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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kyung.com/article/2014071002941
[책마을] 원시인들은 다 착했다고? 아마존 야노마뫼족 전쟁의 원인은 '여자'였다
고결한 야만인
나폴리언 섀그넌 지음
야노마뫼족의 옆구리 때리기 결투와 몸싸움. 단순한 체력 단련이 아니라 이웃 마을 남자들과 벌이는 힘겨루기다. 손바닥으로 때리는 게 원칙이지만 돌을 감추고 주먹으로 때리는 경우도 있어 결투 후 숨지는 일도 많았다.
어떤 기록도 남지 않은 먼 옛날,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원시사회는 인간의 착한 본성으로 화목하게 유지됐을 것이라는 견해가 강했다. 이는 영국 시인 존 드라이든의 비극에 쓰인 ‘고결한 야만인’이란 단어로 표현됐고 평화로운 인간상은 인류학에 있어 ‘상식’이나 마찬가지였다.
미국 인류학자 나폴리언 섀그넌은 1964년부터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에 걸쳐 살고 있는 아마존 원시 부족인 ‘야노마뫼족’을 연구했다. 2만명이 조금 넘는 야노마뫼족은 250여개의 마을에 흩어져 살았다. 일부 선교사들을 제외하곤 외부 세계와 접촉한 적도 거의 없는, 전형적 석기시대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학위 때문에 1년 정도만 지내려던 섀그넌의 연구 기간은 30년을 넘겼고 그가 순수하게 야노마뫼족과 지낸 시간만 해도 5년이 넘었다. 그의 연구는 인류학의 ‘상식’에 도전했다. 인간의 본성은 마냥 평화롭지만은 않았다는 것. 《고결한 야만인》은 그동안의 상식에 대한 역설이다.
섀그넌이 처음 만난 야노마뫼족 마을은 이웃 마을과의 전쟁으로 신경이 매우 날카로운 상태였다. 이들은 이웃 마을 잔치에 초대를 받아도 그것이 순수한 축제인지 자신들을 학살하려는 계략인지 고민해야만 했다. 평화와 고요보다 폭력으로 인한 긴장이 심했다. 이 때문에 여자들은 만성적인 학대에 시달렸다. 이들에게 왜 전쟁과 폭력이 만연했을까.
사회과학의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전쟁은 부족한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두고 일어나는 집단 간 다툼이다. 그러나 야노마뫼족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여자’였다. 물적 자원이 갖춰지기 전의 부족사회에선 후손을 만들 수 있는 여성을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가장 중요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이전까지의 학설을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학계는 반발했다. 전통적 인류학자들은 물론 언론도 “섀그넌은 원시 부족에게 폭력 유전자가 있다고 주장한다”거나 “아마존 부족에 개입해 원시성을 해쳤다”고 모함했다. 섀그넌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연구 일선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섀그넌의 연구를 부정할 객관적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는 복권됐다.
책은 야노마뫼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어떻게 될 것인지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의 관찰과 연구, 이로 인한 학계의 갈등을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많은 학자는 섀그넌의 업적에 찬사를 보냈다. 리처드 도킨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인류학자만이 아니라 심리학자, 인문학자, 모든 과학자들이 그의 탁월한 업적을 오래도록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교수는 “진화생물학과 사회과학이 충돌한 초기에 있었던 중대한 사건에 대한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생물학이나 인류학을 잘 몰라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쉽게 썼다. 흥미진진한 아마존 원시 부족 탐험기로 읽어도 좋은 책이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1HU295LNJK
[Book In Depth] 원시부족은 선천적으로 착하다? "인류학적 몽상일 뿐"
■ 고결한 야만인 나폴리언(섀그넌 지음, 생각의 힘 펴냄)
美 인류학자 나폴리언 섀그넌 5년간 야노마뫼족 관찰·연구
'자원부족으로 전쟁' 기존설 뒤집고 "가임기 여성 확보 위해 만성적 전쟁"
인류학계선 비난·반박 줄이어
① 다른 야노마뫼족 마을의 연회에 참석한 방문자들이 초청자들을 위해 춤을 추고 있다.
