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 토마스아퀴나스 신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루카 1,26-38
오늘 복음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얼마나 놀라고 당황하였겠습니까?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더욱이 결혼하지 않은 상황에서 잉태라니
당시 율법이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런 마리아에게 천사가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처음 천사의 말을 들었을 때는 엄청난 불안과 외로움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누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겠습니까? 앞날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는 천사의 말이 마리아에게 빛과 희망이 되었습니다.
용기를 얻은 마리아는 응답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대답은 단순한 대답이 아닙니다. 죽음마저 각오한 대답입니다.
결국, 마리아는 희망과 함께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며,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실현하려고
온 힘을 다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시련과 고통을 겪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희망을 잃지 말고 끝까지 하느님께 매달려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아픔에 동참하시며 끝까지 내 곁에 계실 것입니다.
/ 서울대교구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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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대 마르코 신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루카 1,26-38
주님의 뜻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주님의 성탄 대축일(12월 25일)에서 거꾸로 아홉 달이 되는 오늘, 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께서 보낸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성자를 잉태할 것을 기별 받은 일을 경축한다.
이것이 주님의 탄생예고 대축일이며, 다른 말로는 성모영보(聖母領報)대축일이다.
출산이 있으면, 당연히 수태가 있어야 하는 법, 그렇다고 오늘의 대축일이 9개월 정도의
임신기간이라는 인간적인 계산에서 그 첫날을 단순히 축하하자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성모 마리아 신심이 남달리 강했던 동방교회가 이미 550년경부터
3월 25일을 성모영보대축일로 지낸 것을 보면, 오늘 축일의 의미가 대단히 컸다는 짐작이 간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과 세상의 구원은 이미 천지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계획이다.
우리는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이 구원계획의 수행 또한 하느님께서 스스로 주도하셨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때가 왔을 무렵,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셨다.(갈라 4,4 참조)
이 사건을 오늘 복음이 보도하고 있다.
여섯 달 전에 즈카르야를 찾아가 세례자 요한의 수태를 알렸던 가브리엘 천사가
이번에는 마리아에게 가서 그녀가 하느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의 어머니로 간택되었음을 전한다.
이 전갈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28절)는
마리아에 대한 천사의 인사말씀으로 시작되었다.
당황한 마리아가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천사의 전갈이 이어졌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30-31절)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성취를 위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음이 선포되는 순간이었다.
하느님 편에서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처녀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요셉과 약혼만 했지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지에서 마리아는 당황함 속에서도
침착하게 그 가능성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천사는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가진 엘리사벳의 경우를 설명하고,
마리아가 하느님 아들의 어머니가 되는 일에 ’성령 하느님’이 굳센 보증이 될 것임을 약속한다.
흔히 약속이나 계약을 할 때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큼직한 인감도장이 찍힌 서류도 없고 보증서도 없다.
오직 ’성령 하느님’이 그 보증이다.
이제 결정은 마리아에게 달렸다. 그러나 마리아는 모든 것을 믿음과 순명으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하고 대답하였다.
이는 단순한 대답이 아니다. 이는 마리아가 자신을 깡그리 바쳐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며,
온 인류를 들어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일이다.
이로써 마리아의 역할은 분명해 졌다.
마리아가 바로 하느님의 구원협조자(coredemptrix)로 간택된 것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는 일, 하느님 스스로가 인간이 됨에 있어
인간을 협조자로 선택했다는 것, 이는 하느님 신성에 우리 인간성이 참여함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신성이 인성을 취하심이다.
따라서 오늘은 마리아뿐 아니라 우리 전 인류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날이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도 마리아처럼 당당히 "Ecce ancila Domini"(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fiat mihi secundum verbum tuum!"(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즉 "fiat voluntas tua!"(주님의 뜻이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리라.
이는 결코 소극적인 관망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용임을 알아야 한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이 땅위에서 얼마나 많은 언어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바쳐지는 기도인가?
누구든지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그 옛날 천사와 마리아의 만남 안으로 들어가
이 만남을 다시금 살아 숨쉬게 한다.
