채 소파 뒤에 웅크리고 있었다. 수바꼭질을 하는 어린아이처럼,엄마는 당신이 그를 볼 수 없으면 그도 당신을 못 볼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바로 옆에 서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오!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다. 그래도 움직이거나 그를 올려다보지는 않았다.
세사르를 만나는 순간이 오자, 엄마는 평소처럼 공포증에서 나오는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고, 악수까지 청하며 "반가워요" 하고 인사했다. 세사르는 엄마보다 키가 25제티미터나 더 컸지만,엄마는 그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진 않았어도 엄마는 세사르쪽을 여러 번 쳐다봤고, 사선으로 옆얼굴을 흝어보며 그의 갈색 피부와 짧게 깎은 검은 머리, 염소 수염을 뜯어 보는 듯했다.
사진첩을 꺼내 오래된 가족 사진을 보여주면서 엄마는 눈맞춤 없이도 30분이나 그와 대화를 이어갔다. 세사르와 세시간이나 걸려 엄마를 방문한 것이었지만, 더 오래 머물면 엄마한테 무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고,그렇게 해서 엄마가 들인 노력이 실패로 끝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만 체면을 지켜드리고 떠날 시간이었다. 작별의 포옹을 하며 엄마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 너무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