② 야노마뇌족은 다양한 형태로 다투고 갈등을 벌이며 위험성과 치명도도 제각각이다. 예컨데 심각한 말다툼이 곧바로 몽둥이를 휘두르는 치명적인 다툼으로 폭발할 수도 있다. 사진은 옆구리 때리기 결투.
③ 습격을 떠나기 직전에 갖는 전사들의 정렬 의식인 '와유 이토우'.
④ 야노마뫼족이 사는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국경지대 오지는 원주민을 제외하면 선교사들밖에 없었다. 저자인 나폴리언 섀그넌(왼쪽)과 이글레시아스 살레지오회 수사. /사진=생각의힘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는가, 아니면 시작부터 악한가. 이 오래된 질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철학에서 정치·사회학에 이르기까지 중요하고도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단지 개인의 대인관계 방법론의 문제가 아닌, 집단 혹은 국가의 형성과 지속에 관련된 중요한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생물·문화적 측면에서 그 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통상 학계에서는 장 자크 루소의 입장을 견지해왔다. 쉽게 말해 '자연상태의 인간은 비폭력·이타적이고 친절'하다는 것이고, 다만 식량과 연료, 물 공급과 항구, 재산 등 물질적 자원의 부족이 전쟁을 낳는다는 논지였다. 17세기 영국시인 존 드라이든이 그의 영웅비극 '그라나다의 점령'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제목 '고결한 야만인'도 문명에 오염되지 않고 선천적으로 착한 본성을 지닌 원주민을 가리키는 단어다.
하지만 미국 인류학자 나폴리언 섀그넌은 이는 '몽상'일 뿐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오히려 만성적인 전쟁상황에서 언제 공격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는 것이다. 루소보다는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제시한 혼돈, '인간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에 더 가깝다.
그가 근거로 드는 것은 지난 1964년부터 35년간, 짧게는 수주에서 2~3개월까지 총 5년 정도의 기간을 함께 살며 연구한 야노마뫼족. 이 부족은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국경지대, 흔히 아마존으로 통칭되는 오지에서 살아온 원시부족이다. 섀그넌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그들이 오랜 기간 외부인의 접촉 없이 고립된 채 살았고, 그 덕분에 외부의 질병이나 식민주의 시대 학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조차 들어올 수 없는 곳에 있어, 말 그대로 그들만의 관습과 문화가 원형을 유지한 셈이다.
부족 2만명 정도가 250여개 마을에 흩어져 사는 가운데 왜 크고 많은 전쟁이 그렇게 많았을까. 원인은 대부분 가임기의 여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유가 무엇이었건 마찬가지다. 아직 국가 성립 이전의 부족 단계에서 부족원의 수는 마을의 군사력, 생존과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다. 특히 남자 전투원의 확보는 필수적이었다. 전투나 노동력에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당장 불필요한 여아에 대한 영아살해가 빈번하게 이뤄진다. 그러니 성비는 맞지 않고 강한 마을은 상대적으로 약한 곳에서 여성을 강탈해오는 데 집중하게 된다.
종족은 인구가 많아지면 일부가 독립해 새로운 마을이 생긴다. 같은 종족도 마을이 다르면 전쟁이 벌어진다. 이에 따라 그저 같은 종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장되지 않는 정치적 안전을 강화하려는 노력 속에 부계혈통의 중요성이 극대화된다. 타 부족과의 경쟁에서 내부적으로 잘 결속된 부족원을 확보하려는 이유에서다. 같은 아버지와 형제라는 유대감은 어떤 관계보다 배신의 가능성을 낮추고, 이는 일부다처제에 대한 선호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소외된 남성 부족원들에 대한 불만은 다른 마을에서의 여성 납치로 소화한다.
이렇게 형성된 끈끈한 유대감은 정치적 영향력으로 작용하고, 이는 결혼과정에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강한 마을의 남자 부족원이라는 점, 특히 마을 내 부계혈통의 남자 친척이 많을 수록 결혼이 수월했고 다수의 아내를 거느릴 확률도 높았다. 정치적 영향력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딸을 가진 부모 역시 그런 사위를 선호했다. 그래서 반대 경우, 약한 마을의 배경 없는 남자는 다른 마을에 가서 일정 기간 천대 받으며 일하고 아내를 얻는 '봉사혼' 밖에 방법이 없었다.
