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에 헬리콥터를 띄우는 건 어때요? 1시간 안에 국회에 올 수 있지 않나요?”
정
의화 국회의장은 최근 국회 사무처 내부 회의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 본격적인 정기국회 시즌을 앞두고 국회로 몰려올 세종시 정부
부처 공무원들의 이동 시간을 줄여주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국회 사무처는 이후 “검토 결과, 세종시에 헬리콥터를 띄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정 의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이유는 세종시의 안개 때문이었다.
세종시의 악명 높은 안개는 이미 대통령과 전·현직 총리의 발을 묶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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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겨울, 안개에 휩싸인 정부세종청사 부근 도로와 아파트 주차장의 모습. 짙은 안개 때문에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유진씨 제공
李 전 대통령, 헬기 포기하고 KTX 타고 세종시行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작년 1월 15일 정부세종청사를 직접 방문해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세종청사 개청(開廳)으로 인해 우려되는 행정 비효율의 최소화에 모든 부처가 노력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이 전 대통령은 그날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세종시에 왔다. 애당초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헬기를 타고 곧바로 세종청사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정
부 고위 관계자는 “그날 오전 세종청사 부근은 가시(可視)거리가 1~2m밖에 안 될 정도로 안개가 짙게 끼었다”며 “결국 이 전
대통령은 헬기가 아닌 전용 KTX를 타고 (충북) 오송역에 내려 다시 승용차로 갈아타고 세종청사에 도착했다”고 했다. 국무회의가
끝나고 점심 때쯤 안개가 걷히고 나서야 이 전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청와대로 돌아갔다고 한다.
세종시는 해발
200~300m 높이의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盆地)라 일교차가 심한 편이다. 또 주변에 금강이 있고, 곳곳에 호수가 많아 쉽사리
짙은 안개가 발생하는 곳이다. 현지 공무원들 사이에선 “매일 아침 흰 선글라스 끼고 출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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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인 지난해 1월 15일 정부세종청사를 방문해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헬기를 타고 세종시를 방문하려 했으나 안개 때문에 전용 KTX를 이용했다. /뉴시스
金 전 총리는 ‘지각’, 鄭 총리는 한동안 세종시 못 가 세종시 안개는 전·현직 총리 일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김황식 전 총리는 작년 1월 12일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했을 때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지각을 했다.
그
날 오전 11시 57분쯤 북한의 3차 핵실험 징후가 언론에 보도됐을 때, 김 전 총리는 세종시 총리 공관에서 행사를 주재하고
있었다. 그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청와대로 가기 위해 군(軍)에 헬기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곧바로 충북 청주에서 공군 헬기가 김
전 총리를 태우기 위해 세종청사로 날아갔지만 점심 때까지 남아 있던 세종시의 안개 때문에 이·착륙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실 관계자는 “결국 김 전 총리는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에 20분 정도 지각을 했다”고 말했다.
작
년 2월 취임한 정홍원 총리도 취임 후 보름 동안 3일만 세종시에 머물고 나머지 12일은 서울에 있었다. 당시 북한은
정전(停戰)협정 백지화와 핵 타격 위협을 하고 있었다. 총리실 관계자는 “세종시 안개 등의 변수 때문에 급박한 상황 발생시,
총리가 세종시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리는 청와대까지 1시간 내에 도착하기가 쉽지 않다”며 “대북 관계 등 안보 상황이 악화되면
총리는 주로 서울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했다.
鄭 총리 부부, 공관(公館)에 출몰한 뱀보고 화들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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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모사류 중에서 개체수가 가장 많은 까치살모사. 까치살모사는 세종시에도 서식하고 있다. /주머니 속 양서·파충류 도감 제공
세종시에 짙은 안개가 자주 끼는 것은 습기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뱀이 서식하기에도 좋은 지역이다. 충남발전연구원에 따르면
세종시에는 살모사, 쇠살모사, 능구렁이, 유혈목이(꽃뱀) 등 7종의 뱀이 서식하고 있다. 뱀의 먹이가 되는 양서류도 금개구리,
맹꽁이 등 멸종위기 종을 포함해 총 10여종이 서식하고 있다.
작년 6월쯤 정홍원 총리 부부가 살고 있는 세종시
총리공관에도 뱀이 출몰했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정 총리 부부가 공관 앞뜰에 나타난 뱀을 보고 매우 놀랐다”며 “특히 정 총리
부인은 뱀을 본 뒤 한동안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 머물며 세종시 공관에는 오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정부
세종청사에도 뱀이 종종 출몰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관계자는 “세종청사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뱀의 서식처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공사 인부들이 처음에는 놀랐지만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기재부의 한 사무관은
“작년에는 세종청사 옥상 화단 사이에서 등에 빨간 반점이 찍힌 뱀을 봤고, 최근에도 청사 주변에서 종종 뱀을 봤다”고 했다.
작
년 6~7월에는 세종청사 총리실 직원 식당에도 뱀이 출몰했다. 총리실의 한 국장은 “식판이 쌓여 있는 곳 주변에 노란 줄무늬에
머리가 뾰족한 살무사가 똬리를 틀고 있었고, 그걸 본 총리실 일부 직원들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고 했다. 세종청사 관리소는 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작년 여름 야산과 인접한 청사 울타리에 모기장 같은 검은색 그물을 설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