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의 대표 공영방송이라는 KBS 신세가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야말로 동네북 신세입니다. 바깥에서 평가하는 KBS와 내부에서 보는 KBS, 이런 상황에서 한때 한국의 대표 공영방송이란 KBS가 과연 앞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상황은 항상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해서든지 KBS 사장은 교체하고야 만다는 이른바 '정권과 KBS 사장의 공동운명'에서 출발한, 다시 말해 숙명같은 것일 지도 모릅니다. 심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한국 기독교를 상징하는 한국기독교청년회 즉 YMCA가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KBS사장과 독립기념관장의 사퇴를 촉구한 것입니다. YMCA는 광복절에 기미가요와 전 대통령 이승만을 다룬 '기적의 시작'이란 영화를 방영한 KBS사장과 독립기념관장의 사퇴를 촉구한다는 시국선언문을 내놓았습니다. YMCA는 이와함께 현 정부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동조한 사도광산 합의 과정과 내용을 명백히 밝힐 것과 한일군사협력과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 중단 그리고 일본 자위대 한반도 진출 반대 등을 촉구했습니다.
KBS가 광복절에 왜색 짙은 오페라와 이승만의 독재 미화라는 바판을 받은 영화를 방송한 이후 국민들 사이에 수신료 거부 움직임이 대폭 확산되고 있습니다.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수신료 해지방법과 수신료 분리징수 방법 등을 핵심으로 한 글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종교단체와 언론단체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수신료 거부 운동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KBS 내부에서 수신료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말에서도 최근 급속도로 번지는 수신료 납부 거부 사태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민원전화를 받는 직원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합니다. 민원인들은 반나절 동안 연락했는데 이제야 연결됐다면서 1백번 넘게 전화를 걸어야 연결된다는 항의성 멘트가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 그들의 주된 항의는 KBS가 수신료를 받을 의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말이었습니다. KBS의 주된 재원은 수신료입니다. 전체 수익의 70%은 수신료를 이뤄집니다. 하지만 이제 불붙듯이 번지는 수신료 거부 움직임에 KBS는 그야말로 비상경영 상태입니다.
급기야 KBS 경영진은 창사이래 최초로 무급휴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회사내 노동조합과 협의도 없이 말입니다. 직원들의 생활에 중대한 위해를 가할 무급휴직을 노조와 상의도 없이 추진하는 것을 보니 다급해도 대단히 다급한 모양입니다. 경영진이 내세운 것은 올해 당기손익에서 1600억원의 적자가 전망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재정 안정화와 전사적 고용조정과 해고 회피 노력을 위해 월급을 전혀 주지않은 채 회사를 당분간 나오지 말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일반직 직원을 대상으로 2개월의 무급휴직 신청을 받을 방침입니다. 경영진은 정리해고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직원들을 그렇게 받아드리지 않습니다. 적자가 생기는 이유 다시 말해 시청률 급락과 수신료 거부 움직임을 해결할 방안을 생각치도 않은채 직원들 월급을 축소하는 것에 적자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생각 아니겠습니까.
직원들의 반발이 당연히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젊은 사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KBS 같이 노조는 이미 제작현장은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면서 경영진은 무급휴직을 입에 올리기 전에 제값 못하는 급여부터 전액 반납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KBS사장이 할 수 있는 것이 정리해고뿐이라면 가장 먼저 무능한 경영진과 사장 스스로 정리하기를 바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KBS 전국언론노조 본부도 사분오열돼 가담 직원 과반이 없는 노조상황에서 낙하산 사장이 품고 있는 구조조정을 시행하고자 절차를 밟아두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질타하고 있습니다. 또 이렇게 중차대한 결정을 하면서 노조와 협의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이사회에 안건을 바로 보고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며 경영진의 월권행위를 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KBS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고 능력을 인정받았던 고참직원들은 전 정권에서 간부직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특기와는 관련이 없는 수신료 징수팀에 배치받거나 야근전담으로 배속돼 실의속에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신바람은 고사하고 일할 의욕조차 없는 상황이 연속되고 있습니다. 젊은 직원들과 고참직원들 사이에서도 그냥 동병상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어정쩡한 분위기가 가득합니다.이처럼 KBS는 외우내환의 사면초가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KBS사태는 요약하면 방송과 전혀 무관한 신문사출신 사장이 임명됐다는 것과 오래전부터 야기된 수신료와 광고문제 그리고 이제 그 영향력을 극도로 상실한 공영방송에 정권이 과다하게 애정을 쏟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권과 같은 흐름이자 동료인줄 알았던 KBS가 자신들을 비판하는 것에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초조감의 발로로 읽혀집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사장에 앉혔는데 도저히 위기상황을 극복할 힘이 없으니 이런 저런 악수를 두는 것으로 언론단체와 언론 전문가들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한 KBS의 목줄을 쥐고 있는 수신료 통합징수를 분리 징수로 바꾸었으니 안그래도 내기 싫은 수신료를 즐겁게 내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전 그래도 중심을 잡고 방송하던 때에도 수신료 거부의사를 밝히는 시청자들이 상당수였는데 말입니다. 요즘 KBS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특히 젊은층에서는 KBS 시청 안합니다. 예전에도 그러했지만 지금은 더욱 강하게 시청을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정보를 획득할 매체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인터넷과 유튜브 등에서 그들은 정보를 얻고 소통도 합니다. 이제 KBS는 그들에게는 박물관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매체가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식이죠. 노인층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철 등에서 그들은 공중파 방송 거의 보지 않습니다. 산간 오지마을에 채널 선택권이 없는 지역에서나 보는 매체로 전락했습니다. 그런 KBS인지를 모르고 장악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던 세력은 세상을 참으로 볼 줄도 읽을 줄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또 다른 공영방송 사장을 바꾸기위해 모든 것을 동원한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KBS사태가 쉽게 풀리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디 한 곳 편하게 해결할 부분이 없습니다. 그냥 힘든 상태, 병든 상태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정권이 해결해 주기도 힘들어 보입니다. 이제와서 당신들이 협의를 거쳐 자율적으로 해결하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내부에서 경영진과 노조가 합심해 난관을 헤쳐갈 가능성도 전무합니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수신료를 내서 직원들이 일할 분위기를 만들게 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힘든 것으로 분석됩니다. 한때 영화를 누렸지만 이제 그 능력을 상실함에 따라 있으나 마나한 매체로 남을 가능성이 더욱 증가하는 참으로 답답한 현실입니다.
2024년 8월 23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