섀그넌은 친족 집단의 내부결속은 구성원의 숫자와도 상관성이 높다고 말한다. 40명 남짓한 집단은 말 그대로 대가족적인 위계질서만으로 충분하지만, 80명을 넘어서면 정치적 지도자(족장)의 역할이 커진다. 150명을 넘어서면 족장의 태도는 한결 강경해지고 질서 유지를 위해 협박과 물리적 강권을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중간 마을 규모인 200명 정도면 억압적이고 전제적인 성격까지 띤다. 400~500명 규모의 큰 마을에서는 대부분 무자비한 수준에 도달하고 만다.
그렇게 족장에게 쏠리는 권력은 필수적으로 여성을 사이에 둔 갈등을 조장했다. 실제로 마을 규모가 조금 커지면 더 많은 여성을 소유하려는 다툼이 벌어졌고, 일부가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 독립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돌아서면 남이 되고 만다. 2만명 남짓한 부족원간에 대부분은 부모 양쪽의 사촌이나 팔촌으로 얽혀있었음에도, 혈통보다는 그때그때의 이익에 따라 동맹이 결성됐고 그나마도 손바닥 뒤집듯 배신하는 구조였다.
1966년 이같은 내용을 담은 박사논문이 발표되자, 그의 주장은 인류학계에서 큰 반발을 불러왔다. 대표적인 문화인류학자 애슐리 몬터규는 이에 대해 생물학적 요인으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한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반박한다. 나아가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은 '문화과정'과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같은 반향은 19세기 에밀 뒤르켐이 사회학을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들고 나오자 기존 학계가 반발하던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억지 논리와 비방에 지친 섀그넌은 이 책을 통해 문화인류학계의 고집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학자를 위협하고 억누르며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저질렀다고 비판하는 친목단체"라고까지 비난한다. 또 이에 동조해 애매한 표현의 논문만을 내놓는 많은 인류학자들에게는 "기존 지식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사상경찰이자 인류학계의 아야톨라(이슬람 시아파 최고지도자)들에게 미움과 비난을 받지 않으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을 이어가고 있다고 쏘아 붙인다.
https://m.blog.naver.com/chizchip/221591874762
루소(Rousseau)와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은 인간의 생래적 도덕성을 강조하는 상징적 개념이다. 계몽시대에 등장한 고결한 야만인의 개념은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하기도 하고 20세기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아 기독교와 서구문명을 비판하는 데 사용되었다. 소비에트 탄생의 사상적 밑거름이 된 것이다. 서구에서는 성선설과 성악설을 각각 "Rousseauian"과 "Hobbesian"이라고 표현한다.
Noble Savage라는 말은 1606년부터 1년간 캐나다의 Mi'kmaq 원주민들과 생활한 경험이 있었던 Marc Lescarbot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유럽에서 사냥은 귀족이 하는 일이었기에 사냥하는 야만인의 모습이 그의 눈에는 귀족적으로 비춰졌던 모양이다.
https://naver.me/FzQupLS0
루소의 고결한 야만인
루소는 '고결한 야만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
다. 이는 인간이 처음에는 자연의 상태에서 순수
하고 선량한 상태로 태어나지만, 사회의 영향을
받으면서 타락하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루소는
인간의 본성이 순수하고 선량하며, 사회 조건에
의해 교화되기 전의 상태가 더욱 가치 있다고 믿
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결한 야만인을 통해 이러
한 순수한 상태를 상징적으로 제시하였습니다.
고결한 야만인의 특징
고결한 야만인은 사회적 규범과 제약에서 벗어나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인물로 루소에 의
해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유롭고 자연스러
운 생활을 지향하며, 사회적으로 규제받지 않은
순수한 상태에서 행동합니다. 고결한 야만인은 사
회의 외부에서 독립적으로 살며, 자신의 본성과
감정에 따라 행동합니다. 이는 단순하면서도 아
름다운 존재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모
델이 되었습니다.
루소의 고결한 야만인 개념은 현대의 사회와 문화
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이상적인 개념
은 자유와 본성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
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더 나은 세상을 꿈
꾸는 데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고결한 야만인의 개
념은 인간의 본성과 진정한 자유에 대한 고찰을
초래하며, 현대 사회에서도 그 영향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