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착하게 살 수 있을까요?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기회는 없으리라 충분히 짐작합니다. 그렇게 변화를 일으켜준 아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아내와 같은 여자를 다시 만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브릭스’의 감정이 분노로 가득 차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서는 아무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들어올 리가 만무합니다. 아내를 살해한 놈들을 찾아 끝장을 내기 전에는 아무런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일이 원대로 다 처리된다 해도 그 후에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도 그렇고 또 그 때와 다르게 달린 식구도 있습니다. 딸 ‘브룩’이 있습니다.
연방보안관이 말합니다. 이상하지 않아? 저 딸을 봐. 자기 엄마가 죽어서 매장하고 있는데 울기는커녕 눈물도 보이지 않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아빠가 멀찍이 엄마를 묻고 있는데 현관 발코니 안락의자에 앉아 아무 일 없다는 듯 흔들대고 있습니다. 이게 평범한 일입니까? 도무지 납득이 안 됩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더구나 어른도 아니고 엄마의 사랑을 갈구할 만한 때, 열 살이 될까 말까한 나이인데 말입니다. 자기 엄마가 맞아? 그런 생각까지 듭니다. 연방보안관은 안타깝지만 더 이상의 사고를 일으키지 말고 그냥 묻어두고 조용히 살라고 조언합니다. 딸을 보아서라도 말이지요. 사실 죽은 엄마보다 산 딸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브릭스는 이미 마음에 결정을 내려놓고 있습니다. 숨겨두었던 총을 꺼내듭니다. 오랜 시간 잊고 살았습니다. 꽤나 이름을 날리던 총잡이, 사람도 여럿 죽였습니다. 그러나 물론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해서 살인이 살인 아닐 수는 없습니다. 전쟁 마당이 아닌 이상 일상 속에서의 살인은 사람들의 인식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조그만 동물이라도 함부로 생명을 취하기 어렵습니다. 강아지나 고양이라도 함부로 해할 수 있습니까? 생명체는 그 생명 자체로 귀합니다. 아무리 사람을 해하는 미물이라 할지라도 사실 그 미물의 입장에서는 자기 생존법칙에 따르는 일일 뿐입니다. 생명은 생명이지요.
그런데 사람을 살해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사건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악한 짓을 했더라도 함부로 개인적인 복수를 하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공개적인 법으로 다루려 합니다. 그래야 복수가 복수를 낳는 악순환을 피할 수 있고 사람의 기본적인 인성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잘 아는 대로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에는 공중질서가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개인의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확보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개인 간의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결투가 생기기도 한 것으로 압니다. 살기 아니면 죽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살인이 크게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무리지어 총질을 하는 것도 쉽게 보았습니다. 죽음을 흔히 보았겠지요.
두루뭉술하게 보면 죽음이란 것도 대수로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사랑하던 사람이 폭력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것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브릭스는 보안관의 조언을 무시하고 딸 브룩을 데리고 악당들을 찾아 나섭니다. 보안관은 살인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악당들의 정체를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보안관 일행이 법죄자들을 찾아내 법의 심판을 받게 해주고 있은 것입니다. 그렇게 악당들의 뒤를 쫓다가 오히려 그들에게 당합니다. 일행을 잃고 세 사람 간신히 남은 것을 브릭스가 도와주며 또 광야에 남고놓고 떠납니다. 상관하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다만 악당들의 우두머리와 일행의 정체를 밝혀줍니다. 이제 알고 행선지까지 알아서 쫓아갑니다.
복수라는 주제보다는 오히려 상황 설정이 흥미롭고 주인공의 독톡한 성격이 관심을 끕니다. 게다가 브릭스와 더불어 그 딸의 성격이 또한 아비를 닮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두 부녀의 대화입니다. 악당들을 추격하며 브릭스와 브룩, 두 부녀의 대화를 통해 브릭스의 이상 성격과 변화 등 과거를 알게 됩니다. 더불어 딸 브룩의 성격도 알게 됩니다. 아비를 그대로 이어받은 셈이지요. 이 대화가 과연 가능한 것인지, 좀 과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10살 안팎의 소녀가 그런 생각과 그런 대화를 꺼낼 수 있을까 싶은 것입니다. 일일이 기억하기 어렵지만 그들의 대화는 생각이 있고 깊이가 있습니다. 일어나는 사건 만큼이나 흥미롭습니다.
이런 딸이라면 걱정할 일 없겠다 생각합니다. 웬만한 사내녀석보다 훨씬 낫게 보입니다. 오죽하면 악당의 우두머리 ‘제임스’가 입양하고 싶어할 정도(?)였을까 싶습니다. 아빠 브릭스는 딸을 생각하여 택한 길이고 딸 브릭스는 나름 자신의 미래를 알차게 준비하고 끝납니다. 정말 대단한 소녀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머리가 잘 돌아갈까요? 그리고 브릭스가 두려움 없이 살아온 중에 딱 한 군데서 공포를 느끼고 깨달았다는 경우가 마음에 닿습니다. 바로 아내를 만났던 시점입니다. 남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눈에 딱 들은 여성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네야 합니다. 거부당하면 어쩌지? 영화 ‘올드 웨이 - 분노의 추격자’(The Old Way)를 보았습니다. 2023년 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