누구든지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천사와 함께 인류구원의 시작과 성취를 기뻐하게 되며,
동시에 성모 마리아의 믿음과 순명을 자신의 것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 기도는 마리아와 함께 지고(至高)의 하느님께 드리는 믿음과 순명의 서원(誓願)이다.
누구든지 이 기도를 묵주에 실어 바치는 사람은,
비록 자신이 죄인이라 할지라도 손에서 손으로 자손만대에 이 서원을 물려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부산교구 박상대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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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환 안드레아 신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루카 1,26-38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오늘 루카 복음에서는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시어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인한 예수의 잉태사실을 알리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는 마리아의 순종을 보게 됩니다.
또한 제1독서인 이사야서 7장 10절 이하에서 주님의 탄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예언되었던 대로 주님은 동정 마리아를 통하여 오늘 잉태되고,
앞으로 10달 후인 12월 25일 탄생하시게 됩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으셨죠.
그분께서 이 땅에 오셔서 33년 동안 지상에서 하신 많은 기적과 가르치심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귀중한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대대로 보관하고 전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의무,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증거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매일 미사를 통하여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체험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예수의 진면목을 볼 수 없었을 것이고,
또 예수의 위대한 잉태의 기적의 의미 또한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 부활에 극적으로 개입하신 영원하신 분의 힘이 그분의 잉태의 역사에도 개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왜 대천사 가브리엘을 나자렛이라는 작은 동네의 한 처녀인
마리아에게 보내셨을까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가 그 뜻을 모두 헤아릴 수 없지만,
결국 동정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그 뜻에 오로지 함께 하시는
위대한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가브리엘 대천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모님은 몹시 당황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난 후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대답하십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그 겸손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그러한 겸손의 신앙 모습을 우리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봅니다.
프랑스의 작가 아나톨 프랑스의 작품 중에 ‘성모님의 곡예사’라는 짧은 단편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바르나베라는 곡예사 이야기입니다. 바르나베는 가련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성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길거리에서 한 수도원 원장을 만나게 됩니다.
신세 한탄을 한 바르나베는 그를 불쌍히 여긴 수도원장에 의해서 수도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수도원에는 많은 수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모님을 위해 책을 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성모님을 찬미하는 송가를 짓기도 하였지만 단순하고 무식했던 곡예사는
자신이 성모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몹시 슬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다른 수도자들이 성모님을 위한 토론이나 신학에 열중하고 있는 시간이면
그는 슬그머니 빠져나가 성당에서 시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그의 거동을 수상하게 여긴 수도자들은 바르나베 수사를 감시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바르나베 수사가 성모님 앞에서 거꾸로 서서 접시를 돌리고
열두 개의 칼을 가지고 곡예를 부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성 모독이라고 분개한 수도자들이 뛰어가 막 끌어내리려는 순간 성모님이 갑자기 제단 위에서
서서히 내려와 자신의 푸른 옷자락으로 바르나베 곡예사가 흘린 땀방울을 닦아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나톨 프랑스의 이 단편처럼 우리들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각자의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에 관해 연구하고 막연히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보다는
하느님으로 받은 재능을 주님과 함께 최대한 발휘하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을 취하신 분이 바로 성모님이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위하는 최선의 길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하찮고 가여운 곡예사의 솜씨도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에게만 내려준
최고의 달란트였고, 그것이 하느님을 위하여 쓰여졌을 때 더욱 아름답게 빛이 났습니다.
우리는 때로 나 자신이 하느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럴 때 그저 성모 마리아처럼 묵묵히 하느님의 뜻을 알아나가고,
받아들이는 믿음의 삶이 필요합니다.
오늘하루 나의 재능을 다하여 우리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 돌아서서 아쉬움에 몸부림치기보다는
오늘 이 시간과 내일의 희망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늘 하느님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맞이하여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고 하는
성모님의 지극하신 겸손의 신앙을 다시 한번 묵상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새겨,
우리 역시도 하느님의 뜻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희망해야 하겠습니다.
/ 부산교구 백성환 안드레아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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