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여러분은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2,19-22
형제 여러분,
19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24-29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지금은 ‘줄’ 서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덜 복잡하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는 ‘줄’ 서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습니다. 버스가 한 대 오면 승객들이 버스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버스는 정류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 정차했고, 승객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승차하려고 좁은 문을 향했습니다. 저도 그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좁은 문’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등교하기 위해서는, 출근하기 위해서는 버스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차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달리는 차에서 승객을 안으로 밀어 넣었고, 버스 안은 그야말로 콩나물시루 같았습니다. 지금은 자동차가 많이 보급되었고, 지하철도 노선이 늘어서 예전처럼 만원버스를 경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버스가 올 때까지 길게 줄을 서서 스마트 폰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비행기 여행을 하면서 입국과 출국을 위해서 줄을 서는 일이 있습니다. 출국을 위해서는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라고 합니다. 대기하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뜻하지 않는 변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터미널이 바뀌기도 하고, 출발 시간이 바뀌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입국을 위해서도 줄을 서야 합니다. 보통은 1시간 정도 기다리게 됩니다. 어떤 직원은 빠르게 입국 심사를 하지만 어떤 직원은 까다롭게 입국 심사를 하기도 합니다. 앞에 심사 받는 사람이 서류에 문제가 있으면 직원은 아예 문을 닫고, 심사 받는 사람을 데리고 나가기도 합니다.
그런 줄에 서 있으면 평소보다 늦게 입국하게 됩니다. 입국과 출국의 절차만 간단해도 여행의 피로가 많이 감소할 것 같습니다. 저도 환승하는 과정에서 비행기를 놓칠 뻔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연착하였고, 환승하는 비행기의 터미널이 바뀌었습니다. 서둘러서 뛰었지만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문을 닫았습니다. 다행히 저처럼 늦은 승객이 7명이 더 있어서 직원은 닫았던 문을 열어주었고, 저는 무사히 다음 목적지 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입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산하기 위해서 줄을 섰습니다. 제 앞에 있는 분이 미사 반주 봉사하는 자매님이었습니다.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매님이 이것도 하느님께서 주신 기회라면서 제 카트에 있는 것들까지 계산해 주었습니다.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이 떠올라서 웃었습니다. 줄과 관련해서 재미있게 읽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양파 한 뿌리가 생각났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옛날 못된 할머니가 살았는데, 죽고 나서 보니 착한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기에, 악마들은 할머니를 불바다 속에 던져 버렸다. 그래도 이 할머니의 수호천사는 뭔가 구제할 거리가 없나 곰곰이 생각하다가, 단 하나의 선행을 기억해 내고는 하느님께 고했다. 할머니는 텃밭에서 양파 한 뿌리를 뽑아 거지 여인에게 준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 양파를 가지고 가서 할머니가 양파를 붙잡고 나오게 하라. 만약 불바다에서 나오면 천국으로 가지만, 양파가 끊어진다면 불바다에 남게 되리라.' 수호천사가 내민 양파를 붙잡고 할머니가 조심조심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다른 죄수들이 할머니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건 내 양파야. 너희들 것이 아니라고!’ 그녀가 이 말을 하기 무섭게 양파는 뚝 끊어져 버리고 할머니는 불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 천사는 하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떠났다고 한다.”
그렇습니다. 나만 잘 살겠다고 하는 이기심의 줄은 우리를 천국으로 안내하지 못합니다. 더 많이 채우려는 권력과 재물 그리고 명예의 줄 또한 우리를 천국으로 안내하지 못합니다. 시대를 탓하고, 부모를 탓하는 불평과 원망의 줄도 우리를 천국으로 안내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줄이 우리를 천국으로 안내할까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그 사랑의 줄이 우리를 천국으로 안내합니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는 것처럼, 절망의 터널에서도 희망의 빛을 볼 수 있는 그 희망의 줄이 우리를 천국으로 안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센 풍랑에 두려워 떨던 제자들에게 ‘왜 이리 믿음이 약하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줄이 우리를 천국으로 안내합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첫댓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