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그 술집을 찾는다 ]
김 중 광 (金 重 光 )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엔
오뎅과 군참새와 세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이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트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풍경이 묘사되는 소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의
처음 부문이다.
숨이 길어야 다 읽어 나갈까,
마치 '레미제라블'에서 '빅토르 위고'의 글만큼이나 한 문장의 길이가 길고도 길다.
소위 4,19세대가 일으킨
'감수성의 혁명'의 맨 앞자리에 놓이는 김승옥 문학의 대표작으로
그의 문체는 대단히 감각적이며 육감적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동인문학상을 받았고,
60년대가 겪는 역사속에서
그때를 사는 사람들의 의식의 방황을 그렸다는 점,
그리고 50년대의 도덕주의적 엄숙성을 지닌 문학의 경향에서 탈피하여
도시생활에서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를 생생하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시험에 실패하고 구청 병사계에
근무하는 25세의 시골출신 사내와
부잣집 장남이자 대학원생인 '안'씨 성을 가진 젊은이, 그리고 서른대여섯살의 서적외판원이 소설에 등장한다.
작가는 특별한 사건없이
술집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이룬 이들 세사람이 건네는 세상사는 얘기와 술 마시는 모습으로 엉뚱하고 은근한 감동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말하자면,
한숨을 동반한 1960년대의 황량하고 박박한 그 시대로 독자를 이끌고 간 것이다.
오늘,
왜 느닷없는 1964년, 40년 가까운 그 옛날 얘기들 꺼내 오는 것일까, 거기에 술과 안주 얘기, 또한 선술집은 왜 들먹이는 것일까?
그것도 서울의 얘기를 이곳 광주쪽까지 내려다 놓는 것일까?
글쎄 12월, 날씨는 으슬으슬 추워지고 한해가 차츰차즘 저물어가는 세모의 기분이 나도 모르게 찾아 들어서일까
아니면 소설속에서 나왔던 오뎅과 군참새 같은 안주가 없는 무덤덤한 술집 때문에서일까.
또 아니면 2003년 12월에 바라다 보이는 우리들의 세상살이가 하도 답답하고 기가 막혀서일까.
◇그 옛날 그 술집이여..
아무튼 선술집이랄까, 포장마차라고 할까, 많이도 변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1960년대의 선술집과 포장마차는 지금에 와선 거의가 소주방으로 변해버렸고 마지못해 포장마차라는 이름만은 남아있지만
실제 수레를 끌고 나다니는 포장마차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50평에서, 백여평에 이르는 대규모 기업형 포장마차에는 오뎅이나 참새구이 따위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고 값비싸고 어벌정한 안주가 대종을 이를뿐이다.
그러나 60년대를 어른거리며 지냈던 소위 '술꾼' 들은 옛날 겨울의 포장마차를 잊을 수가 없으리라
연탄불 위에서 내내 끊고 있는 오뎅 국물은 그 맛이 더없이 구수했고 국물에 듬뿍 절이고 절여 진간장 빛깔이 곱게 나는 무우며 두부며 푸짐한 쌈지가 얼큰한 겨자에 곁들여 술잔옆에 당도할 때, 술꾼들은 세상과 그대로 멀어져 간다.
거리엔 눈발이 사정없이 휘몰아치든 말든 팍팍한 세상사, 꼬이고 꼬이는 집안 일, 머리 아픈 회사일 따위는 선술집 근처에 감히 얼씬거릴 수 없었다.
◇싱건지 국물의 아싸한 맛
선술집도 그러했고 대포집도 그러했다. 물론 마시는 술에 따라 다르기도 했지만, 기본으로 나오는 이른바 서비스 안주는 지금은 돈을 주고도 먹을 수가 없다.
참기름 냄새 가득한 꼬치잎 무침의 독특한 맛이며 얼음이 둥둥 뜬 싱건지 국물의 아싸한 맛이며, 늙은 호박에 노글노른한 물천어 조림이며,
깔깔한 밴댕이 황새기 젓갈맛,
그 속엔 진한 인정과 그윽한(?) 손맛이 담겨 있었다
거기다,
"요거 조끔 잡사 보실라요? 맛이 있을지는 모르것소마는... " 하며 건네는 갓무친 콩나물이며 무럭무럭 김이 오르는 찐 고구마가 코앞에 들이 닥칠 때, 술꾼들은 눈가에는 감격을 슬며시 감추며 술잔을 마구 비웠다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 설킨
선후배들,직장동료들,여기저기 오고가는 친구들, "어이 이리오소 술 한잔 먹소, 어서 와... "하며
호기있게 한번 사고 두번 사노라면
얄팍한 월급 봉투로 한달을 살아가는 당시의 월급장이들은
술집으로 가는 월급이 반,
집으로 가는 돈이 반,
그러다 보면 집안에서의 인기는 내리닫이 빵점이 된다.
가슴 저미는 아내의 잔소리,
"정신을 차려야 세상을 산다"는 어르신들의
쓴 소리를 들으며
'오늘은 내가 술을 입에 대는가 봐라' 며 굳게굳게 마음의 약조를 하면서 일터로 나가지만
어느 덧 땅거미 지고 눈발이라도 날리노라면 그 포장마차가 세삼 머리에 가득 차 버린다
그나저나
이 글이 나가는 날은 날씨가 좀 추워야 할 것이고 눈발까지 비친다면 운치가 그만이련만 그거야 우리가 할 수 없는 일.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우선 그 옛날 1960년대의 겨울 맛을 절반만이라도 낼 수 있는 대포집 만이라도 찾아 놓아야 할 것인데 그것이 실은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어딘 가에 있으리라 60년대의 분위기 나는 그런 선술집,
분명 어딘가에 있으리라.
ㅡ이 글은 김 중 광 (前 한국 토지주택공사 이사회의장)이 광주매일신문에 재직하면서
2003. 12. 15일자 同紙에 게재하였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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